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좇아가지 마라.

날짜: 
2014/01/11
말씀: 
시편1:1-6
말씀구절: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설교: 

여기 캐나다에서 오래 살다보니 외국 사람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아닌 캐나다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특히 제가 청년 딸을 두다보니 캐나다 청년들의 생각과 사상은 어떤가 하고 관심을 갖게 됩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캐나다 청년들은 만 18세가 되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갖습니다.

제 이야기는 그 나이 또래의 한국 청년들에 비해 독립심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한국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어도 부모님 집을 나와서 따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덜합니다. 물론 이에 대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습니다. 자신이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부모님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보기에 좋습니다.

반면 부모님 보기에 아직 어린아이인데 집을 뛰쳐나가서 뭘 한다는 것이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특히 이제 막 18세가 된 딸이 집을 나간다고 하면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큰 근심이 됩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사는 부모님들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럽고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아들 딸 장가보내고 시집보낼 때 한국에 비해 거의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반면 요즘 한국의 경우 아들과 딸을 결혼시킬 때 돈이 참 많이 들어갑니다. 대개 아들의 경우에는 집이 있어야 하고, 딸의 경우는 그 집에 맞는 모든 가구와 살림살이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니 부모가 무슨 죄입니까? 자녀들 대학까지 교육시키는데 이미 많은 돈이 들어갔습니다. 이로 인해 부모는 뼈가 빠지도록, 허리가 휘어지도록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그 자녀를 결혼시키는데 큰돈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자녀들 결혼시키고 나면 늙은 부모는 거의 거지가 되다시피 합니다. 그러고도 부모는 혹시 결혼한 자녀에게 제대로 못해주어서 그 아이가 시집 식구들이나 처갓집 식구들에게 무시당하고 살아갈까봐 늘 신경이 쓰입니다.

환경이 이러다보니 한국의 총각 처녀들의 경우 배우자를 고를 때 너무 경제적인 여건, 즉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것을 볼 때 "아이고- 조것들, 참 너무 계산적이다. 참 너무 영악하다." 하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여러분! 돈 많으면 좋지요. 돈 많다고 기분이 나빠서 "엉엉- 우리는 돈이 너무 많아요." 하고 우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처럼 너무 돈을 밝히고, 돈을 추구하고, 돈에 우선권을 두는 것을 보면서 "아- 이건 아니다. 이건 성경과 맞지 않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서론이 좀 길었습니다. 오늘 메시지의 핵심은 이겁니다. 내가 돈을 좇아가느냐, 아니면 돈이 나를 좇아오게 하느냐, 다시 말해 내가 복을 좇아가느냐, 아니면 복이 나를 좇아오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하고 말합니다. 여기서 '복 있는 환경은'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즉 사람이 환경보다 주체요, 환경보다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에 따라서 복이 오기도 하고, 복이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복 있는 사람입니까? 복 없는 사람입니까? 만약에 당신이 복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만날 복을 좇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복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피곤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 밖에 없는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복의 근원, 복의 주인이 되어서 당당하게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만날 복을 좇아가는 복의 노예, 복의 방랑자가 되어서 사시겠습니까?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누가 뭐래도 우리 하나님은 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전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을 받는다고요.

하나님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그 동산에는 각종 좋은 실과가 늘 풍성하여 먹고 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동산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의 성품은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것도 아주 풍성하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너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명령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고 저주의 근원인 마귀의 교훈을 좇아가니 그때로부터 축복이 끊어졌습니다. 에덴동산에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말았습니다. 인생 살기가 무척 힘들어졌습니다.

즉 내가 하나님을 좇아가면 복이요, 마귀를 좇아가거나 세상을 좇아가면 저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안에 하나님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나는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내 안에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나는 저주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고로 복의 주인공은 환경이 아니라 내 자신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복 있는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나옵니다. 요셉입니다. 그가 배 다른 형들의 질투를 받아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보디발 장군의 집에 팔려갔는데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셔서 그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주인 보디발 장군이 느꼈습니다. "어- 어디서 우리 집에 복덩어리가 하나 들어왔네! 저 아이에게 집안의 모든 일을 맡기자." 아닌 게 아니라 요셉이 그 집의 가정총무의 일을 맡게 되자 그 집안 전체에 하나님의 복이 임했습니다.

