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Follow Me)

날짜: 
2020/06/07
말씀: 
마4:18-22
말씀구절: 

18 <어부들을 부르시다(막 1:16-20; 눅 5:1-11)>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설교: 

성경을 배우다 보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숫자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666이란 숫자가 나옵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계13:17-18)

여기에 보면 이 666이란 숫자가 곧 짐승의 이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그 수를 세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666이란 숫자가 나온다는 겁니다. 즉 알파벳인 이름을 숫자로 환산하는 방법을 ‘게마트리아(수비학)’라고 합니다. 구약성경이 쓰인 히브리어는 22개의 알파벳이 있고 그 알파벳마다 고유의 숫자가 정해져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이 쓰인 헬라어는 24개의 알파벳이 있고 역시 알파벳마다 고유의 숫자가 매겨져 있습니다. 영어의 알파벳은 몇 개일까요? 26개입니다. 소문자까지 치면 52개입니다. 여러분, 혹시 아스키코드(ASCII : American Standard Cord for Information Interchange : 미국 정보 교환 표준 부호)라고 들어보셨나요?

요즘 뉴스에 보면 가끔 ‘아스키코드’에 대하여 나오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를 겁니다. 이게 뭐냐 하면 영어의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합하여 52+(컴퓨터상에 나오는) 각종 부호들을 합하여 총 128개를 숫자로 환산하여 지정한 겁니다. 마치 게마트리아 방식과 비슷합니다.

혹시 군대에서 통신병이나 암호병으로 복무하신 분 있습니까? 그들이 통신할 때 보면 적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종종 숫자 암호로 통신합니다. “442, 221, 378, 390, 004...” 이런 식입니다. 그러면 수신하는 쪽에서 그 숫자를 받아서 문자로 전환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통신암호 해독문’ 일명 ‘음어표’입니다.

가끔 북한에서 남한의 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릴 때에도 이런 방식을 씁니다. 이를 ‘난수 방송’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할 때 북한에서 난수방송을 많이 했습니다. 즉 그때 북한이 남한의 간첩들에게 지령을 많이 보냈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북한에서 난수 방송 안합니다. 할 필요가 없지요.

마태복은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에 대하여 자세히 나옵니다. 그리고 이를 총 환산한 숫자가 나옵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마1:17)

여기에 보면 저자 마태가 예수님의 족보를 굳이 14(열 네 대)라는 숫자를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히브리어 ‘다윗’을 게마트리아 방식으로 환산하면 14라는 숫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들은 다윗 왕을 가장 존경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기도 ‘다윗의 별’이라고 하는 육각형 별을 쓰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14라는 숫자를 일부러 반복해서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14’ 하면 떠오르는 것이 ‘다윗’이고 이를 예수님과 연결했으니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암시한 것입니다. 아하- 그렇군요. 언더스탠드?

얼마 전 한국의 뉴스 중에 좀 어려운 뉴스가 나왔습니다. 핵심단어는 영어로 ‘Follow the party'입니다. 이게 뭔 뜻인지 몰라서 사람들이 이것을 알려고 하루 종일 네이버나 구글에서 실시간 검색어 1등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뭔 뜻이지요? 파티에 가자는 뜻일까요? 그게 아닙니다.

여기서 ‘party'란 뜻은 즐겁게 노는 파티가 아니고 보수당, 자유당 같은 ’당‘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Follow the party'는 ‘당을 따르라.’라는 뜻입니다. 무슨 당입니까? 중국 공산당입니다. 요즘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단어가 ‘Follow the party(당을 따르라)’입니다. 그런데 이 표어가 이번 한국의 총선 전자계표기에서 숫자 암호로 표시가 된 것을 어떤 수학자가 찾아낸 겁니다.

즉 숫자를 문자로 전환하는 아스키코드로 전환해보니까 ‘Follow the party'라는 표어가 나온 겁니다. 다시 말해 중국 공산당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한국 총선에 처음부터 개입하여 조작을 했는데 그만 자기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자기만 아는 암호화된 숫자를 남겨놓은 겁니다. 마치 옛날 영화중에 ’다빈치 코드‘ 같은 자기만 아는 암호를 작품 속에 남겨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암호를 가리켜 또 다른 말로 ’이스터 에그(부활절 계란)‘이라고 합니다. 참- 세상 사람들이 이런 데까지 기독교적 표현을 쓰니까 목사님들은 이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고, 성도님들에게 가르쳐줄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야 성도님들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고, 특히 누가 우리들에게 “이스터 에그가 뭐야?” 하고 물어 보면 대답을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자-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를 보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나를 따르라.(Follow me.)" 누구를 따르라고요? ”Follow the party.(중국 공산당을 따르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라.“입니다.

예수님이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엔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즉시(곧 바로, at once, immediately)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어떤 중요한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회는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즉시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예수님을 따르고 있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는 영생을 얻고, 천국을 얻고, 영원한 행복을 얻습니다. 즉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중국 공산당 해커는 "Follow the party.(공산당을 따르라.)“는 암호를 숫자로 몰래 남겼지만 우리는 지금 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암호를 굳이 쓸 필요도 없고 떳떳이 외칩니다. ”예수님을 따르라.“

그런데 사람들은 말합니다. “야- 예수를 따르면 돈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예수가 밥 먹여 주냐?” 이때 우리는 대답해줍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그러므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여러분, 누구를 따르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도 같은 사람이 되고 그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다.”(딤후4:3-4)고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딤전4:1)고 예언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쾌락과 돈과 명예를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면 “너나 예수 믿고, 너나 예수 따라가라.”고 합니다. “그래, 나는 끝까지 예수님 따라간다.” 할렐루야!

요한계시록 13:3에 보면 짐승으로 상징된 적그리스도가 거의 죽게 되는 큰 부상을 당합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에이, 저 사람 이제 끝났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상처가 기적같이 나았습니다. 그러자 세상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그를 신처럼 따릅니다. 이를 영어성경에 보면 ‘follow the beast(짐승을 따르고)’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러분,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왜 짐승을 따라갑니까? 사람이 짐승을 부려야지요. 그리고 이 세상에는 짐승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뱀과 여우처럼 간사한 사람도 있고요, 곰처럼 우악스럽고 사자처럼 사나운 짐승도 있고요, 이리와 늑대처럼 남을 속이고 훔쳐 먹는 사람들도 있고요, 돼지처럼 욕심만 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짐승 같은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공산당을 따라가도 안 됩니다. 우리는 죽으나 사나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그러나 요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실지는 예수님보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합니다. 주객이 바뀌었습니다. 누가 종이고 누가 주인인지 헷갈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기에게 복과 돈과 명예를 주지 아니하면 더 이상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예수님은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안돼요. 나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결론입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그리고 그 날의 영광에 다 같이 참여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