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소식
24.11.18
24.09.16
24.08.04
24.08.04
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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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펠 저널
컴퓨터란 무엇인가?(1)
최희용(제2남선교회)
컴퓨터란 사용자가 원하는 자료 또는 정보에 대해 일련의 계획된 조작 처리를 수행함으로써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전자식 기계조직체를 말합니다. 컴퓨터의 구성 및 기능
1)하드웨어 (H/W ; Hard Ware)하드웨어란 컴퓨터를 구성하고 있는 기기 그 자체를 말하며 전자 회로와 기계적인 장치로 구성되며, 우리 인간에 비유한다면 육체에 해당 합니다.
① 입력장치 (Input Unit)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하여 데이터를 컴퓨터 내부로 읽어 들이는 장치를 말합니다.
② 제어장치 (Control Unit)기억 장치로부터 프로그램의 명령을 차례로 읽어서 이를 해독하고 그 명령에 따라 제어 신호를 만들어서 각 장치에 전달해 주며, 각 장치의 동작을 제어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③ 기억장치 (Memory Unit)입/출력되는 데이터, 중간 결과 등 처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보관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 주기억장치 컴퓨터에 관련된 정보를 저장하며 읽기는 가능하나 쓰기는 불가능한 ROM과 읽기/쓰기가 모두 가능한RAM을 말합니다.
▶ ROM (Read Only Memory) 롬은 말 그대로, 읽는 것만 가능한 기억장치이며,언제나 변함없는 그리고 컴퓨터의 생명과 직결되는 내용을 저장해 둡니다.
▶ RAM(Random Access Memory)램은 읽고 쓰기가 모두 가능 하며, 컴퓨터 부팅 시 필요한 시스템 파일이 여기에 옮겨와 있으며 우리가 작업한 내용도 디스크에 옮기기 전까지는 여기에 담겨 있게 됩니다. 램은 휘발성이라서 전원을 내리면 가지고 있던 모든 정보를 잃게 됩니다.
※ CACHE RAM빠른 중앙처리장치와 상대적으로 느린 RAM 사이에 자료나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공간이 필요 합니다. 이런 고속의 기억장치를 캐쉬 램이라고 합니다.
※ SHADOW RAM롬에 저장되어 있는 ROM-BIOS 코드를 옮겨 놓는 기억장치를 말합니다.실행 속도 면에서 롬보다 램이 많이 빠르기 때문에,자주 참조하게 되는 롬바이오스 코드를 옮겨 놓는 것이 유리합니다.쉐도우 램은 별다른 장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RAM의 일부를 사용합니다.
㉯ 보조기억장치디스크(DISK)등과 같이 컴퓨터 사용에 필요한 정보들을 물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말합니다.
④ 연산장치 (Arithmetic Unit)사칙연산 즉 덧셈,뺄셈,곱셈,나눗셈 등의 계산과 자리올림, 편집, 논리연산 등을 실행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⑤ 출력장치 (Output Unit)컴퓨터 내부의 연산,제어,기억장치로부터 지시,처리,기억되어 있는 내용을출력 매체를 통해 외부로 음성,문자,기호,그림 등으로 표현해 주는 장치를 말합니다.
최희용(제2남선교회)
컴퓨터란 사용자가 원하는 자료 또는 정보에 대해 일련의 계획된 조작 처리를 수행함으로써 사용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전자식 기계조직체를 말합니다. 컴퓨터의 구성 및 기능
1)하드웨어 (H/W ; Hard Ware)하드웨어란 컴퓨터를 구성하고 있는 기기 그 자체를 말하며 전자 회로와 기계적인 장치로 구성되며, 우리 인간에 비유한다면 육체에 해당 합니다.
① 입력장치 (Input Unit)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하여 데이터를 컴퓨터 내부로 읽어 들이는 장치를 말합니다.
② 제어장치 (Control Unit)기억 장치로부터 프로그램의 명령을 차례로 읽어서 이를 해독하고 그 명령에 따라 제어 신호를 만들어서 각 장치에 전달해 주며, 각 장치의 동작을 제어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③ 기억장치 (Memory Unit)입/출력되는 데이터, 중간 결과 등 처리에 필요한 데이터를 보관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 주기억장치 컴퓨터에 관련된 정보를 저장하며 읽기는 가능하나 쓰기는 불가능한 ROM과 읽기/쓰기가 모두 가능한RAM을 말합니다.
▶ ROM (Read Only Memory) 롬은 말 그대로, 읽는 것만 가능한 기억장치이며,언제나 변함없는 그리고 컴퓨터의 생명과 직결되는 내용을 저장해 둡니다.
▶ RAM(Random Access Memory)램은 읽고 쓰기가 모두 가능 하며, 컴퓨터 부팅 시 필요한 시스템 파일이 여기에 옮겨와 있으며 우리가 작업한 내용도 디스크에 옮기기 전까지는 여기에 담겨 있게 됩니다. 램은 휘발성이라서 전원을 내리면 가지고 있던 모든 정보를 잃게 됩니다.
※ CACHE RAM빠른 중앙처리장치와 상대적으로 느린 RAM 사이에 자료나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공간이 필요 합니다. 이런 고속의 기억장치를 캐쉬 램이라고 합니다.
※ SHADOW RAM롬에 저장되어 있는 ROM-BIOS 코드를 옮겨 놓는 기억장치를 말합니다.실행 속도 면에서 롬보다 램이 많이 빠르기 때문에,자주 참조하게 되는 롬바이오스 코드를 옮겨 놓는 것이 유리합니다.쉐도우 램은 별다른 장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RAM의 일부를 사용합니다.
㉯ 보조기억장치디스크(DISK)등과 같이 컴퓨터 사용에 필요한 정보들을 물리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장치들을 말합니다.
④ 연산장치 (Arithmetic Unit)사칙연산 즉 덧셈,뺄셈,곱셈,나눗셈 등의 계산과 자리올림, 편집, 논리연산 등을 실행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⑤ 출력장치 (Output Unit)컴퓨터 내부의 연산,제어,기억장치로부터 지시,처리,기억되어 있는 내용을출력 매체를 통해 외부로 음성,문자,기호,그림 등으로 표현해 주는 장치를 말합니다.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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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보고 싶다” 조준녕(제4남선교회)
사랑하는 나의 아내 은진 그리고 민주 진주 희준에게 오늘이 3월하고도 8일이구나. 거긴 9일 이겠고. 한국엔 벌써 봄이 시작 되고 있겠지? 여기도 봄이 시작 되긴 한 것 같은데… 아직 추울 땐 많이 춥다.어제도 눈이 왔고 바람은 또 얼마나 불었나 몰라. 화상전화도 자주 하긴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으니 참 맘이 아프다.
함께 산다는 것은 소중
한국에서도 떨어져 지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랑은 확실히 다르네.함께 피부를 맞대고 산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머나먼 이국 땅 이곳 캐나다에 온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형님가족들이 캐나다로 가고 “우리도 캐나다 가서 살자” 라는 말에 처음엔 “그래” 그랬지. 말은 안 했지만 “내가 설마… 정말 캐나다에 가게 될까?”라는 생각도 항상 했던 게 사실이야.영어도 못하고 도움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형님가족에게 짐만 된다고 생각하니 진짜 가기 싫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부담이 더 컸던 것 같애. 지금이야 형님과 처형이 워낙 잘 해 주시니 편하게 잘 있지.뭐 우여곡절 끝에 여기 Calgary까지 오긴 왔지만 웬만하면 6개월 받는다는 visa도 한달 밖에 못 받고 정말 밴쿠버 이민국에 잡혔을 땐…“아…결국 입국도 못하고 한국으로 다시 가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암튼 한달이든 6개월이든 들어오긴 왔다. visa를 한달 받은 덕에 형님이 더 힘들어 졌지. 오자마자 visa 연기 신청하고 신체 검사하고… 내 일자리도 형님이 봐주시고, 가족이 많아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은데 죄송스럽다.
