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물을 단물로!

날짜: 
2012/03/26
설교: 

출15:22-27 쓴 물을 단 물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약속합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43:19-20)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물이 어디 있어요? 목말라 죽겠는데 왜 물이 안 보이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후 사흘 길을 가다 보니 그만 물이 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외칩니다. "하나님, 목말라 죽겠어요, 물을 주세요?"
그리고 얼마쯤 가다가 샘터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기뻐서 외칩니다. “야, 봐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물을 주셨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물을 마셔보니 도저히 먹지 못할 쓴 물이었습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하나님께 감사를 외쳤던 태도는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이게 뭐예요? 지금 우리를 희롱하는 거예요? 뭐에요?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물이 고작 마시지 못하는 쓴 물이란 말이에요? 우리가 믿은 하나님이 이렇게 능력이 없으십니까? 그나저나 이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어요! 아이고, 목말라 죽겠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합니다. 그리고 약속의 말씀을 듣고 ‘아멘!’ 하며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소망가운데 기다립니다. 그런데 원하고 바라보았던 축복은 안보이고 오히려 물질의 궁핍이 찾아오고, 건강을 바라보았지만 오히려 난데없는 질병이 찾아오고, 가정이 평안하고, 사업이 형통하며,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보았지만 오히려 모든 일들이 반대로 진행될 때가 있습니다.
즉 기대와 소망이 무너지며 더욱 큰 낙심과 절망이 찾아오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럴 때 보통 사람들은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3일 전에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낙심과 절망을 하며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했던 것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혹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쓴 물이 생기지는 않았습니까? 질병의 쓴 물, 가난의 쓴 물, 미움의 쓴 물, 근심의 쓴 물, 낙심의 쓴 물이 생겨서 혹 삶의 의욕을 잃고 ‘에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쓴 물의 추억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쓴 추억만을 생각하고 미움과 불평 속에 빠지거나 낙심과 절망 속에 빠져 버린다면 그 사람에겐 진정한 평안과 행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쓴 물의 추억만을 간직하며 사는 부정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그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주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며 사는 긍정적인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인생의 쓴 물을 맛보며 ‘에이, 이거 뭐야?’ 하고 늘 불평과 짜증 속에 살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쓴 물도 단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가운데 살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중국 한자 숙어 가운데 ‘전화위복’ 이란 말이 있습니다. 화가 변하여 복으로 바꾸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나쁜 의미로 우리를 저주 가운데 빠트리기 위해 미혹시킨다는 temptation이란 뜻이 아니라, 우리를 훈련시키고 연단 시켜서 마침내 더 큰 축복을 주어도 감당할 만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test 하신다는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 앞에 예상치 못한 쓴 물이 터지지는 않았습니까? 이때 깨달으십시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시험, 하나님의 test입니다. 이 시험 앞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원망 불평을 한다면 당신은 시험에 불합격할 위험이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쓴 물의 시험지가 놓여 있을 때 낙심과 불평으로 답안지를 작성한다면 결과는 실패입니다. 후퇴입니다.
그러나 쓰디쓴 물의 시험지를 바라보고 기도와 인내로 답안지를 작성한다면 결과는 성공입니다. 발전입니다. 더욱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쓴 물의 시험지가 변하여 단물의 영광의 졸업장으로 바꾸어지고 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쓴 물의 시험지를 받아서 낙심과 불평으로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기도와 인내로 모범 답안지를 작성했습니다. 본문의 모세가 작성한 모범 답안지를 살펴보십시다.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며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여러분, 만약 모세가 (본문)의 시험지 앞에서 기도와 인내로 그리고 소망으로 정답을 쓰지 않았다면 쓴 물은 여전히 쓴 물이요, 시험은 여전히 시험이요, 슬픔은 여전히 슬픔이요, 저주는 여전히 저주로 머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쓴 물의 시험지를 받아들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쓴 물이 생겼습니다. 저로서는 이 문제를 풀 재간이 없으니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저에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시옵소서. 정답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정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세야, 저 옆에 있는 한 나무를 물속에 던지어 보아라.”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가르쳐준 방법은 도저히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내는 정답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나무 가지 한 개가 어찌 쓴 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이 나무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를 상징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낱 사형수들을 죽이는 형틀에 불과했던 십자가지만 그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쓴 물은 단물로 바꾸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니, 2000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한 젊은 종교가가 어찌 우리의 쓴 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어찌 의사도 못 고치는 나의 질병을 고칠 수가 있으며, 그가 어찌 우리에게 축복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의심이 생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는 증명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아왔던 수많은 죄인들, 창녀, 세리 그리고 보잘것없었던 사람들, 질병으로 인해, 가난으로 인해 절망과 탄식에 빠졌던 사람들, 그리고 미움과 분노로 쓴 물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부글부글 솟아났던 사람들도 마침내 예수님 안에서 치료를 받고, 축복을 받으며, 미움은 변하여 사랑으로, 탄식은 변하여 찬송으로, 슬픔은 큰 기쁨으로 바뀌는 체험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30:11)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16:20)
여러분, 예수님 안에서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체험을 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고 싶지 않으십니까?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고 싶지 않으십니까? 질병으로 인해 찾아온 고통을 치료와 건강으로 바꾸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 앞에 놓여있는 쓴 물의 시험지를 잘 작성하십시오.
