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0:13 행복해지려면
요술쟁이들이 행복의 비밀을 인간으로부터 없애기로 결정하고 어디에 행복의 비밀을 숨겨야 할 것인가에 대해 토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혜 있는 한 요술쟁이가 "땅속 깊이 행복의 비밀을 묻어 두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대표 요술쟁이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땅을 깊숙이 파 결국은 찾아낼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요술쟁이는 행복의 비밀을 바다 속 깊은 곳에 숨기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표 요술쟁이는 인간들은 물 속 깊은 곳까지라도 잠수하는 법을 배워 결국은 행복의 비밀을 찾아낼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때 또 요술쟁이는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숨기자고 합니다. 그러자 대표 요술쟁이는 이번에도 안되겠다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기어코 가장 높은 산꼭대기까지라도 올라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요술쟁이들은 한숨을 내리쉬고 올려 쉬면서 인간이 발견할 수 없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고 한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대표 요술쟁이는 전혀 뜻밖의 장소를 제안합니다. "행복의 비밀을 숨길 수 있는 곳이 있다. 인간 마음속 깊이 숨기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리석게도 그들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의 비밀을 찾으려고 결코 시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에 불과하지만, 이 전설 속에 들어있는 핵심을 불행하게도 우리 대부분의 인생들은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독일 시인 칼 붓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산 너머 언덕 너머 먼 하늘에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 나는 그것을 찾아 남 따라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 왔다네 산 너머 언덕너머 더욱 더 멀리 행복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행복은 은행의 예금이나, 토지나, 높은 지위나, 부자의 품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 가운데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이 행복의 조건이라고 하는 것을 모두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불행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한 예로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권력자들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최대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불행 속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이 로마 원로원에 보낸 편지나 남긴 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에 대중 불교의 기초를 닦은 원효대사는 불교를 더 공부하려고 당나라 유학의 길을 가는 도중에 산 속 토굴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밤중에 너무 목이 말라 어둠 속에서 물을 찾다가 바가지가 손에 잡혔고 그 속에 든 물을 마시니 감로수처럼 시원하고 맛이 있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날이 밝은 다음에 보니 어젯밤, 바가지로 생각한 것은 오래된 해골이었고 그렇게 맛이 있었던 물은 그 속에 고인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원효대사는 여기서 깊이 생각했습니다.
이 더러운 물을 어젯밤에는 그렇게도 맛있게 마셨는데 지금은 왜 구역질이 날까?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나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세상은 기쁨의 낙원도 되고, 괴로움의 지옥도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에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지만 현명한 자는 마음속에서 행복을 키웁니다.(잠17:22)
사람은 모두 행복을 추구합니다. 행복은 사람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고 목적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벨기에의 작가 마테를링크는 파랑새라는 아동극을 발표했습니다. 형제가 행복을 준다는 파랑새를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여러 날 허기진 채로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그 어디에도 파랑새는 없었습니다. 이 형제는 지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에 와보니까 그렇게 찾아 헤매던 파랑새는 집안에 있는 새장 속에 있었습니다. 이 동화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집안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마음속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내 곁에 있다는 말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행복이란 외부적인 환경에서 오는 줄로 알았기에 늘 어둡고 추운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면서 좀더 행복한 가정과 어린 시절을 가졌더라면, 좀더 행복한 학창시절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늘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이 지난 후에도 늘 부족한 것을 들추어내며 원망을 자주 했습니다. 세월이 십 년, 이십 년 흐르는 동안 사정이 달라져 소위 말하는 외부환경이 무척이나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고요히 생각해 볼 때 환경이 좋아졌다고 해서 전보다 더 행복한가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그 가난하고 춥고 배고프던 그 시절이 아름답고 행복하게까지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과정을 겪고 난 지금에 와서 깨닫는 것은 행복이나 불행은 외부적인 조건이 나 환경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깨달음이라 생각됩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행복은 불신에 있지 않습니다. 볼테르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노년에 글을 썼습니다. "나는 태어나지 않았기를 원한다." 행복은 쾌락에 있지 않습니다. 바이론 경은 어느 누구보다도 쾌락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벌레 같은 인생, 고민, 그리고 슬픔이 나를 외롭게 만든다."
