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돌아가리이까?

날짜: 
2024/08/17
말씀: 
말3:7-12
말씀구절: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설교: 

구약성경 39권 가운데 맨 마지막 책이 말라기입니다. 말라기는 분량은 적지만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말라기’라는 말은 ‘나의 사자’라는 뜻으로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 이름입니다. 그는 구세주가 오시기 바로 전에 하나님이 나의 사자를 앞서 보내실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하나님의 사자인 세례 요한이 나타났습니다.

세례 요한이 외친 주된 말씀은 ‘회개하라.’입니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가 외친 주된 말씀도 ‘회개하라.’입니다. ‘회개하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슈브(샤브)’라고 합니다. 이 뜻은 “잘못한 길에서 돌이키다.” 혹은 “방향을 전환하다.”라는 군사용어입니다. 군사용어라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할 엄격한 명령과 규칙이라는 겁니다. 즉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고, 방향을 전환해야만 너와 내가 죽지 않고 산다는 뜻입니다.

고로 회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회개를 제대로 하느냐 못하느냐는 죽느냐 사느냐의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다’를 헬라어로는 ‘메타노이아’라고 합니다. 이 뜻은 “마음을 바꾼다.”(Change one's mind)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이 변화되고 마음을 바꿔야 진정한 회개가 성립이 된다는 겁니다.

신학자들이 자주 토론하는 주제 중에 “회개가 먼저냐? 믿음이 먼저냐?”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 “회개하고 믿느냐? 믿고 나서 회개하느냐?”입니다. 뭐- 순서야 어찌 되었든지 간에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것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강조하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너무나도 중요한 회개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그러나 회개라는 주제는 솔직히 저나 여러분이나 그리 재미있거나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 그러지 않습니까? 누가 여러분에게 ‘회개하라’고 말하면 아멘이 먼저 나오는 것보다 기분이 나빠서 ”너나 회개하라.“고 반발감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회개하라.’는 직설적인 표현대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라는 좀 더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꾸어 은혜를 받고자합니다.

1. 오늘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로 돌아가리이까?” 그러자 하나님이 대답합니다. ”너희가 나의 것, 곧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도다.“

”아니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습니까?“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 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즉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일단 돈의 문제를 바르게 하라는 겁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지갑이 회개하지 않고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오늘의 본문도 하나님이 아주 대놓고 말씀합니다. “십일조는 내 것인데 그것을 너희가 도적질하고서야 어찌 나한테 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느냐?” 즉 돈이 돌아오지 않으면 진짜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니까 여러분 중에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코웃음을 치며 성전을 박차고 나가고 싶고, “다음 주부터 절대 교회 안 온다.“고 결단하시는 분이 있지 아니할까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옛날의 저였습니다. 불신자가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어보려고 교회에 왔는데 그날따라 목사님이 십일조와 돈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 “아- 이거 뭐야? 그러면 그렇지. 흥!” 하고 실망하고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그리고 어떤 집사님은 그 동안 누구를 전도하려고 많이 기도 하는 중에 드디어 오늘 주일예배에 그 사람을 처음 교회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목사님이 이날 십일조에 대한 설교를 하면 “아이쿠! 오늘 이 사람 잘못 데리고 왔구나.” 하고 마음이 안절부절못하고 심히 불편할 겁니다.

그러니 제발 부탁합니다. 좀 불편하더라도 뛰쳐나가지는 마십시오. 시험에 들지 마십시오. 그렇게 듣기 거북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됩니다. 교회에 못 오시는 분들 중에 이런 분이 있습니다. “아- 나는 아직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는데, 이런 모습으로 교회에 다니려니까 꺼려진다. 불편하다. 그러니 교회에 나오지 말아야겠다.”

그런 분에게 우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괜찮다니까요. 교회 다니면서 믿음이 들어가면 그때 차차 술 담배 끊으면 되고... 지금은 괜찮아요. 다들 처음에는 그렇게 교회에 다니는 겁니다. 그러니 괜히 자책감에 빠지지 말고 교회에 열심히 다니세요.” 여러분, 십일조와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거 안 해도 돼요. 하나님이 그거 없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동냥을 하는 그런 거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우리들에게 그 모든 좋은 것을 선물로, 공짜로 주시는 최고로 부요한 하나님이시고,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그런데 그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누가 뭐래도 꿋꿋이 십일조를 내시는 분들은 이에 대한 나름대로의 체험이 있을 겁니다.

십일조를 안내고 살면 이상하게 돈이 모자라서 남에게 자꾸 꿔야하고, 가난과 저주가 잘 안 떠납니다. 그리고 결정적일 때에 형통이 되어야 되는데, 도리어 불통이 되기도 해서 마음이 굉장히 상하고 다급해지기도 합니다. 반면 십일조를 드리면 분명히 계산상으로는 돈이 모자라서 거지가 되고 파산이 되어야 하는데, 도리어 십일조를 안내고 살 때보다 더 여유가 생기고 부자가 됩니다.

