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인가 ?

날짜: 
2002/08/13
설교: 

제 목 : 불가항력인가 ?
본 문 : 마 19:23-26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일입니다.
모처럼 좋은 구두를 사서 기분이 굉장히 좋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너 사람이 함께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좋은 구두 산 것을 뽐내려고 제가 그들 앞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었음.
그러자 엘리베이터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저도 "아이고, 내가 신학생으로서 신분에 맞지 않는 부끄러운 일을 했구나 !" 하고 얼굴을 붉히게 되었음. 물론 깨어보니 꿈이었음.
그런데 그 다음 날 새로 산 구두를 신고 교회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제가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꿈속에서처럼 진짜 탭댄스를 추고 있었음.
저는 스스로 깜짝 놀랐음. "아니 내가 꿈속에서 탭댄스를 추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현실에서는 절대로 엘리베이터에서 탭댄스를 추지 말아야지 !" 하고 생각했었는데 나의 그런 생각과는 전혀 반대로 현실에서도 탭댄스를 추고 있지 않는가 ? 이게 도대체 웬일인가 ?

여러분, 혹시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해보시지 않았습니까 ?
자신의 의지나 생각과는 전혀 반대로 행동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거나 굉장한 후회를 해본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
예를 들면 담배를 끊어보려고 굉장히 애를 쓰다가 드디어 한 두달 성공적으로 담배를 끊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에 담배가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아닌데 !" 하고 후회해 보지는 않았습니까 ?
그리고 그렇게 술을 끊어보려고 애를 쓰다가 드디어 얼마동안 성공적으로 술을 끊게 되었는데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그만 술을 퍼마시고 그 다음날 아침 마셨던 술이 깨면서 "아차, 또 실패했구나 ! 나는 왜 이럴까 ?" 하고 스스로에 대해 "나라는 존재는 그리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 하고 느껴보지는 않았습니까 ?

때로는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좋지 못한 습관 예를 들면 늦게 잠을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 방을 어질러 놓고 치우지 못하는 습관, 항상 불평과 원망하는 습관, 잔소리하는 습관, 남의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습관, 쉽게 화를 내는 습관, 그리고 자신만이 아는 좋지 못한 습관을 끊어보려고 굉장히 애를 쓰는데도 잘되지 않는 거의 불가항력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가 ?" 하고 한탄해 보지는 않았습니까 ?

제가 군대에 있을 때였음. 술과 담배를 끊어보려고 대단한 결심을 하고 이를 실천하게 되었음.
하루는 대대장님이 회식자리에서 "어이, 2 중대장, 술 한잔 받아 !" 하고 술잔을 건네도 저는 "대장님, 제가 지금 한약을 먹고 있어서 의사가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용서하십시오." 하고 지혜롭게 넘기곤 했음. 그래서 술은 끊을 수가 있었는데 담배는 아무리 끊어보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음.
그 당시 담배를 하도 많이 피워서 목에서는 계속 검은 가래가 나와 이를 악물고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해보았음. 그리고 부하들이 휴가 갔다와서 아무리 좋은 담배를 가지고 와도 선임하사나 소대장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음.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 군대생활을 하면서 하도 화가 나고 열이 받치는 일이 생기자 그만 나도 모르게 "어이, 선임하사, 담배 한 대 줘 !" 하고 담배를 입에 물게 되었음. 그러자 선임하사가 씩 웃으면서 "중대장님, 담배끊기가 쉽지 않지요 ?" 라고 말을 하는 것임.
저는 그 소리에 "아차, 내가 왜 이럴까 ?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하면서도 결국 담배를 계속 피우게 되었음. 나의 생각, 나의 의지, 나의 결심과는 전혀 반대로 내가 움직이는 불가항력적인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담배를 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 하고 생각하게 되었음.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오산리 기도원에 가서 금식 기도하는 동안 성령을 받게 되었음. 거룩한 성령이 저의 마음 속에 들어오니까 너무도 신기하게 그토록 끊기 어려웠던 담배가 즉시 끊어지게 되었음.
여러분, 성령은 글자 그대로 거룩한 영이 아닙니까 ? 그리고 그 후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담배를 절대로 피우지 않았습니다. 믿습니까 ?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끊어보려고 많은 애를 써도 쉽지 않을 때 저는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다름 아닌 "성령을 받으세요." 라는 것임. 즉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불가항력적인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라는 것임.

