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내 권한이 아니다.

날짜: 
2026/10/04
말씀: 
롬12:19-21
말씀구절: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설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모두 저마다의 아픔과 억울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 자리에도 그런 아픈 마음을 품은 채 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분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의 그 아득함도 있을 것이고, 내 진심이 짓밟혔을 때 느껴지는 눈물겨운 억울함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던져진 차가운 말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혀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럴 때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소리 없는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왜 나만 이렇게 당해야 하나?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사는데, 나는 왜 매일 밤을 지새우며 울어야 하나?”

이렇게 상처를 입은 인간의 본능은 하나입니다. 내가 받은 만큼 똑같이 돌려주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즉 복수하지 않으면 이 억울함이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손에 가시를 움켜쥐고 기회가 되면 그 사람을 찌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상대의 마음을 찌르려고 내 손에 쥔 그 가시 끝에, 누구의 피가 가장 먼저 맺힐까요?

바로 나 자신의 영혼입니다. 남을 찌르기 위해 쥐고 있는 그 분노라는 가시 때문에, 날마다 피를 흘리고 피폐해지는 것은 저 원수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주님은 오늘 그 아프고 피 흘리는 손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며 나직이 부르십니다. “얘야, 이제 그 복수의 가시를 내려놓아라. 복수는 너의 몫이 아니란다.”

여러분, 우리는 ‘복수’라고 하면 흔히 거창한 싸움이나 큰 해를 상대방에게 입히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러곤 “아- 나는 그렇게 상대방에게 복수하지 않고 살아가니 꽤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스스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복수는 하지 않아도 아주 유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복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식당이나 모임 자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다가오면 은근슬쩍 의자를 당겨 앉거나, “여기 자리 있어요”라며 외면하기도 하고요. 복도에서 마주칠 때 분명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괜히 핸드폰을 만지는 척하며 시선을 휙- 돌려버리기도 합니다. 혹은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특정 그 사람만 쏙- 빼놓는 편 가르기를 하며 소외감을 주기도 합니다.

즉 몽둥이로 상대방을 심하게 때리지 않고, 칼로 상대방을 찌르지 않았을 뿐, 그 차가운 눈빛 하나, 외면하는 모습 하나, 물리적인 거리 두기 하나가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인격적 살인입니다. 알게 모르게 그런 식의 복수를 당하게 되면 그는 또다시 상대방에게 “너 두고 보자.” 하는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됩니다. 그러니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되고 결국 모두 망하고 맙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자신의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이스라엘 땅에 머물지 못하고, 광야와 외국 땅을 전전하며 10년 동안 큰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너무나 좋은 복수의 기회가 왔습니다.

사울 왕이 군사 3천 명을 동원하여 친히 다윗을 수색하며 죽이려고 하다가 그만 광야에서 급똥이 마려웠습니다. 왕의 체면에 신하들 보는 앞에서 똥을 싸기가 그랬는지 주위에 있던 동굴로 혼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왕복을 걷어붙이고 똥을 누고 있는데, 세상에- 그 동굴 안에 누가 있었는지 압니까?

다윗과 그를 따르는 군인들이 그 캄캄한 동굴에 숨어 있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까닭 없이 죽이려고 하던 사울 왕이 제 발로 혼자 동굴에 기어들어 온 겁니다. 그 모습을 본 다윗의 군사들이 말합니다. “드디어 공의의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셨군요. 우리가 그를 단칼에 죽이겠나이다.”

이때 다윗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엄지손가락을 땅으로 내리는 사인만 하면 완벽하게 복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년간의 비참한 도망자 생활도 끝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라.”(삼상24:6) 말하며 그에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울 왕의 옷자락만 살짝 베고 왕이 용무를 마치고 동굴 밖에 나가자 왕에게 크게 절을 하며 외쳤습니다. “왕이여, 여기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알아주십시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24:11-12)

보십시오. 다윗은 왕에게 직접 보복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다윗은 사울 왕의 겉옷 자락만 살짝 벤 것도 마음에 찔려 가슴을 쳤습니다. 즉 내가 직접 원수를 갚으려 했던 그 작은 분풀이조차, 하나님이 하셔야 할 재판관의 자리에 내가 감히 올라서려 했던 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우리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작은 복수의 차가운 눈빛 하나, 뼈 있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나서 “아- 내가 또다시 내 눈으로, 내 손으로, 내 입으로 그에게 복수하려고 했구나!” 하고 다윗처럼 가슴을 치며 마음 아파해야 하는 민감한 양심이 필요합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 왕이 너무나 감동이 되어 울며 다윗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여호와께서 오늘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삼상24:16-19)

