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교만 때문이었다.

날짜: 
2009/05/31
설교: 

잠16:18 그것은 교만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 1912년에 영국에서 어마어마한 배 한 척을 건조했습니다. 총톤 수 46,328톤, 길이 259m, 깊이 19.6m 폭 28.1m나 되는 초호화 여객선이었습니다. 영국은 이 배의 이름을 '타이태닉'이라고 명명하고 '절대로 침몰할 수 없는 배'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도 모자랐던지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고 호언장담하며 객기를 부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배가 1912년 4월 14일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 처음 항해를 하던 중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고로 탑승자 2208명 중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1513명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캐나다 동해안에 있는 뉴펀들랜드 섬에 이르기 전 북극에서 떠내려 오는 빙산을 조심하라는 무전을 다섯 번이나 받았습니다. 여섯 번째 무전 내용은 "빙산이 떠내려 오고 있으니 내다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타이타닉 호의 항해사는 그 배의 안전성만 믿고 교만한 태도로 말했습니다. "닥쳐, 나는 바쁘단 말이야."
그리고 정확히 35분 후 그 호화여객선은 북극에서 떠내려 오는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여 바다 밑으로 고스란히 가라앉았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배를 띄운 역사 이래 최대의 해양 참사였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대참사가 생겼습니까? 다름 아닌 인간의 교만이 빚어낸 비극이었습니다. 자고로 쇠망하는 인간 역사의 중심에는 늘 인간들의 교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구약성경 다니엘서 4장에 보면 이런 실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절대 권력을 가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보니 땅의 중앙에 매우 큰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가 자라서 그 끝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가 하도 커서 들짐승들이 그 나무 그늘에서 쉬고, 새들도 그 가지에 깃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룩한 천사가 내려와 그 나무를 베고, 그 나무에 깃들인 새들과 짐승들을 다 떠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그루터기만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그 나무의 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짐승의 마음을 받아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과 더불어 7년을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왕 앞에 불려가 이 꿈에 대한 해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왕이여, 그 큰 나무는 왕을 뜻합니다. 그런데 왕이 앞으로 정신이 이상해져서 들짐승과 같이 7년 동안 하늘의 이슬을 맞고 지낼 것입니다." 이 꿈을 꾸고 난 후 1년 후에 진짜 다니엘의 해석대로 느부갓네살 왕은 정신이 이상해져서 짐승처럼 행동을 했습니다. 결국 꿈대로 그는 7년 동안 소처럼 풀을 뜯어 먹고 머리털과 발톱이 독수리와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살펴보니 그 원인이 이러했습니다. 하루는 느부갓네살 왕이 바벨론 궁의 옥상을 거닐며 이렇게 스스로 말했습니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 아니냐?"(단4:30) 에헴!
이 말이 채 마치기도 전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뜯어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단4:31-32)
즉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라의 권세를 준 줄 모르고 교만을 떨자 그는 정신이 이상해지고 짐승처럼 되었고, 다시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아하, 하나님이 내게 이런 권세를 주신 것이구나!" 하고 겸손히 깨달으니까 인간의 총명이 다시 돌아와 왕의 권위를 회복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일을 겪고 난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능히 낮추심이라."(단4:37)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살인죄도 큰 죄고, 음행죄도 큰 죄입니다. 또한 남을 사기 치는 것도 큰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살인을 저지른 오른편 강도도 구원하셨고, 음행을 밥 먹듯이 저지른 창녀도 용서하셨고,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하는 세리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부류의 사람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교만을 떨었던 사람들을 향하여서는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책망하며 그들을 멀리하셨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자비와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는 살인죄도 아니요, 음행죄도 아니요, 사기죄도 아니요, 바로 교만죄입니다. 성경은 교만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느니라."(약4:6)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잠16:5)
저의 경우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한 문제를 놓고 1년이 넘게 집중기도한 제목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40일 산기도도 했습니다. 종종 금식기도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잘 해결이 안됩니다. "도대체 이 문제는 왜 이렇게 안풀어지나?" 저는 너무도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 제가 존경하던 목사님이 나타났습니다. 그 묵사님이 저를 물끄러미 보시면서 말씀합니다. "기도하라."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내가 얼마나 많이 기도하는데 계속 기도하라고 그러는 거야!" 저는 기도하라는 소리에 조금 이상하기도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제가 교만해서 그런 것 아니에요?" 그러자 그 목사님이 "어떻게 알았어?" 그러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제가 교만하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교만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하는 것은 그 사실을 깨닫기가 상당히 힘이 든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상당히 쇼크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 겸손한 줄 알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교만했구나!" 여러분, 교만한 사람이 "아, 나는 교만한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아, 내가 사람을 죽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음행을 저지른 사람도 "아, 내가 음행을 저질렀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사기를 치거나 강도짓을 한 사람도 "아, 내가 사기를 치고 강도짓을 했구나!" 