마가복음 5장에 보면 이런 사건이 나옴.
예수님이 거라사인 지방에 이르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힘이 센지 고랑과 쇠사슬로 아무리 꽁꽁 묶어도 그 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트리고 밤낮 무덤 사이에서 혹은 산에서 늘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 몸을 상하고 있었음. 의사도 부모도 친구도 친척도 힘센 군인도 그 누구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었음. 인간으로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즘말로 말하면 도저히 못말리는 사람이 나타났음.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가자 그 귀신들린 사람이 말을 함.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막5:7)
그러자 예수님이 그 귀신을 쫓아내자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가 바다 속으로 빠져 자살하고 말았음. 그리고 나서 보니 그 귀신들린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예수님 앞에 조용하게 앉아 있게 되었음.

여러분, 세상을 살다보면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도저히 못말리는 사람, 즉 불가항력적인 사람을 만나게 됨. 만약 그런 사람이 내 식구 중에 있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 아니겠습니까 ?
그런데 요즈음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이렇게 못말리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나타남. 못말리는 남편, 못 말리는 아내, 못말리는 자녀, 못말리는 그 사람들을 인간이 어떻게 감당합니까 ?
이에 대해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함.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마19:26)
즉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나 사람을 만날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것임.

여러분, 요즘 자녀들을 가만히 살펴보세요.
옛날 우리들이 자라날 때하고는 조금 틀립니다. 자녀들 중에 도저히 부모도 못말리는 자녀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물론 어리니까 그렇겠지요. 그리고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점차 나아지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못말리는 모습들이 어른이 되어서 또다시 나타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리고 그렇게 못말리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항력적인 사람이 바로 나의 아내요, 나의 남편이요, 나의 자녀요, 나와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면 그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이라고 스스로 포기하고 살겠습니까 ? 아니면 불가항력적인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 하시겠습니까 ?

마가복음 9장에 보면 한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을 합니다.
"주여, 내 아들이 귀신이 들렸나이다. 귀신이 어디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파리하여 갑니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막9:17-18)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함.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9:23)

여러분, 말세가 될수록 귀신이 이리 저리 설치므로 도저히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모습으로 이상하게 일이 꼬이게 될 때가 있음.즉 인간이 못하는 불가항력적인 일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해결하라는 것임. 이때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면 실패하고 맙니다. 더욱 처절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오직 한가지 방법,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부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고 말씀하셨음. 즉 많은 재물이 있다보니 그 재물이 한 사람을 못말리는 사람, 불가항력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다는 것임.
이런 사람을 향해 아무리 그 아내가 "여보, 내 소원이니 제발 교회에 나갑시다." 하고 간청을 해도 코방귀를 뀌는 사람이라는 것임. 그렇지만 그렇게 못 말리는 사람, 그렇게 완악한 사람도 하나님은 아주 쉽게 말릴 수가 있다는 것임.

그러므로 스스로 못한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 더구나 문화와 언어, 법률과 관습이 틀린 이 외국 땅에서 살다보면 자신의 무능력을 많이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외국땅에서 살다보면 스스로의 힘으로 도저히 안되는 불가항력적인 사건과 사람을 많이 대하기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절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다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말을 했던 사람들임.
그러나 상황이 바뀌자 그들 모두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고 말았음. 예수님이 미워서 예수님이 싫어서 도망간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기한테 섭섭하게 해줘서 원한이 맺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저주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당시의 상황이 그들을 불가항력적으로 만들고 말았기 때문임.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한계가 그것 밖에 되지 않아서 혹은 자신의 깨닫는 능력과 그것을 실천하는 힘이 그것 밖에 되지 않아서 도저히 안되는 불가항력적인 일을 만날 때 억지로 자기가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더 큰 절망에 빠지고 자신은 더욱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불가항력적인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늘 우리를 도와주려고 우리에게 예수님과 성령님을 보내주셨음.
크리스천들은 내 자신의 힘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힘으로 사는 사람들임. 그리고 우리의 믿는 하나님은 인간으로 불가항력적인 일을 다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