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차원의 기쁨

날짜: 
2008/05/25
설교: 

눅10:17-20 4 차원의 기쁨
예수님은 12 명의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역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70 명의 제자들을 더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12명의 제자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는데 70명의 제자들은 한 명도 그 이름을 알 수가 없습니다. 철저히 그 이름이 숨겨져 있습니다. 외경에도 없습니다. 역사 문헌에도 없습니다. 성경의 뒷이야기인 미드라쉬에도 없습니다. 그 어디에도 70명의 이름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70명이 같이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예수님에게 기뻐서 보고하였습니다.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님이 이들 70인의 보고를 받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70명의 제자들이 돌아와서 매우 기뻐하며 자신의 행한 일들을 보고하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 기쁜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한 더 큰 기쁨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같이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이 말씀한 그 기쁨이 우리들에게도 충만하여 이 외국 땅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1. 1 차원의 기쁨
이 기쁨은 세상 사람들이 세상 조건을 가지고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나 위치가 위로 올라가야 기뻐합니다. 돈이 많아야 기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아야 기뻐하고 즐거워야 기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잘되고 형통해야 기뻐합니다. 철저히 조건적인 기쁨입니다.
성경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마소스’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카라’라는 말입니다. 마소스는 세상적인 기쁨을 의미합니다. 술을 먹어서 기쁩니다. 돈을 벌어서 기쁩니다. 출세하고 명예를 얻고 나니 기쁩니다. 이런 조건적인 기쁨을 ‘마소스’라고 합니다.
이런 기쁨은 그 조건이 사라지면 기쁨도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돈을 벌어서 기뻤는데 그 돈이 없어지면 슬퍼지고 마는 것입니다. 술을 먹어서 기쁘다면 술에서 깨어나고 나면 다시 원상 복귀된다는 말입니다. 명예가 있어서 기뻤는데 그 명예를 잃으면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기쁨은 일차원적인 마소스 기쁨입니다.
2. 2 차원의 기쁨
이 기쁨은 세상적이고 조건적인 마소스 기쁨이 아닌 ‘카라’ 기쁨입니다. 카라 기쁨은 세상적인 조건이 없는 기쁨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문득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지갑을 꺼내니까 5천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고파 쓰러진 거지가 앞에 보였습니다. 그는 5천원으로 거지에게 밥을 사주었습니다. 맛있게 밥을 먹는 거지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배가 고파도 기뻐합니다. 이것이 카라 기쁨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피곤에 지쳐서 전철을 탔습니다. 마침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주여, 감사합니다.” 하며 자리에 털썩 앉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그 전철에 노약자가 올라탔습니다. 그는 그 노약자에게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물론 자신도 매우 피곤하였지만 상대방이 고마워하고 편안해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놓고 행복을 느끼는 기쁨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만들어 놓고 기쁨을 느끼는 기쁨입니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여 놓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평안하게 만들어 놓고 느끼는 기쁨입니다. 이곳 외국 땅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이런 선한 일을 하므로 얻는 카라 기쁨이 함께 하시기를 가원합니다.
3. 3차원의 기쁨
이 기쁨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얻는 기쁨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70명의 제자들이 가진 기쁨입니다. 이들은 3차원의 기쁨을 가지고 예수님께 돌아 왔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그 기쁨을 알아보면 이렇습니다.
(1) 전도하는 기쁨입니다.
70명의 제자들은 전도하고 돌아오면서 기뻐서 예수님에게 보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중에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일은 전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제일 좋아 하는 일을 하고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즐거워하는 일을 하고 돌아오면서 기뻐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지역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기쁨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이런 기쁨이 있기에 각종 어려움과 핍박과 곤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마치 자기의 사랑하는 어린 아기를 기르는 어머니가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고통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겁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사랑하며 고통을 받는 것도 우리에게는 기쁨이 됩니다. 고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악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라.”(고후12:10)
(2) 함께 일하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70인의 제자들은 한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혼자서 외롭게 일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만 있으면 다같이 하나가 되어 일하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효과도 더욱 좋습니다.
우리는 여기 캐나다에서 종종 새들이 줄을 맞춰 함께 날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게 새들이 함께 날아가면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70%나 더 멀리 날아갈 수가 있습니다. 앞에 가는 리더가 세찬 공기와 바람을 갈라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로 날아가기 좋게 바람과 공기를 함께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즉 합력하여 일하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함께 예수님의 일을 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합력하여 일하면서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혼자 하면 그 기쁨이 오래가지 못하고 효과가 크지 않아도 합력하여 신앙생활을 하면 기쁨도 나누고 효과도 극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모세는 매우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혼자 일하려고 하자 도저히 벅차고 스트레스가 쌓여만 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의 장인 이드로를 통하여 합력하여 일하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같이 감당할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세워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교통체증과 같이 짜증나는 문제들도 신속히 해소되었고, 모세의 짐도 덜고 스트레스도 풀어졌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일하는 기쁨을 얻은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70인의 제자들도 함께 일하는 기쁨을 가졌습니다. 저희 교회 성도님들도 함께 일하는 기쁨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자기가 속한 제 1 남선교회, 제 2 남선교회, 제 1 여선교회, 제 2 여선교회, 제 1 청년유학생회, 제 2 청년유학생회, 고등부, 중등부, 초등부, 유치부, 영아부, 성가대 등 각 공동체 안에서 서로 합력하여 일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영적 승리의 기쁨입니다.
70인은 말했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70인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러자 귀신들이 항복하였습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고, 귀신이 떠나가고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영적 승리의 기쁨입니다. 이렇게 70명의 제자들은 전도하는 기쁨, 한께 일하는 기쁨, 영적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며 예수님에게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4. 4차원의 기쁨
예수님은 70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17-20)
70인의 제자들은 전도하므로 기쁘고, 함께 일하므로 기쁘고, 귀신들이 항복하므로 기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시므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하시면서 제자들이 누려야할 보다 진정한 기쁨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오늘의 본문에는 70명의 제자들의 이름이 일일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70명의 제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하늘에 기록해 놓았다고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구원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도 기쁘지만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하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것은 최고의 기쁨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만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즉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구원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도 구원의 기쁨을 충만하게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의미는
(2) 하늘에 상급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 사람에게 상을 주시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우리는 누구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잠시 후면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세상의 기쁨은 모두 없어지고 맙니다. 하늘에 올라가서는 하늘의 기쁨, 영원한 기쁨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바로 이러한 하늘의 기쁨, 영원한 기쁨, 최고의 기쁨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영원한 기쁨, 최고의 기쁨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고,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기쁨을 얻기 위해 살도록 권면하시고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승화되어야 합니다. 일차원적인 기쁨에 머무르지 말고, 이차원적 기쁨, 삼차원적 기쁨, 그리고 영원한 최고의 기쁨인 사차원적인 기쁨에 도달하시므로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크고도 영원한 기쁨의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