더구나 10년, 20년,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면 십일조를 드리신 분과 안 드리신 분의 모습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더 나아가 그 자녀와 자녀의 자손까지 영향이 미치게 됩니다. 그러니 인생의 종착역에 도달할 때가 되면 명암이 분명히 갈리게 됩니다. 아- 그거 왜 그러지요? 오늘의 본문에 분명한 그 해답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3:10-12)

물론 믿는 사람들 중에 십일조를 내지만 그 중에는 아주 못된 녀석, 독사 같은 녀석들도 제법 있습니다. 인격의 변화가 제대로 안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에게 심하게 책망 받은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런 못된 사람들을 쳐다보지 마시고, 오늘의 본문에 순종하여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시작해보십시오. 성경의 기록대로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겁니다.

성도님들 중에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돈에 대한 설교를 거의 안 하신 줄을 압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누구보다 이 땅에 있을 때 돈에 대한 설교를 많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약 35%가 돈에 관한 비유입니다. 그 중에 이런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즉 돈과 마음이 같이 따라다닌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그 사람의 돈의 씀씀이를 들여다보면 됩니다. 즉 크레디트 카드 내역이나 통장의 내역을 들여다보면 “아하! 이 사람의 마음이 지금 이곳에 있구나!” 하고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그 사람이 돈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충 정확히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사람이 돈이 아주 궁핍하고 가난할 때에 태도나, 혹은 그가 아주 큰 부자가 되었을 때에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 면 그 사람의 마음의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하여간 하나님께 돌아 올 때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돈도 같이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 진짜로 돌아오기 위해선 일단 그 마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의 그 많은 재산을 탕진하고 외국에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마침내 거지가 된 둘째 아들이 이런 마음을 먹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눅15:17-19)

보십시오. 돌아온 탕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게 한 좋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인식한 겁니다. 그리고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수 없다고 낮아지고 겸손해졌습니다. 여러분, 이런 낮은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께 돌아오는 것이 진짜로 돌아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이런 겸손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원합니다.

이번 COVID-19 사태를 겪으면서 성도님들 중에 제법 많은 분들이 신앙을 잃고 아직까지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며 목사님은 늘 기도합니다. “애들아, 이제 그만 돌아오라. 못 찾겠다. 꾀꼴 꾀꼴 나는야 술래...” 아- 왜 만날 목사님만 술래가 되어서 이리저리 애들 찾으러 돌아다녀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기야 이게 목사의 사명이니까 죽을 때까지 술래 해야겠지요.

하여간 제가 그렇게 COVID-19 때에 교회를 떠난 분들을 향해서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매일 기도를 하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아- 그 분, 빨리 교회에 돌아와야 하는데... 하지만 옛날 그 모습을 가지고 돌아오면 안 되는데... 마음이 좀 더 겸손해지고 낮아져서 돌아와야 하는데...”

이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2:12-13) 물론 이렇게 마음까지 변화되고 겸손해져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만, 하여간 일단은 먼저 돌아와서 깨닫고 마음까지 변화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위해서 사무엘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 제하고 돌아오라.”(삼상7:3) ‘아스다롯’은 다른 말로 ‘아세라’라고도 하는 이방 가나안의 여신입니다. 그 외에 이방의 신들이 성경에 보면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잡다한 이방 신들을 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진짜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35장에 보면 야곱이 기나긴 외지 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하나님의 집인 벧엘로 올라가려고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때 야곱이 식구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중에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라.”(창35:2)

즉 그 동안 이방 외지에서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이방의 잘못된 풍습, 잘못된 문화, 잘못된 사상, 잘못된 행동들을 버리라는 겁니다. 특히 의복을 바꾸라고 하는데, 의복은 성경에서 성도들의 행위를 뜻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어떤 분이 꿈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옷이 심히 더러워져 있고, 그 옆에 하이타이 강력 세제와 함께 빨래 비누가 한 박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지요? 예- 성도로서 행동이나 삶이 바르지 못하니 그거 고치라는 뜻입니다. 반면 어떤 분은 꿈속에서 아주 깨끗한 흰옷을 입었더라는 겁니다. 그건 그 사람의 행실이 올바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나 천사들이 나타날 때 이런 빛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로마서12:2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즉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하여 바른 행실, 바른 모습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세례요한은 외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3:8) 이를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서 보여라.”

아- 물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바른 행실까지 갖추고 돌아오면 베스트이지만, 그게 마음먹은 대로 쉽지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루아침에 천사가 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고로 일단 행실이 안 좋아도 하나님께로 나와서 계속 말씀과 기도로 자신의 행실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나름대로 그럭저럭 교회에 잘 다니던 어떤 성도님이 그날따라 예배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진정으로 회개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며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애야, 너 왜 이제 왔느냐?” 그 분이 이 음성을 듣고 놀라며 대답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옛날부터 교회에 잘 다녔는데요.” “아니다. 그때는 네가 교회에 마당만 밟고 다녔느니라. 이제야 진짜 네가 돌아왔구나.”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한 발만 돌아오고, 다른 발은 그냥 세상에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언제든지 상황이 바뀌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기세입니다. 혹은 몸뚱이만 왔지 마음의 중심은 아직 안 왔습니다. 양다리 걸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 이래서는 안 됩니다. 기왕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 완전히 돌아와야 합니다. 나의 영 혼 육이 같이 돌아와야 합니다. 아무쪼록 말씀에 입각하여 스스로를 비추어보아 하나님께로 보다 가까이, 완전히 돌아오셔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나며, 하나님과의 교제가 날마다 이루어지는 행복 속에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물질도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마음도 돌아가고, 행실도 돌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