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10:17-30 갈등 속에서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의 하나인 햄릿에 나오는 대사 중에 이런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이와 똑같은 일, 즉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어보신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갈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평범한 갈등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주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갈등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자살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 갈등을 깊이 하다가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혹시 이 자리에 “죽을까 말까?” 하고 갈등하는 분이 있습니까? 부탁입니다. 사십시오. 살아야 합니다. 같이 따라합시다. “살자!”
여러분, 사람이 생각하는 존재인 이상 누구나 갈등을 겪게 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해결하느냐, 혹은 어느 것을 택하느냐 하는 갈등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 갈등이 단지 자기만이 겪는 사소한 갈등이라면 그리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갈등이 다른 사람과 연관이 되고 대단히 큰 갈등일 때에는 그에 따라서 스트레스도 커지게 됩니다.
혹시 요즘 어떤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쪼록 그 갈등이 가장 좋게 해결이 되어 스트레스와 근심이 사라지고, 평안과 행복이 다가오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갈등을 겪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한 부자 청년이 나옵니다. 재물이 상당히 많은 청년입니다.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킨 착하고 모범적인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주님이 말씀합니다.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막10:21)
이 말씀을 듣고 이 청년 갈등합니다. 갈등은 근심을 낳습니다. 갈등은 슬픔을 야기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를 때에는 그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재물이 많이 없었으므로 예수님도 그에게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는 재물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재산 중에 그저 십분의 일만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면 덜 갈등 할 텐데, 모두 다 주라고 하니 “나는 뭘 먹고 사느냐? 그렇게 돈을 다 주고 나면 나는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냐? 아무리 예수님이 좋아도 돈을 모두 포기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느냐?” 갈등합니다. 그리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고 맙니다.
만약 이 청년이 오늘의 갈등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그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랐더라면 그 청년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아마 수제자가 되었을는지 모릅니다. 그 청년의 이름은 성경책에 기록되어 신앙의 위인으로 두고두고 칭송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청년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맙니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갈등의 주범이었습니다. 돈이 원수였습니다. 차라리 돈이 없었다면 예수님 따르기 참 쉬운데 돈이 많아서 예수님 따르는데 갈등이 생겼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도 돈 때문에 갈등하는 분이 있습니까? 도대체 돈이 뭐기에 여러분을 그렇게 갈등으로 몰아갑니까? 아무쪼록 돈의 갈등에서 자유를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입니다. 돈은 생명보다 귀하지 않습니다. 돈으로 인해 평안을 잃어버리는 것은 좋지 못합니다. 돈을 정복하십시오. 돈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돈 때문에 싸우지 마십시오. 돈으로 인해 가족의 사랑, 부부의 사랑이 깨지지 마십시오.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돈을 더 사랑하다가 천국을 놓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막10:24-25) 제자들이 심히 놀랐습니다. 그리고 서로 수군수군 거립니다. ”야-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예수님이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그러자 베드로가 튀어나와 떳떳이 말합니다. “주여,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가난한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려봤자 몇 푼이나 버렸겠습니까? 만약 베드로가 부자 청년처럼 많은 재물이 있었더라면 그도 예수님을 따르는데 깊이 갈등했을는지 모릅니다.
요즘도 교회 다니면서 갈등하는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돈이 없으면 갈등이 덜한데 돈이 좀 있으니까 갈등도 더합니다. 특히 십일조의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십일조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믿으면서 십일조 때문에 갈등 안해본 사람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갈등은 근심을 낳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갈등하고 근심하면 교회 다닐 맛이 안납니다. 십일조의 갈등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사람 때문에 갈등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좋다고 “아이 러브 유. 유 러브 미.”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미워서 죽겠습니다. 한 대 때려주고 싶습니다. 확- 꼬집어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어휴- 주여, 어찌합니까?” 갈등합니다. 사랑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미운 걸 어떡합니까? 아무쪼록 사람과의 갈등도 아름답게 해결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사람 사는 세상에는 너와 내가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너와 나 둘 중에 하나가 반드시 틀린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갈등이 일어나는 요인은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판단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 사는 세상에는 반드시 갈등이 일어납니다. 로봇의 경우는 갈등이 안 일어납니다. 그냥 그 안에 주입한 정보대로 움직이기만 합니다. 그러나 생명체에는 갈등이 있습니다. 당신이 갈등하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갈등의 종류가 사람마다 좀 다를 수 있습니다. 한 처녀가 결혼을 앞두고 갈등합니다. “미스터 김을 택할 것인가? 미스터 이를 택할 것인가?” “돈을 택할 것인가? 인물을 택할 것인가?” “주여, 이 남자입니까? 저 남자입니까? 주여, 가르쳐 주십시오.” 아무쪼록 빨리 결혼해서 이런 갈등에서 해방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결혼한 사람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주여, 미스 김입니까? 미스 이입니까?” 하고 갈등을 하면 어떡합니까? 물론 결혼을 해보니 이 남자 아닌 것 같고, 이 여자 아닌 것 같을는지 모릅니다. 혹시 이런 갈등을 아직도 하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외치십시오. “쓸데없는 악한 갈등을 일으키는 귀신아, 내 안에서 물러가라.”
저는 아무개 가수의 그 노래 좋아합니다. “(주)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처음 만나 맺은 마음 일편단심 민들레야.... 긴 세월 하루같이 하늘만 쳐다보니 그이(주님)의 목소리는 어디에서 들을까 일편단심 민들레(김원효)는 일편단심 민들레(김원효)는 떠나지 않으리라.”
여러분,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에게 일편단심 민들레가 되어야 합니다. 괜히 갈등하지 마십시오. 더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예수님과 약혼한 신부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좋으신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최고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큰 행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함께하면 모든 것이 넉넉합니다. 가장 좋으신 예수님을 믿으면서 “그만 믿어볼까? 예수님과 이혼할까?” 하고 갈등하지 마십시오. 같이 따라하십시오. “일편단심 김원효야! 떠나지 않으리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런 갈등을 하셨습니다. “주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옵소서!” 사느냐 죽느냐의 갈등이었습니다. 이 갈등을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풀면 모든 사람의 구원이 성취됩니다. 너와 내가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모든 인류는 불행해집니다. 너와 내가 불행해집니다. 이때 주님은 이 갈등을 이렇게 푸셨습니다. “주여, 내 뜻대로 마옵시오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갈등이 있습니까? 주님처럼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골고다 언덕 위로 올라가십시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마음 속에 여러 가지 갈등이 일어날 때 주님의 뜻을 따르십시오.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복수를 하려고 하지 말고 도리어 축복해주며 주님께 맡기십시오. 조급해하지 말고 주님을 기다리십시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매우 어렵습니다.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을 너무나 쉽게 인간적으로 풀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일이 틀어지고 맙니다. 나의 인격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장래의 축복이 더뎌질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갈등은 일어납니다. 그곳에서도 이곳에서도 갈등은 일어납니다. 오늘도 내일도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 속에서 후퇴하지 마시고, 갈등 속에서 성장하십시오. 갈등을 통하여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갈등이 나를 죽이도록 내버려 두지 마시고, 갈등을 통하여 더욱 좋은 모습을 갖추도록 하십시오. 아무쪼록 갈등 속에서도 더욱 행복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갈등 속에서
날짜:
201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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