중대 기로에 놓여
지금 한국에 경기가 많이 안 좋지? 전에 일하던 공장장님이랑 전화하면 옛날 IMF때보다 더 하다고 하던데… 세계적으로 경제공황이다 보니 여기 Calgary도 좋지는 않아. 여기 교회에서 알게 된 분들도 일이 없어서 쉬고 계신 분이 많데. 지난주까지 일하셨던 우리형님도 이번 돌아오는 주엔 일이 없다고 하시네.원래 여긴 겨울에 대체로 일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는 걱정이 많이 된다. 내가 과연 일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지…또 조금 벌든 많이 벌든 계속 꾸준히 일이 있어야 될 텐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야. 우리 다섯 식구 먹여 살려야 하는데…금전적인 사정이야 항상 좋지 않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결혼하고 처음 살림 차렸을 때 돈이 없어서 금전적으로 시달렸던 그 때가 다시 돌아올 것 같아 걱정이다.지금 중대한 선택에 기로에 놓여있어. 뭐 중대한 선택이 이번 뿐만은 아니었지만…아직 LMO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혹시 다른 데에 LMO 진행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셨거든. 일이 너무 들쭉 날쭉하니…사실 누나도 다른 곳에도 이력서 내보라고 하더라고. 일단 LMO가 시급하다고… 어떻게 해야 하지? 그제 철야예배에서, 그리고 오늘 주일 예배에서 내 직업의 문제를 놓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더 큰 행복을 위해
“캐나다가면 신앙생활 안하고 내 맘대로 살 거야” 라고 했던 내가 지금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웃기지?신앙생활 똑바로 안 하던 내게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라도 잘 하라고 벌주시나 보다. 한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도 많이 들어왔고 나도 그렇다라고 생각했던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로서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라는 말을 요즘 와서 또 절실히 느끼고 있어.많은 분들이 하나님께 매달리는걸 보면서 내 자신에게 큰 도전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은 정말 힘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문득 나라는 인간에게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길이 있을까? 란 생각을 해봤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비전이 있을지 있다면 어떤 것 인지 그리고 하나님 일에 어떻게 쓰실지도 궁금하고…열심히 노력할 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봐야지.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께. 우리 가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할 께.일단 남편을 믿고 기다려줘. 지금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게 나중에 더 좋은 더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자. 사랑한다. 은진아 민주야 진주야 희준아…보고 싶다. 많이. 또 편지 할 께 ^^
2009. 3. 8. 준녕이가
사랑하는 나의 아내 은진 그리고 민주 진주 희준에게 오늘이 3월하고도 8일이구나. 거긴 9일 이겠고. 한국엔 벌써 봄이 시작 되고 있겠지? 여기도 봄이 시작 되긴 한 것 같은데… 아직 추울 땐 많이 춥다.어제도 눈이 왔고 바람은 또 얼마나 불었나 몰라. 화상전화도 자주 하긴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으니 참 맘이 아프다.
함께 산다는 것은 소중
한국에서도 떨어져 지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때랑은 확실히 다르네.함께 피부를 맞대고 산다는 것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내가 머나먼 이국 땅 이곳 캐나다에 온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형님가족들이 캐나다로 가고 “우리도 캐나다 가서 살자” 라는 말에 처음엔 “그래” 그랬지. 말은 안 했지만 “내가 설마… 정말 캐나다에 가게 될까?”라는 생각도 항상 했던 게 사실이야.영어도 못하고 도움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이 형님가족에게 짐만 된다고 생각하니 진짜 가기 싫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부담이 더 컸던 것 같애. 지금이야 형님과 처형이 워낙 잘 해 주시니 편하게 잘 있지.뭐 우여곡절 끝에 여기 Calgary까지 오긴 왔지만 웬만하면 6개월 받는다는 visa도 한달 밖에 못 받고 정말 밴쿠버 이민국에 잡혔을 땐…“아…결국 입국도 못하고 한국으로 다시 가야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암튼 한달이든 6개월이든 들어오긴 왔다. visa를 한달 받은 덕에 형님이 더 힘들어 졌지. 오자마자 visa 연기 신청하고 신체 검사하고… 내 일자리도 형님이 봐주시고, 가족이 많아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은데 죄송스럽다.
중대 기로에 놓여
지금 한국에 경기가 많이 안 좋지? 전에 일하던 공장장님이랑 전화하면 옛날 IMF때보다 더 하다고 하던데… 세계적으로 경제공황이다 보니 여기 Calgary도 좋지는 않아. 여기 교회에서 알게 된 분들도 일이 없어서 쉬고 계신 분이 많데. 지난주까지 일하셨던 우리형님도 이번 돌아오는 주엔 일이 없다고 하시네.원래 여긴 겨울에 대체로 일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는 걱정이 많이 된다. 내가 과연 일을 해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지…또 조금 벌든 많이 벌든 계속 꾸준히 일이 있어야 될 텐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야. 우리 다섯 식구 먹여 살려야 하는데…금전적인 사정이야 항상 좋지 않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결혼하고 처음 살림 차렸을 때 돈이 없어서 금전적으로 시달렸던 그 때가 다시 돌아올 것 같아 걱정이다.지금 중대한 선택에 기로에 놓여있어. 뭐 중대한 선택이 이번 뿐만은 아니었지만…아직 LMO가 진행되지 않았기에 혹시 다른 데에 LMO 진행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셨거든. 일이 너무 들쭉 날쭉하니…사실 누나도 다른 곳에도 이력서 내보라고 하더라고. 일단 LMO가 시급하다고… 어떻게 해야 하지? 그제 철야예배에서, 그리고 오늘 주일 예배에서 내 직업의 문제를 놓고 정말 열심히 기도했다.
