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성경에서 말하는 정신질환

날짜: 
2025/08/30
말씀: 
딤후3:1-5
말씀구절: 

1 <마지막 가르침>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설교: 

요즘 제가 의학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경정신과’ 공부를 거의 전문의 수준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제가 이렇게 신경정신과 공부를 열심히 하느냐 하면 현대인들에게 신경정신 질환이 너무나도 많고, 또 이에 관련된 환자들이 앞으로 더욱 많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좀 더 효과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겁니다. 물론 목사님은 이런 환자들을 만날 때 “자- 같이 기도합시다.” “열심히 기도하세요.”라고 하면 일단 그럭저럭 넘어갑니다. 적어도 옛날엔 목사님들이 그랬습니다. 특히 기도를 강조하는 순복음 목사님들의 경우는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안 그렇습니다. 과학과 의학이 워낙 빠르게 발전이 되다 보니 “아- 저건 기도보다 이 약을 먹으면 금방 낫는데... 이때에는 빨리 종합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하는 최신 지식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면 눈가의 근육이 떨릴 때 침을 맞으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거 효과 있습니다. 근데 침을 맞으려고 하면 한의사 만나야 하고, 의료보험 커버가 안 되면 돈도 많이 들어갑니다. 일단 귀찮습니다.

그런데 돈도 별로 안 들어가고 쉽게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마그네슘을 많이 드셔보십시오. 신기하게 거의 대부분이 잡힙니다. 저의 경우는 이게 직빵입니다. 즉 마그네슘이 신경을 잡아주는 필수 미네랄입니다. 고로 신경이 약하거나 신경안정이 필요하신 분들은 마그네슘을 꾸준히 드셔 보십시오.

그리고 눈의 경우 망막이 이탈되는 증상이 있습니다. 영어로 하면 ‘Retina detachment’라고 합니다. 이때는 갑자기 시야에 까만 커튼이 쳐진 것처럼 한쪽이 보이지 않거나 혹은 물체가 여러 개로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이 있으면 분초를 다투어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리고 신속히 수술을 해야 합니다.

작년에 저의 딸이 그랬습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마침 제가 당시에 의학 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터라, 밤중이지만 분초를 다투어 레이크뷰(Lakeview) 종합병원 응급실로 신속히 달려갔습니다. 다행히 여기 캘거리의 여러 종합 병원 중에서 레이크뷰 병원이 밤중에도 응급실에 안과 전문의가 항상 대기 중에 있어서 신속히 치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때는 기도도 좋지만 빨리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즉 기도해서 나을 병이 있고, 약을 비롯해 의료시술을 통해 나을 병이 있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 목사님들도 어느 정도 최신 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 좋습니다. 그런 의학 지식을 성경과 결합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성도님들을 섬기고, 성도님들을 이해하고, 목회하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특히 신경정신과를 공부하면 사람들의 생각과 정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더구나 제가 65세가 되어 이제는 저도 치매를 비롯해 이런 저런 신경정신 질병이 올수도 있는 위험이 한층 높아진 나이가 되다 보니, 제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제가 따로 신경정신과를 공부하는 겁니다. 오늘의 설교 내용도 신경정신과 지식+성경의 지식이 같이 담겨있습니다.

인격을 구성하는 3요소를 말할 때 흔히 ‘지정의’라고 합니다. 즉 지성과 감정 그리고 의지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통합된 인격을 형성합니다. 성숙한 인격이란 이 세 요소가 균형 있게 발달하고 조화를 이루는데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예전엔 지정의를 보는 시각이 좀 달랐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이성을 마차의 마부로 비유하고, 감정을 말로 비유했습니다. 즉 마부인 이성이 말인 감정을 잘 조절해야 좋은 인격자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오늘날의 자동차로 비유하면 감정은 자동차의 엔진으로, 이성은 자동차의 운전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즉 운전대를 잡은 이성이, 감정의 엔진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 역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며 감정보다 생각 즉 이성 중심을 외쳤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옛날의 목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의 목사님들은 대부분 감정보다는 이성을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은 변덕스럽고 불안정 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따른 결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 목사님들이 자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감정에 치우치지 마세요.” 물론 감정에 치우치면 안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균형적인 시각으로 감정뿐만 아니라 이성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철학자인 흄(Hume)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다.” 즉 도리어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며, 궁극적으로 감정이 인간 행동 즉 의지를 결정한다는 겁니다. 물론 “감정이냐? 의지냐?” 하는 이런 철학자들의 오랜 논쟁에 대해 요즘은 더 이상 이렇게 철학적으로 논쟁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그냥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뇌 구조를 밝히고, 그에 따른 실제적인 증명을 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입니다. 즉 옛날에는 과학과 의학이 충분히 발전되지 못해 단지 철학적으로만 말했던 것들이 요즘은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곧 바로 증명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요즘의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감정과 이성의 불균형과 부조화를 기준으로 각종 정신질환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울증은 감정이 지나치게 둔화하므로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입니다. 그 결과 우울증에 걸리면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싶다고 하고, 자살 시도를 많이 합니다.

