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맞이하며

날짜: 
2004/10/25
설교: 

딤후4:9-21 겨울을 맞이하며
캘거리의 날씨가 춥고 겨울이 길지만 그래도 보통은 10월까지는 가을이요, 할로윈 데이 때쯤인 10월 말이나 11월 달이 되어야 비로소 겨울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올해 캘거리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온 것 같습니다. 교회 앞 잔디밭의 떨어진 낙엽을 채 쓸어 담기도 전에 벌써 눈으로 덮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날씨만 겨울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도 겨울이 찾아옵니다. 인생의 겨울이란 다름 아닌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입니다.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때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봄과 같은 유년기가 있고, 여름과 같은 청년기가 있고, 가을과 같은 장년기가 있다면, 또한 겨울과 같은 노년기가 있습니다.
날씨는 아무리 변덕스러워도 봄이 오고 나서, 여름이 오고, 그 후에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지만, 인생에 있어 겨울이 찾아오는 것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봄이 오다가 금방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고, 한창 무더운 여름철에 갑자기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인생의 겨울인 죽음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사람마다 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인생의 겨울인 죽음의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만약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인생의 겨울 즉 죽음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과연 그 겨울을 어떻게 맞이하고 준비하겠습니까?
유머집에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감독과 코미디언과 장의사가 자신의 죽음의 순간에 무슨 말을 할까? 영화감독은 이렇게 말을 한다고 합니다. "Ready Go!" 일평생 동안 "Ready go!"라는 말만 외쳤으니까, 자기가 죽을 때도 그 말을 외치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코미디언은 죽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죽을 것 같습니까? "웃지 마세요! 저 진짜로 죽는 것입니다."라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의사는 죽을 때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죽을 것 같습니까? "드디어 내가 우리 집 매상을 올리게 되었도다!" 그러면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자기의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세 가지 정도 유형으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줄 압니다.
첫째로, 죽음을 기피하는 형입니다. "내가 왜 죽어? 나는 안죽어! 의사가 잘못 진단했지! 그럴 리가 있나?" 끝까지 죽음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죽음을 탓하는 형입니다. "내가 남편을 잘못 만나서, 내가 아내를 잘못 만나서, 내가 직장 상사를 잘못 만나 그 스트레스로 이렇게 죽는 거야!"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탓하는 형입니다. 셋째로, 죽음을 소망하는 형입니다. 죽음의 저 건너편에 있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소망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는 형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형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이 바로 여기에 속합니다. 지금 바울은 70세 정도가 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로마의 감옥에 두 번째로 갇힌 상태입니다. 말하자면 그는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것입니다. 또 거기다 계절적으로도 겨울이 가까웠습니다. 그러한 때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유언 같은 편지를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디모데후서입니다. 지금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고 있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그리고 21절 말씀입니다.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그 당시에는 겨울이 되면 지중해에 배가 출항을 할 수 없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나빴습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거세게 불고 물결이 세차게 일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중해 연안은 추운 겨울을 만나면 가끔씩 바닷물이 얼어붙어서 배가 항구에 접안 할 수가 없게 됨으로 자연히 항해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을이 되어 출항하는 배를 타지 못하면, 몇 달 지나서 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복음을 위하여 결혼을 포기하였던 인물입니다. 그러니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의지할만한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순교를 앞두고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죽기 전에 꼭 한번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겨울이 되기 전에 어서 속히 오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겨울을 맞이하며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바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의 삶 속에 거쳐간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여기에 나오는 그레스게와 디도는 신실한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일 때문에 부득이 바울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처음 나오는 데마였습니다. 옥중서신인 빌레몬서와 골로새서 말미에 보면 데마의 이름이 나옵니다. 거기서 바울은 데마를 가리켜서 "나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데마는 어느 순간까지는 바울과 함께 하면서 바울의 옥바라지를 잘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계속 오래 되니까 참지 못하고 중도에서 포기한 채 자기의 고향 데살로니가로 가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기의 곁을 떠나가는 데마를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은 너무나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가고 말았구나!"
