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이혼

날짜: 
2004/08/09
설교: 

막10:2-9 결혼과 이혼
옛날 어느 마을에 서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부부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건만 이상하게도 아이가 생기지를 않았습니다. 남편의 집안은 자손이 귀했기 때문에, 남편의 친척들은 가문의 대를 이어줄 아이가 태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 부부에게서는 아이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는 부부가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이혼을 허용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친척들은 그 법에 따라 부부가 갈라설 것을 계속해서 종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문제로 깊이 고민하던 그들 부부는 어느 날 나라 안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어른 한 분을 찾아갔습니다. 그 분은 모든 일을 지혜롭게 잘 처리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 어른은 부부에게서 자초지종을 다 듣더니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먼저 남편을 불러서 귓속말로 몇 마디 일러주었습니다. 남편은 잘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런 뒤에 지혜로운 어른은 부인을 불러서 역시 귓속말로 몇 마디 일러주었습니다. 부인도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 다음날 남편은 지혜로운 어른이 일러주는 대로 양가 친척들에게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여러분이 원하시는 대로 이혼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부부에게 여러분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우리가 조촐한 잔치를 열고자 합니다. 부디 모두가 오셔서 석별의 정을 함께 나누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드디어 이혼을 위한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곳에 참석한 친지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여자가 불쌍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가문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갈라서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잔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남편은 앞에 나아와서 친척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부부는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 부부가 오늘 이혼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저의 아내는 우리 가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셈입니다. 따라서 저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제가 가진 것 중에서 무엇이든지 아내가 가장 원하는 것 한 가지를 이혼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제 의견에는 이의가 없으실 줄 압니다."
그 소리를 듣고 친척들 모두가 동의하는 뜻으로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이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지혜로운 어른이 일러준 대로 말을 했지만, 정작 자기 아내가 무엇을 요구할는지 남편인 자기 자신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아내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모두가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동안에 금은패물을 넣어두었던 보석상자를 요구할거야. 아마도 살고 있는 집을 달라고 할걸?"
그들은 나름대로 추측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내게 약속한 것처럼 내가 가장 원하는 당신을 나에게 주시기를 원합니다."
뜻밖의 말에 모두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멍하게 서 있던 남편은 비로소 아내의 뜻을 깨닫고서 덥석 아내를 끌어안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친척들은 그들 부부의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은 듯이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는 아무도 그들 부부에게 갈라서라고 종용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도 이 두 사람이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근본 원인은 둘이 계속 사랑을 하고 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 만약 그 둘이 서로
사랑하지 않고 서로를 증오하고 있었다면 아마 이런 관습과 이유를 빙자하여 벌써 이혼을 했을는지도 모른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이혼을 너무나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격차이가 32%로 제일 많고, 그 다음이 시댁과의 관계로서 18%를 차지하고, 세 번째가 배우자의 성적인 부정으로 1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경제적인 이유라든지 기타 의견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한번 결혼하면 이혼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또 이혼이란 말은 꺼내지도 않았는데 요즘은 조그만 이유만 생겨도 이혼이니 위자료니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특히 요즘 와서는 여권신장의 결과로 인해서 남자가 여자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것보다, 오히려 여자가 남자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어떤 신혼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시어머니가 함께 유원지에 갔습니다. 뱃놀이를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잘 놀다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아내의 마음 속에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만일 뱃놀이를 하다가 배가 뒤집혀서 어머니와 내가 물에 빠져서 사경을 헤매게 될 때 남편은 누구를 먼저 건져줄까?"
당연히 남편은 아내인 자기를 먼저 구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연애하던 시절에 남편은 늘 입버릇처럼 아내인 자기 없이는 못산다고 말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궁금한 생각에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보, 만일 뱃놀이하다가 배가 뒤집혀서 어머니와 내가 빠져 사경을 헤맬 때 당신은 누구 먼저 건져 줄거야?"
아내는 당연히 남편이 아내인 자기를 먼저 건져줄 것이라는 대답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어머니를 먼저 구해드려야 되겠지!"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아내야 몇 번이고 다시 얻으면 되지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는 오직 한 분뿐이지 않소. 그러니 어머니를 먼저 구해 드려야 옳지 않겠소?"
물론 아내는 이성적으로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너무나도 그 말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내는 남편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애정이 식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고민하다가 결국은 이혼상담소의 문까지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상담소장은 아내의 말을 다 듣고 난 뒤에 이렇게 일러주었습니다. "부인, 그러지 마시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수영을 배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그런 일을 당할지라도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요즘 뿐만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혼을 너무나도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이혼을 하면서도 수치스럽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혼을 하나의 용기 있는 행동이나 미덕이 되는 것처럼 간주했습니다. 심지어는 원치 않는 아내를 내보내는 것이 종교적인 의무로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의 영향이었습니다.
탈무드에 보면 이러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나쁜 아내는 남자에게 있어서는 문둥병과 같다. 어떻게 하면 문둥병에서 치료할 수 있는가? 아내와 이혼하는 것이 문둥병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또 어떤 서기관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If a man has a bad wife, it is a religious duty to divorce her(만일 어떤 남자에게 나쁜 아내가 있으면 그와 이혼하는 것이 종교적 의무이다)."
그러면 "나쁜 아내" 곧 "버려야 할 아내"는 누구인가? 그 당시에는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 앞에서 남편에게 무안을 주었을 경우도 이혼의 사유에 해당이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이것이 점차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음식을 만들다가 요리를 태웠거나 음식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서 음식의 맛이 제대로 나지 않을 경우도 이혼사유가 되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에 남자들은 별의별 사유를 다 만들어서 아내를 내버렸습니다. 그저 아내가 싫으면 특별한 사유 없이도 무조건 내보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2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19장6절에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여러분,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임의로 맺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신성합니다. 그런데 이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임의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혼을 미워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혼을 하면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8장11절의 말씀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즉 예수님은 우리의 음행, 우리의 부족, 우리의 간음, 우리의 이혼까지도 다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해서 결론적으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8장11절의 말씀입니다.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즉 두 번 다시 똑같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미 과거에 쓰라린 이혼의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두 번 다시 똑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지금의 나의 아내, 지금의 나의 남편에게 더욱더 적극적으로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혹 어떤 분은 "예수님도 배우자가 음행을 저지르면 이혼의 조건이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 하고 상대방이 음행을 저지르면 "때는
이때다 !" 하고 이혼을 하는 강행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호세아서를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얼마나 음란한 여인이었습니까?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내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갈라서라."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내라 할지라도 용서하고 데리고 와서 함께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사랑을 우리의 배우자에게 베풀어주시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음행은 이혼의 조건이 된다고 하셨습니까 ?"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뜻을 오해하지 말아야 됩니다. 본시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사람은 남자든지 여자든지 할 것 없이 돌로 쳐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음행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혼입니다. 즉 음행으로 말미암아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을 살리려고 이혼이란 방법을 허락하신 것이지 이혼을 하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요즘은 초라한 더블보다는 화려한 싱글이 낫다며 결혼을 박차고 이혼에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혼은 슬픔, 허탈감, 분노, 좌절, 절망, 우울, 자기연민, 자학, 불면증, 집중력 상실 등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게 합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혼은 해결책이 아니라 자살책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1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