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1:6 믿습니까?
목사님들이 성도님들에게 하시는 말씀 중에 많이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믿습니까?"라는 말입니다. 더욱이 부흥사 목사님들은 이 말을 참 많이 합니다. 특히 이 말에 악센트를 강하게 집어넣어 이렇게 말합니다. "믿쑵니까?" 그러면 성도님들도 악센트를 집어넣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멘, 믿쑵니다."
오늘의 본문에도 보면 히브리서 기록자는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두 가지를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믿쑵니까?"이고, 둘째는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인 것을 믿쑵니까?"입니다. 이 두 가지 질문에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이 대답에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세 종류의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1. "노멘, 안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중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가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한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권력을 가진 사람만 입는 자색 옷을 입었습니다. 부자만 입을 수 있는 고운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권력도 있고 돈도 있으니까 날마다 호화롭게 즐겼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무신론자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죽고 난 다음 사후에 심판이 있을 것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나이를 먹게 되니 별수 없이 이 사람도 죽었습니다. 죽어보니까 음부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영혼이 음부에 떨어져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자 그때서야 "아~ 내가 세상에 잘못 살았구나! 잘못 알았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이런 무신론자들에 대해 시편 14편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보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우리 양심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증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양심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양심이 무디어져서 양심의 감각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세상의 만들어진 피조물의 세계를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도 저 광활한 우주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우리들 향해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인간이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세밀한 기관들을 가지고 움직이는 수많은 동식물들도 우리들을 향하여 외칩니다. "나도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이렇게 세밀하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창조물 중에 가장 똑똑하다고 하는 인간 중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하나님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입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듣는 하늘의 만상과 피조물들은 그러한 무신론자를 향해 비웃으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바보! Idiot! 나도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2. "노아멘, 하나만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
'노아멘'이란 제가 만든 말로 노멘도 아니고 아멘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즉 믿기도 하고 안 믿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은 믿지만 하나님이 상주시고 복 주시는 분인 것은 믿지 않는 분들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나오는 나사로와 같은 사람입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은 믿으나 하나님이 자신에게 상주시고 복주시는 것을 모르고 평생에 거지로 살았습니다.
지난주에 저희 교회에 거지가 찾아왔습니다. 한눈에 거지인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물어보니 캐나디언 인디언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북미 대륙인 지금의 캐나다와 미국 땅은 이전에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광활한 땅을 놓고 인디언들과 백인들 간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힘없는 인디언들은 이 땅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인들은 인디언들에게 자치구역의 지정된 땅을 나누어주고 그들에게 보상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개인적으로 매달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정된 인디언 마을을 벗어나면 보조금을 주지 않습니다. 즉 고립정책입니다. 비인도적입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그들 중에 술과 마약과 범죄에 관여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도 거지신세를 못면하게 됩니다.
저희 교회에 찾아온 그 인디언 거지분에게 제가 불쌍해서 밥 사먹으라고 몇 푼 보태주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회 현관 안에 있는 빈병들을 모아놓은 통을 보고 그것도 달라기에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 하나님에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성경구절도 암송하면서 자기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거지신세는 못면하고 삽니다.
마치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같습니다. 나사로는 부잣집 대문 앞에 자리를 깔고 누워있었습니다. 온 몸에 헌데가 나서 개들이 와서 함께 잠을 자고 헌데를 핥았습니다. 그러나 거적때기에 누워 있으면서도 하늘을 보면서 때로는 새벽기도, 철야기도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거지가 되어서 부자의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그 사람에게 한번 물어봅니다. "당신 왜 하나님을 믿으면서 거지로 삽니까?"
그 사람의 철학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과 물질을 사랑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부하고자 하면 영혼의 죽음을 가져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세상과 부귀를 다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찾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찾으니까 세상 물질은 없습니다. 그 잘사는 신자들은 엉터리들입니다. 나같이 이렇게 거지로 살아야 올바른 신앙을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이렇게 나사로와 같이 말하는 신자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믿지만 복주시고 상주시는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다. 복주시고 상주시는 하나님을 말하면 오히려 기복신앙이라고 몰아칩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복주시고 상주시는 것도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3. "아멘,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
누가복음 16장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보면 23절로 24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음부에서(그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이 세상에 있을 때 부자처럼 무신론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처럼 거지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큰 거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그에게 복주며 복주고 번창케하며 번창케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은과 금이 풍부하고 짐승 떼들이 많아 거부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부이지만 하나님도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외아들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이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것도 믿었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복주시는 것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마침내 하나님께 복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 복도 받고 천국의 복도 받았습니다.
성경은 종종 하나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산 사람들입니다. 즉 두 가지를 다 믿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두 가지를 반드시 다 믿어야 한다고 오늘의 본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이 두 가지를 다 믿습니까? 같이 따라합시다. "아멘,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왜 저 많이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 중에 가난한 사람이 많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다 골고루 복을 주셔야지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미국 시카고의 한 빈민가에서 목사님과 이발사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아주 지저분하고 악취가 풍기는 좋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이발사는 그런 모습을 보며 목사님께 물었습니다. "목사님, 정말로 목사님이 증거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왜 이런 것을 보시고 내버려 놓습니까? 도와 줘서 좀 살게 만들어 주셔야지요."
그 목사님이 대답을 안하고 한참 그 이발사와 길을 걸어가다가 마침 히피 청년 한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머리를 산발로 하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다가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이발사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왜 당신같이 훌륭한 이발사가 있는데 저 사람은 머리를 저렇게 늘어뜨리고 수염을 저렇게 길게 기르고 추잡하게 다닙니까? 당신 같은 이발사가 우리 시카고에 있는데..." 그 이발사가 허허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목사님! 내게 안 오니까 그렇지요. 이 친구가 내 이발소에 왔다면 내가 미남으로 만들어 놓지요."
"그래요?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가난한지 압니까? 하나님께 안오기 때문에 가난하지 하나님께 와서 하나님을 충심으로 섬겼으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했으면 모든 것이 더해졌을 것입니다. 저 사람이 이발사에게 안와서 머리털을 못 깎아준 것이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구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고 하셨는데 스스로 잘못된 신앙에 사로잡혀 '하나님은 안도와주신다. 하나님은 축복 안 해주신다. 거지로 사는 것이 신령하다.'고 믿으면 그 믿음대로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주시고 복주시는 하나님인줄 믿고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리고, 철야기도도 하고, 하나님께 열심히 죽도록 헌신하면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믿음대로 갚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나오긴 해도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복주시고 상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 외국 땅에서도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좋으신 분이십니다. 아무쪼록 이 두 가지를 같이 믿으심으로 이 외국 땅에서도 복을 받고, 그 복을 누리며, 그 복을 나누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좋으신 하나님, 상주시고 복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두려운 하나님, 깍쟁이 하나님, 우리를 모른 채 하시는 하나님,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 주시는 하나님, 상주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두 가지를 같이 믿는 저희들에게 이 외국 땅에서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처럼 복주시고 번창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축복을 나누고 베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믿습니까?
날짜: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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