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은 흙이 묻어도 보석이다.

날짜: 
2009/03/08
설교: 

요21:15-17 보석은 흙이 묻어도 보석이다.
어느 대학 교수님이 강의 도중 갑자기 10만 원짜리 수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고서는 학생들에게 "이거 가질 사람 손들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걸 본 교수님은 갑자기 10만 원짜리 수표를 주먹에 꽉 쥐어서 몇 번을 꾸기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이거 가질 사람 손들어보세요" 그랬더니 이번에도 모든 학생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또 다시 그것을 바닥에 내팽개쳐서 발로 밟았습니다. 그 수표는 심하게 꾸겨지고 신발자국이 묻어서 더러워졌습니다.
교수님이 또다시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어거 가질 사람?" 그러자 학생들이 또 다시 손들었습니다. 그걸 본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꾸겨지고 더러워진 10만 원짜리 수표일지라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군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꾸겨지고 더러워진 '나'일지라도 그것의 가치는 전과 다르지 않게 소중한 것입니다. 때로는 실패하고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진다 할지라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가치는 어느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살다 보면 종종 이런 저런 모습으로 나의 삶이 꾸겨지고 더러워지며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좀 더 고상하게 인생을 살면서 남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정 반대로 나의 수치가 드러나며 남들에게 손가락질과 비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무너지고, 그에 따른 결과로 남들의 시선을 피하기도 하며, 때로는 신경질과 분노가 쉽게 터져 나와 스스로 인생을 더욱 힘들고 불행으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가치는 아무리 꾸겨지고 더러워지고 상처를 입어도 여전히 소중한 존재입니다. 오늘의 본문 제목입니다. "보석은 흙이 묻어도 보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 자녀가 밖에서 놀다가 옷이 심하게 더러워졌습니다. 그래도 자녀는 자녀입니다. 가끔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면서 얼굴에 상처가 났습니다. 그래도 자녀입니다. 자녀가 좀 미련합니다. 아이큐가 모자랍니다. 그래도 자녀입니다. 자녀가 유난히 못생겼습니다. 그래도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여전히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너는 여전히 나의 사랑하는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혈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좀 다혈질입니다. 그러나 혈기가 있어도 수제자는 수제자입니다. 누가복음 22장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무리가 왔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혈기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마침 베드로는 칼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베드로는 앞에 있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머리를 내리쳤습니다. 말고는 반사적으로 머리를 피하였습니다. 그의 오른 편 귀가 잘라졌습니다. 말고는 귀가 떨어져 나가면서 얼굴에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떨어진 그의 귀를 다시 붙여 주시면서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혈기가 많으니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혈기는 좋지 않습니다. 마땅히 버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혈기의 흙이 묻었다고 값진 보석이 가치 없는 돌멩이로 변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인격적인 결함이 있어도 그를 여전히 수제자와 사도로 사용하셨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 청년회에서 조장을 맡을 때였습니다. 제가 전도한 청년 중에 한 노총각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지혜가 조금 모자란 청년이었습니다. 아주 지혜가 모자란 것이 아니란 무언가 어딘가 조금 모자란 듯이 보이는 정도였습니다. 키는 165cm 정도이고, 늘 머리는 어수선하게 풀어놓고 다녔습니다. 이도 오랫동안 안 닦은 것처럼 누렇게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세수와 면도도 잘 안하여 늘 그 모습이 단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노총각이 되어도 장가갈 엄두도 못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받았습니다. 교회 자매님들이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교회에 제법 열심히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올 때에는 나름대로 양복도 입고 왔습니다. 머리 손질도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양복을 입어도, 머리 손질을 해도 여전히 모자란 티가 납니다. 때때로 콧물을 흘리며 양복 옷깃으로 닦기도 합니다. 교회 자매님들이 그에게 친절하게 대하기는 해도 신랑감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총각 형제님은 교회에서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한 자매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인물이 제법 좋은 자매님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 노총각 형제님이 이 자매님을 타깃으로 삼고 계속 치근거렸습니다. 이제는 그 자매님이 더 이상 그 노총각 형제님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들이 모든 교회 활동을 마치고 헤어질 때에 이 노총각 형제님이 그 자매님을 좇아가 대시를 했습니다. 깡패처럼 거칠게 굴었습니다.
그러자 이 자매님이 당시 청년회 담당 전도사님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자 젊으신 전도사님이 그 총각을 향하여 "그렇게 여자를 꾀려고 교회에 다니려면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강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노총각은 눈물을 찔찔 짜면서 저에게 다시는 교회에 안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진짜 몇 달간 교회에 안나왔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모든 청년들이 기도원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아침에 저는 그 청년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그 청년이 "나도 기도원 갈래!" 하면서 기도원 가는 차량을 향해 뛰어오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꿈대로 그 날 기도원 가는 차에 그 총각이 바보처럼 웃으면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뻐서 그 총각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 총각도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그 총각으로 인해 마음이 안좋았습니다. 전도사님도 "재가 왜 또 교회에 나왔나?" 하고 조금 불안해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기도원에서 기도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총각이 눈물 콧물로 엉엉 울고 회개를 하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전도사님과 모든 청년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에 와도 그 청년은 늘 다른 짓만 하고 있었고 예배에는 관심도 없었던 청년이었었는데 그에게 하나님은 은혜가 임하는 모습을 보고 다들 놀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하, 우리가 저 사람을 더럽게 여겨도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구나!"
여러분, 그렇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나를 더럽다고 욕할 수 있습니다. 인격이 모자란다고 비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왕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더러워도, 인격이 모자라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자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내가 못나고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더욱 애처롭게 나를 보살펴주시고 보호해주시기 원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녀가 시궁창에 빠졌다고, 그 자녀에게서 더러운 냄새가 난다고, 그 자녀를 버리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자녀가 시궁창에 빠져서 더러워졌으면,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혀서 깨끗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에게는 때때로 비인격적인 더러운 냄새가 났습니다. 혈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그를 제자로 인정하셨습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여전히 제자로 인정하시고 낙심된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같이 조반을 먹으면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사명감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어쩔 수 없는 환경에게 주님을 배반한 것을 다 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약점이 있다고 그 약점으로 인해 우리를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십니다. 심지어 베드로는 주님에게 사탄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최고의 모욕은 사탄이라는 말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만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주님이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꾸짖었어도 주님은 여전히 베드로를 제자로 인정했습니다. 베드로에게 마무리 혈기의 흙이 묻었어도, 배반의 흙이 묻었어도, 사탄의 흙이 묻었어도 예수님은 흙이 묻어 더러워진 베드로를 결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묻은 흙을 털어주시면서 "너는 그래도 베드로다. 반석이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보석들입니다. 그 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입니다. 보석에 아무리 흙이 묻어도 보석은 보석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래도 당신을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자고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들은 무흠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아니라 이리저리 때가 묻고 더러워진 죄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 죄인의 죄를 씻어주고 닦아주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우리는 더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를 받아주고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당신은 보석입니다. 그리고 보석은 흙이 묻어도 여전히 귀중한 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