더 큰 행복을 위해
“캐나다가면 신앙생활 안하고 내 맘대로 살 거야” 라고 했던 내가 지금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웃기지?신앙생활 똑바로 안 하던 내게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라도 잘 하라고 벌주시나 보다. 한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한국에 있을 때도 많이 들어왔고 나도 그렇다라고 생각했던 “기도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로서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 라는 말을 요즘 와서 또 절실히 느끼고 있어.많은 분들이 하나님께 매달리는걸 보면서 내 자신에게 큰 도전이 되기도 한다. 우리들은 정말 힘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구나 라는 걸 느끼게 해.문득 나라는 인간에게도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길이 있을까? 란 생각을 해봤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비전이 있을지 있다면 어떤 것 인지 그리고 하나님 일에 어떻게 쓰실지도 궁금하고…열심히 노력할 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봐야지.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께. 우리 가족을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할 께.일단 남편을 믿고 기다려줘. 지금 이렇게 떨어져 있는 게 나중에 더 좋은 더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자. 사랑한다. 은진아 민주야 진주야 희준아…보고 싶다. 많이. 또 편지 할 께 ^^
2009. 3. 8. 준녕이가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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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과 성경
조슈아 리(제1남선교회)
우주에서 태양보다 질량이 최소 10배 이상, 최대 100만 배 내지는 10억 배까지 되는 거대한 별이 노화(?)되어 에너지원을 잃고서 초신성의 폭발을 하게 되면 그 중심부의 물질은 짓눌리고 찌부러지게 된다. 이때 수축이 아무리 진행되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압력이 존재하지를 않아서 한없이 작아져 그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 보이지 않는 `블랙홀`이 되고 만다. `블랙홀`은 이미 1930년대에 슈바르트 실트에 의해 그 존재가 예견된 바 있으며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블랙홀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블랙홀`은 자체의 중력이 너무나 강해서 초속 30만 km 로 이동하는 빛조차도 중력에 붙잡혀서 그 표면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게 되며, 그 옆을 지나는 아무리 큰 질량을 가진 별이라고 할지라도 빛과 함께 모두 빨아들이고 한번 빨려 든 물질은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다. 무시무시한 우주의 함정인 셈이다 2001년 10월에 미 항공우주국(NASA)의 천문관측 위성 ‘샨드라(Chandra)’가 은하의 중심에 존재하는 블랙홀이 별과 기체 등을 ‘먹어 치우는’ 장면을 포착했다. 2002년 6월에는 우주공간에서 초고속으로 자전하고 있는 블랙홀이 NASA 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관측되어 아인슈타인의 이론(일반상대성이론)이 또다시 입증되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성경은 이에 관해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BC 8 세기경 이사야 선지자는 역사의 종말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사 34:4) 신약시대에 이르러 베드로 사도는 종말적 심판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0)" 즉 첫 번째 심판 때에는 땅의 심판이었지만 두 번째 심판 때에는 땅뿐만 아니라 하늘 전체(우주)가 사라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주의 모든 천체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리는 모습을 두루마리 종이가 빨려 들어가는(올라가는) 모습으로 표현하였으니 이 얼마나 영감에 찬 계시냐! 베드로 사도는 이 모습을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간다고 했는데 이는 어마어마하게 질량이 무거운 물체(별)들이 무지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내는 거대한 소리를 뜻하고 있겠다. 게다가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라 함은 거대한 에너지원인 별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발산(방출)하는 에너지가 바로 열(불)로 나타나게 됨을 뜻하고 있겠으니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어디 있으랴! 필자는 모든 말씀을 사모하지만 계시록의 말씀을 특히 사모하고 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계 21:5)' 이 말씀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약속되어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다 두고 살 것인가? 잠시 잠깐 눈에 허상으로 보이다가 사라지고 없어져 버릴 땅의 것들에 두지 말고 영원한 것들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땅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슈아 리(제1남선교회)
우주에서 태양보다 질량이 최소 10배 이상, 최대 100만 배 내지는 10억 배까지 되는 거대한 별이 노화(?)되어 에너지원을 잃고서 초신성의 폭발을 하게 되면 그 중심부의 물질은 짓눌리고 찌부러지게 된다. 이때 수축이 아무리 진행되어도 이를 막을 수 있는 압력이 존재하지를 않아서 한없이 작아져 그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마침내 보이지 않는 `블랙홀`이 되고 만다. `블랙홀`은 이미 1930년대에 슈바르트 실트에 의해 그 존재가 예견된 바 있으며 아인슈타인은 유명한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블랙홀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블랙홀`은 자체의 중력이 너무나 강해서 초속 30만 km 로 이동하는 빛조차도 중력에 붙잡혀서 그 표면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게 되며, 그 옆을 지나는 아무리 큰 질량을 가진 별이라고 할지라도 빛과 함께 모두 빨아들이고 한번 빨려 든 물질은 다시는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된다. 무시무시한 우주의 함정인 셈이다 2001년 10월에 미 항공우주국(NASA)의 천문관측 위성 ‘샨드라(Chandra)’가 은하의 중심에 존재하는 블랙홀이 별과 기체 등을 ‘먹어 치우는’ 장면을 포착했다. 2002년 6월에는 우주공간에서 초고속으로 자전하고 있는 블랙홀이 NASA 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관측되어 아인슈타인의 이론(일반상대성이론)이 또다시 입증되었다고 보도된 바 있다. 성경은 이에 관해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BC 8 세기경 이사야 선지자는 역사의 종말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사 34:4) 신약시대에 이르러 베드로 사도는 종말적 심판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0)" 즉 첫 번째 심판 때에는 땅의 심판이었지만 두 번째 심판 때에는 땅뿐만 아니라 하늘 전체(우주)가 사라지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주의 모든 천체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리는 모습을 두루마리 종이가 빨려 들어가는(올라가는) 모습으로 표현하였으니 이 얼마나 영감에 찬 계시냐! 베드로 사도는 이 모습을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간다고 했는데 이는 어마어마하게 질량이 무거운 물체(별)들이 무지무지하게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내는 거대한 소리를 뜻하고 있겠다. 게다가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라 함은 거대한 에너지원인 별들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발산(방출)하는 에너지가 바로 열(불)로 나타나게 됨을 뜻하고 있겠으니 이보다 더 적확한 표현이 어디 있으랴! 필자는 모든 말씀을 사모하지만 계시록의 말씀을 특히 사모하고 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리라 (계 21:5)' 이 말씀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가 약속되어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다 두고 살 것인가? 잠시 잠깐 눈에 허상으로 보이다가 사라지고 없어져 버릴 땅의 것들에 두지 말고 영원한 것들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땅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더하여 주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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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함을 지피는 화목(火木)이 될 터 김원효 목사 (캘거리순복음중앙교회)
우리가 사는 캘거리라는 동네는 세계의 도시들에 비해서 그리 큰 동네가 아니다. 캐나다에서도 토론토나 밴쿠버나 비하면 분명히 시골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록키산맥으로 인해 내륙 쪽으로 위치하다 보니 북미의 동부와 서부 대도시들과 단절된 느낌이 든다. 이곳 시골 동네에서 12년째 살다 보니 어느덧 나도 시골 사람이 된 느낌이다. 같은 캘거리 시골 동네에 사는 분이 이야기 중에 이렇게 말을 한다. "그래요. 여기 캘거리는 한국 시골의 리(동네 단위) 정도 같아요. 이름도 캘거리(리)잖아요." 더구나 캘거리의 겨울은 한국에 비해 유난히 길다. 눈도 많이 온다. 추위도 제법이다. 이런 겨울을 여러 해 맞이하다 보니 마치 한국의 춥고 눈 많이 오는 강원도 산간 지방에 갇혀 있는 느낌도 든다. 그러기에 따스함이 그립다. 한국의 온돌방에서 몸을 지지고 싶다. 찜질방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이전에 기도하던 삼각산에도 올라가서 "주여-!" 하고 또 다시 외치고 싶다. 아- 이것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가? 그러나 이곳 캘거리는 제법 살만한 동네다. 여름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환상적이다. 끊임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오염되지 않는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밤에는 별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 살면서 참으로 감사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캘거리의 한인 사회가 화목하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고 말씀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쓰러뜨리는 일들을 보게 된다. 만약 그런 일들이 외국 땅, 시골 동네, 캘거리에서 일어난다면 누구나 이 동네에서 살기가 싫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다. 캘거리는 화목이 있기에 살만한 동네이다. 그리고 계속 이러한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아끼며 살고 싶다.. 그래서 고향 떠난 삶에 보상이라도 받고 싶다. 한국 사람들에게 "나도 이곳 시골 동네에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고 떳떳이 말하고 싶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곳 캘거리 한인 사회의 화목을 지켜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한인회와 노인회, 교역자 협의회, 그리고 여러 단체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화목을 이루어가고 있다. 참으로 성숙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모습이다. 오늘 우리는 조그만 글들의 모임을 통하여 캘거리의 이런 화목을 계속 보존하고 싶다. 그리고 펜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 우리의 작은 동네 캘거리를 글로서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본지를 발간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본지가 우리가 사는 작은 동네 캘거리의 따스함을 더하기를 소원한다.
