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BC 586년에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바벨론은 또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 당시 페르시아의 왕이었던 고레스는 이전에 포로로 끌려왔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파괴된 성전을 건축해도 좋다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때 유다 지파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란 사람이 5만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1차로 고향 땅인 예루살렘으로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힘을 합쳐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건축하려고 기초를 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전건축은 곧 방해에 부딪혔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혼혈민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을 비롯해 여러 정치적인 세력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강력하게 방해했습니다. 그로 인해 성전 건축은 15년 동안이나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믿음도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전 재건이 이렇게 어려운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는 순수함과 열정과 믿음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직 예루살렘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극한 이기주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하나님 중심으로 생겨난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가 세상적인 공동체처럼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하나님 우선으로 살지 못하다 보니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저주스런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 상황이 이러다보니 이제 성전 건축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에 스가랴 선지자에게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Not by might nor by power but by my Spirit)”(슥4:6)
여러분, 오늘날의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도 이 세상에 살면서 때때로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계속 앞으로 전진하고 나아가야 되는데, 그 자리에 멈추거나, 도리어 후퇴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안 좋아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 희망마저 뚜렷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솔직히 좀 낙심이 되기도 합니다.
더구나 캐나다라는 외국 땅에서 그런 능력의 한계에 빠질 때에는 그 낙심의 깊이가 더 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 이렇게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는 상황에 빠질 때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오늘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이제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주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신을 통하여 성전 재건의 역사를 반드시 완성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대로 성전 재건은 적들의 끈질긴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서 좀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의 신으로 된다.”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으로 된다.”고 해도 그 뜻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굳이 “하나님의 신으로 된다.”고 했을까요? 오늘은 이에 대해 같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만 유일신으로 믿습니다. 예수님이나 성령님은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들은 여호와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 세 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믿습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부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면도 나오고, 성자 예수님이 일하시는 장면도 나오고, 성령 하나님이 일하시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리고 이들 세 분이 같이 연합하여 일하시는 장면도 나옵니다. 특히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을 사용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신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의 신이라고도 하는 성령님을 통해서 그 사람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 중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하매”(출31:3, 삼상10:10, 대하24:20) 즉 그들도 우리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니까 아주 어려운 불가능한 일들도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특히 신약 시대인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님이 우리 믿는 사람들 안에 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날을 가리켜 ‘성령 시대’라고도 합니다. 이에 대해 구약 성경의 요엘서와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에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라.”(욜2:28, 행2:17)
예수님의 경우도 이미 성령으로 잉태가 되었지만 또다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로부터 메시아로서 공생애의 사역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시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다.”(행10:38)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도 육체로 오셨을 때에는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시므로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12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3년 동안 예수님과 같이 동고동락하며 지내면서 많은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예수님을 배신하고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지만 결국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다 보니 또 다시 갈릴리 바다의 어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희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소명을 모르는 것은 아닌데, 그것을 실천할 만한 힘이 떨어졌습니다. 영적 배터리가 다 떨어졌습니다. 다시 충전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이에 대해 예수님도 하늘나라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성령)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9)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이 약속을 따라 12제자를 비롯해 120명의 성도들이 열흘 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신, 성령님이 충만히 임했습니다. 즉시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에게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전도하려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왔습니다. 사랑의 힘이 생겼습니다.
아니-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겁니까? 도대체 그들이 왜 이렇게 갑자기 변했습니까? 다름 아닌 하나님의 신,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된 겁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아멘!
저는 최근 우리 교회의 전도 운동을 드라이브하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COVID-19으로 인해 하지 못했던 전도를 다시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근 1년간 저와 여러분들이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수고 많이 했습니다. 결국 COVID-19 이전의 성도님들 수를 회복했습니다. 이제는 더욱 치고 나가야 합니다. 더 전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도 전도하며 열매를 맺자고 합심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일예배 광고 때에는 “으샤으샤! 전도하자.”고 다함께 힘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몇 주간 새신자가 안 오고 있습니다. 아- 기분이 별로 안 좋습니다. 아니- 왜 새신자가 안 옵니까? “아- 목사님, 여기는 한국이 아니고 캐나다입니다. 그것도 밴쿠버나 토론토처럼 큰 도시가 아닌 캘거리라고요. 그렇게 매주 새신자가 올 수 있을 정도로 한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뭐- 이렇게 핑계를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가 외국 땅이다 보니 먹고 살기에 바쁘기도 하고요. 암튼 핑계를 되려면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반면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잖아요. 하나님이 “애들아, 너희는 외국 땅에서 먹고 살기 힘드니까 전도는 하지 않아도 된단다. 외국 땅에서는 전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란다.”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내 말을 전하라.”(겔2:7) 여러분, 주님은 말씀합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23)
여러분, 성전의 빈자리에 계속 하나님의 백성들로 가득히 채워야 합니다. 누가요? 아- 내가요. 같이 따라해 봅시다. “주여, 제가 사람을 강권하여 아버지 집을 채우겠습니다.” 아멘! 근데 이게 잘 안될 때 우리는 오늘의 분문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체크해야 합니다. “아- 나에게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의 힘이 약해졌구나. 다시 성령 충만을 받아야겠다. 주여- 다시 한 번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옵소서.”
그리고 혹시 내가 인격자이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않았는가, 죄를 짓지는 않았는가, 불순종 하지 않았는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전도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성령님의 역사가 끊어지고 소멸된 것도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신인 성령님은 우리들에게 전도를 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어려운 일, 안 되는 일,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의 힘으로, 너희 능력으로는 안 된다. 그러니 하나님의 신,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라.” 여러분, 말세에 우리가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세에 우리가 이 외국 땅에서도 기분 좋게 살기 위해서는, 인생의 끝까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신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고로 이곳 캐나다 땅에서 늘 성령님과 늘 동행하십시오. 새벽에도,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외치십시오. “성령님. 오시옵소서. 성령님, 인정합니다. 환영합니다. 성령님, 저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성령님께 이끌리어 하나님의 일, 특히 전도를 이 외국 땅에서도 열심히 하다 보면 여러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삶의 일들을 성령님이 대신 해주십니다.
결론입니다. 내 힘과 능력이 딸릴 때, 그래서 마음먹은 대로 일이 잘 안될 때, 그래서 기분이 울적하고 살기가 싫을 때,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깨달으십시오. “아- 내 힘으로 하려고 하니까 잘 안 되는구나. 하나님의 신의 도움을 받아야 되겠구나. 그렇습니다. 성령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성령님을 불편하게 한 것이 있다면 용서해주십시오. 앞으로 저와 함께 일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옵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