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성도 여러분, 최근에 뉴스나 주변에서 ‘쫓겨났다’라는 소식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집세가 밀려서 살던 집에서 쫓겨난 사람도 있을 수 있고요, 회사에서 평생을 바쳤지만, 한순간에 해고당해 쫓겨난 사람도 있을 겁니다. 더구나 여기 캐나다 땅에 살려고 왔는데 추방을 당하여 쫓겨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쫓겨나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이 참 안 좋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요. 동생을 죽인 가인도 자신이 사는 땅에서 쫓겨났고요. 교만의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도 쫓겨났고요. 우상 숭배를 일삼는 가나안의 일곱 족속도 쫓겨났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하나님이 왜 그렇게 누군가를 쫓아내실까요? 이 질문에 대해 먼저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이 누군가를 쫓아내시는 것은 단순한 배척이나 무자비한 보복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함과 공의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어둠과 함께하실 수 없으며, 죄악이 극에 달했을 때 그 땅의 순결을 위해 거룩한 심판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과 공의의 엄중함을 깨닫고, 하나님에 의해 쫓겨날 수밖에 없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을 거울삼아, 과연 우리가 어떤 태도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지 깨닫기를 원합니다.
1. 교만하고 반역하면 쫓겨납니다.
사탄 루시퍼는 원래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는 오늘날의 경호실장과 같았던 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자신이 피조물인 사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천사 1/3도 같이 반역을 저지르다 쫓겨나 귀신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한 자는 천사라도 반드시 쫓겨납니다.
1912년, 당대 인류 문명의 최고 결정체라 불리던 초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 배가 처음 출항할 때 선장과 선박 회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장담했습니다. “하나님조차도 이 배는 침몰시킬 수 없다!” 그들의 이러한 교만은 경고조차 무시하게 했습니다.
부근을 지나던 다른 배들이 “앞바다에 큰 빙산들이 떠다니니 속도를 줄이라.”고 수차례 무전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경고를 비웃으며 도리어 최고 속력으로 달렸습니다. 결국 출항 며칠 만에 타이태닉호는 차가운 북대서양의 바닷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 “내 인생은 절대 안 무너진다.”라며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교만하게 달려가는 인생이 바로 타이태닉호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강하다고 믿고 높아지려는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못하게 되고, 결국 쫓겨남을 당하게 됩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바로 이런 사람이 나옵니다. 바벨론 왕국을 세운 느부갓네살 왕이 너무나 잘 나가니까 심히 교만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이 꿈으로 구체적으로 경고하셨습니다. “너 그렇게 교만하다가는 왕궁에서 쫓겨나 7년간 짐승처럼 하늘의 이슬을 맞으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더욱 교만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단4:30)
이런 교만한 말을 내뱉자마자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느부갓네살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단4:31-32)
이 하늘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 느부갓네살 왕에게 정신이상 증세가 발현했습니다. 갑자기 그가 미쳐서 짐승처럼 소리를 냅니다. 결국 그는 왕궁에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은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처럼 자란 채 7년 동안 들짐승처럼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해놓은 7년이 지나자 겸손해져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짐승의 영이 떠나고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단4:37)
여러분, 성경을 통틀어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시는 죄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거의 모든 죄의 근원이 됩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요, 자기가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고로 하나님께 쫓겨나는 일 순위, 영 순위는 바로 교만입니다.
2. 세속적 탐욕을 좇으면 쫓겨납니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첫째가 에서요, 둘째가 야곱입니다. 당시의 문화는 장자가 집안의 모든 권한을 상속으로 받는 ‘장자권’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장자권 중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대를 잇는 영적 권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이러한 영적 축복을 받는 권리를 당장 배가 고프다고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습니다.
그 후에 에서는 장자권의 축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하나님과의 영적 언약에서 완전히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훗날 역사 속에서 그들은 유대교로 강제로 흡수되거나 타민족에 동화되어 하나님의 구속사적 정통성과 언약의 유업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즉 눈앞의 유익을 위해 영적인 가치를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렇게 세상 욕심을 좇다가 쫓겨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그랬습니다. 스승인 엘리사가 아람 나라 군대 장관인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쳐주자 그가 감사의 표시로 막대한 은금과 의복을 선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팔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의 종이었던 게하시는 스승이 거절한 그 거액의 보물을 보고 그만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리곤 고국으로 돌아가는 나아만 장군에게 급히 달려가 마치 스승 엘리사가 보낸 것처럼 거짓말을 하여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하여 자기 집에 몰래 숨겼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게하시에게 엘리사가 호통을 치며 말합니다.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을 때냐?” 결국 게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은금으로 바꾸려 한 탐욕 때문에 스승의 곁에서 내쫓겼을 뿐만 아니라, 문둥병이 들어 고통을 당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만약 게하시가 탐욕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후계자가 된 것처럼, 그도 엘리사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그 성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구별되었으니 하나라도 취하지 말라는 엄한 명령이 있었음에도 아간이란 사람은 그만 욕심에 눈이 멀어 아름다운 시날 산의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몰래 빼돌려 자기 텐트 속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곤 그는 부자가 되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비뽑기를 통해 아간을 지목해 내셨고, 그의 범죄를 드러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공동체 밖(아골 골짜기)으로 끌려나가 돌에 맞아서 죽임을 당함으로, 거룩한 이스라엘 나라의 군대에서 영원히 축출되고 말았습니다.
