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6:13-20, 31-35 만나를 생각하면서
보통 광야란 텅 비고 아득하게 넓은 들판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중동지역으로 옮겨보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한국 광야는 동식물이 살고 좀 노력하면 사람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동의 광야는 바위와 자갈로 덮여있어서 약간의 식물과 파충류 정도만 살지, 다른 동물이나 사람은 도저히 살 수가 없는 곳입니다. 농사나 목축은 아예 생각해 볼 여지가 없는 불모지 땅입니다.
그런데 이런 광야에서 일어난 기적을 보면서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우리 이성이나 자연과학적으로 도저히 믿기 어려운 기적들이 많이 나옵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 그저 돌기만 했는데도 성이 무너진 것, 또는 소수의 병력으로 어마어마한 군대를 무찌른 것 등등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놀라운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 수백만 명이 광야에서 굶어 죽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도 가끔 이집트 쪽에서 순례 차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했던 이곳 광야를 걸어서 횡단하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한 두 명도 아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것도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도 아닌 무려 40년을 광야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자연 법칙대로라면 그들은 모두 며칠을 못 버티고 굶어죽었어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다들 살아남은 겁니다. 이것 자체가 기적 중의 기적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이 살아남게 된 이유가 뭘까요? 다름 아닌 만나입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려주셨습니다. 다만 그 양식은 꼭 일용할 분량만, 그러니까 매일 하루치씩만 주셨습니다. 물론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치 분량을 주시므로 안식일에는 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일은 매일 새벽에 일어나 만나를 주워 먹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양식은 이후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접경에 도착할 때까지 하늘에서 계속 떨어졌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40년 동안이나 굶지 않고 살아남은 오직 한 가지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공급해 주신 만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만나를 생각하면 우리가 세상 살아갈 때 걱정과 염려는 다 주님께 맡겨버려도 되겠구나 하는 믿음이 생깁니다. 구약을 읽다 보면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광야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당면한 삶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수천 년 후에 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 우리들도 똑 같은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먹을 양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겐 그때와 마찬가지로 만나를 주십니다. 만나는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만나를 주셔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신 하나님은 우리들도 이 광야에서 살려주십니다.
여러분, 혹시 삶 가운데 걱정이 있고 염려가 있으십니까? 만나를 생각하십시오!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이 만나를 주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도 살아났다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이 나에게도 만나를 떨어트릴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미리 감사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만나를 통하여 교훈을 얻고 싶습니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것을 믿고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성경을 보면 계속 반복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복음서도 한 사람만 쓰면 될 것을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이 네 사람들이 번갈아 똑같이 쓴 부분이 있고, 모세가 쓴 구약 앞쪽의 다섯 개 성경에도 똑 같은 내용이 상당 수 반복됩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하, 성경은 단지 지식을 위한 책이 아니구나!"
여러분, 지식을 위한 거라면 한 번 얘기로 족하지 그렇게 여러번 강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삶의 지침이기 때문에 반복이 필요한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한 번 듣는다고 삶이 변화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삶이 변화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주시는 말씀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이 계속 반복되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아- 이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구나!"
만약 성경에서 열 번 반복되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도 설교나 묵상을 통해서 열 번 반복해야 합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것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뭐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태도 자체가 항상 감사하는 태도여야 한다는 겁니다.
