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지를 통하여(Sept. 2, 2001)

날짜: 
2001/09/09
설교: 

제 목 : 좋은 의지를 통하여
본 문 : 마 26:39 절

우리가 인격의 3요소를 말할 때 ‘지식, 감정, 의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많지만 의지가 부족해서 제대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분은 의지는 참 좋지만 감정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종종 오해를 사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감정은 풍부하고 좋지만 바른 지식이 없어 쉽게 미혹을 당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 정, 의"를 모두 갖추면 훌륭한 인격자가 되듯이 신앙 생활을 할 때에도 "지, 정, 의"를 모두 갖추면 올바르고 훌륭한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의지는 결정을 내리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므로 마치 배에 있어 키와도 같습니다. 배가 키에 의해서 그 방향이 결정되는 것처럼 사람에 있어서도 "지, 정, 의" 중에서 의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지, 정, 의"를 계란으로 비유한다면 감정은 껍질이요, 지식은 흰자위요, 의지는 노른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의지는 비록 감정이나 지식처럼 밖으로 잘 나타나지 않고 깊은 곳에 있지만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그 사람의 감정과 지식의 표현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을 바르게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겉으로 나타나는 감정과 지식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 즉 의지가 좌우를 합니다.
즉 마음의 중심인 의지는 그 사람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도 그 사람의 감정과 지식보다도 그 사람의 의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혹 감정 표현이 부족하고 지식은 부족해도 하나님을 잘 믿으려고 하는 바른 의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좋은 그리스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감정이 좋고 지식이 많이 있어도 마음의 중심인 의지가 나쁘다면 그 사람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좋은 그리스도인과 나쁜 그리스도인은 그 사람의 의지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좌우가 됩니다.
우리가 좋은 의지를 소유하고 있으면 우리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열매를 맺고 결국 하나님께 칭찬과 축복을 받을 것이요, 나쁜 의지를 품고 있으면 나쁜 열매를 맺음으로 그 결국은 좋지 않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는 동안 이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드셔서 인간이 그것을 따먹고 죄를 짓게 만들고, 또 그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주셨습니까?
왜 하나님은 병 주고 약 주는 것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하지 않았겠습니까?”

여러분! 이에 대한 해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로봇이나 기계와 같이 혹은 시계와 같이 빙글빙글 돌아가다가 태엽이 떨어지면 그대로 서는 그런 식의 사람을 만들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신처럼 자유 의지라는 특권을 주셔서 그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반역할 수도 있는 의지적인 존재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는 것은 범죄하는 자에게는 큰 불행의 원인도 되지만, 이 자유 의지야말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요 특권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그 의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지어서 에덴 동산을 가시와 엉겅퀴의 동산으로 만들고, 인류에게 저주와 질병 그리고 사망을 그 유산으로 남겨주고 말았습니다.
즉 의지가 잘못 사용되면 큰 저주와 불행이요, 의지가 잘 사용되면 큰 축복과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자고로 인류에게 큰 이익을 주었던 인물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자유 의지를 좋게 사용했던 사람들이요, 반면 인류에게 큰 해를 안겨준 사람들은 그 자유 의지를 잘못 사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이 자유 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의 축복과 저주, 그리고 행복과 불행이 결정됩니다.
만약 우리가 아담과 하와처럼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면 우리에게는 저주요 불행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려고 애를 쓴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과 행복이 주어집니다.

여러분! 오늘 당신의 의지는 어떠하십니까?
한 번 당신의 의지를 체크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과연 나의 의지가 하나님께 합당한 의지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의지입니까?