혹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 "에이- 목사님! 저도 성경을 좀 아는데요, 요셉이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끌려갔는데 그게 뭐가 복입니까? 오히려 큰 고통이지요. 그리고 그가 억울하게 강간범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수년간 감옥 생활을 했는데 그게 뭐가 복입니까?"

이런 분들은 성경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물론 요셉이 인신매매를 당하고 감옥생활을 한 것은 그 당시의 시각으로만 보면 큰 고통이요, 큰 불행이요, 큰 저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리어 그 큰 저주를 나중에 큰 축복으로 바꾸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즉 요셉이 그로 인해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즉 복 있는 사람에게는 결국 저주도 복으로 바뀌고 맙니다.

한국 역사를 보면 이순신 장군과 원균이란 사람이 종종 비교가 됩니다. 이순신 장군이 해군 제독이 되면 아군이 일본군을 크게 무찌릅니다. 그러나 원균이란 사람이 해군 제독이 되면 더 많은 군사와 배가 있어도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고 맙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이순신 장군은 복 있는 사람이고, 원균은 복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복 없는 사람은 만날 복을 좇아가려고 합니다. 자연히 인생이 피곤해집니다. 그 복을 얻으려고 인생이 비굴해집니다. 그 복을 추구하기 위해 때로는 권모술수를 써야 하고, 자기의 양심을 속여야 합니다. 때로는 아부의 사람이 되고, 간신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자기 딴에는 영리하게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참 불쌍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크리스천의 삶은 달라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자기가 복 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늘 복을 좇아가야 합니다. 그러니 늘 철새처럼, 부평초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해야 합니다. 눈치꾼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복이 자기를 따라옵니다. 돈이 나를 찾아옵니다.

결국 이러한 사람은 인생이 떳떳하게 되고, 정의를 좇아갈 수 있습니다. 저희 가정에 이에 대한 간증이 있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젊었을 때부터 돈을 따라갔습니다. 돈을 벌려고 애를 무지 썼습니다. 별별 사업을 다하셨습니다. 그런데 제 아버님이 돈을 좇아가면 갈수록 돈은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니 제 어렸을 때 기억으로는 우리 집이 잘 살지 못했습니다. 가난했습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 저희 아버님이 큰 집도 짓고, 또 집을 아홉 채나 짓고 우리 자녀들에게 "애들아, 집을 하나씩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모두 꽝이었습니다. 다 사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저와 어머님이 성령을 받고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미친 듯이 기도하고 전도했습니다. 저와 어머님이 늘 전도상을 탔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고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저와 어머님이 자연히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복이 아버님의 사업에 임했습니다. 이제는 사기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없는 복이 어디서 굴러들어왔습니다. 결국 부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늘 감사합니다. 제가 은혜 받고 복 있는 사람이 되고부터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개척할 때부터 우리 교회는 풍성했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지긋지긋하게 매주 불고기를 16년째 먹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전도 구입했습니다. 모기지도 거의 다 갚았습니다. 외국 땅에서 늘 예배드리고 살아갑니다.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살면 복 받은 사람이요, 복 있는 사람이 아닙니까?

그리고 때때로 그 복이 조금 떨어져도 크게 염려하지 않습니다. 내가 복 있는 사람이기에 복이 떨어지면 다시 채워집니다. 복의 근원인 하나님께 달라고 하면 또 복을 줍니다. 고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남에게 손 벌리고 비굴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리저리 복을 얻기 위해 방황하고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복은 나를 따라오는 것이지, 내가 복을 좇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제발 복 있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결국 복 있는 사람이 되어서 늘 복이 임합니다. 인생을 떳떳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복을 받으면 뭐합니까? 자기만 잘 살려고 하지 말고, 자기 새끼들만 챙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복을 주셨으니 하나님을 위하여 쓰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사명은 복을 움키는 것이 아니라 복을 나누어주는데 있습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니, 복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다 같이 복을 받게 하십시오.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나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복을 좇아가지 않습니다. 복이 나를 따라옵니다." 할렐루야! 믿음대로 될지어다. 고백대로 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