지금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데마, 그 나쁜 놈! 나를 배신했어! 그러니 디모데야, 너는 그런 놈일랑 두 번 다시 상종하지 말아라!" 이런 의도로 말씀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바울의 마음 속에는 데마를 향한 연민의 정이 있습니다. 데마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데마가 조금만 더 참았으면 좋았을 텐데! 데마가 그것을 참지 못했구나!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줄 압니다.
또한 11절 말씀입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모두가 다 떠났지만 감사하게도 의사인 누가는 사도 바울의 옥중 뒷바라지를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하고 그의 인생을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훗날 사도 바울의 행적을 중심으로한 사도행전을 상세히 기록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특별히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가는 사도 바울과 몹시 섭섭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나바와 더불어 1차 선교여행을 떠났을 때 수종자로서 마가를 데리고 갔었는데 중간에 힘들다고 예루살렘 자기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바로 마가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2차 선교 여행시에 바울과 바나바가 크게 다투고 헤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 이후로 마가는 복음의 현장에서 그 이름이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그가 하나님 앞에 서야할 텐데 문득 마가가 떠오른 것입니다. 그와의 섭섭했던 관계, 아팠던 마음을 생각하면서 그를 불러다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보게 마가, 내가 전에 너무 심했지! 내가 원래 성격이 곧아서 그래 용서하게나!" 이렇게 마가를 불러 위로하고 난 뒤 바울은 하나님에게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물론 잘못은 어디까지나 마가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마가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 이하에 보면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바울의 대적자였습니다. 바울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혔던 사람입니다. 바울의 사역을 이렇게 저렇게 심히 방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알렉산더를 개인적으로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하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니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그를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6절 끝 부분에 보니까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드리셨던 기도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드린 기도를 연상케 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알렉산더로부터 많은 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모든 사람의 허물을 이해해 주고 덮어주려고 애썼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인생 길을 걸어오면서 때로는 데마와 같이 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 것입니다. 때로는 마가처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서로 화목하지 못하게 지낸 사람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또 알렉산더처럼 우리에게 많은 해를 입힌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겨울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바울처럼 너그러운 마음과 사랑의 온정을 가지고 모든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하기를 바랍니다. 용서해야 될 사람은 용서해 주고, 사과해야 될 사람에게는 사과할 수 있는 신앙의 담력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바울처럼 겨울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바울은 여기서 디모데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서 로마로 오는 도중, 드로아에 잠시 들러서 자신이 가보의 집에 맡겨놓은 두 가지를 대신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겉옷'입니다. 겉옷이란 털로 만든 두툼한 겨울 외투를 가리킵니다. 바울이 더울 때는 그것을 들고서 선교 여행을 하기에 짐이 되니까 그것을 잠시 가보의 집에 맡겨 놓은 것입니다. 이제 계절적으로 겨울에 가깝습니다. 날씨가 추워집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나이도 많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추위를 더 많이 느끼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육신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자기의 겉옷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의미합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을 양가죽에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두루마리로 보관했습니다. 그러니 부피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몹시도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것을 들고서 이리저리 선교여행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을 만한 사람인 가보의 집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잠시 맡겨 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캘거리의 겨울과 밤은 유난히 깁니다. 이 기나 긴 겨울을 보내면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원하건대 사도 바울처럼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기 전 그 분의 말씀인 성경을 보다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다가 하늘나라에 가시기 바랍니다.
3.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바울 곁에 늘 함께 해주셨습니다. 바울에게 힘을 주시고 그로 강건케 해주셨습니다. 그로 하여금 복음 전파의 사명을 완수 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셨습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
운 일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늘 바울을 보살펴 주시면서 그 어떤 무서운 사자의 입에서도 바울을 지켜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은 주의 크신 은혜라"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18절의 말씀같이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8절 하반 절에는"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북받쳐 오르는 감격이 충분했던 것입니다.
중세에 니콜라스라는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내일이면 화형에 처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의 동생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어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니콜라스는 자기 동생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얘야! 별 걱정을 다하는 구나. 나는 오늘도 평소와 같이 두 다리를 쭉 뻗고 편히 쉴 것이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내일은 영원하신 주님의 품안에 안기게 되겠지. 그러니 너는 걱정일랑 말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것이 바로 인생의 겨울을 만난 성도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곳 캘거리에서 겨울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겨울을 맞이하여 우리는 바울처럼 사람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정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면서 겨울을 지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