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날때는 새벽6시에 나가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도모르게 늘어난 나의 배둘레햄(허리싸이즈)때문에 고무줄바지에 부시시한 머리를 한 채 로 소위 캘거리 국제공항 문을 통과 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모습이 일본에서 조차도 전혀 부담되지도 않았고,부끄럽지도않았다. 그런데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혹시 아는사람은 없는지 두리번거리게되고 내모습에 엄청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마중나온 형부의 차에 재빨리 올라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도착한날이 주일인지라 짐을 풀고 곧바로 피곤한 모습으로 저녁예배에 참석해야만 했다.
특히나 교회의 성전 건축을 눈앞에두고 한국을 떠나왔기에 우리교회의 변한 모습이 너무 보고 싶기도하고 남편에게 자랑도 하고싶어서 서둘러서 갔었다.
나의 힘들었던 시절에 영의 양식으로 나의 영혼을 살찌워 주셨던 반가운 담임 목사님과 정들었던 우리 구역식구들, 저녁 성가대 총무집사님,집집마다 삐에로복장을하고 다니시며 무더운여름날에도 주일학교 사역에 열정을 불사르셨던 전도사님등 너무 그리웠던 사람들이 있는곳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교회에 들어선 순간 나는 주눅이 들고 말았다.
너무도 웅장하고 화려하게 변해버린 교회의 모습과 가는날이 장날이라더니 교구별 성가 발표회를 하는 날이라 모두가 어여쁜치장으로 야단법석이었고 나는 이방인이되어 그자리에서 얼어붙어버렸다.더구나 긴 여행으로 꽤재재한 내모습그대로 참석한 자리인지라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못했고, 눈을 마주칠수가 없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 볼 겨를이 없는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캐나다에서는 세수를 안하고도 가게를 볼수있는 당당함이있었고,
내모습이 엉망인 채로 쇼핑을 했었고,병원에 갔을때도 자신있고 떳떳했는데....
한국에오니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과 남의 이목이 왜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나 스스로 너무나 피곤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오랜세월 사용했던 핸드폰조차도 이제는 너무나 황당하게 변해버린 세련된 기능때문에 나는 이미 문명인이 아닌것 같았다.
그래서 떠날때는 그렇게도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막상 시간이가면서 점점 마음이 변하기시작했다.
3주동안 양재학원에 다니면서도 화장기없이 털털하게 다녔더니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왔다고 특별한 줄 알았더니 별거아니네...
하는 식으로 나를 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어차피 짧은 시간에 많은것을 배워야만 한다는 욕심에 그들에게 완전히 신경을 끄고 3주를 지냈다.
그렇지않아도 하루 10시간 이상씩 바느질하며 앉아 있는것이 피곤하였던터에 그들에게까지 신경써가며 나를 치장하면서 살기 번거로웠기때문이다.
나의 형제들을 처음 만날때엔 캐나다에서의 내생활을 염려할까봐서 치장하는 성의를 보여 주었지만 다음날 부터는 나의 가족들이기에 역시 편한대로 지냈다.
한국에 살때는 직장생활때문에,휴일엔 교회에 가느라 거의 날마다 화장을 하고 꾸미며 살았기에 한 멋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했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피곤한 줄 모르고 살았었다.
외모만 보고 사람의 지위와 형편과 인격을 평가하는 한국사람들에게 나또한 좋은평가와 인정을 받고싶은 서글픈 욕망에 살았던세월들.....
그런데 이제 어느덧 이국생활에 물들어서인지 화장하고 치장하는것이 번거롭고 더욱 서툴러져 가곤한다.
남의 이목에 신경쓰며 산다는것,남과 비교하며 산다는것,체면때문에 치장하는 언행심사가 얼마나 주님보시기엔 가련한 모습일지..
천하보다도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을 사랑한다면 나자신이 초라하던지,부족하던지 간에 나는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이며 자신있고 당당할 의무가 있는것인데 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이제껏 나를 가꾸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국 생활에 물들었다고 어쩌면 자신을 가꾸는것에 게을러진것을 합리화하지말고 주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측은지심을
깨닫게되었다.
인생의 찌든때가 묻은 내모습 그대로를 주님은 긍휼히 여기신다는것,주님 앞에서는 변명도 필요없고,치장도 필요없다는것.....
단지 주님이 만든 피조물이기에 만드신분에게 송구하지않도록 나를 잘 관리하여 쓰임받도록 힘쓰며 내게주신 소명에 충실하다가 그분께 돌아가야한다는것........
형제들은 나를 얼빵으로 변했다고 했지만 역시 넓은 세상과 좁은세상을 경험하며 살아보니 내생활에 적용되는 믿음의 시야가 세월과 함께 변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게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수있느니라."
한국에서 송구영신 예배때 카드뽑기에서 내가 뽑은 말씀이다.
새해는 마치 나의 해가 될 것 같은 설레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