성경 밖의 예화도 들어보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오백 년 전 1626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의 맨해튼 섬의 주인은 ‘카나시’ 인디언 부족이었습니다. 어느 날 네덜란드 상인이 찾아와 약간의 반짝이는 유리구슬과 바느질 바늘, 단추 같은 값싼 장신구들을 꺼내 놓았습니다.
인디언들은 자신의 눈앞에서 반짝이는 그 유리구슬과 장신구 몇 개에 눈이 멀어, 대대로 살아온 보물 같은 땅 맨해튼 섬 전체를 넘겨주는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당시 그 장신구들의 가치는 단 24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훗날 그 장신구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서 버려졌고, 인디언들은 그 땅의 진짜 가치를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미 자신들의 고향 땅에서 쫓겨난 뒤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세상의 잠깐 반짝이는 부귀영화, 순간의 죄악된 즐거움이라는 24달러짜리 유리구슬에 눈이 팔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잃어버리고 쫓겨나는 미국 인디언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은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자신의 영원한 축복을 팔아버리고 쫓겨나는 망령된 자가 있습니다.
3. 죄가 극에 달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쫓아내기 전에 반드시 여러 번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고집스럽게 죄를 짓고, 그 죄가 도저히 말리지 못하는 극한 단계에 이르면 결국 하나님은 그를 쫓아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서 사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그들의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죄가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도 보면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자, 거짓말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쫓겨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죄악이 극에 달했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으면 빨리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의 크기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죄를 끝까지 돌이키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강퍅한 마음입니다. 그런 강퍅한 마음의 소유자는 결국 하나님께 쫓겨나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가고 맙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님, 최근에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성전에서 죽여서 피를 흘렸는데 이거 하나님께 저주받은 거지요?” 이때 예수님이 아주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2-5)
성경에 보면 국가나 개인이 망하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반드시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하라”라고 촉구하셨습니다. 그 회개의 촉구를 듣고 회개하면 망하지 않고, 쫓겨나지 않았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죄악이 만연한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자 그들은 왕으로부터 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작정하신 진노를 돌이키셨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회개하라는 경고를 끝까지 무시하고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도 결국 나라가 망하고, 그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1900년 동안 온 세계를 유리 방황하며 큰 슬픔과 고통을 겪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여전히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쫓겨납니다.
자- 오늘의 설교를 듣다 보니 좀 마음이 무겁고 안 좋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저와 여러분도 교만한 사람이요, 탐욕의 사람이요, 마음이 강퍅하고 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교만한 사람, 탐욕의 사람, 강퍅한 사람이 쫓겨난다면 나도 너도 다 쫓겨날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 잊지 마십시오. 나 같은 교만한 사람, 나 같은 욕심의 사람, 나 같은 강퍅한 사람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쫓겨나셨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아사셀 염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거룩한 날인 대속죄일이 되면, 대제사장은 백성 전체의 죄를 속하기 위해 두 마리의 염소를 취했습니다.
첫 번째 염소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입니다. 그 피를 흘려 지성소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죄를 속하는 피 흘림의 속죄를 상징했습니다. 두 번째 염소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입니다. 대제사장은 산 채로 남겨진 아사셀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범죄를 고백하며 그 모든 죄를 염소의 머리에 안수(전가)했습니다.
그 후 그 염소는 사람이 살지 않는 이스라엘 진영 밖, 거칠고 아득한 광야(아사셀)로 쫓겨났습니다. 그렇게 광야로 쫓겨난 이 아사셀 염소의 모습은 먼 훗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우셨습니다.(사53:6).
그리고 예수님은 나 대신 사형 판결을 받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쫓겨나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나 대신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받고 쫓겨나 죽으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극악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하나님의 집에서 쫓겨나지 않습니다. 도리어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잔칫상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자신은 그리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일이 꼬이거나, 사람으로부터 미움과 시기와 견제를 당하여 사람에게 왕따를 당하고 쫓겨나는 불합리한 경우가 발생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처럼 시기와 질투를 당하여 그런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유대인 사회에서 미움과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출교를 당하고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이때 너무 당황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나를 쫓아내면 하나님이 품어주시면 됩니다. 고로 도리어 그것은 나중에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 외국 땅 캐나다에 살면서 큰 고난이 다가와 고통을 겪을 때에 문득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이곳 캐나다 땅에 온 것이 저주받아 쫓겨난 것이 아닌가?” 예- 그럴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래 그 후손인 인류는 사실 모두가 쫓겨난 존재입니다.
그렇게 쫓겨난 우리가 이곳 캐나다라는 광야에서 살고 있는데, 여기도 에덴동산이 아닙니다. 역시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서 너와 나를 사정없이 찌르는 광야입니다. 그 가시에 이리저리 찔려서 아프고 신음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이때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 안에 에덴동산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위로가 있고 치료가 있습니다.
고로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 캐나다로 쫓겨난 저와 여러분들이여,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더 이상 우리는 쫓겨난 자가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 ‘보냄을 받은 자’가 됩니다.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와 다시 에덴동산을 회복하시고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 품 안에서 안식과 평안을 누리십시오. 계속 행복을 누리십시오. 아무쪼록 이전보다 더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주여, 쫓겨난 우리를 다시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보냄을 받은 사명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게 하시옵소서. 영원히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