눅22:42 기도의 인격성
우상 숭배자들도 우상에게 종종 기도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우상에게 기도를 많이 하는 민족입니다. 특히 여인들이 새벽 일찍 일어나 목욕재개하고 약수터에서 가장 먼저 맑은 물을 떠서 정성을 들여가며 우상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우상에게 백일기도를 해서 아들을 얻고, 소원을 응답받았다는 이야기가 한국 역사에 많이 나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기도를 합니다.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라고 할 만큼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자들의 기도와 크리스천과의 기도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상 숭배자들의 기도는 우상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우상은 말이 없고, 우상은 듣지 못하고, 우상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상에게 기도하는 것은 단지 자기 욕심대로 복을 받기 위함이지 우상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저 우상으로 인해 자기가 원하는 뜻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기도는 우상 숭배자들과 같이 기복주의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 크리스천들도 기도를 통하여 우리가 원하는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고, 우리의 문제도 아뢰고, 그에 대한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우선시 합니다. 즉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비록 내가 원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갈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실 수 있는 분이시고, 자신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상은 말이 없습니다. 자기의 뜻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고로 우상에게 기도하는 분들이 "내 뜻대로 되지 마옵시고 우상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상에게는 자기의 뜻과 인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분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은 "네가 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하는구나!" 하고 기뻐하십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께 구할 때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장수도 구하지 않고, 원수들의 목숨도 구하지 않고, 왕으로서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하자 하나님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왕상3:10)
솔로몬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인격적인 기도를 하자 하나님은 기분이 좋으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도 같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인격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기도를 계속 하면 하나님의 마음은 심히 불편하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뜻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인데, 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저 놈도 죽여주시고, 이놈도 죽여주시고..." 뭐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기뻐하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혹시 내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주여, 제가 이렇게 기도했어도 제 뜻대로 되지 마옵시고, 늘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주세요. 그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하고 기도를 끝맺는 것이 좋습니다. 좀더 지혜로운 사람은 기도를 할 때 아예 처음부터 이런 단서를 달아 놓습니다. "하나님, 제가 평생 동안 기도를 할 텐데요. 아무리 제 뜻을 이루어 달라고 해도 늘 하나님이 뜻대로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 생각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냥 우상에게 하듯이 "우상아, 너 내 소원 안들어주면 머리를 쪼개버린다. 너 나한테 복주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간혹 그런 식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기도 안들어 주면 앞으로 나 하나님 안 믿을 겁니다. 그러니 손해 보기 싫으면 알아서 하시오." 이렇게 인격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기도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만 먹다보니 이제는 고기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이제까지 만나 주셔서 잘 먹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들이 이제는 고기가 먹고 싶습니다. 혹시 고기 좀 주실 수 있습니까? 혹 고기 주시는 것이 저희들의 건강에 좋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안주셔도 됩니다."
이렇게 인격적으로 기도하면 좋았을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굳이 하나님의 마음을 확 상하게 하면서 이런 식으로 요구했습니다. "하나님, 왜 만날 만나만 먹이는 거예요. 지겨워서 죽겠어요. 차라리 애급에서 종살이 하도록 왜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고 이곳 광야에 끌고 와서 이 고생 시키는 거예요. 고기를 주지 않으면 우리 애급으로 돌아갈 겁니다. 하나님, 고기 줄 능력 없으면 물러가시오."
이때 당신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 그냥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고기를 주지 않는다. : 이럴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죽이겠다고 덤비면서 고기를 먹겠다고 애급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고기도 줄 수 없는 무능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2. 고기를 주되 조금만 주겠다. : 이럴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로 고기를 먹겠다고 싸우면서 고기를 적게 준 하나님께 또 원망 불평할 것입니다. 3. 고기를 많이 주겠다.
