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09/02/08
설교: 

욥33:13-18 꿈
정상적인 사람은 잠을 잡니다. 그리고 잠을 자다 보면 종종 꿈을 꾸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 꿈을 한 번도 안 꾼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종종 꿈에 대하여 해몽을 해달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꿈에 대하여 성경적인 답변을 해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은 꿈에 대하여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계시가 특정한 사람에게 꿈을 통하여 계시가 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아마 성경에서 꿈의 계시를 뺀다면 성경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에 나타나는 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나타내는데 꿈을 그렇게 자주 사용하실까요?"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 즉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나타내실 때에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지혜와 지식이 하나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에 직접 우리와 변론을 하시지 않고 종종 천사, 예언, 환상, 꿈으로 인치듯이 교훈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말세에는 하나님이 성령을 많은 사람에게 부어주심으로 그들이 환상을 보며 예언을 하고 꿈을 꾸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로 어쩌면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은 사람들이 예언과 환상과 꿈을 꾸는 것이 자연스러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언과 환상과 꿈을 바르게 해석하고 바르게 적용하면 좋은데 자칫 잘못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면 도리어 신앙생활에 해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같은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해석에 따라서 이단이 되고 정통이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즉 꿈과 예언과 환상과 계시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느냐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꿈에 대하여 성경적인 바른 해답을 찾고, 그 꿈을 바르게 적용하므로 신앙생활에 큰 활력을 얻고 신앙의 바른 길로 나아가는 계기를 갖기 원합니다. 먼저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꿈을 통하여 유익한 결과를 얻은 경우입니다. 재봉틀을 완성한 엘리아스 호훼라는 사람은 꿈을 통하여 그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문학가 톨스토이, 에드가 알란 포우, 볼테르, 단테, 쉘리, 스티븐슨 같은 분들이 꿈의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섰습니다. 또한 음악가 모차르트, 슈만, 생상 같은 분들도 꿈을 통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 좋다고 생각되는 꿈
믿음의 조상이라고도 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은 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꿈에 나타난 그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음성을 듣고 고향 땅을 떠나 외국 가나안 땅으로 이민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란 사람도 꿈속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창26:24)
또한 야곱이라고도 하며 나중에 이스라엘로 그 이름이 바꾸어진 사람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형을 피해 도망가다가 브엘세바 광야에서 돌베개를 하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 하늘과 땅을 잇는 긴 사닥다리가 있고 그 사닥다리를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며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5)
그리고 우리가 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형들에게 늘 '꿈쟁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요셉입니다. 그는 꿈을 잘 해석하여 애급의 국무총리가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또한 꿈을 잘 해석하여 바벨론의 국무총리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다니엘이란 사람입니다. 그는 꿈의 계시를 통하여 말세에 될 일들에 대한 예언을 받은 사람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보면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이 자신의 약혼녀인 마리아가 자신과 동거도 하기 전에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용히 그녀와 파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꿈에 천사가 나타나서 마리아가 임신한 것은 성령으로 된 것이니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기에 예수님의 탄생인 성탄절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꿈의 계시를 받아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헤롯 대왕을 피해 애급으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좋은 꿈이란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용기백배하여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좋은 꿈을 여러분들도 꾸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상징적인 좋은 꿈들이 있습니다. 성경책을 받는 꿈이라든지, 황금열쇠를 받는 꿈, 꿈속에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것, 십자가나 빛을 꿈에서 보고, 꿈속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등은 좋은 꿈입니다.
저의 경우 꿈속에서 닭고기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현실에서 누님이 닭고기를 사왔습니다. 그 닭고기를 먹으면서 "어- 꿈에서도 닭고기를 먹었는데... 아하- 하나님이 나 먹으라고 닭고기를 날라다 주시는 것이구나! 주여,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하고 닭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3:20에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을 음미하며 거듭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기쁨보다는 주님과 함께 그 음식을 먹는다는 기쁨이 더 충만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징적인 꿈을 꿀 때 그 꿈을 통하여 믿음을 얻고, 감사의 제목이 생기고,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얻는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좋은 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고린도전서 14:26에 보면 모든 신령한 은사가 임했을 때 그 은사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나옵니다.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즉 그 꿈이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 용기를 주고, 교회의 덕을 세운다고 판단이 될 때는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야기해서 상대방의 마음이 강퍅하여 그 꿈을 받을 만한 위인이 못되면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7:6) 바로 이런 경우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잠언 23:9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이니라."