따스함을 지피는 화목(火木)이 될 터 김원효 목사 (캘거리순복음중앙교회)
우리가 사는 캘거리라는 동네는 세계의 도시들에 비해서 그리 큰 동네가 아니다. 캐나다에서도 토론토나 밴쿠버나 비하면 분명히 시골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록키산맥으로 인해 내륙 쪽으로 위치하다 보니 북미의 동부와 서부 대도시들과 단절된 느낌이 든다. 이곳 시골 동네에서 12년째 살다 보니 어느덧 나도 시골 사람이 된 느낌이다. 같은 캘거리 시골 동네에 사는 분이 이야기 중에 이렇게 말을 한다. "그래요. 여기 캘거리는 한국 시골의 리(동네 단위) 정도 같아요. 이름도 캘거리(리)잖아요." 더구나 캘거리의 겨울은 한국에 비해 유난히 길다. 눈도 많이 온다. 추위도 제법이다. 이런 겨울을 여러 해 맞이하다 보니 마치 한국의 춥고 눈 많이 오는 강원도 산간 지방에 갇혀 있는 느낌도 든다. 그러기에 따스함이 그립다. 한국의 온돌방에서 몸을 지지고 싶다. 찜질방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이전에 기도하던 삼각산에도 올라가서 "주여-!" 하고 또 다시 외치고 싶다. 아- 이것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인가? 그러나 이곳 캘거리는 제법 살만한 동네다. 여름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환상적이다. 끊임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오염되지 않는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밤에는 별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 살면서 참으로 감사한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캘거리의 한인 사회가 화목하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고 말씀하고 있다. 때때로 우리는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쓰러뜨리는 일들을 보게 된다. 만약 그런 일들이 외국 땅, 시골 동네, 캘거리에서 일어난다면 누구나 이 동네에서 살기가 싫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감사하다. 캘거리는 화목이 있기에 살만한 동네이다. 그리고 계속 이러한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아끼며 살고 싶다.. 그래서 고향 떠난 삶에 보상이라도 받고 싶다. 한국 사람들에게 "나도 이곳 시골 동네에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고 떳떳이 말하고 싶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곳 캘거리 한인 사회의 화목을 지켜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다. 한인회와 노인회, 교역자 협의회, 그리고 여러 단체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화목을 이루어가고 있다. 참으로 성숙하고, 보기에 아름다운 모습이다. 오늘 우리는 조그만 글들의 모임을 통하여 캘거리의 이런 화목을 계속 보존하고 싶다. 그리고 펜으로 그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 우리의 작은 동네 캘거리를 글로서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싶다.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본지를 발간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본지가 우리가 사는 작은 동네 캘거리의 따스함을 더하기를 소원한다.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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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거둔 수확
백은주(제1여 선교회)
나는 기러기 엄마다. 항상 남들보다 늦게 뭘 하는 나는 지나간 유행이 되 버린 조기유학 붐의 끝을 쫓아 기러기처럼 작년 1월 태평양을 건너, 록키산을 넘어 캘거리로 날아왔다. 1년이 약간 지났다. 처음에 아빠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뭘 먹일 것인가와 어떻게 영어를 빨리 익히게 할 것 인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립심 강해져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은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 아이들이 처음에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아이들은 내가 한국에서도 자신들의 학업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 했던 엄마였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엄마에게 도움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스스로 부딪혀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하다 보니 자립심이 강해졌다. 때로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적도 있고 정서가 캐나다아이들하고 틀려서 고통스러운 일도 많았는데도 잘 버티어나가고 있다. 스스로 자기 발로 서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내 자식들이 얻어낸 가장 큰 수확이다. 여기서 내가 하는 역할은 아이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조언을 해주는 일인데 사람 사는 세상 비슷해서 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한 나의 조언이 큰 위안이 된다고들 한다. 우리 집 방이 세 개인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방에서 오글오글 자는 날들이 훨씬 많다. 애인과 같은 주님 주제는 날 괴롭히는 그 놈을 한방에 때려잡는 싸움의 기술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냐 하는 어려운 주제, 혹은 각자 아이들을 몇 명 낳을 것인지 까지 정말 다양하다. 첫아이와 막내가 여덟 살 나이 차가 나는데 1년을 넘게 이렇게 살다 보니 우리 모두 정신 연령이 비슷하다 마지막 하나님과 우리 가족과 관계이다. 여러 가지 핑계로 한국에서는 주일만 교회에 다니던 내가 그 동안 받은 사랑을 캘거리에서는 보답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성가대도하고 이것저것 교회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님을 예전과 조금 다르게 느끼게 시작했다. 주님이 애인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내 맘대로는 안되는 애인과 연애를 해본 적이 있는가? 내 말을 들고 있는 것 같지도 않는 것 같은 애인. 그런 애인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알면 알수록 신비스럽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떠날 수 없는 애인과 같은 분. 이것이 요즘 내가 느끼는 주님의 모습이다.
백은주(제1여 선교회)
나는 기러기 엄마다. 항상 남들보다 늦게 뭘 하는 나는 지나간 유행이 되 버린 조기유학 붐의 끝을 쫓아 기러기처럼 작년 1월 태평양을 건너, 록키산을 넘어 캘거리로 날아왔다. 1년이 약간 지났다. 처음에 아빠 없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뭘 먹일 것인가와 어떻게 영어를 빨리 익히게 할 것 인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립심 강해져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은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낯선 땅에서 아이들이 처음에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아이들은 내가 한국에서도 자신들의 학업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 했던 엄마였기 때문에 캐나다에서 엄마에게 도움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스스로 부딪혀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하다 보니 자립심이 강해졌다. 때로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적도 있고 정서가 캐나다아이들하고 틀려서 고통스러운 일도 많았는데도 잘 버티어나가고 있다. 스스로 자기 발로 서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내 자식들이 얻어낸 가장 큰 수확이다. 여기서 내가 하는 역할은 아이들의 문제를 들어주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조언을 해주는 일인데 사람 사는 세상 비슷해서 인간적인 문제들에 대한 나의 조언이 큰 위안이 된다고들 한다. 우리 집 방이 세 개인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방에서 오글오글 자는 날들이 훨씬 많다. 애인과 같은 주님 주제는 날 괴롭히는 그 놈을 한방에 때려잡는 싸움의 기술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냐 하는 어려운 주제, 혹은 각자 아이들을 몇 명 낳을 것인지 까지 정말 다양하다. 첫아이와 막내가 여덟 살 나이 차가 나는데 1년을 넘게 이렇게 살다 보니 우리 모두 정신 연령이 비슷하다 마지막 하나님과 우리 가족과 관계이다. 여러 가지 핑계로 한국에서는 주일만 교회에 다니던 내가 그 동안 받은 사랑을 캘거리에서는 보답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성가대도하고 이것저것 교회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님을 예전과 조금 다르게 느끼게 시작했다. 주님이 애인처럼 생각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내 맘대로는 안되는 애인과 연애를 해본 적이 있는가? 내 말을 들고 있는 것 같지도 않는 것 같은 애인. 그런 애인과 연애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알면 알수록 신비스럽고,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떠날 수 없는 애인과 같은 분. 이것이 요즘 내가 느끼는 주님의 모습이다.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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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편지
“북한동족은 하나님 사랑 받아야”
김00선교사
“당신은 조선사람이 조선의 하나님을 믿어야지! 어찌하여 서양 사람들이 믿는 서양사람들의 하나님을 믿소?”“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조선사람의 하나님도 되고 서양사람의 하나님도 되는 모든 세계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람 아직 멀었군 멀었어” 2007년 11월 3일 아침 8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의거하여 김00은 체포되었습니다. 차가운 쇠창살에 갇힌 기간은 모두 85일. 그 길다면 긴 기간 동안 북한당국자들은 저에게 “왜 서양의 하나님을 믿느냐”며 계속 닦달을 해댔습니다.
85일간의 구속
나는 그 나라 헌법이 그렇게 무섭고 공포스러운지 전혀 모르며 10년간 의료사역을 해 왔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참으로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었습니다. 옥살이를 마치고 석방된 나는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08년 1월 26일이었습니다. 11시가 넘었을까? 바쁘게 짐을 싸라고 젊은이들이 재빨리 움직이더니 점심을 먹고 캐나다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왜? 내가 캐나다로 가야 합니까? 여기서 더 살고 싶소. 정 가야 한다면 주일 지나서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나가면 안되겠소? 안됩니다. 위에서 빨리 나가라는 전달이 왔습니다. 선생님 잘 되었지 않습니까? 캐나다에 가면 부인과 자식들이 그리고 노모님이 기다린다고 했잖아요? 그 후 한 시간 만에 나는 쫓겨 나왔습니다. 북한에서 나온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캐나다로 귀가한 후 투병생활을 하는 담임목사님을 대신해 목회를 하다가 담임목사님이 소천하신 후에는 임시당회장으로 후임 담임목사님을 모시는 일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마무리 감당을 잘 했습니다. 남미 에콰도르 단기선교와 인도 뉴델리 미전도 종족 선교대회도 다녀왔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며
안식하는 1년간, 긴 세월이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열심 그 정열 그리고 그 넘치는 사랑 같은 것들! 다 어디로 사라졌는 지 나는 지금 찾아 헤매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회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의 은혜입니다. 이제 남은 힘을 다 하여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며” 다시 태어난 김00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북한에 대해 글로서 기록할 것이 많이 있지만 후일을 생각하며— 좀 더 밝은 조선의 아침이 다가 왔을 때 옛날 이야기처럼 나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것을 접어두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나는 경외하며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대강령이라고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믿습니다. 침묵을 깨고 다시 조선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좀 더 성경적인 사람으로 내 몸을 만들어가면서 마지막 인생을 살기로 다짐을 합니다.북한동족은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그 속에 구원 받을 자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입니까?