지금 당장 쓰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에이, 뭐가 이래!’ 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모세처럼 기도로 답안지를 작성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특히 객지 생활, 이민 생활, 유학 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겐 쓰디쓴 추억과 문제가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내지 못한다면 이곳은 살기 좋은 나라 캐나다가 아니라, 지옥 같은 나라 캐나다가 될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정녕 이곳에서도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늘 자기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야 된다는 독선적인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쓰디쓴 추억, 쓰디쓴 문제가 터져도 그것을 단물로 바꾸어 내는 모범 답안을 작성하는 사람만이 어디에서든지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만이 하나님의 기적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이민 사회는 쓴 물의 시험이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한국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며, 나아가 한국 사람이 모이는 교회 생활을 하기도 꺼려합니다. 즉 쓴 물의 시험을 귀찮아하거나 무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꽤 합리적이고 괜찮아 보이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잊지 마십시오. 군인이 전쟁을 무서워한다면,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를 멀리한다면, 그리고 시험을 무서워한 나머지 시험을 포기한다면 그에겐 더 이상의 발전이 없습니다. 더 이상의 축복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쓴 물의 시험을 두려워 마십시오.
설사 쓴 물의 시험이 왔을지라도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평만 할 것이 아니라, 모세처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정녕 십자가를 붙들고 쓴 물을 단물로 바꾸는 기적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바라보십시오. 기도하며 감사하는 나로 인해 쓴 물은 단물로 변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갈증이 해소되며, 그들이 용기와 힘을 얻고 전진하는 모습을 꿈꾸십시오.
모세의 기도로 인해 쓴 물이 단물로 변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호,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하나님이 죽지 않았구나.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기억하시고 사랑하고 있구나. 할렐루야!”
그들은 솟아난 단물로 말미암아 타는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절망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소망으로 철철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의 모범 답안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증을 해결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도 쓴 물의 시험지를 받을 때 모세처럼 모범 답안을 잘 작성하시므로 가족과 이웃, 친척과 교우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내는 사람을 지도자로 삼으십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신앙의 위인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내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낼 때 그곳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축복과 행복이 넘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내는 귀한 교훈을 가르치신 하나님은 얼마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엘림이라는 오아시스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 곳에는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으므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42일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오아시스를 주시기 전에 먼저 쓴 물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에게 비로소 예비한 오아시스를 주시는 것입니다. 지도에서 보면 쓴 물이 나왔던 마라와 오아시스가 있었던 엘림까지는 불과 5마일 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쓴 물과 오아시스와의 거리는 먼 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슬픔과 기쁨의 차이는, 가난과 축복의 차이는, 절망과 희망의 차이는 결코 먼 거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잠시 후 당신을 오아시스가 있는 엘림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인생의 쓴 물을 만나 그곳에서 주저앉아 버린다면 쓴 물이 단물로 바꾸어지는 기적도 체험하지 못하고, 불과 5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오아시스 엘림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쓴 물 앞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바로 눈앞에 있는 오아시스 엘림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불과 5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다 오아시스를 예비해 놓고 저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오아시스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도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인생의 쓴 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습니다. 주여, 쓴 물을 만날 때 나의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내 이웃의 쓴 물도 단물로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이 예비한 오아시스로 우리 모두가 들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