그리고 자기에는 좋은 꿈이라도 다른 사람이 들으면 시기 나게 하고 질투 나게 하는 꿈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입술을 지켜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요셉의 경우가 그런 경우입니다. 요셉은 장차 자기가 형들보다 위대한 인물이 될 꿈을 꾸고 그 꿈을 형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형들이 그를 더욱 미워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창37:5) 그러므로 이와 같이 좋은 꿈도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사용해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교회의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2. 나쁘다고 생각되는 꿈
세상 사람들은 용꿈, 돼지꿈을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용은 사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돼지, 개구리, 구더기, 각종 벌레들은 귀신들을 상징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양은 성도를 상징하고,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시커먼 물체는 사단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또한 예수님 믿지 않은 죽은 조상들이 꿈에 나타나는 것은 좋게 보지 않습니다.
이런 나쁜 꿈들을 꿀 때에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 꿈에 나타난 사단을 대적하고 쫓아내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즉각 일어나 기도하여 물리쳐야 됩니다. 만약 대적하는 기도를 안하면 나쁜 꿈대로 현실에 임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이 꿈을 꾸는데 자기 자녀가 자기의 초상화를 들고 가더랍니다. 무슨 꿈입니까? 자신에게 사망의
세력이 틈타는 꿈입니다. 이런 경우 사망의 세력을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하루는 애급의 바로 왕이 꿈을 꾸었습니다. 나일강에서 살찐 일곱 암소와 풍성한 일곱 이삭이 올라오고 뒤를 이어 나일강에서 삐쩍 마른 일곱 암소와 삐쩍 마른 일곱 이삭이 올라왔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일곱 해 풍년이 오고 뒤를 이어 일곱 해 흉년이 온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뜻을 잘 깨닫고 대처한 요셉은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고 애급을 비롯해 온 팔레스타인 지방, 그리고 자기 가족들도 기근에서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에 자기가 아주 작은 초라한 집으로 이사를 간다든지, 누더기 옷을 입고 있다든지, 밥상에 반찬이 하나도 없다든지, 쥐새끼가 집안에 들락거리든지,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든지 하는 것은 가난이 틈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역시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에게는 좋다고 생각되는데 실지 굉장히 나쁜 꿈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분의 남편이 일찍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의 꿈속에 그 죽은 남편이 나타나서 생시와 똑같은 성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혹 아이들이 깨우면 죽이고 싶도록 미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꿈을 깨면 늘 몸이 녹적지근하고 삶에 활력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단이 꿈에 남편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녀의 삶을 파괴하려는 아주 나쁜 꿈입니다. 예수이름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제가 청년회에 있을 때에 저희 구역의 한 자매님이 저를 찾아와서 이야기합니다. 자기의 꿈에 사단이 나타나서 자기를 저주했는데 어쩌면 좋냐는 것입니다. 그녀는 그 꿈으로 인해 걱정이 몰려오고 두려움까지 임했습니다. 그때 제가 말씀을 한 구절 찾아 주었습니다. 잠언 26:2의 말씀입니다. "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의 떠도는 것과 제비의 날아가는 것과 같이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괜히 꿈에 무서운 것을 보고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이미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고로 아무라도 우리를 저주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3. 그저 그렇다고 생각되는 꿈
세상 말로 하면 개꿈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하고 기억도 잘 안나는 꿈입니다. 특히 하나님도 잘 안믿고 기도도 잘 안하는 사람이 이런 꿈을 많이 꿉니다. 고로 전도서 5:7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받고 늘 세밀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꿈은 당장에 기억이 잘 안나도 나중에 그 꿈의 해석이 주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고로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꿈을 잘 기억하고 해석하는 지혜를 얻는 것도 하나님의 좋은 은사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꿈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로마의 총독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예수라는 사람으로 인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래서 그 예수라는 사람에게 해가 임하도록 하지 말라고 남편 빌라도에게 충고를 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 아내의 꿈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사람의 교만을 꺾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꿈의 목적은 하나님을 더 잘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꿈이나 은사로 인해 교회에 덕을 끼치기 위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종종 꿈을 꿉니다. 이때 그 꿈을 통하여 유익을 얻고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발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