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 것은 나누고(동영상)

날짜: 
2013/07/21
말씀: 
마10:5-15
말씀구절: 

(마 10: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 10: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마 10: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 10: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마 10: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눅10:7
(마 10: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마 10: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마 10: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마 10: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마 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설교: 

마10:5-15 나눌 것은 나누고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교회를 다닙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시는 하나님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에 와서 불완전한 사람들도 만납니다. 물론 교회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으면 교회에 다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누구를 미워해서는 안 되겠지만 싫은 사람도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면 교회생활이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교회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환영하지 않은 것 같고,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으면 교회 다니는 것이 싫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사람보고 신앙생활 하지 말고, 하나님 보고 신앙생활 하라." 할렐루야! 혹시 이 중에 교회 다니면서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시험이 든 분이 있습니까? 제가 똑같은 말을 다시 반복합니다. 사람보고 믿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 믿으십시오.

그런데 제가 목회를 하면서 보니 다름 아닌 목회자에게 실망하고, 목회자에게 시험이 드는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목회자에게 시험이 들면 솔직히 말해 교회 다니기가 참 껄끄럽고 힘들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하나님으로부터 목회자로 부름을 받고 이제까지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15년 전에 이곳 캘거리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만약 교회에서 사람에게 시험 들고 사람에게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고 싶다고 할 것 같으면 목회자인 제가 0순위이고, 저의 집 사람이 1순위일 것입니다. 그리고 2순위는 누구일까요? 목회자의 자녀일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도 스스로 이런 각오를 합니다. "사람보고 목회하지 말고, 하나님보고 목회하자." 그리고 많은 목회자가 때때로 이런 푸념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저를 목회자로 세우셨나요. 내가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크기에 목회자의 길을 가게 합니까?'

이 정도 푸념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를 너무 힘들게 하니까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잉태했습니까? 왜 나보고 이들을 기르라고 합니까?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민11:11-15)

여러분! 저는 이제까지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 저를 살려주십시오."라고 기도는 했지만, 모세처럼 "죽여주십시오."라고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제가 모세보다는 팔자가 훨씬 좋은 것 같고,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는 여기 앉아 계신 분들이 훨씬 좋은 성도님 같습니다. 아멘입니까?

기왕이면 좋은 아내, 좋은 남편, 좋은 자녀가 되시고, 좋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도 좋은 목회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목회자인 저와 성도님들이 관계가 좋아지길 바랍니다. 그래야 교회 다닐 맛이 나고, 신앙생활이 재미있을 것입니다. 목회자인 제 입장에서 보면 그래야 저도 목회생활이 재미있을 겁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목회자를 부르실 때 기왕이면 거룩하고 깨끗한 천사를 부르지 않고 왜 죄 많은 인생을 부르실까?" 그래서 제가 목회자의 길을 가면서 자주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목사를 세울 때 좀 더 인격이 훌륭하고, 언행과 품위가 고상한 사람을 세우지, 왜 저 같은 못난이를 세워서 이 고생을 합니까? 제가 고생하는 것은 둘째 치고, 먼저 하나님이 고생이 되고, 성도님들도 고생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제 와이프도 고생이 되고..."

여러분! 목사가 가장 비참함을 느낄 때가 언제 일까요? 자식 같이 정성껏 키웠던 성도님들에게 못났다고 버림을 당하는 겁니다. 그럴 때 목회자는 스스로 힘을 얻기 위해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래,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고 배신을 당했는데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니 원효야, 그렇게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라 파이팅!"

그리고 성도님들이 목회자에게 시험 들고 실망하는 중에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말씀했는데 우리 목사님은 교회에서 사례비도 가져가고, 차도 교회에서 사주고... 이런 것은 예수님 말씀과 맞지 않는 것 아니냐?"

여러분! 이 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물론 교회에 처음 다니시는 분들은 이런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이런 것에 대하여 잘 모릅니다. 그냥 은혜 받고 교회 다니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가 교회에서 제직이 되고, 교회의 살림살이에 대해 알아가면서 이런 일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 일로 시험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시험이 드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오늘 성경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두 벌 옷, 두 벌 신, 돈 지갑을 가지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목사님은 잘못 가고 있는 것 아니냐?" 여러분! 이 점에 대하여 정확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서는 본문을 끝까지 잘 살펴보고 바르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방금 말한 것과 같은 오해와 시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일을 시키면서 두 벌 옷, 두 벌 신, 돈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목회자는 두 벌 옷, 두 벌 신, 돈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두 벌 옷, 두 벌 신, 돈은 일하는 곳에서 받으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10절 후반부에 나오지요. "일군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어느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사장이 월급을 안 줬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사장 좋은 사장입니까? 나쁜 사장입니까? 그리고 이 회사 좋은 회사입니까? 나쁜 회사입니까?