한 생명도 포기 않아
우리 모두가 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설사 우리가 포기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한 생명도 포기하지 않으신답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사역에 동참하신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동역자님들의 많은 후원으로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도와 귀한 북한선교헌금으로 후원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갑니다. 북한당국에서 정당한 서류로 초청하지 않는 한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기도제목입니다. 제가 무사히 북한사역지로 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역지에서 수고하시는 두 분의 동역자들에게 강함과 담대함을 주시고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요. 북한이 하나님 아버지를 깊이 깨닫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독교의 진실을 알도록, 북한에 더 많은 식량이 공급되어 동족이 따뜻한 삶을 누리도록, 북한지도자들이 강성대국을 만들기 위하여 좋은 생각과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북한에 많은 사역자들이 섬김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1월 26일 김00 드림
*김00선교사는 지난 3월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 글은 그가 캐나다에 체류하던 중에 쓴 것이다. <편집자 주>
“북한동족은 하나님 사랑 받아야”
김00선교사
“당신은 조선사람이 조선의 하나님을 믿어야지! 어찌하여 서양 사람들이 믿는 서양사람들의 하나님을 믿소?”“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조선사람의 하나님도 되고 서양사람의 하나님도 되는 모든 세계 사람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람 아직 멀었군 멀었어” 2007년 11월 3일 아침 8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에 의거하여 김00은 체포되었습니다. 차가운 쇠창살에 갇힌 기간은 모두 85일. 그 길다면 긴 기간 동안 북한당국자들은 저에게 “왜 서양의 하나님을 믿느냐”며 계속 닦달을 해댔습니다.
85일간의 구속
나는 그 나라 헌법이 그렇게 무섭고 공포스러운지 전혀 모르며 10년간 의료사역을 해 왔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참으로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었습니다. 옥살이를 마치고 석방된 나는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08년 1월 26일이었습니다. 11시가 넘었을까? 바쁘게 짐을 싸라고 젊은이들이 재빨리 움직이더니 점심을 먹고 캐나다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왜? 내가 캐나다로 가야 합니까? 여기서 더 살고 싶소. 정 가야 한다면 주일 지나서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나가면 안되겠소? 안됩니다. 위에서 빨리 나가라는 전달이 왔습니다. 선생님 잘 되었지 않습니까? 캐나다에 가면 부인과 자식들이 그리고 노모님이 기다린다고 했잖아요? 그 후 한 시간 만에 나는 쫓겨 나왔습니다. 북한에서 나온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캐나다로 귀가한 후 투병생활을 하는 담임목사님을 대신해 목회를 하다가 담임목사님이 소천하신 후에는 임시당회장으로 후임 담임목사님을 모시는 일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마무리 감당을 잘 했습니다. 남미 에콰도르 단기선교와 인도 뉴델리 미전도 종족 선교대회도 다녀왔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며
안식하는 1년간, 긴 세월이 나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 열심 그 정열 그리고 그 넘치는 사랑 같은 것들! 다 어디로 사라졌는 지 나는 지금 찾아 헤매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회복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의 은혜입니다. 이제 남은 힘을 다 하여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며” 다시 태어난 김00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북한에 대해 글로서 기록할 것이 많이 있지만 후일을 생각하며— 좀 더 밝은 조선의 아침이 다가 왔을 때 옛날 이야기처럼 나는 이야기할 것입니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것을 접어두려고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나는 경외하며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대강령이라고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믿습니다. 침묵을 깨고 다시 조선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좀 더 성경적인 사람으로 내 몸을 만들어가면서 마지막 인생을 살기로 다짐을 합니다.북한동족은 계속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하고 그 속에 구원 받을 자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누가 이 일을 할 것입니까?
한 생명도 포기 않아
우리 모두가 일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설사 우리가 포기한다고 해도 하나님은 한 생명도 포기하지 않으신답니다. 지금까지 저와 함께 사역에 동참하신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동역자님들의 많은 후원으로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기도와 귀한 북한선교헌금으로 후원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이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갑니다. 북한당국에서 정당한 서류로 초청하지 않는 한 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기도제목입니다. 제가 무사히 북한사역지로 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사역지에서 수고하시는 두 분의 동역자들에게 강함과 담대함을 주시고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요. 북한이 하나님 아버지를 깊이 깨닫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독교의 진실을 알도록, 북한에 더 많은 식량이 공급되어 동족이 따뜻한 삶을 누리도록, 북한지도자들이 강성대국을 만들기 위하여 좋은 생각과 현명한 판단을 하도록, 북한에 많은 사역자들이 섬김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1월 26일 김00 드림
*김00선교사는 지난 3월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 글은 그가 캐나다에 체류하던 중에 쓴 것이다. <편집자 주>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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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의 속살 ‘존스톤 캐년’
“네가 물의 마음을 아느냐?”
임종인 (제1남 선교회/스카이라인 여행사 대표)
웅장하고 기묘한 록키 산맥과 본인의 만남은 1990년 정도로 기억된다. 평생 처음 맛보는 록키는 한 두 마디의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인간으로서 감히 상대할 수 없게 숨막히게 다가오는 자연미의 극치라고 느꼈다. 그 후 록키와의 인연은 수십 년에 이르고 있다. 이민 온 후 관광업에 종사하면서 록키 산맥을 수도 없이 찾아갔다. 록키의 절경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하면 본인이 좋아하는 존 스톤 캐년(JOHNSTON CANYON)이라는 협곡을 추천하고 싶다.
존스톤 협곡은 오랜 세월에 걸친 물의 침식작용으로 좁은 수로가 형성된 말 그대로의 협곡이다. 밴프에서 레이크 루이스 쪽으로 가다 보면 우측에 bow vally park highway가 나온다. 그곳에서 좌회전을 해서 약 22km 달려가면 존스톤 협곡에 도착하게 된다. 가는 길은 협소하며 야생동물을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입구 주차장 뒤쪽에 협곡 위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나 있다.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 쪽으로 깎아 지른 듯한 협곡을 만나게 된다. 그 협곡 면 바위에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 같은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다. 지층의 색깔이 형성시기에 따라 변화돼 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장구한 세월이 흘러왔음을 뜻한다. 시간의 영속성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문득 폭포 물소리가 들린다. 협곡 입구로부터 1km 떨어진 lower falls이다. 짙고 푸른 잉크 색깔의 물 빛은 풍덩 빠져들고 싶은 충동을 안겨준다. 깊이는 얼마나 될까? 저 폭포 밑 웅덩이(ink pots)에는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관광객의 눈길은 어느 새 폭포 옆에 놓여 있는 안내문으로 이끌린다. “이곳에 있는 돌을 태평양 바다로 끌고 가느냐 아니면 그냥 이곳에 두느냐는 물의 마음이다.” 흥미로우면서도 눈길을 끄는 문구이다. Lower falls를 뒤로 하고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또 하나의 폭포 upper falls를 만난다. 협곡 입구에서 3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이곳의 장관은 lower falls에 못지 않다. 존스톤 협곡은 가벼운 산책코스로 적절한 곳이다. upper falls까지 올라가다 보면 땀도 나고 적절한 운동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자연이 세월을 지나며 움직인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기에 가족여행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건너편에 있는 캠프 사이트를 이용하여 하룻밤의 정취를 느끼시기를 바란다. 5월 29일부터 9월 14일까지 문을 열며 하룻밤 숙박에 27.40달러를 받는다.