하고 깨닫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이 자기의 교만을 깨닫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세상 법정에서도 강도짓이나, 음행죄, 살인죄를 저지르면 이에 대한 죄를 지적하고 형벌을 줍니다. 그러나 세상 법정에서 "당신 교만하니까 징역 몇 년! 당신 교만하니까 사형!"이라는 판결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교만죄는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만죄는 큰 죄가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고로 사람들은 교만죄를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알고 하나님의 성품을 아시는 분들은 교만죄가 가장 큰 죄인 것을 깨닫습니다. 교만죄가 모든 죄의 원인인 것도 깨닫습니다. 교만죄가 있으면 하나님이 도저히 가까이 하실 수 없다는 것도 깨닫습니다. 고로 크리스천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죄는 교만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교만, 자만, 거만, 오만을 싫어합니다. 국어사전에 보니 교만, 자만, 거만 오만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만(驕慢) : 잘난 체하며 뽐내고 건방짐, 자만(自慢) :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것을 스스로 자랑하며 뽐냄, 거만(倨慢) : 잘난 체하며 남을 업신여김, 오만(傲慢) :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 즉 교만 자만 거만 오만이 대체로 비슷한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만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휴페레파노스'로서 다른 사람들 위에 자신을 올려놓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교만이란 쉬운 말로 "나 잘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니들보다 똑똑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내가 남들보다 더 높아져야 되겠다. 내가 남들보다 더 존경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자기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교만해지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남들보다 더 용모가 좋다든지, 남들보다 더 돈이 많다든지,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웠다든지, 남들보다 더 재주가 있다든지, 남들보다 더 명예나 지위가 높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신앙의 교만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 신앙의 교만은 다른 교만보다 더욱 심각한 질병입니다. 예수님이 질책한 사람들은 모두 이런 신앙의 교만이 들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신앙의 교만의 덫에 걸리면 스스로 헤어 나오기가 상당히 힘이 듭니다. 지금 온 세계에 여러 바이러스가 많이 있습니다. 조류 독감 바이러스도 있고, 돼지 독감 바이러스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교만 바이러스입니다. 교만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다툼이 생깁니다. 수욕이 찾아옵니다. 멸망도 찾아옵니다. 고로 성경 시편1:1에는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학생은 선생님의 말을 무시합니다. 교만한 지도자는 국민의 뜻을 저버립니다. 교만한 직원은 매니저의 말을 무시합니다. 교만한 아내는 남편의 말을 말같이 여기지 않습니다. 교만한 성도는 목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고로 교만에는 참 지혜가 없습니다. 교만에는 아집과 고집만 생겨납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 결과 화목과 화합이 달아납니다. 천사가 교만해지면 마귀가 되는 것이요, 에덴동산에 교만이 들어오면 저주와 엉겅퀴도 생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훌륭한 왕이었던 웃시야 왕도 교만하여 제사장의 권위를 침범하다가 문둥병이 들었고,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도 교만하게 모세를 판단하다가 문둥병에 걸렸고, 느부갓네살 왕도 교만하다가 정신 이상이 되고 짐승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즉 그것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 문제가 생긴 것도 교만 때문이었고, 그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는 것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고로 문제해결의 근본은 교만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교만을 깨닫고 교만죄에서 돌이켜 겸손한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개구리 올챙잇적 시절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 못먹고 못살았던 가난했던 그 시절을 떠올려야 합니다. 비난과 조롱을 당했던 어려운 시절도 떠올려야 합니다. 병들어 신음하면서 "하나님, 저의 병을 제발 고쳐주시옵소서!" 하고 매달렸던 시절도 생각해야 합니다. 처량하고 불쌍하고 애처로웠던 과거도 회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안된다. 절대로 교만하지 말자."
여러분,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길어야 100년 정도 밖에 살지 못하다가 죽어야하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으면 교만해지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 죽을 때에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을 사는 우리가 스스로 잘났다고, 스스로 위대하다고 교만해지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말도 안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한국말로 하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입니다. 서로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도 알고 보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의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거기에는 항상 교만이란 녀석이 뱀처럼 꽈리를 틀고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그 숨어 있는 교만의 독사를 쫓아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축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지 못합니다.
즉 불통의 원인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문제의 원인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고생의 원인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막힌 것도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교만이 심판을 자초했고, 인간의 교만이 에덴동산을 파괴했고, 인간의 교만이 큰 고통을 낳았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이 교만입니다. 고로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교만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