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갔어도 결론은 좋다.

날짜: 
2013/12/28
말씀: 
신34:1-12
말씀구절: 

1 <모세의 죽음>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가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 네겝과 종려나무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7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모세를 위하여 애곡하는 기간이 끝나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설교: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어느 덧 2013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또 한 해가 지나는 감회가 있습니다. 목표하였던 것을 뜻대로 이루지 못한 허탈감도 같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목표까지 못 갔어도 결론이 좋으면 좋은 것입니다. 오늘 마지막 주일에 모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습니다. 야곱의 식구가 70명 되었었습니다. 양식을 구하러 애급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금방 나온다고 하는 것이 400년이나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400년 동안 애급에 있는 동안 그들이 200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의 지도로 말미암아 애급에서 해방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애급을 떠나서 불과 며칠이면 혹은 늦어도 몇 주면 원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40년을 지내야 했습니다. 한 세대가 사라지고 또 한 세대가 오는 길고 긴 40년 세월이었습니다. 편안한 곳에서 40년은 별 것 아닐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텐트를 치고, 물도 없고 양식도 없는 광야에서, 그것도 200만 명이 42번이나 옮겨 살면서 40년을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요단강만 건너면 그토록 사모하던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이 내려다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한 눈에 보는 모세는 감격을 넘어 흥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청천벽력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모세는 미치도록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꿈에도 가고 싶은 곳이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고생한 목표가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보여만 주시고 들어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생명 걸고 가고 싶었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연초에 세운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다 이루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기도하지만, 때로는 기도대로 응답되지 못하여 절망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압니다.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는 그대로 응답하여 주시는 나의 심부름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계획이 나중에 보면 내 계획보다 더 좋은 것도 알아야 합니다.

사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후보를 뽑는다면 0순위가 모세입니다. 200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가나안에 들어갈 가장 적격자가 모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즉 모세는 목표를 이루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목표도달이 안되었다고 결론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결론은 더 좋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더 좋아졌나요?

1. 모세는 신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처음부터 신비한 사람이었습니다.

(1) 탄생의 신비 : 애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였습니다. 애급 왕 바로는 그대로 두면 큰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여자들은 임신하면 딸이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다른 집에 태어난 아들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모세 하나만 살아났습니다. 그것도 죽이라고 명령한 바로 왕의 딸이 모세를 강에서 건져내 살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죽이라고 명령한 바로의 궁중에서 모세는 살았습니다. 신비한 출생이었습니다.

(2) 하나님 만남의 신비 : 모세가 바로 왕의 낮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에 있을 때였습니다. 광야에 가시떨기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무가 타지 않습니다. "이- 이상하다!" 모세가 나무에 다가가자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가시떨기에서 불이 붙는 모습 속에서 만났습니다. 신비한 만남입니다.

(3) 생애의 신비 : 모세는 12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40년은 바로의 궁중에서,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그리고 나머지 40년은 이스라엘 최고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두부를 똑같이 3 토막으로 나눈 것 같은 신비한 삶이었습니다.

(4) 건강의 신비 :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당시 모세는 자기가 스스로 쓴 시편에서 사람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말했습니다(시90:16) 모세 당시 오래 사는 사람이 80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4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건강의 신비를 지니고 산 사람입니다.

(5) 시신의 신비 : 모세가 죽자 그의 시체를 놓고 영적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합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1:9)

모세 시체를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서로 차지하겠다고 대단한 영적 전쟁이 있었습니다. 결국 천사장 미가엘이 이겨서 모세의 시체를 차지하였습니다. 오늘 날 모세 시체가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만일 마귀가 이겼다면 마귀는 모세의 시체를 이용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하는데 이용했을 것입니다. 즉 모세의 시신조차도 신비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목표하고 원하던 가나안 땅에는 못 들어갔어도 신비의 사람으로 남아 결과는 더 좋았습니다.

2. 모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0순위인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럽니까?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욥은 동시대 사람입니다. 욥은 동방에서 제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당시 하나님을 몰랐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우상 장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메시야의 조상으로 의인인 욥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습니다. 왜 그런지 우리는 모릅니다. 단지 대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도 소돔과 고모라도 모두 범죄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에는 요나를 보내셔서 모두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멸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모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야고보는 감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감옥에 천사를 보내셔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리셨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여러분! 엿장수가 가위질을 일분에 몇 번 하나요? 대답은 엿장수 마음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고 계신 분이십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보고 우리 인간이 "아니, 역사를 왜 그런 식으로 이끌고 있느냐?"고 대들면 안 됩니다. 무례한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절대 권세를 인정해야 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떠나갔습니다.

3. 모세는 후계자를 잘 선정하였습니다.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지도자가 있고 난 후 그 다음 세대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후계자를 잘못 두어서 좋은 교회가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죽기 전에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그에게 안수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말씀합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모세에게 임하였던 영이 모두 여호수아에게 임하였습니다. 안수를 통하여 인수인계가 정확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가고 싶어 하였지만 들어가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광야 생활 40년에는 모세 같은 온유한 지도자가 필요하였습니다. 민수기 12:3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광야생활은 텐트에서 사는 것입니다. 물도 없습니다. 양식도 없습니다. 농사도 지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렵기에 짜증나고 불쾌지수가 높은 삶입니다. 조금만 건드려도 짜증이 나고 신경이 날카로운 곳입니다. 거기에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원망불평을 일삼았습니다. 모세가 온유하지 못했더라면 짜증나고, 신경질 나고, 화딱지 나서 다 때려치우고 말았을 겁니다. 즉 이 당시의 지도자는 모세처럼 온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죽고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다음 날부터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 가나안은 들어가 보니 임자 없는 빈 땅이 아니었습니다. 7 족속이 이미 살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으로 돌변했습니다. 이제는 모세같이 온유한 지도자보다 여호수아같이 군인 자질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도자를 바꾸셨습니다. 비록 모세는 자기가 목표하는 것을 이루지 못 하였지만 결론 더 좋게 되었습니다. 못 갔어도 결론은 좋았습니다. 2013년도가 다 지나갑니다. 비록 여러분이 목표한 곳에 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더 좋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와 너를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2013년을 보내고 또 다시 2014년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2014년도도 하나님이 계속 우리를 인도하시기에 결론은 더욱 좋아질 겁니다. 목표를 세웁니다. 애를 씁니다. 그러나 그 목표가 100% 성취가 안 되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들의 결론은 항상 좋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