“네가 물의 마음을 아느냐?”
임종인 (제1남 선교회/스카이라인 여행사 대표)
웅장하고 기묘한 록키 산맥과 본인의 만남은 1990년 정도로 기억된다. 평생 처음 맛보는 록키는 한 두 마디의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인간으로서 감히 상대할 수 없게 숨막히게 다가오는 자연미의 극치라고 느꼈다. 그 후 록키와의 인연은 수십 년에 이르고 있다. 이민 온 후 관광업에 종사하면서 록키 산맥을 수도 없이 찾아갔다. 록키의 절경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하면 본인이 좋아하는 존 스톤 캐년(JOHNSTON CANYON)이라는 협곡을 추천하고 싶다.
존스톤 협곡은 오랜 세월에 걸친 물의 침식작용으로 좁은 수로가 형성된 말 그대로의 협곡이다. 밴프에서 레이크 루이스 쪽으로 가다 보면 우측에 bow vally park highway가 나온다. 그곳에서 좌회전을 해서 약 22km 달려가면 존스톤 협곡에 도착하게 된다. 가는 길은 협소하며 야생동물을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입구 주차장 뒤쪽에 협곡 위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나 있다.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 쪽으로 깎아 지른 듯한 협곡을 만나게 된다. 그 협곡 면 바위에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 같은 무늬가 아로새겨져 있다. 지층의 색깔이 형성시기에 따라 변화돼 왔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장구한 세월이 흘러왔음을 뜻한다. 시간의 영속성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문득 폭포 물소리가 들린다. 협곡 입구로부터 1km 떨어진 lower falls이다. 짙고 푸른 잉크 색깔의 물 빛은 풍덩 빠져들고 싶은 충동을 안겨준다. 깊이는 얼마나 될까? 저 폭포 밑 웅덩이(ink pots)에는 어떤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관광객의 눈길은 어느 새 폭포 옆에 놓여 있는 안내문으로 이끌린다. “이곳에 있는 돌을 태평양 바다로 끌고 가느냐 아니면 그냥 이곳에 두느냐는 물의 마음이다.” 흥미로우면서도 눈길을 끄는 문구이다. Lower falls를 뒤로 하고 위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또 하나의 폭포 upper falls를 만난다. 협곡 입구에서 3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이곳의 장관은 lower falls에 못지 않다. 존스톤 협곡은 가벼운 산책코스로 적절한 곳이다. upper falls까지 올라가다 보면 땀도 나고 적절한 운동이 되기도 한다. 또한 자연이 세월을 지나며 움직인 역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기에 가족여행으로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시간이 좀 더 있다면 건너편에 있는 캠프 사이트를 이용하여 하룻밤의 정취를 느끼시기를 바란다. 5월 29일부터 9월 14일까지 문을 열며 하룻밤 숙박에 27.40달러를 받는다.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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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나의 교만을 깨뜨리신 하나님
공 희 경(제3여 선교회 부회장)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건대, 친정 부모님의 사업 때문에 간혹 굴곡이 있긴 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그다지 힘들다거나 실패를 맛보았다던가 하는 어려움은 없었다. 대학시절까지 성격도 쾌활하고 적극적이어서 친구들도 많고 리더로서 학과 일도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그런 내가 직장대신 대학원을 선택하면서부터 내 삶은 그 자체가 경쟁이었다. 남들보다 성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늘 새벽 2-3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왔고 학업과 일을 겸하면서는 친구들과 차 한잔 마실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내 생각은 다 옳아
늘 일에 쫓기다 보니 스트레스와 만성 피로에 시달렸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생각만을 남들에게 고집했다. 그때는 내 생각이 다 옳은 것 같았다. 같이 일을 해도 내 손이 꼭 가야 직성이 풀렸다. 그리고 열심히 한 만큼 결과도 좋아 모든 게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고 또 이런 승승장구가 평생 갈 줄 알았다. 서른 한 살 다소 늦은 나이에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또한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성공이었다. 동갑내기 동창인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 때론 친정부모님보다 더 가까운 시부모님. 그 당시 나는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결혼 5개월 만에 남편을 졸라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캐나다 유학 길에 올랐다. 이는 그 동안 힘들게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부모님과 주변의 지인들도 우리의 결정에 의아해했지만 나는 다시 돌아왔을 때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나의 선택이 두렵지 않았다.유학생 신분으로 지낸 지난 5년간 하나님은 나에게 모든걸 허락하셨지만 내가 꿈꿔왔던 나의 진로 문제는 해결해 주시지 않으셨다. 아들 셋 낳고 키우면서 한 가정의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만 허락하셨지 내가 캐나다에 온 목적인 학업이나 출세의 길은 엄격히 막으셨다. 중간에 몇 번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시도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지속되지 못했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왜 내가 하나님을 잊고 지낼 때는 모든 걸 주시더니 이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려 하는데 모든걸 빼앗아 가시냐고?’ 그 동안 나는 이렇게 기도하곤 했다. “하나님 나의 재능을 썩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사람이 세우는 탑은 허상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나 스스로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들보다 가진 게 참 많았다고 생각했다. 또 그런 상태가 캐나다에서 계속되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교만이었다.어느 날, 새벽기도에 갔는데 잠언을 설교하시는 목사님 말씀에 가슴이 떨렸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16.5)’,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하나님은 내가 아무리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다 하더라도 교만하면 내 앞길을 막음은 물론이요 내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쌓아왔던 모든 탑을 하루아침에 가치 없는 허상으로 만드실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몇 번의 시험을 통해 점차 하나님께 다가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이 아프고 시리지만 시간이 지나 하나님이 뜻하신 날이 되면 지금보다 백 배, 천 배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남편과 세 아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이유를 나는 이제 깨달았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이 계획하고 세울 수 있는 탑은 모두 허상이다.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이루어질 뿐이다.
공 희 경(제3여 선교회 부회장)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건대, 친정 부모님의 사업 때문에 간혹 굴곡이 있긴 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그다지 힘들다거나 실패를 맛보았다던가 하는 어려움은 없었다. 대학시절까지 성격도 쾌활하고 적극적이어서 친구들도 많고 리더로서 학과 일도 도맡아 하다시피 했다. 그런 내가 직장대신 대학원을 선택하면서부터 내 삶은 그 자체가 경쟁이었다. 남들보다 성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늘 새벽 2-3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왔고 학업과 일을 겸하면서는 친구들과 차 한잔 마실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내 생각은 다 옳아
늘 일에 쫓기다 보니 스트레스와 만성 피로에 시달렸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내 생각만을 남들에게 고집했다. 그때는 내 생각이 다 옳은 것 같았다. 같이 일을 해도 내 손이 꼭 가야 직성이 풀렸다. 그리고 열심히 한 만큼 결과도 좋아 모든 게 나에게는 당연한 것이었고 또 이런 승승장구가 평생 갈 줄 알았다. 서른 한 살 다소 늦은 나이에 가정을 이루었다. 결혼 또한 내 인생에 있어 하나의 성공이었다. 동갑내기 동창인 자상하고 가정적인 남편, 때론 친정부모님보다 더 가까운 시부모님. 그 당시 나는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 결혼 5개월 만에 남편을 졸라 부모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캐나다 유학 길에 올랐다. 이는 그 동안 힘들게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부모님과 주변의 지인들도 우리의 결정에 의아해했지만 나는 다시 돌아왔을 때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나의 선택이 두렵지 않았다.유학생 신분으로 지낸 지난 5년간 하나님은 나에게 모든걸 허락하셨지만 내가 꿈꿔왔던 나의 진로 문제는 해결해 주시지 않으셨다. 아들 셋 낳고 키우면서 한 가정의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만 허락하셨지 내가 캐나다에 온 목적인 학업이나 출세의 길은 엄격히 막으셨다. 중간에 몇 번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시도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지속되지 못했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님을 원망했다. ‘왜 내가 하나님을 잊고 지낼 때는 모든 걸 주시더니 이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려 하는데 모든걸 빼앗아 가시냐고?’ 그 동안 나는 이렇게 기도하곤 했다. “하나님 나의 재능을 썩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사람이 세우는 탑은 허상 캐나다에 오기 전에는 나 스스로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들보다 가진 게 참 많았다고 생각했다. 또 그런 상태가 캐나다에서 계속되지 않는 것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교만이었다.어느 날, 새벽기도에 갔는데 잠언을 설교하시는 목사님 말씀에 가슴이 떨렸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 16.5)’,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하나님은 내가 아무리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얻었다 하더라도 교만하면 내 앞길을 막음은 물론이요 내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쌓아왔던 모든 탑을 하루아침에 가치 없는 허상으로 만드실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몇 번의 시험을 통해 점차 하나님께 다가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이 아프고 시리지만 시간이 지나 하나님이 뜻하신 날이 되면 지금보다 백 배, 천 배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게 되었다. 이제까지 내가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하는 남편과 세 아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이유를 나는 이제 깨달았다.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람이 계획하고 세울 수 있는 탑은 모두 허상이다. 모든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해 이루어질 뿐이다.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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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부자 엄마의 육아기 예쁜 보석들을 한 손에 쥔 듯
임은실(제3여 선교회)
나름 전문(?) 분야라 만만하게 생각 했던 다섯째의 분만은 예상외로 꽤 힘들었다. 넷째를 15분 본 진통 후 낳았던 터라 이번은 혹 병원 가는 도중 차 안에서 분만 할 수도 있다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괜한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진통이 10분 간격 일 때 병원으로 일찌감치 출발, 새벽 12시 가량 병원에 도착해 자궁 문이 2~3 cm열린 상태 확인 한 후 그때부터 빠른 분만을 위해 foothill병원 5층 51병동 내부를 샅샅이 훑으며 돌아 다녔다.
