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이 가까이 찾아 오실까 ?

날짜: 
2003/11/06
설교: 

제 목 ; 왜 하나님이 가까이 찾아 오실까 ?
본 문 ; 요한복음 10:10

불신자들은 "하나님은 없다." 혹은 "하나님은 있을 수도 있지만 구만리 장천 먼 곳에 계신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 계신다. 그것도 우리와 아주 가까이 계신다."라고 믿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늘 가까이 지내면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아주 친숙한 사이였습니다만, 사단의 꾀임에 넘어가 죄를 짓고,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는 원수 같은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도 먼 당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가까이 찾아 오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가까이 찾아온 모습을 사실대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에 어떻게 찾아오셨을까요 ?

1. 산꼭대기에 찾아 오셨습니다.
성경 출애굽기 19:18-19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 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특별히 모세를 만나시기 위해 불과 연기 가운데 시내산 꼭대기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도 많은 주의 종들이나 기도하는 분들이 하나님을 보다 가까이서 만나기 위하여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평지 성막과 성전에 찾아 오셨습니다.
출애굽기 40:34부터 보면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찾아오시되 이제는 더 가까이, 그리고 덜 무섭게 찾아 오셨습니다.
성막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성전을 짓기 전까지의 임시 성전을 뜻합니다. 즉 텐트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성전을 짓자 하나님은 그곳 성전에 찾아오셨습니다.

3. 말씀으로 선지자들의 심령에 찾아 오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000에게 임하시니라"한 말씀을 많이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1에도 "옛적에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니…" 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즉 하나님이 산꼭대기에서 평지로, 그리고 평지에서 선지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찾아오시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의 모습으로 찾아 오셨습니다.
마치 서울에 계신 아버지가 부산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로나 편지로만 말씀하시다가 마지막에는 몸소 직접 찾아가 말씀하신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어느 대통령이 국민들의 생활사정을 알아보시려고 기름때 묻은 직공의 옷으로 갈아입고 공장에서 얼마동안 일하신 것과도 같습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이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우리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l: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5)

5. 보혜사 성령님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l7)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 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여러분, 이와같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찾아오시되 산에서 평지로, 평지에서 성막으로, 성막에서 선지자들에게로, 선지자들에게서 많은 사람들에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모든 사람들에게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멀리에서 좀 더 가까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부모님이나 아내나 자녀들보다도 더 가까이 찾아오셨습니다. 즉 우리의 심령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영으로 우리 안에 오셨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는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알고 있고 또한 믿고 있습니다.
단지 피상적인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미신적인 믿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 말씀대로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가까이 찾아오시는 것일까요 ? 물론 하나님이 우리를 좋아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원래는 하나님이 우리를 좋아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을 저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
다시 말해 우리는 죄와 악과 독으로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되었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고, 이제는 하나님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도 먼 당신이 아니라 너무도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즉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직접 느끼시고 확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가까이 찾아오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늘 모셔들이시고 이 외국 땅에서도 가까이 계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들은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이곳 외국 땅에 이민이나 유학을 온 것도 풍성할 삶을 원해서 왔지 빈궁한 삶을 원해서 오신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 캐나다 땅의 현실은 우리가 풍성한 삶을 영위하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민성의 통계를 보아도 이민자들이 아무리 고학력의 소유자고 자기 나라에서 많은 월급을 받았다 할지라도 이곳에 와서는 본토인들에 비하여 그리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한국에 비해 이곳은 오히려 집 값을 비롯해 생활비가 만만하지 않아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물질 염려를 누구나 하게 됩니다. 물론 정부에서 실업자나 빈궁한 사람들에게 주는 여러 가지 보조 수당이 있지만 그것으로 풍성한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
물론 시대에 따라, 혹은 환경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풍성한 삶의 기준이 서로 틀릴 수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 시대에, 그 환경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보다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는 것은 모두의 공통된 마음입니다. 그래서 풍성한 삶을 이루어 보려고 나름대로 영어 공부도 하고, 기술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 혹은 사업을 하기 위해 이런 저런 정보를 얻기도 하고, 혹은 부부가 열심히 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저와 여러분에게는 풍성한 삶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좋은 benefit 즉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이루어주시기 위하여 우리 가까이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믿으십시오. 이 외국 땅에서도 나는 풍성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풍성한 삶을 위해 가까이 계신 하나님과 깊이 상의를 해보십시오.
혹 이 중에 아직 하나님이 나와 가까이 하시고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하고 있다면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분을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 분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가까이 찾아오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이끌어 주시기 원하십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사랑과 화목도 풍성하고, 지혜와 지식도 풍성하고, 평안과 기쁨도 풍성하고, 건강과 행복도 풍성하게 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시는 데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을 주셨는데 이에 대해 한번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먼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시겠다는 변함 없는 약속입니다.
혹 어떤 분은 "이 약속은 한국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닙니까 ? 이곳 캐나다에서는 사정이 좀 틀리지 않겠습니까 ? 더구나 우리는 이곳 캐나다 본토인이 아닌데요 ?" 하고 반문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를 풍성케 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곳 캐나다에서도 우리를 풍성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가까이 찾아오신 것도 우리를 풍성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이지 아무런 능력이 없으시면 무엇 때문에 우리를 가까이 찾아오셨겠습니까 ?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돈도, 건강도, 사랑도, 행복도 풍성히 주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혹 어떤 분들 중에는 "하나님 믿으면 돈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 괜히 피곤한데 하나님 믿는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보면 참으로 한심하다 !" 하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 특히 하나님을 믿고 풍성한 삶을 체험한 사람들이 보면 그렇게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체험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으면,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그리고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성경은 약속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여러분, 이곳 본토인들에 비하면 우리는 영어도 짧고, 이곳의 법률과 문화와 지식도 잘 모릅니다. 거기다가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도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을 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적으로는 풍성한 삶을 얻기가 이곳 본토인들보다는 훨씬 불리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풍성한 삶을 얻을 수 있는 굉장한 benefit 즉 특권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들 가까이에 오신 하나님이 우리의 특권입니다. 그 분은 이 어려운 외국 땅에서도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고로 그 분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 분이 이 외국 땅에서도 저와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하시도록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열심히 구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분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 보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리리라."(마7:7)

여러분, 우리는 이 외국 땅에 빈궁하게 살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보다 풍성한 삶을 기대하며 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외국 땅입니다. 한국에서의 나의 실력, 나의 경험, 나의 판단이 이곳에서는 잘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확실한 다른 방법을 찾아 보십시오. 우리를 풍성하게 해 주시기 위하여 가까이 오신 하나님을 만나 보십시오. 그리고 이 외국 땅에서도 풍성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