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날짜: 
2025/04/19
말씀: 
막5:35-43
말씀구절: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설교: 

2025년 올해 세계 인구는 총 얼마나 될까요? 82억 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2100년이 되면 112억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UN에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인류역사 6000년 동안의 인구는 총 얼마나 될까요? 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없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기록으로만 추정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창조 때부터 노아의 홍수까지 약 1000년간 세계 인구는 2억 명에서 많게는 40억 명까지 보고 있습니다. 2억 명도 많게 느껴지는데 40억 명이라고 하니 꽤 많지요? 왜 이렇게 많은 숫자가 나오느냐 하면 대홍수 전에는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거의 900살이었고, 환경도 지금보다 훨씬 좋아서 인구 팽창률이 지금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홍수 이후에 노아의 8식구로 말미암아 지금까지 대략 5000년 동안에 생겨난 인구수는 총 160억 명으로 추산합니다. 그러니까 노아 홍수전의 맥시멈 인구 40억 명 + 노아홍수 후의 인구 160억 명을 합치면 인류의 총 인구 수는 대략 200억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중에 죽지 않고 살아서 천국에 올라간 사람이 나옵니다.

누구지요? 에녹과 엘리야 딱 두 사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200억 명 중에 2명만이 안 죽었으니 모든 사람들은 한번은 죽는다는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도 100억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안 죽을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아- 물론 예수님이 공중재림을 하시는 날에는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죽지 않고 살아서 천국에 올라갈 것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강력한 희망사항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 때에 공중재림을 하시지 않으면 저와 여러분들도 결국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의 죽음을 보면서, 혹은 나이가 들고 늙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성경 역사를 보거나 세상의 역사를 보면 그렇게 위대한 사람들도 다 죽었습니다.

어찌 보면 내가 죽는 것도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구약 합쳐서 총 10번이 나오는데 성경 순서대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① 엘리야 시대 때의 사르밧 과부의 아들(왕상17:17-24)

② 엘리사 시대 때의 수넴 여인의 아들(왕하4:17-37)

③ 장례식 때의 시신이 죽은 엘리사의 뼈에 닫자 살아남(왕하13:20-21)

④ 회당장 야이로의 딸(막5:35-43)

⑤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1-17)

⑥ 나사로(요11:1-44)

⑦ 예수님

⑧ 예수님 부활시에 예루살렘의 많은 성도들(마27:50-53)

⑨ 욥바의 과부 다비다(행9:36-43)

⑩ 바울의 설교 시에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행20-7-12)

이들 중에 예수님과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부활의 몸을 입고 살아났지만, 나머지 8명의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는 했지만 결국 얼마 후 또다시 죽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죽는다’는 것에 대하여 또 다른 표현으로 이런 말들을 쓰고 있습니다.

첫째, ‘돌아간다’ 즉 사람의 육체는 흙(먼지)에서 왔기에 흙(먼지)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둘째, ‘옷을 갈아입는다’ 죽음은 육체의 낡은 가죽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장막집이 무너진다’ 우리의 육체라는 집은 언젠가 무너져서 더 이상 내 영혼이 육체의 집에서 살지 못하게 되므로 천국의 예비된 집으로 이사를 가야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넷째, ‘잠을 잔다’는 표현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한 소녀의 죽음을 가리켜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도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라고 하셨고(요11:12), 군중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 스데반 집사님의 죽음을 가리켜 “저가 자니라.”(행7:60)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부활에 대해 언급을 하면서 ‘죽은 자들’을 가리켜 ‘자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15:18) 즉 예수님을 믿고 죽은 사람들의 육체(먼지)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부활의 날까지 잠을 자고 있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편안히 쉬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부활의 날에는 잠에서 깨어난다는 겁니다. 마치 ‘잠자는 숲속의 미녀(Sleeping Beauty)’가 왕자님이 나타나 사랑의 키스로 깨어나듯이 그렇게 잠에서 깨어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너무나 멋있는 왕자님과 잠에서 깨어난 공주가 딴딴따다-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즉 우리가 죽음의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때 우리의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나의 신부야, 이제 그만 잠에서 일어나라. 나와 함께 가자.”고 말씀하시는 그날이 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고 거기서 7년간 혼인잔치를 하게 됩니다. 일명 ‘어린 양의 혼인잔치’이고, 우리들이 그 예비된 아름다운 신부들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각자 반응하는 것이 다를 수 있을 겁니다. 불신자들은 “아- 그건 어느 종교에서나 다 내세관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종교에서도 나름대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것에 속아서 만날 교회에 다니고, 교회에다가 헌금을 바치면 바보요, 사기를 당하는 것이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분들 가운데에서도 옛날에 이렇게 생각하신 분들도 꽤 있었을 겁니다.