아마 하나님의 선택은 결국 3번인 "고기를 많이 주겠다."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을 보니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예 3번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인격을 무시하며 불평으로 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그마치 한 달간이나 먹을 수 있는 고기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한 달간이나 지긋지긋하게 고기를 먹으면서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고기가 아직 잇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민11:33-34)
즉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 이상으로 엄청난 고기를 주긴 주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원망 불평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들은 그 고기를 먹지도 못하고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조금 심하게 세상 말로 표현하면 "용용 주겠지! 약 오르지 이놈들아."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큰 축복을 준 것 같았는데 그 축복이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저주요 심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기도를 할 때에도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가 왜 힘듭니까? 왜 한 시간 이상 기도할 수 없습니까? 인격의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애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좋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대화하고 나서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마냥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인격이 없는 돌멩이나 우상과는 몇 시간씩 즐겁게 대화하지 못합니다. 만약 그렇게 돌멩이에게 한 시간 이상 기도를 했다면 그것은 자기 독백이고, 자기 최면이고, 자기 위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의 순간에 유명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일명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만약 아버지 하나님이 인격의 하나님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아버지 뜻이고 뭐고 간에 그저 죽지 않게 해달라고만 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늘 하나님 아버지와 기도를 통하여 만남이 있었습니다. 인격적인 교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가장 좋은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분명히 믿으셨습니다.
기도는 이와 같이 인격적인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 고집대로 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인격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해달라는 기도는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강짜를 놓는 것입니다. 즉 우상 숭배와 같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예를 들어 봅시다. 교회를 다니는 어떤 자매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형제를 내 신랑감으로 주십시오." 그 자매는 지금 사귀고 있는 그 형제가 너무 좋아서 하나님께 자기 신랑으로 달라고 막 떼를 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 형제는 그 자매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자매가 그 형제와 결혼을 하면 나중에 행복보다는 불행이 오는 것을 하나님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랫동안 응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는 그 형제가 너무 좋아 하나님이 원치 않는 혼전 섹스도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고 있으니 하나님도 빨리 짝을 맺게 해주세요."라고 우겼습니다."
인격의 하나님이 그 자매의 떼쓰는 것에 졌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서 혼전섹스를 하면서 갈 때까지 같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이 응답했습니다. "임마, 네가 알아서 해라." 그 자매는 그 말씀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으로 알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신속히 결혼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자매의 입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웬수 녀석 때문에 내 인생이 망쳤어!" 하고 울분을 토하면서 늘 인상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그 자매는 "하나님, 왜 그때 좀 말리지 안았어요?" 하면서 하나님께 엉엉 울면서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말했습니다. "내가 그렇게도 많이 말렸는데.... 너는 그 소리도 못 들었니? 그때 네가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이었구나! 쯧쯧쯧, 네가 택한 것이니까 할 수 없다. 하나님인 내가 이혼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느냐? 조금만 속 썩고, 조금만 더 데리고 살아라. 인생이 100년이면 금방 지나간다. 천국에서 보자. 바이바이!"
여러분, 기도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인격과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기도는 그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강청하는 기도는 좋지만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강청은 도리어 좋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첫째 조건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 달라는 것이 항상 선행이 되어야 합니다. 같이 따라 하십시다. "주여, 반드시 내 뜻대로 되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주세요."
여러분,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코너로 몰지 마십시오. 마치 고집불통 어린 아이가 부모님에게 장난감을 안사주면 밥 안먹고 죽겠다고 떼를 쓰거나, 머리를 벽에 부딪치면서 "죽을 거야. 죽을 거야." 하고 자해행위를 하거나, 머리를 굴려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사달라고 하면 부모님은 당장 사주긴 합니다. 그러나 집에 가면 반드시 재미가 없습니다. 저 같으면 반 죽입니다.(?)
한국 크리스천들은 고집불통 어린아이들처럼 떼쓰는 기도, 강청하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받지만 그 응답 때문에 나중에 후회를 하며 속을 썩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로 하나님이 할 수 없어 응답을 하도록 코너로 몰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도록 예쁘게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가며 기도를 하십시오. 그렇다고 "하나님, 오늘 주일인데 교회에 갈까요? 말까요?" 하고 한 시간씩 기도하는 바보는 되지 마십시오.
결론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기도하십시오. 더 나아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하나님을 즐겁게 하십시오. 아무쪼록 기도로 하나님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의 인격성
날짜:
2010/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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