야고보서 1:17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즉 우리가 받고 누리고 있는 각양 좋은 것들이 모두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만나의 교훈에서 깨달아야 할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다. 바로 일상의 복입니다. 만나는 매일 떨어졌습니다. 처음 며칠은 정말 신기했을 겁니다. 하늘에서 양식이 비처럼 쏟아집니다. 물론 새벽에 아직 백성들이 깨지 않았을 때 만나가 내렸기 때문에 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겠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텐트 옆을 보니까 양식이 있는 겁니다.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한두 달이 지나고, 일이 년이 계속 되다 보니까 이제는 평범한 겁니다. 이제는 만나가 떨어져도 신기함도 없고, 감사도 처음만 못하고, 나중엔 그냥 매일 매일이 시큰둥한 겁니다. 여러분, 혹 지금 여러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늘 주시는 일상의 일에 감사가 떨어지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늘 주어지는 일상의 복들이 있습니다. 잠 잘 수 있는 것, 먹을 수 있는 것, 걸을 수 있는 것,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것, 이런 일상의 복들을 누리면서 혹시 감사가 떨어지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 병들어 보십시오. 자야 할 때 잠이 안 옵니다. 식사를 해야 되는데 소화가 안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먹지를 못합니다. 아파 보면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일상에 감사를 못 느끼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던 모나리자가 한 번 없어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그림이 걸려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 빈자리에 왔다 갔다는 겁니다. "여기가 모나리자가 걸렸던 자리였지!" 그러면서 더 많이 와 가지고 그 빈자리를 보고 갔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것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리 깨닫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건강을 주셨습니다. 은혜를 주셨습니다. 믿음을 주셨습니다. 여러 가지를 주셨습니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일상의 복이 있습니다. 그 주신 복들을 잃어버린 후에 깨닫고 아쉬워하기 보다는 잃기 전에 미리미리 감사하며 그 복을 잘 지키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매일 만나를 공급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 원망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16장에는 원망하는 구절이 참 많이 나옵니다. 7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찬송과 영광 돌리는 것도 들으시지만 반면에 우리가 원망하는 것 역시 듣고 계십니다. 같은 이야기를 기록한 민수기 14장을 보면 이런 사실이 더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그 원망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
즉 내가 말한 대로 하나님이 들으시고 역사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내가 입술로 "나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승리를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밤낮 "죽겠다. 죽겠다." 하는 소리가 하나님께 들리면 그것도 "네 소원대로 죽여주마. 망하게 해주마." 그러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미래를 좌우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3:5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약3:4)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작은 혀로서 하는 말이 배의 진로를 바꾸듯 우리 인생의 진로를 바꾼다는 겁니다. 즉 말대로 됩니다. 고로 하나님 앞에서 좋은 말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원망의 말을 하지 말고, 돌이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감사의 말을 하십시오. 긍정의 말을 하십시오. 믿음의 말을 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가 뭡니까? 그들의 말 때문에 그랬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들과 백성들은 모두 그 땅에 못 들어가고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됐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역사하신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할 때에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여러분, 이 표현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참 웃긴 표현입니다. 입술 앞에 보초를 세워서 함부로 부정적이고, 불평적이고, 불신앙 적인 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 앞에서 한 마디 한 마디 하는 것이 원망과 부정이 아니라 감사와 믿음의 복된 말을 하는 복된 입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본문 앞쪽인 출애굽기 16:4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여러분, 만나는 일용할 것입니다. 날마다 공급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주실 때에 하루씩 주시지 않고 40년 치 분량을 한꺼번에 내려주셨다면 그 만나 다 저장할 수 없습니다. 다 썩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혹시 내일 만나가 그치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만나가 내릴 때에 많이 거두어 저장하려고 했습니다. 내일도 만나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못 믿겠다는 불신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만나를 저장한 것들이 다 썩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비위생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끔 이렇게 기도하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 그렇게 찔끔 찔끔 복을 주시지 말고 그냥 한꺼번에 내려 주십시오. 그러면 큰일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꺼번에 복을 주면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잘 믿습니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신앙이 나태해지고, 교만해지고, 때로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은 오늘의 만나를 오늘 내려주시고, 내일의 만나는 내일 내려주시므로 손해 보시지 않으십니다.
특히 만나는 해가 뜨면 곧 사라져 버렸습니다. 즉 하늘의 밥을 먹으려면 해가 뜨기 전에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밥을 먹으려고 아침마다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만나가 계속 오후까지 남아있으면 사람들은 게을러집니다. 고로 하나님은 나에게 꼭 필요한 분량을, 필요한 때에 채워줍니다.
만약 분에 넘치게 많은 복을 주실 때에는 사치와 낭비와 허영과 쾌락을 좇으라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남과 나누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 내 앞에 차려졌어도 내가 먹을 분량만큼만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나누면 하나님이 또 채워줍니다. 그러나 나누지 않으면 썩고 맙니다. 그 썩은 냄새로 나도 괴롭고 남도 괴롭게 되고 맙니다.
결론입니다. 만나를 생각하면서 먼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것이 참 많지만 특별히 일상의 복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에서 먹고 있고, 살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서 원망의 말이 아닌 믿음의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귀에 들린 대로 이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일도 주십니다. 모레도 주십니다. 고로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기근 중에라도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필요한 것을 채워줍니다. 나누고 베풀라고 넘치도록 채워줍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오늘도 주시는 만나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만나는 단순히 양식으로서 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받는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깨달은 저와 여러분은, 만나를 생각하면서 이런 확신이 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광야에 고아같이 홀로 두시지 않겠구나! 굶기시지 않겠구나! 염려 근심을 다 맡아 주시겠구나! 험한 길을 고르고 순하게 닦아 주시겠구나! 결국은 가나안에 도착하게 하시겠구나!" 아멘! 이러한 복이 저와 여러분의 평생에 함께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나를 생각하면서
날짜:
201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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