예상외로 힘들었던 분만
2시간 후 새벽3시 가량 자궁 문이 5~6cm, 나의 분만 history로 보아 출산이 임박하다 판단, 비교적 좁고 불편한 분만대기실에서 깨끗하고 쾌적한 1인 분만실로 옮겨 주었다. 그 후 1시간 간격으로 Walking후 check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이 새벽 4시 5시 6시 계속 5~6cm이다. 신랑은 개인 분만실 긴 소파에 뻗은 지 오래다. 예상 보다 진행이 느리자 7시에 양수를 터트리러 가겠노라시던 Dr.양반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오셨다. 늦게 왔어도 얼마나 반갑던지, 양수를 터트리자 바로 본격적인 진통이 걸려 11시경 분만 bed에 누웠다. 곧바로 check후 간호사님 말씀이, 5~6cm yet! Oh, my God!! 이렇게 아픈데 아직 5~6cm라니!!진통이 올 때마다 "Entonox" 라고 하는 Gas마스크를 쓰게 해서 처음 몇 번은 완전 기분이 해롱 해롱, 고통을 좀 덜어주는 듯 했다. 그러나 진통이 점점 세지니 그것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 다음엔 주사로 "Narcotics"라는 진통제를 투약 해주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 집사님들 말씀에 ‘Epidural’이 제일 센 거 라고 하셔서 epidural, epidural 하며 징징거렸다. 그렇게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끝이 없을 듯 했지만, 마침내 12시 44분, 우리 아기, Carole이 3.91kg의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 주었다. 너무도 고맙게도, 너무 예쁜 모습으로--. Dr.가 she's pretty, she's pretty를 연발했다. 41살의 노산인 관계로 5개월 때 Dr.가 유전자 검사를 하겠냐고 물어 왔다. 늘 그랬듯이... 사실 한국에서 첫째 시온이를 34살에 가졌을 때부터 늘 들어오던 말이다. 그렇게 평소 믿음이 썩 훌륭하지 않은 우리 부부가 어찌된 건 지 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하지 않은 아기를 주셨더라도 이 아이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엔 의견 일치를 보았다.
예쁜 모습으로 온 캐롤
그때 이후 둘째 선이부터는 아예 병원 두 세 번 째가는 날이 아이 낳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다섯째carole을 임신 하고 있는 동안 자주 자주 혹 건강 하지 않은 아이를 낳으면 어쩌나.. 이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곤 했다. 그런데 예쁜 새를 품어오신 친정 엄마의 태몽처럼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목소리도 우렁차게 응애 응애… 배속에서 유난히 찬양을 들을 때마다 심하게 뛰놀아 이름도 joyous song이란 뜻의 캐롤이라 지어 논 터다. 그 숨은 의미도 small but strong woman, 너무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생각지 않았던 셋째가 생긴 후로 아이 하나 하나 늘어 갈 때 마다 공짜로 보물 하나씩 선물 받는 기분이다.하루에도 열 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 내리락 웃었다 울었다 하지만, 하나님 주신 선물들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가지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보석들을 한 손에 가진 기분이랄까?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낼 때 마다 아이들 하나 하나의 귀엽고 사랑스런 표정, 몸짓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생각이 절로 난다. 차분하고 침착하고 배려심 많은 반면 숫기 없는 시온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사람들 앞에서 서스럼 없는 밝은 성격의 선이가 보충해 주고, 덜렁덜렁 실수 많고 운동신경제로인 선이에 비해, 셋째 룬이의 매사 다부지고 탁월한 운동신경은 아빠의 자랑이다.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엄마 심부름은 도맡아 하는 싹싹하고 영특한 넷째 준이, 과연 우리 다섯째 캐롤은 어떨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서로의 이권(?)다툼으로 싸울 때도 많지만 싸우면서 포기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등 사회 적응에 필요한 여러 법칙들을 일찌감치 집안에서 지네들끼리 터득 하게 되는 것도 같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
혹 아이를 많이 가지려고 계획중인 신혼부부에게 포기 해야 되는 몇 가지를 말해 주고 싶다.1. 깨끗하고 쾌적한 집안 10분 이상 유지하기 2. 조용하게 사색하며 교양 있게 여유 있는 시간 가지기 3. 멋드러진 정장 차려 입고 함께 외출하기 4. 외식해서 음식 맛 음미하며 먹기. 5. 부드럽고 교양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기가장 중요한 여섯 번째는, 하나님께 자주자주 안 아뢰기. 정말 속에서 이런 게 올라 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마다 내 성질을 다 부리다 보면 과연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집안 분위기가 어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너무 너무 많다. 하물며 바깥세상은, 나의 짧은 손은 결코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다만 모든걸 하나님께 맡길 뿐이다. 돌아보니 항상 우리에게 맞는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 해 주셨다. 어쩜 조금 부족하게, 어리석은 우리가 자족하여 쉽게 주님 손 놓지 않게, 주님만 의지하게, 캐롤 낳고서도 미역국은 거의 직접 끓이지 않아도 될 만큼 여러 집사님들께서 한 솥씩 끓여 갖다 주셨다. 일 하시면서 어쩜 나보다 더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그렇게 해 주시니 감사하다는 말밖에. 다만 나도 그 누군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 그이에게 사랑의 빚진 자로서 따뜻한 손 내밀어야 되리라.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기회를 빌어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모든 식구들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다섯 아이와 저 그리고 할아버지, 모두식구들의 편안한 캐나다 생활을 위해 힘들고 위험한 지붕공사를 마다치 않고, 나날이 말로다 다 못하게, 나와는 차원이 다르게, 고생 하는 우리신랑 이시명 씨에게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 여보,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임은실(제3여 선교회)
나름 전문(?) 분야라 만만하게 생각 했던 다섯째의 분만은 예상외로 꽤 힘들었다. 넷째를 15분 본 진통 후 낳았던 터라 이번은 혹 병원 가는 도중 차 안에서 분만 할 수도 있다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괜한 걱정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진통이 10분 간격 일 때 병원으로 일찌감치 출발, 새벽 12시 가량 병원에 도착해 자궁 문이 2~3 cm열린 상태 확인 한 후 그때부터 빠른 분만을 위해 foothill병원 5층 51병동 내부를 샅샅이 훑으며 돌아 다녔다.