반면 우울증의 반대인 조증은 감정이 너무나 지나쳐서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고양되고, 흥분과 충동상태에 빠지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양극성 장애’라고 하는 조울증은 감정이 극도로 흥분되거나 반대로 감정이 극도로 다운되는 것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질환입니다. 즉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한 질환입니다. 그리고 조현병은 감정과 이성의 분열로 인해 감정 표현이 이성과 따로 움직이는 질환입니다.

즉 많은 신경정신질환은 결국 감정과 이성간의 불균형과 부조화로 인해 생긴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런 감정과 이성을 관장하는 인체의 시스템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신경전달 물질인 호르몬입니다. 고로 현재 사용되는 신경정신 질환의 약물치료제는 거의가 호르몬을 조절하는 약입니다. 그리고 이런 증상들이 있으면 혈액검사를 통해 도대체 어떤 호르몬의 수치가 이상이 있는지 체크해 봐야 합니다.

성경은 감정 자체를 나쁘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정상적인 감정을 억누르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희로애락의 감정은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주신 것입니다. 특히 성경에는 믿음의 사람들의 감정을 사실 그대로 풍부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십시오.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자 슬퍼하며 우셨습니다.(요11:35)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는 안하고 장사만 하고 이익만을 취하려는 장사꾼들 향해 매우 분노하시어 그들을 성전에서 쫓아내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도 엎어버리실 정도도 매우 감정적이셨습니다.(마21:12)

또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큰 슬픔과 고뇌에 빠져서 제자들에게 이런 고백을 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마26:38) NIV 영어 번역본에는 이를 이렇게 번역합니다. “My soul is overwhelmed with sorrow to the point of death.”

다윗의 경우를 봅시다. 그는 시편에서 우리가 보기에 너무나도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기쁨, 분노, 슬픔, 절망, 감사, 심지어 저주까지 거의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인간의 감정을 하나님께 토로하는 기도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들의 감정을 억지로 억누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감정을 하나님께 솔직하게 아뢰라고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고 답답함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시편62:8 말씀입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그러나 성경은 나쁜 감정이 도를 넘어 죄를 짓는 것을 경고합니다. 인류최초의 살인이라고 하는 형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는 사건도 결국 가인이 자신의 나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생겨난 비극입니다. 동생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고 형인 자신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형 가인이 몹시 화가 났습니다. 형인 자기가 동생 앞에서 자존심이 몹시 상했습니다. 이로 인해 가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합니다. “너 왜 안색이 그렇게 변했니?” 아- 이거 하나님이 몰라서 묻는 겁니까?

하나님이 누구보다 가인의 심정을 다 아시면서 왜 이렇게 물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열 받게... 아- 하나님이 형 가인을 동생 앞에서 체면을 좀 세워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살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하고 묻고 싶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이 말의 뜻은 너가 지금 이 일로 인해 심히 감정이 상했는데, 이로 인하여 죄를 지을 위험이 크니까, 너는 감정을 잘 다스리라는 겁니다.

즉 옛말에 “홧김에 서방질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편과 싸우고, 이런 저런 일로 인해 감정이 몹시 상할 때, 그만 감정에 치우쳐 충동적으로 죄를 짓기 쉬워진다는 뜻입니다. 고로 오늘날의 의학으로 말하면 Anger management(분노 조절)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도 말씀합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

그리고 감정과 이성의 불균형과 부조화로 인해 나타나는 정신질환 중에 ‘반사회적 인격장애’에 속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있습니다. 이 둘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란 점에서 비슷하지만, 한편으로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에 대해 알고 있으면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대처하는데 좋습니다.

먼저 사이코패스의 원인은 선천적이고 유전적인 면이 강합니다. 반면 소시오패스의 원인은 환경적인 영향을 비롯해 후천적입니다. 감정조절에 있어서 사이코 패스는 매우 침착하고 계산적입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충동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합니다. 범죄 형태에 있어서 사이코패스는 계획적이고 조직적입니다. 고로 범죄의 흔적을 잘 감춥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충동적이고 범죄 흔적을 많이 남깁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사이코패스는 매력적이고 조작하는 기술이 있습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대인관계가 불안정하며 쉽게 충돌합니다.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에 있어서 사이코패스는 거의 없습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어느 정도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에 대해 사이코패스가 소시오패스보다 사회적으로 더 심각하고 위험한 범주로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이코패스 인물들이 있습니다. 첫째, 헤롯대왕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2살 이하의 아기들을 계산적으로 조금의 양심도 가책 없이 학살했습니다. 둘째, 가룟 유다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스승인 예수님을 아무렇지 않게 배신하고 은 30냥에 팝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소시오패스의 인물들도 있습니다. 첫째, 삼손입니다. 삼손은 충동적이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분노에 휘둘려 폭력적인 행동을 자주 합니다. 그는 나실인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자기의 감정과 욕망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둘째, 사울 왕입니다. 질투와 불안한 감정에 휘둘려 자기 사위인 다윗을 질투하여 죽이려 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사이코패스적 범죄자인 가룟유다와 소시오패스적 범죄자인 사울 왕에 대해 그들의 그러한 범죄가 사단이 들어가서 그들의 이성과 감정을 충동했기 때문이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도 그가 사단에게 속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현대 의학에서 보는 정신질환의 원인과 성경에서 보는 정신질환의 원인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헤롯 대왕이나 삼손의 경우는 사단이 들어가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현대 정신의학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굳이 사단과 귀신까지 연결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즉 사단이나 귀신과 같이 영적 존재로 인해 정신질환이 생겼으면 사단과 귀신을 쫓아내면서 기도로 고쳐야 하고, 그러지 않고 일반적인정신질환이면 의학과 과학의 힘을 빌려 고치면 됩니다. 이를 같이 병행하면 더욱 좋겠지요.