행복은 물질에 있지 않습니다. 미국의 백만장자 제이 골드는 굉장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 행복은 지위와 명예에 있지 않습니다. 베콘스 필드경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젊었을 때는 실수 투성이었고 중년에는 투쟁뿐이었다. 이제 늙으니 후회뿐이다." 행복은 군사적인 영광에 있지 않습니다. 가장 넓은 땅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싸움에서 승리한 후 그의 막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는 더 이상 정복할 곳이 없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32)고 하셨습니다. 또 에이브라함 링컨은 "사람은 자기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고로 행복해지려면 먼저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1. 행복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미국에 록펠러라는 대재벌이 있었습니다. 그 가문에서 부통령이 나오고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가문 중에 하나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록펠러는 너무 가난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부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런 소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목사님으로부터 부자가 되는 한 원리로 십일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듣고 십일조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일자리를 구해서 주급 30달러를 받고 너무 기뻐서 화장실에 가서 그 돈을 세어보았습니다. 마치 천하를 얻은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돈 중에서 3달러를 하나님께 십일조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면서 위장병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벌려는 염려보다 돈을 지키려는 염려로 인해 걱정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돈을 도적맞을 것 같으니까 집에 철조망을 쳤고, 개를 길렀지만 염려가 사라지지 않아서 신경쇠약에 걸리고 위장병까지 얻게 된 것입니다.
위장병으로 고생하던 어느 날, 그는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가난할 때는 잘 살게 해 달라고 해서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돈 때문에 제가 죽게 생겼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감동이 왔습니다. "탐심을 물리치고 나를 위해 좋은 일에 써라." 그래서 그는 많은 돈을 하나님께 바쳐 교회당을 지었는데 그 교회가 뉴욕의 허드슨 강변에 있는 리버사이드 교회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돠."(시128:1,2)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시115:13) 또한
2. 행복은 죄의 용서함을 받음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환경 가운데 행복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단이 그들을 유혹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자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누렸던 바로 그 곳에서 그들은 벌거벗은 수치 때문에 몸부림치고, 하나님께 지은 죄로 인해 불안과 공포가 들어와 절망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행복이란 결코 좋은 환경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참된 행복이란 의를 동반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아담과 하와의 후손된 이 땅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의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으며, 스스로 의를 얻을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위해 의롭게 되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길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을 때 얻게 되는 의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의 용서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며 이러한 의로움이 있을 때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한 수치와 불안, 공포에서 해방되어 행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51:4)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시51:7,8)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3.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고 감사할 때 행복이 옵니다.
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겨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겨울이 좋다. 흰 눈을 볼 수도 있고, 사람을 강하고 진지하게 만들어주니 겨울이 좋다." 봄이 오면 또 이렇게 말합니다.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따뜻하니 봄은 봄대로 좋다." 여름, 가을에 대해서도 "초목이 우거지고 활기에 넘치는 여름은 또 그 나름대로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가을도 좋다. 가을은 우리들에게 겸손을 가르쳐주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주니까."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춥고 게을러져서 싫다. 여름이 되면 덥고 땀이 나서 싫다. 가을이 되면 처량하고 허무해져서 싫다. 봄이 되면 꽃샘바람이 불고 노곤해서 싫다."하고 '싫다', '싫다' 소리를 연발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겨울이면 '아, 어서 여름이 되었으면' 하고, 여름이면 '아, 어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어디에 갖다놓아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여건에 관계없이 항상 행복합니다. 일이 생기면 기회가 주어졌다고 좋아합니다. 고독하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좋아하고, 건강하면 일할 수 있다고 좋아하고, 병들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다고 좋아합니다. 하는 일이 순탄하면 만사를 형통케 해주심에 대하여, 역경에 처하면 자신을 단련시키고 정화시켜주심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복음의 길이 열리면 하나님의 일을 하니 좋고, 다치고 고난당하고 순교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니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물론 이런 자족하는 행복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님에게 이런 자족하는 마음을 달라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에 있으나 캐나다에 있으나,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이나 사시사철 행복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그 불행을 전파하게 되고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교회까지도 불행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어떠한 형편에든지 날마다 행복을 느끼고 사는 사람들은 그 행복을 주위 사람에게도 전하는 행복의 메신저가 될 수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행복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의로움을 얻고, 또한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얻어 짧은 인생을 기왕이면 행복하게 살고, 다른 사람들도 더욱 행복하게 만드는 행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복해지려면
날짜:
200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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