자- 이제 이 정도로 사울 왕과 다윗의 관계가 좋아졌으니 그 뒤에 모든 일이 화목하고 즉시 평화가 찾아왔을까요? 아닙니다. 얼마 후에 또다시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덤빕니다. 아- 이 사람 참 못 말립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끈질기게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까? 다름 아닌 비정상적인 귀신의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군사 3천 명을 동원하여 다윗이 머무는 광야로 나왔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이번에는 부하 한 사람만 데리고 밤중에 사울 왕의 군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어라- 보초병들이 다 잠을 자고 있는 겁니다. 사울 왕의 숙소에도 들어가 보니 모두가 다 깊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때 다윗과 동행한 군사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삼상26:8)

그러자 다윗이 이전과 똑같이 말합니다.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삼상26:9-10)

그리곤 다윗은 사울 왕의 옆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조용히 진영을 빠져나왔습니다. 자- 여러분! 사울 왕과 다윗의 차이가 뭡니까? 사울 왕은 끈질기게 남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요, 다윗은 원수라도 스스로 복수하지 않고 그에게 선을 베풀며, 그 복수조차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 왕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굳건히 설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직접 복수를 하면 안 됩니다. 복수는 내 권한이 아니고 하나님의 고유 권한입니다.

오늘의 본문도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잠깐 소개해 볼까요. “여호와여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여,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시94:1)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나1:2)

자- 이 구절만 따로 놓고 보면 “아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복수하시는 하나님이라니, 그거 이상한 하나님이네. 적어도 하나님이라면 계속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 용서하고 사랑을 해야지, 왜 보복을 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은 하나님이 마음이 좁아서 용서하지 않고 불필요하게 복수하는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서로 복수를 하게 내버려 두면 이 세상은 난장판이 되고 모두가 멸망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대신 공의롭게 복수를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복수는 내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 권한입니다. 같이 한번 따라서 해봅시다. “복수는 내 권한이 아니다. 복수는 하나님의 권한이다.”

물론 나를 그토록 괴롭힌 그에게 내가 직접 복수를 하지 못하고 계속 참고 살려면 참으로 억울하고 답답하겠지요.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최후의 승리자는 복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고 상대방을 용서하며 사랑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아- 이 진리를 알고 실천하는 크리스천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 중에 요셉이 있습니다. 그는 억울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배다른 형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당하여 인신매매를 당하여 애급의 노예로 팔렸습니다. 억울하게 강간범으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도 3년간 했습니다. 그렇게 13년간 외국 땅에서 개고생했습니다. (아- 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개가 들으면 굉장히 억울하다고 하겠네요.)

그러나 요셉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그 어려운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30세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서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들에게 복수할 완벽한 권력을 쥐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힘이 있어도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형들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9-21) 아- 우리의 요셉! 참으로 훌륭합니다. 기특합니다. 대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복수의 자리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은 내 삶의 상처를 완벽히 치료하시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기회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내 손으로 복수하려고 작은 칼날을 쥐고 있는 한, 그 칼끝은 결국 상대가 아닌 나 자신의 영혼을 계속해서 찌를 뿐입니다.

고로 원수 갚는 권한을 하나님께 온전히 반납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찌르는 자들을 향해 단 한 번도 복수의 칼을 빼 들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거친 숨을 내쉬며 하늘을 향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이렇게 죽어가면서까지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했던 예수님의 모범이 바로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걸어가야 할 크리스천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억울해서 견딜 수 없을 때, 마음이 분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을 때, 그 억울함과 슬픔을 주님의 십자가 밑에 가지고 나와 원통함을 토해내십시오.

그리고 골고다 언덕 위 십자가에서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그 피 묻은 손으로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말씀합니다. “내가 다 안다. 네가 얼마나 아팠는지, 네가 얼마나 참았는지 내가 다 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당장 사랑하라.”는 무거운 짐을 그냥 얹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힘으로는 절대로 풀어낼 수 없는 그 억울함과 분노의 감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복수의 권한을 나에게 다 넘겨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상대방의 마음을 찌르던 그 차가운 표정을 거둡시다. 상대의 약점을 찌르려 했던 그 입술의 가시를 꺾읍시다. 나에게 상처 준 그 사람을 향해 내 힘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서 밤새 흘렸던 그 눈물을, 이제는 하나님 발 앞에 정중히 쏟아놓읍시다.

내가 복수의 자리를 하나님께 비워드릴 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내 삶의 모든 원통함을 가장 선한 방법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의 그 불편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하나님의 솜씨로 더 좋게 되고 가장 좋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내 손으로 직접 복수하려 했던 그 복수의 가시들을 이 시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주님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어 내 안의 억울함을 위로해 주시며, 내 안의 분노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녹아내리게 하옵소서. 이제는 내 손으로 복수하지 않고, 공의로우신 주님께 맡기며,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상처를 치료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