물론 저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현실도피적인 사람들이고, 좀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들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목사님이 되어서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다니 참으로 신기할 뿐입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는군요.”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태어나서 산다는 것은 결국 죽음의 골인지점을 향하여 나아가는 경주로 비교되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골인지점이 날마다 더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기분이 어떻습니까? 어떤 분은 “아- 이제 피곤하고 힘드니 빨리 골인지점에 도착해서 좀 쉬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테고요.

어떤 분들은 “어라- 벌써 죽음의 골인지점이 가까이 다가왔네.” 하고 좀 당황스럽게 느껴지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불신자들 중에는 “뭐야? 이제 나도 죽는 거야? 싫어. 죽기 싫단 말이야.” 하고 두려워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느 쪽입니까? 크리스천이 되었으니 적어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너무 당황하지도 마십시오.

오히려 그 날에 골인지점에 도착하면 먼저 하늘나라에 간 성도들과 천사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고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는 영광의 자리가 나에게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딤후4:6-8)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각자 인생의 골인지점에 도착하면, 즉 죽게 되면 나의 영혼은 즉시 천국에 올라가 사랑하는 예수님으로부터 따듯한 포옹과 함께 나를 위해 예비된 면류관과 상을 받게 됩니다. 반면 우리들의 육체는 주님이 말씀하신 이 땅에서 흙과 먼지가 되어 부활의 그때까지 잠을 자게 됩니다.

아주 깨어나지 못하는 절망의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그날 그 시간에 반드시 깨어나는 소망의 잠을 자게 됩니다. 그리고 부활의 그때에는 다시는 아프거나 병들지 않는 몸, 추위와 더위를 이기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 죄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영화로운 부활의 몸을 입고 깨어나게 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슈퍼맨보다 더 멋있는 몸으로 부활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부활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번째 열매요, 두 번째 부활의 열매는 예수님의 부활 시에 예루살렘의 죽은 많은 성도들이요. 세 번째 부활의 열매는 장차 예수님의 공중재림 시에 그 동안 주님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이요. 네 번째 부활의 열매는 장차 예수님의 지상재림 시에 7년 환난 중에 믿음을 지키며 주 안에서 죽은 사람들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2-24)

한국 속담에 보면 ‘냉수도 순서가 있다.“라는 말처럼 부활에도 엄연히 순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요, 그리고 순서가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의 순서가 올 동안 순번표를 받고 좀 자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아- 물론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구약 시대 사람들은 6천 년간을 기다렸고, 신약시대 초대교회 성도들도 2천 년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물론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분들은 기다리는 것에 매우 취약합니다. 기다리다 지쳐서 그만 돌아버릴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 캐나다에서 살면서 그동안 배운 것이 있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여기는 마냥 기다리는 동네입니다. 다들 그런 경험은 몇 번 쯤은 있을 겁니다.

제가 여기 캐나다 와서 얼마 안 되었는데 당시 유치부였던 제 딸이 밤중에 많이 아프다고 합니다. 급히 응급실에 갔습니다. 근데 2시간을 기다리다 지쳐서 결국 간호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그냥 갈게요.” 그러자 간호사가 대답합니다. “응- 그래. 가라. 아프면 다시 오고...” “에이- 다시는 안 온다.”