또 하나님이 어느 회사의 사장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장 되신 하나님이 사원들의 월급을 주지 않는 나쁜 사장일까요? 아니면 사원들을 염려해주는 좋은 사장일까요? 제가 너무 쉬운 질문을 하고 있지요. 입장을 바꾸어 만약 여러분이 사장이라면 어떻습니까? 사원들 월급을 안주는 나쁜 사장이 될 겁니까? 아니면 사원들의 생활까지도 생각해주는 좋은 사장이 될 겁니까?

오늘의 분문은 이런 의미에서 해석을 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에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로 사용했습니다. 이 레위 지파는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오직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만 합니다. 그러면 이들 레위 지파는 무엇을 먹고 살까요? 다른 11 지파 사람들이 십일조를 비롯해 헌물을 드림으로 이들이 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11 지파가 십일조를 내는 것이 아까워서 내지 않으면 레위 지파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세상 돈벌이에 나서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성전은 자연히 무관심 속에 훼파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신앙을 잃고 나라가 망하고 맙니다.

즉 성경적으로 보면 목회자는 세상에 나가서 돈을 벌지 말고, 교회에서 주는 것을 받아서 먹고 살아야 합니다. 혹 어떤 분은 "사도 바울은 자비량으로 선교를 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고전9:7,11-14)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자비량 선교를 하고,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지 않는 것은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9:12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즉 고린도 교인들 중에 앞서 말한 대로 목회자가 사례비를 가져가는 것을 가지고 시험에 드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 권리를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자비량으로는 물질이 부족해 마게도냐 교회에서 보내준 선교비를 받고 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사례비는 자기가 사역하는 고린도 교회에서 책임을 져주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6:6)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제직 수련회 때에 다른 강사님들이 와서 전하는 메시지를 대신 전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원칙들을 성경에서 좀 더 살펴봅시다. 구약시대에 엘리야라고 하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 지역에 심한 기근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살리기 위해서 까마귀를 통해 고기와 떡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르밧 지역의 과부에게 그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 과부는 집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병의 기름 조금과 통의 밀가루 한 움큼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그 다음에는 죽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과부가 그것을 가지고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후에 병에서 계속 기름이 나오고, 통에서 계속 밀가루가 나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은 과부의 집에다가 엘리야 선지자가 먹을 것까지 준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축복을 줄 때, 그 축복 중 일부는 내 것이 아닙니다. 쉽게 예를 들면 내가 돈을 벌면 그것이 다 내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정부에게 세금도 내는 것처럼, 하나님이 내라고 하는 것을 내야만 합니다.

이것을 세상적인 계산으로만 보면 분명히 나에게 손해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 정부에다 세금을 내고, 또한 교회에다가도 세금을 내니 언뜻 보면 바보짓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각도를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돈을 많이 벌어서 백만장자가 되어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좋습니까? 돈을 적게 벌어서 세금을 하나도 안 내고 영세민으로 사는 것이 좋습니까?

즉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이 축복을 받아서 남에게 베풀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신 것은 다른 사람에게 나눠줄 것을 포함시켜 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혼자 다 먹으면 어떡합니까?

얼마 전 한국에서 오신 한 목사님 내외분이 이곳 캘거리에 방문차 오셔서 그만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사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급히 응급 수술이 들어갔지만 결국 며칠 후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나온 병원비가 대충 15만 불 가량이 되었습니다. 물론 여행자 보험을 들었지만 만 불만 커버만 됩니다.

이런 경우 한국 같으면 어떡합니까? 수술비가 없으면 병원에서 수술도 안해줍니다. 그런데 캐나다라는 나라는 좋은 나라입니다. 외국인 방문객에게도 수술을 해줍니다. 모든 편의를 병원에서 제공합니다. 그런데 그 치료비는 누가 냅니까? 누군가가 도내이션을 했거나 정부의 펀드나 세금으로 커버가 됩니다.

같은 한인으로서 이런 것을 볼 때 캐나다 정부나 국민에게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뺏어 먹기만 하고 남에게 덜 베푸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인 사회도 조금이라도 치료비를 보태주자고 하여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서도 적지만 1000불을 교회 예산에서 도내이션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어야 할 것을 주어야 하고, 나눠야 할 것을 나눠야 합니다. 그리고 대접할 자를 대접해야 하고, 영접할 자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가진 것을 아깝지만 좀 내놓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너희를 영접하지 않는 자는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심판을 받는 것보다 더한 심판을 받는다."(마10:14-15)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분배에 대한 책임감도 깨닫게 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있어서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과 행복을 더 많이 나누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