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희망의 사람입니까 ?

날짜: 
2003/12/08
설교: 

제 목 ; 당신은 희망의 사람입니까 ?
본 문 ; 왕하 7:1-20

오늘 열왕기하 6장 24절에서 33절에 보면 모든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절망에 가득찬 그 당시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아람왕 벧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서 올라와 분열 왕국인 북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던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성이 아람왕 벧하닷에 의하여 포위된 지 오래됨으로 인하여 성중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크게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거의 없는 상태였고 평상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먹지 않는 당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나 되는 높은 가격으로 판매가 되었습니다.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 정도는 어느 정도냐 하면 은 1세겔이 일반 노동자 5일의 품삯이기 때문에 은 80세겔은 일반 노동자의 400일정도의 품삯에 해당되는 값어치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약 3000만원(4만 불) 정도 되는 돈입니다.
레위기 11장4절에 의하면 나귀는 부정한 동물이기 때문에 절대로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았고 특히 머리는 다른 모든 부위보다도 먹기에 제일 나쁜 부분이라서 가장 값이 싼 부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전혀 먹지 않고 또 가장 값이 싼 당나귀의 머리 하나의 가격이 약3000만원에 거래되었다는 것은 당시의 기근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합분태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나 했습니다. 은 다섯 세겔이라면 일반 노동자가 25일 정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가격으로 즉 요즈음 말로 하면 약 200만원(3000불)에 팔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합분태는 비둘기 똥이나 여물지 않은 콩과 같이 영양가가 거의 없는 음식물 찌꺼기, 혹은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갑은 1/2리터 정도 되는 양입니다.

여러분 상상이 됩니까 ? 당나귀 머리 하나의 가격이 3000만원, 그리고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 1/2리터 정도 되는 양이 200만원에 거래가 되고 있다는 것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성이 포위되자 6:26절 이하를 보면 더욱 더 비참한 일이 벌어집니다.
극심한 굶주림의 일로 인하여 자식들을 잡아먹는 인간이 해서는 안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한 절망 속에서 이스라엘 왕은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절망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왕을 보좌하는 장관도 절망의 푸념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 모두가 절망의 말과 절망의 행동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다음과 같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여러분,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녀를 잡아서 삶아먹어야 하는 백성들에게 이 말은 얼마나 반가운 희망의 소리였겠습니까 ? 이렇게 굶주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먹을 것을 주실 것입니다."라는 희망의 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망이 보이지 않는 땅위에서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절망가운데 있는데 유일하게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옛날이나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희망의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서로에게 이렇게 인사하십시다. "당신은 희망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절망적인 상황에서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에 희망이 넘치리라”“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에 먹을 것이 넘치리라”라고 외쳤던 것 같이 오늘날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 안에, 하나님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여러분, 부탁합니다. 당신이 정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희망의 소리를 외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에 희망이 넘치리라”“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에 먹을 것이 넘치리라”라고 말씀하시었던 것같이 여러분들도 "나의 미래에, 우리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을 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절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그리고 남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려면 자신이 먼저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도 희망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고 살아가시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즉 내가 먼저 희망을 체험하고, 희망의 말과 행동을 할 때에 비로소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희망에 부풀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

오늘 본문에 보면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희망을 찾아 나서는 네 명의 문둥병자들이 나옵니다.
여러분, 문둥병자들은 아람 군대와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지역에서 전쟁이 나면 가장 비참하게 고생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 그것은 바로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과 멀리 격리되어 있어 매일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 주어야 먹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났을 때에는 정상적인 사람들도 먹고살기 어려운데 문둥병자들을 챙겨서 먹을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을까요 ?
어쩌면 아람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에 가장 비참하게 고생했던 사람들, 그리고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 문둥병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네 명의 문둥병자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더 이상 한탄하거나 남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비참하고 절망적인 현재의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고 다 함께 희망을 찾아 나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희망을 발견했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 가운데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 이 외국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 여러분들도 네 명의 문둥병자들과 같이 희망을 바라보고 희망을 찾아 나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네 명의 문둥병자들이 희망을 발견한 것처럼 여러분들도 희망을 발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조목사님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 예배당을 건축할 때 빚에 쪼들려 매일 고생을 하다가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을 하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조목사님 같이 훌륭하신 목사님도 자살할 마음이 생겼으니 그 상황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려왔습니다. “조용기, 너의 이름이 용기가 아니냐 ? 그렇게 나약하게 죽을 생각을 하지말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라." 이러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 조목사님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희망의 전진을 하면서 오늘날의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조용기 목사님뿐만 아니라 외국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절망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희망을 찾아 나서면 하나님은 결국 우리들을 희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온실 속에서만 키우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라 절망의 모진 광야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낼 줄 아는 희망의 주인공으로 키우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인생이 지금 절망의 터널에 들어왔다고 생각하십니까 ? 자신에게 다가온 문제들로 인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다고 그 절망 속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탄식만 하시겠습니까 ?
아니면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자기 자식들을 잡아먹는 일이나, 엘리사를 죽이려고 하는 이스라엘 왕처럼 자포자기적인 행동을 하시겠습니까 ? 아니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어."라고 말을 하는 이스라엘 장관처럼 부정적인 상황만을 늘어만 놓겠습니까 ?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네 명의 문둥병자들이 자신들의 절망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심하고 다 함께 희망의 전진을 합니다. 즉 기왕 여기서 굶어 죽을 바에야 양식이 있는 아람 진영으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희망을 갖고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가에 이르러 본즉 그곳에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많던 아람 군대 사람들이 한 사람도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이렇게 아람 군대가 도망가고 난 그 자리에는 먹을 것이 가득했습니다. 희망을 찾아 나섰던 문둥이들이 그 곳에서 먹고 마시고 금과 은과 의복을 가지고 탈취 물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즉 희망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비참한 사람들인 문둥병자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희망을 찾아 나서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도 하나님은 일어나게 하십니다. 혹시 이 가운데 삶의 소망이 없어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십시오. 희망을 찾아 나서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분명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노라”( 29:13-14).
여러분, 우리 모두 희망을 찾아 나섭시다. 가족 식구들이, 교회 식구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해 주십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힘을 내라고 격려해 주시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이 외국 땅에서 힘을 내라고 격려해 주십시다.
그리고 교우들끼리 희망을 갖고 전진하자고 서로를 격려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모두가 이 외국 땅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며 그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