성경에 보면 다니엘이란 사람은 젊었을 때에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러나 왕이 특별 대우를 해서 “너는 왕궁에서 먹는 진미를 먹도록 하여라. 고기며 포도주며 좋은 것을 다 줄 터이니 마음대로 먹고 건강하게 지내라”고 특별 명령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이 주는 진미와 고기, 술들을 먹지 아니하기로 굳은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당시 고기나 술은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록 왕이 주는 떡과 고기와 술은 못 먹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뜻을 정하고 생활한 결과 그의 몸이 더욱 건강해 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강한 의지 때문에 자신의 정적으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당해 사자 굴속에도 들어가는 위험도 당했지만, 하나님은 바른 의지를 갖고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을 사자 굴속에서도 건져주시고 계속 높이 들어 사용한 것입니다.
만약 다니엘이 위험이 다가온다고 그 의지를 굽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신앙을 포기했다면 그는 결코 신앙의 위인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의 신앙이 훌륭합니까?
감정적으로 일시적으로 흥분하고, 환경에 따라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 훌륭한 신앙입니까?
아니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바르고 굳은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의 신앙이 휼륭합니까?
우리의 신앙이 발전되기 위해서는 감정과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고 따라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훌륭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바르고 강한 의지가 있어야지 감정과 지식만 가지고는 환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정의 사람, 지식의 사람보다는 바른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기뻐하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지식이 늘어났다 하더라도 의지가 약하면 뿌리가 깊지 못해 태양이 떠오르면 곧 말라버리는 풀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의지를 가지고 매달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지, 하나님이 인간의 사사로운 감정에 따라 지식에 따라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요한계시록 3:20에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간다”고 했지 문도 열지도 않는데 문을 부수고 들어온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님도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환영해야 들어오시지, 들어오시라고 환영하지도 않는데 막무가내로 들어오시지는 않습니다.
즉 우리의 마음의 결정, 의지에 따라서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를 끊는 것도 반드시 내가 끊어 보겠다고 의지를 갖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 술과 담배를 끊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지 “성경 어디에 술 먹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하고 이리 저리 핑계만 대고 끊으려는 의지를 갖지 않으면 하나님도 역사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의지를 갖고 전도를 해보겠다고 시도를 할 때 하나님이 역사를 해주시는 것이지 “에이, 한국도 아닌 이곳에서 무슨 전도가 되겠느냐? 알아서 교회 올테면 오고 말테면 마라”하는 식으로 마음을 먹으면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강렬한 마음의 소원, 즉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은 자신의 의지를 마귀에게 철저히 점령을 당해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의지는 하나님을 좀 더 잘 믿어보겠다는 좋은 의지가 아닌 음란과 방탕, 미움과 증오의 나쁜 의지가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마귀로부터 자기의 빼앗긴 선한 의지를 되찾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란 감정과 지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 즉 의지를 바꾼다는 것입니다.
회개란 소리치고 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 내 고집대로 살려고 하는 나쁜 의지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선한 의지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루는 `요나`라는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야, 너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그러나 요나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니느웨는 원수의 나라의 수도입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기의 생각과 맞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가려고 배를 탔습니다. 그런데 그만 큰 풍랑을 만나 큰 물고기 배속에서 사흘간 머물며 자기의 잘못된 의지, 즉 고집을 꺽고 맙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속에서 나오자 또다시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합니다.
“요나야, 너는 일어나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결국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여러분! 때로는 주님이 이런저런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무엇을 명령하거나 부탁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나의 잘못된 의지를 발동하여 요나처럼 거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뜻을 좇아 순종하며 갈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 즉 자유 의지입니다.
우리가 아담과 하와처럼 그리고 요나처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면 가시와 엉겅퀴, 그리고 풍랑이 기다라고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 의지를 잘 사용하면 우리에게는 큰 칭찬과 축복, 그리고 행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자유 의지로 무엇을 택하느냐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으로는 미움이 일어날지라도 의지적으로 사랑을 택하십시오.
감정은 ‘도저히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해도 의지로는 ‘그래도 나는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시오.
감정으로는 기도하기 싫고, 예배 나오기 싫어도 의지로는 ‘기도해야 된다. 예배 드려야 된다’고 말씀하십시오.
아무리 술과 담배를 끊기가 힘들어도 ‘나는 술과 담배를 끊어야 되겠다’고 의지를 가지십시오. 의지가 있어야 길이 있습니다. 의지가 있어야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의 감정과 기분으로는 도저히 죽음의 잔을 마시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하고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곧이어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만약 예수님이 감정에 치우쳤었다면 우리의 구원은 주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감정을 이기시고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보이셨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힘들어도 십자가를 지고 가려고 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바른 의지가 잃어버렸던 에덴 동산을 회복했고 너와 나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른 의지를 가진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진정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까? 바른 의지를 가지십시오. 좋은 의지를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때로는 감정이 그러한 당신을 막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의지로 그것을 단호히 물리치십시오.
하나님은 좋은 의지를 갖고 있는 당신을 오늘도 행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의지를 가진 당신을 통해 하늘 나라는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