여러분, 병원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여기 캐나다에 와서 이민국이나 CRA(Canada Revenue Agency)에 용무가 있는 경우, 대개 그런 일들은 굉장히 중요하고 급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아- 이 양반들이 마냥 기다리게 합니다. 매우 답답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결국은 그들로부터 연락이 오고, 순서가 되면 서비스를 해줍니다. 하물며 신실하신 하나님이 왜 약속을 지키지 않겠습니까? 조금만 더 참으면 결국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순서가 다가오고, 그 순서대로 찬란한 부활도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고 가장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 중에 하나는 잠을 푹- 자는 겁니다.

여기 캐나다에서 한국에 갈 때에 12시간 정도를 비행기 타고 가야하는데 가장 쉽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뭐지요? 예- 잠을 푹- 자는 겁니다. 그리고 한참 자고 상쾌하게 일어났는데 “손님 여러분,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하면 그때 깨어 일어나면서 ‘룰루랄라- 할렐루야’ 하면 됩니다.

우리는 편안히 잠을 자는 사람을 바라보며 통곡을 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잠자는 사람은 잠시 후에 깨어나면서 “아- 잘났다.” 하고 다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즉 죽음을 잠으로 비유하는 것은 죽음은 완전한 이별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죽음을 잠으로 비교하는 것은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는 겁니다. 도리어 곤히 잠을 자는 것처럼 매우 평안한 상태라는 겁니다.

혹 어떤 분은 죽은 사람의 시신이 6000년이 지나서 썩고 또 썩어 이제는 사람의 눈에도 전혀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가 되어서 공기 중에 섞여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이 과연 부활의 몸으로 깨울 수 있겠느냐고 의심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살전4:13-15)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17-18, 20) 아멘!

저의 집에 데스크톱 컴퓨터가 하나 있습니다. 그 컴퓨터는 너무 오래되어 완전히 끄고 다시 시작하려면 잘 켜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아주 끄지 않고 수면모드로 해둡니다. 그러면 일단 화면이 새까매집니다. 마치 죽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우스를 한번 툭- 치면 다시 컴퓨터가 잠에서 깨어나서 바로 움직이고 작동을 합니다.

우리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는 것, 즉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사람에게나 어렵지, 하나님에게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마우스를 한번 툭- 치면 잠자는 컴퓨터가 다시 윙- 하고 소리를 내며 살아나듯이, 하나님도 잠자는 사람들을 능력의 손으로 툭- 치시든지, 아니면 “잠자는 자들아. 이제 그만 일어나라.” 하고 명령어를 한 마디 하시면 즉시 다 살아납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사람들은 가끔 착각을 합니다. 자기가 보기에, 인간이 보기에, 현재의 과학이 보기에 어렵고 못할 것 같으면, 하나님도 어렵고 못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못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쉽게 하실 수 있습니다. 고로 잠자는 자들이 다시 부활의 몸으로 살아나는 것을 절대로 의심하지 마십시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를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거기에는 이미 오래 전에 죽어서 아주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묻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때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내가 생기로 이 뼈들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이런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그 마른 뼈들이 서로 움직이어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지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그리고 사방에서 생기가 불어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살아났습니다. 보니까 매우 큰 무리요, 아주 큰 군대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도 말씀합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37:13)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5)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을 완성해놓으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어렵고, 때로는 죽을 지경이 되고, 혹은 진짜 죽기도 하지만, 뭐- 죽어도 괜찮습니다. 잠시 잠을 자다가 주님이 깨우러 오실 때 “아- 잘 잤다.” 하고 일어나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는 예수님처럼 찬란한 부활의 몸을 입고 일어납니다.

고로 희망 중에 거하십시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최후의 승리자가 된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도 부활로 말미암아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활의 몸을 입고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작은 왕으로서 장차 다가올 세상을 다스리며 영원히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이러한 꿈과 행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영원히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부활의 소식을 통하여 때로는 어려운 중에 낙심하고 힘들어하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그 부활의 능력이 지금 이 외국 땅에서 고난 속에 힘들어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임하여서 큰 위로와 함께 기쁨을 회복시켜주시옵소서. 또 다시 승리를 외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