예상외로 힘들었던 분만
2시간 후 새벽3시 가량 자궁 문이 5~6cm, 나의 분만 history로 보아 출산이 임박하다 판단, 비교적 좁고 불편한 분만대기실에서 깨끗하고 쾌적한 1인 분만실로 옮겨 주었다. 그 후 1시간 간격으로 Walking후 check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이 새벽 4시 5시 6시 계속 5~6cm이다. 신랑은 개인 분만실 긴 소파에 뻗은 지 오래다. 예상 보다 진행이 느리자 7시에 양수를 터트리러 가겠노라시던 Dr.양반 10시 30분이 되어서야 오셨다. 늦게 왔어도 얼마나 반갑던지, 양수를 터트리자 바로 본격적인 진통이 걸려 11시경 분만 bed에 누웠다. 곧바로 check후 간호사님 말씀이, 5~6cm yet! Oh, my God!! 이렇게 아픈데 아직 5~6cm라니!!진통이 올 때마다 "Entonox" 라고 하는 Gas마스크를 쓰게 해서 처음 몇 번은 완전 기분이 해롱 해롱, 고통을 좀 덜어주는 듯 했다. 그러나 진통이 점점 세지니 그것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 다음엔 주사로 "Narcotics"라는 진통제를 투약 해주었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 집사님들 말씀에 ‘Epidural’이 제일 센 거 라고 하셔서 epidural, epidural 하며 징징거렸다. 그렇게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끝이 없을 듯 했지만, 마침내 12시 44분, 우리 아기, Carole이 3.91kg의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와 주었다. 너무도 고맙게도, 너무 예쁜 모습으로--. Dr.가 she's pretty, she's pretty를 연발했다. 41살의 노산인 관계로 5개월 때 Dr.가 유전자 검사를 하겠냐고 물어 왔다. 늘 그랬듯이... 사실 한국에서 첫째 시온이를 34살에 가졌을 때부터 늘 들어오던 말이다. 그렇게 평소 믿음이 썩 훌륭하지 않은 우리 부부가 어찌된 건 지 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하지 않은 아기를 주셨더라도 이 아이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엔 의견 일치를 보았다.
예쁜 모습으로 온 캐롤
그때 이후 둘째 선이부터는 아예 병원 두 세 번 째가는 날이 아이 낳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다섯째carole을 임신 하고 있는 동안 자주 자주 혹 건강 하지 않은 아이를 낳으면 어쩌나.. 이런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곤 했다. 그런데 예쁜 새를 품어오신 친정 엄마의 태몽처럼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목소리도 우렁차게 응애 응애… 배속에서 유난히 찬양을 들을 때마다 심하게 뛰놀아 이름도 joyous song이란 뜻의 캐롤이라 지어 논 터다. 그 숨은 의미도 small but strong woman, 너무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생각지 않았던 셋째가 생긴 후로 아이 하나 하나 늘어 갈 때 마다 공짜로 보물 하나씩 선물 받는 기분이다.하루에도 열 두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 내리락 웃었다 울었다 하지만, 하나님 주신 선물들은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다. 가지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보석들을 한 손에 가진 기분이랄까? 온 가족이 함께 거실에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낼 때 마다 아이들 하나 하나의 귀엽고 사랑스런 표정, 몸짓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행복하고 감사한 생각이 절로 난다. 차분하고 침착하고 배려심 많은 반면 숫기 없는 시온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사람들 앞에서 서스럼 없는 밝은 성격의 선이가 보충해 주고, 덜렁덜렁 실수 많고 운동신경제로인 선이에 비해, 셋째 룬이의 매사 다부지고 탁월한 운동신경은 아빠의 자랑이다.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엄마 심부름은 도맡아 하는 싹싹하고 영특한 넷째 준이, 과연 우리 다섯째 캐롤은 어떨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서로의 이권(?)다툼으로 싸울 때도 많지만 싸우면서 포기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등 사회 적응에 필요한 여러 법칙들을 일찌감치 집안에서 지네들끼리 터득 하게 되는 것도 같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
혹 아이를 많이 가지려고 계획중인 신혼부부에게 포기 해야 되는 몇 가지를 말해 주고 싶다.1. 깨끗하고 쾌적한 집안 10분 이상 유지하기 2. 조용하게 사색하며 교양 있게 여유 있는 시간 가지기 3. 멋드러진 정장 차려 입고 함께 외출하기 4. 외식해서 음식 맛 음미하며 먹기. 5. 부드럽고 교양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기가장 중요한 여섯 번째는, 하나님께 자주자주 안 아뢰기. 정말 속에서 이런 게 올라 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 마다 내 성질을 다 부리다 보면 과연 우리 아이들뿐 아니라 집안 분위기가 어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너무 너무 많다. 하물며 바깥세상은, 나의 짧은 손은 결코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다만 모든걸 하나님께 맡길 뿐이다. 돌아보니 항상 우리에게 맞는 길로 하나님께서 인도 해 주셨다. 어쩜 조금 부족하게, 어리석은 우리가 자족하여 쉽게 주님 손 놓지 않게, 주님만 의지하게, 캐롤 낳고서도 미역국은 거의 직접 끓이지 않아도 될 만큼 여러 집사님들께서 한 솥씩 끓여 갖다 주셨다. 일 하시면서 어쩜 나보다 더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그렇게 해 주시니 감사하다는 말밖에. 다만 나도 그 누군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 그이에게 사랑의 빚진 자로서 따뜻한 손 내밀어야 되리라. 이런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기회를 빌어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모든 식구들께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다섯 아이와 저 그리고 할아버지, 모두식구들의 편안한 캐나다 생활을 위해 힘들고 위험한 지붕공사를 마다치 않고, 나날이 말로다 다 못하게, 나와는 차원이 다르게, 고생 하는 우리신랑 이시명 씨에게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 여보,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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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된다는 것은 황수미(제3여 선교회 회장)
내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들을 떠올리며 비로서 내가 성숙해 가는 과정인 거 같다. 내 자녀의 기쁨이, 아픔이, 슬픔이, 감격이 그대로 나의 것으로 되는 것을 보면서내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나와 똑같이 느끼셨을 아빠, 엄마의 마음이 떠오른다.
내가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기뻐하셨던 내가 슬퍼하는 마음에 더 슬퍼하셨던 내가 아파하는 모습에 대신 아파 주지 못해 아파하셨던
내가 잘하는 모습에 대견해 하셨던 내가 부족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던 내가 잘못한 일에는 정말 엄하게 꾸짖어 주셨던 그 마음들이, 이제야,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나의 아빠, 엄마가 내게 주셨던 아니 아직까지도 주시고 있는 깊은 사랑의 마음이 내가 부모로 자라는데 귀중한 양분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내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 갈 수록내가 자라면서 받았던 아빠, 엄마의 사랑을 떠올리며 감사 할 수 있는 과정인 거 같다.
내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내가 부모님께 받은 사랑들을 떠올리며 비로서 내가 성숙해 가는 과정인 거 같다. 내 자녀의 기쁨이, 아픔이, 슬픔이, 감격이 그대로 나의 것으로 되는 것을 보면서내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지금의 나와 똑같이 느끼셨을 아빠, 엄마의 마음이 떠오른다.
내가 기뻐하는 모습에 함께 기뻐하셨던 내가 슬퍼하는 마음에 더 슬퍼하셨던 내가 아파하는 모습에 대신 아파 주지 못해 아파하셨던
내가 잘하는 모습에 대견해 하셨던 내가 부족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셨던 내가 잘못한 일에는 정말 엄하게 꾸짖어 주셨던 그 마음들이, 이제야,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나의 아빠, 엄마가 내게 주셨던 아니 아직까지도 주시고 있는 깊은 사랑의 마음이 내가 부모로 자라는데 귀중한 양분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내가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 갈 수록내가 자라면서 받았던 아빠, 엄마의 사랑을 떠올리며 감사 할 수 있는 과정인 거 같다.
14 years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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