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13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동물이나 사람이나 본능적으로 자기 새끼와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일단 배가 고프면 새끼는 울게 됩니다. 아- 이때 뭘 좀 먹여야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부지런히 먹을 것을 구해옵니다. 그렇게 구해온 먹이를 아구아구 먹는 새끼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모는 기분이 좋습니다. “애야, 많이 묵어라.”
그러나 새끼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병이 들어 빌빌하면 부모는 마음이 안 좋습니다. “애야, 너는 왜 그렇게 아파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냐? 애야, 제발 건강해라. 힘을 내라.” 하고 빌어줍니다. 마음이 아주 강퍅하여 하나님을 안 믿는 부모라도 자기 자녀가 병들면 자연히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부모는 자기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열심에 열심을 냅니다. 기러기 가족으로 지내면서까지 자녀를 교육시키려고 합니다. 그 자녀가 영어도 배우고 경쟁력이 있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서도 암수의 구별이 있듯이 사람들에게도 남녀의 구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둘이 짝짓기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호르몬 작용을 일으켜 본능적으로 짝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도 아담이 홀로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안 좋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짝인 하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짝을 보고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하고 매우 기뻐하고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 시 동물이나 인간들에게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남녀가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으라는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합니다. 저도 혼자도 살아보고 결혼하여 같이도 살아보면서 이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래서 연애는 하되 결혼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 이것 역시 이해가 됩니다. 결혼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묶이게 되고, 남편은 아내에게 묶이게 됩니다. 더구나 자녀를 낳게 되면 그 자녀에게 묶이게 됩니다. 아무래도 자기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더구나 애들이 원해서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게 되면 특별히 남편 즉 아빠는 강아지까지 돌보느라 자기 시간이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배우자가 주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주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강아지가 주는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모가 나이가 들고 늙어 가는데 자기 자녀가 결혼 시기가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혼자 지내는 것을 보면 부모는 마음이 안 좋습니다. 부모는 자기가 죽기 전에 자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자녀의 행복이 곧 부모의 행복입니다. 물론 자녀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아- 아무하고나 결혼을 할 수는 없잖아요?” 맞습니다. 마음에 드는 배우자, 이상형의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하면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이곳 외국 땅 캘거리에서는 한인 인구가 적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기가 확률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일단 남녀가 만나야 결혼이 되든지 뭐가 되든지 하는데 최근에는 COVID-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인구수가 COVID-19 이전에 비해 그리 늘지 않았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소원과 계획이 반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여기 캘거리에서는 교회들끼리 연합이 잘 되고 있습니다. 원주민 선교나 코스타 행사를 같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믿는 청년들이 만나게 됩니다. 교회 행사도 중요하고, 선교도 중요하지만 종종 이런 만남 속에서 청년들이 서로의 짝을 만나고 결혼하신 분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렇게 해서 짝을 만나고 결혼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아- 그것 좋은 것 같습니다. 암튼 부모는 자기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부모인 하나님도 자기 자녀인 우리들이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일까 보냐?”(마7:11) 즉 하나님은 육적 부모보다 더 우리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도 일하시고 있습니다.
옛날 50-60년대 한국에서는 기와집에 살면서 흰 쌀밥을 먹는 것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소원이고 행복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생활이 점차 나아지면서 행복의 조건도 변하고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요즘 당신의 행복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이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당신이 행복해진다는 희망이 확실히 있습니까? 저의 경우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하나님을 만났던 순간입니다. 제가 군대를 제대한 후 26살 때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약속하고, 성자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 음성 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도 있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순간마다 외치는 나의 고백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나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
여러분! 생각해보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토록 바라고 원하던 이상형의 배우자를 만났습니다. 아- 얼마나 행복합니까? 혹은 우연히 산 복권이 1등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행복한 삶에 한껏 기대가 됩니다.
하물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행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 분으로부터 아주 좋은 약속도 받았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오- 도저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너무 행복합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 표어가 이겁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곳, 캘거리 순복음 중앙 교회’ 즉 제가 만난 하나님을 여러분들도 만나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저의 바램입니다.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만 진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행복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그로 인해 저주와 질병과 사망이 따라왔습니다.
기쁨의 에덴동산을 잃고 가시와 엉겅퀴에 찔리며 신음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타락하자 세상도 환경도 같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피곤함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몹시 피곤합니다. 모두가 고통 가운데 신음합니다. 그렇게 고통 속에 불행하게 살다가 결국 죄의 심판을 받고 또 다시 영원한 심판의 처소인 지옥에 빠져야만 하는 것이 인간들의 운명이었습니다.
누가 이 고통 속에서, 이 불행 속에서 우리를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뿐이십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이름이 없습니다. 그 분이 너와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심판을 당했습니다. 고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죄 사함을 얻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불행에서 행복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들어오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면 불행했던 사람이 행복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의 행복의 알파와 오메가요, 행복의 처음과 나중이시오, 행복의 시작과 끝입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행복을 얻는 것이요, 예수님을 잃으면 행복을 잃는 것입니다.
아- 참! 이상합니다. 신기합니다. 예수님이 없었을 때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고 느꼈었는데, 예수님을 얻고 보니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어쩐 일입니까? 분명히 현실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예수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불행과 행복을 가르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주위 환경을 보며 “아이고- 내 팔자야! 나는 왜 이리 불행한고?” 하고 탄식을 했었는데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내 마음에 들어오니까 와-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아니- 내가 달라졌습니다. 알고 보니 나는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존재이고, 그렇게 내가 하나님께 사랑 받는 모습을 보고 모든 만물들이, 찬사들도 나를 부러워합니다.
아- 내가 이런 귀한 존재구나! 이전에는 내 손에 1억 원이 있어도 너무 적다고 원망 불평을 했었는데, 이제는 내 손에 한 푼도 없어도 감사가 나오고 행복감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 옛날 호박국(?) 선지자가 한 고백이 생각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합3:17-18)
마약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마약이 주는 순간의 쾌락과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마약은 그 사람을 파멸과 불행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이 주신 기쁨과 행복은 우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삶의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합니다.
고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행복을 얻을 것인가? 세상으로부터 행복을 얻을 것인가? 신명기 33:29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는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오,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즉 하나님을 믿는 자가 가장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입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10:12-13)
즉 하나님을 힘껏 사랑하고 그 말씀대로 살면 어디서든지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최대의 관심은 그 피조물의 행복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그 자녀들이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최대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하셨습니다. 고로 저와 여러분은 반드시 행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행복을 예수님 안에 두셨습니다. 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면 불행이고,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행복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4-5)
여러분! 저는 이제 죽어도 후회가 없습니다. 다름 아닌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고, 앞으로 죽어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도 주님과 함께 보람된 주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숨을 쉬는 것도 주님과 함께 하고 있고, 자고 깨는 것도 주님과 함께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주님과 함께 하고 있고, 산책을 하는 것도 주님과 함께 합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예배도 드리고,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합니다. 아- 행복합니다.
그래요. 여러분도 반드시 행복해야 합니다. 엄마도 행복해야 하고 아빠도 행복해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도 행복해야 하고, 우리들의 자녀들이, 너와 내가 모두 행복해야 합니다. 부탁합니다. 반드시 행복하십시오.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도 행복하게 하십시오. 아무쪼록 모두가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