그리고 신경정신의학을 공부하다 보면 ‘경계선 성격(지능)장애’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신경정신질환 환자와 그렇지 않은 정상적인 사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어찌 보면 정신이 정상적인 것 같기도 하고, 정신이 병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자폐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상황과 때에 따라서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상태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에 대하여 성경적인 표현을 쓰면 그들은 신앙과 인격이 미성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경계선 성격 장애 사람이 공동체에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강력한 정서적 영향을 미칩니다. 즉 공동체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왜냐하면 이런 분들의 특징은 사소한 일에도 자기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공동체에 분란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리고 특정한 인물을 좋아하고 영웅시 하다가도 하루아침에 마음이 변하여 극도로 싫어하기도 합니다.

또한 갑자기 친밀하다가도 갑자기 관계를 끊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분법적인 사고를 합니다. 예를 들면 A는 무조건 좋은 사람, B는 무조건 나쁜 사람 식의 사고를 합니다. 고로 내편 니편 편 가르기로 인해 공동체가 분열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갈등이 생기면 자기는 무조건 피해자로 생각하고, 상대는 가해자로 묘사를 합니다.

고로 자세한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은 동정심을 받고, 반대로 상대방에게는 적대감을 받게 합니다. 고로 이런 경계선 성격장애자와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공동체의 내의 상대방은 졸지에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사람이 되었으니 참으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도저히 공동체 안에서 같이 있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감당치 못하지만 하나님은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끝까지 인내하고 사랑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감정과 이성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소시오패스도 아닙니다. 경계선 장애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아주 심히  애매모호합니다. 도리어 표면적으로 보면 도덕적이고 성숙해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관계도 겉으로 보기엔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매우 싫어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사람들이 자주 나옵니다. 누구지요? 예- 바리새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별되었다고 합니다. 남들에 비해 나름대로 우월감이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자기애적 성격장애) 기질이 강합니다.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교만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교만한 사람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외식하는 자‘ ’지옥의 자식‘이라고 아주 심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겉은 선하지만 중심이 좋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즉 마음의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가  더 우선적인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그리고 그런 착각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과 반대의 길을 계속 가게 됩니다.

결국 회개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조차 버림을 당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은 그 어떤 정신질환 환자보다 추이가 안 좋습니다. 오죽하면 성경은 이런 교만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이니라.”(잠16:18)

여러분, 말세는 고통 하는 시대가 온다고 이미 2000년 전에 성경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고통의 여러 원인 중에 가장 큰 원인이 사람들의 비정상적 감정과 이성입니다. 오늘날의 의학적 표현으로 말하면 바로 정신 질환입니다. 이에 대해 본문 디모데후서 3:1-5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보십시오. 이게 현대의 정신의학적으로 볼 때 모두 정신질환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입니다. 즉 말세에는 이렇게 정신적으로 병든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는 겁니다. 이게 사단과 귀신에 사로잡혀서 그렇게 된 경우도 있고, 혹은 인격이 미성숙해서 그런 경우도 있고, 때로는 신경 및 정신 질환 때문일 수도 있고, 환경에 따른 영향일 수도 있고, 복합적인 원인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말세인 요즘은 이런 환자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1-32) 즉 예수님이 이런 저런 환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들을 다 고치신다는 겁니다.

물론 세상 의사도 이들을 치료하지만,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이들을 이해하고, 이들의 치료를 위해 같이 기도해주고 끝까지 잘 인내하며 보살펴 줘야겠습니다. 그래서 너도 건강하고 나도 건강하여 다 같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성경에 예언한대로 인간의 이성과 감정, 그리고 정신과 인격이 극도로 병든 시대가 왔습니다. 이로 인해 개인도 힘들도, 가정도 힘들고, 사회도 힘들고, 교회도 힘이 든 모습들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모든 병을 치료하시는 주님께 왔사오니 주여, 우리들을 고쳐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