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가 견고한 자

날짜: 
2013/11/23
말씀: 
사26:3
말씀구절: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설교: 

사26:3 심지가 견고한 자

올해는 캘거리 겨울이 일찍 시작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토요일과 주일에 3주째 날씨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눈도 많이 오고 도로도 미끄러워서 교회오기가 매우 힘이 들었을 겁니다. 주일에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아무래도 목사님들이 기도할 겁니다. "주여, 주일에 이렇게 날씨가 안 좋으면 성도님들이 교회 오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주여, 주일에 날씨 좀 좋게 해주세요."

저도 여기 캘거리에서 16년째 목회를 하고 16년째 겨울을 맞이하면서 날씨를 위해 기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날씨를 위한 기도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러잖아요. 여기 캘거리는 겨울이 6개월입니다. 목사가 만날 날씨 때문에 기도하면 그렇게 기도하는 분량도 상당히 많이 될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그렇게 날씨를 위해서 기도를 하지 않고, 도리어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여,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풍우가 몰아치고, 날씨가 추워도 늘 예배에 빠지지 않는 전천후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만약 우리가 날씨 때문에 교회에 오고 말고가 결정이 된다면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주일 날 날씨가 좋으면 놀러가고, 날씨가 아주 나쁘면 교회에 못 오고, 날씨가 그럭저럭해야 교회에 오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아차린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여, 주일날 날씨가 아주 좋지도 말고, 아주 나쁘지도 말고, 그럭저럭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여간 나의 믿음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에 따라 내 믿음이 좌우가 되는지 한번 체크해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그의 믿음이 날씨에 따라서 좌우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배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깊은 밤중에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놀래서 외쳤습니다. "유령이다!"

아시다시피 어부들은 바다에서 유령이 나타나면 배가 전복이 되고 모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만일 주시어든 저로 명하여 바다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주님이 말씀합니다. "오라."

그러자 베드로가 용감하게 바다 위를 걷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신기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세차게 부는 바람과 풍랑을 보자 말자 그만 무서워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충만했던 믿음이 금방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사라지자 그는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까지 바다 위를 걸었는데, 그만 날씨가 사나워지고, 바람과 풍랑을 보자 믿음이 떠나갔습니다.

이때 주님이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주여, 죄송하지만 내 믿음은 날씨에 있습니다. 날씨에 따라서 믿음이 생겼다 말다 합니다." 혹시 이 자리에 날씨에 따라서 예배드리러 오는 것이 결정이 되는 분이 있습니까? 목사로서 그런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여, 전천후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날씨에 따라서 움직이면 안 됩니다. 환경에 따라서 움직이면 안 됩니다. 경험에 따라서 움직여도 안 됩니다. 감정에 따라서 움직여도 안 됩니다. 사람에 따라서 움직여도 안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주님께 두어야 합니다. 영어로 "Trust in Jesus."가 되어야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수제자인 베드로의 이전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이란 뜻은 갈대라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믿음은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견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갈대와 같은 믿음을 원치 않으시고 그의 이름을 바꾸어주셨습니다. "애야, 수제자의 이름이 갈대가 뭐니? 니 이름을 반석(베드로)이라 하라."

여러분, 목사가 목회를 하면서 늘 염려가 되어서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갈대와 같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분들은 교회에 못 오고, 예배에 못 오는 이유가 왜 그리 많은지, 그러다가 조금 있는 믿음마저 없어지고 말까봐 상당히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주여,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 지조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경에는 믿음의 지조가 있는 분을 믿음의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고, 그들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편 믿음의 지조가 없는 분도 있고, 그들의 좋지 못한 결말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조 있는 믿음의 소유자 가운데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있습니다.

바벨론 왕이 금령을 발표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세운 우상에게 절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겁니다." 왕의 명령을 어기면 죽습니다. 사자 밥이 됩니다. 화형을 당하고 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의 지조를 지킵니다. 결국 불 속에 떨어지고, 사자 굴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음의 지조를 지킨 그들을 하나님이 구출해주셨습니다.

옛날 한국의 여인들은 은장도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은으로 만든 조그만 칼입니다. 이 칼은 누구를 해치려는 칼이 아닙니다. 자결을 하기 위한 칼입니다. 왜 자결을 합니까? 여인으로서 성폭행을 당하려고 할 때 자결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자기의 정조를 지키겠다는 겁니다. 지조 있는 여인이 되겠다는 겁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장군의 전속부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군이 되면 아주 조그만 권총을 받습니다. 그게 무슨 권총이냐 하면 적의 포로가 되었을 때 자결용 권총입니다. 적에게 아군의 군사비밀을 노출하지 않고 죽겠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군인으로서 지조를 지키겠다는 겁니다. 좋은 군인입니다.

그러나 한편 한국의 역사에 보면 지조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려 왕조가 무너지고 이씨 조선이 설립될 때였습니다.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에게 은근히 그의 마음을 떠보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름 하여 '하여가'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하여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 시를 듣고 충신 정몽주가 화답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름 하여 '단심가'입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여러분,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과 간신이 구별이 됩니다. 그들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한국이 일제 강점기 때에도 자기의 출세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은 간신 이완용 같은 사람도 있고,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독립투사와 같은 충신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옛날부터 지조를 지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충신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을 믿을 때에도 충신처럼 잘 믿습니다. 믿음의 정조를 지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음의 정조를 지키다가 많은 분들이 순교를 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이름 없이 죽어간 많은 성도님들이 그랬습니다. 그런 순교의 피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말세가 되면 될수록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정조를 포기합니다. 믿음의 기회주의자가 됩니다. 더 나아가 믿음의 배신자가 됩니다. 그래서 말세 교회는 어디를 가나 힘이 듭니다. 정조 있는 사람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의 지조를 지키기 원합니다. 끝까지 예수님 잘 믿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지조 있는 사람, 심지가 곧은 사람에게 평강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음미해 봅시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이 구절을 다른 번역본에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 주님께 의지하는 사람들은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평화에 평화를 더하여 주시기 바랍니다."(표준 새번역) "여호와는 자기를 의지하고 마음이 한결같은 자에게 완전한 평안을 주신다."(현대인의 성경) "마음이 한결같아 당신께 몸을 맡기는 그들, 당신께서는 번영과 평화로 그들을 지켜주시옵니다."(공동번역)

즉 심지가 견고한 자는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자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환경이 어려워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견고한 사람, 지조와 정조가 있는 사람을 가리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돈을 의지해서는 한결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의지해서도 한결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의지해서도 한결같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해야 지조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입니까? 한결 같은 사람입니까? 혹시 믿음의 변덕쟁이는 아닙니까? 혹시 믿음의 배신자가 될 소지가 있지는 않습니까?

데살로니가 전서 5:16-17절에 이런 유명한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즉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리저리 지조 없이 흔들리는 갈대가 변하여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바램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갈대로 기둥을 삼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기둥은 어떠한 상황에도 움직이면 안 됩니다. 태풍이 불어도 흔들리면 안 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버티고 있어야 기둥입니다. 아무쪼록 지조 있는 성도, 지조 있는 남편, 지조 있는 아내, 지조 있는 젊은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기생과 아내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기생은 돈을 가지고 와야 사랑해 주는 사람입니다. 술도 계속 시키고, 안주도 계속 비싼 것을 시켜야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한결같이 사랑해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돈에 따라서 이리저리 갈대처럼 움직이는 기생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아내가 훨씬 더 좋은 것입니다.

한자어로 하면 조강지처(糟糠之妻)입니다. 조강지처가 무슨 뜻인가요? 술지게미 조(糟)와 쌀겨 강(糠) 자를 써서 변변치 않은 음식으로 끼니를 이을 때의 아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난할 때 고생을 함께하며 살아온 본처(本妻)를 이르는 말입니다. 원래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 송홍전(宋弘傳)에 나오는 광무제(光武帝)의 고사성어(故事成語)입니다.

후한의 광무제는 자기 누님이 일찍이 과부가 되어 쓸쓸히 지내는 것을 보고 마땅한 사람이 있으면 재혼을 시킬 생각으로 누님의 의향을 떠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송홍 같은 사람이라면 시집을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송흥은 아내가 있는 남자였습니다. 광무제는 마침 송홍이 공무로 관정에 들어오자 자기 누님을 병풍 뒤에 숨기고 송흥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속담에 말하기를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유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였는데 그럴 수 있는가?" 그러자 송홍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소신은 가난할 때 친하였던 친구는 잊어서는 안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는 누님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일이 틀린 것 같습니다. 누님!"라고 말하며 송흥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남성 여러분들이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조강지처를 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성 여러분들이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조강지부를 버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들이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에게 누가 좋은 신부입니까? 한결같은 신부입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은 성도에게 번영과 평화로 그들을 지켜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심지가 견고한 성도로서 그 은혜, 그 평강, 그 축복을 끝까지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