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오셨다.

날짜: 
2023/12/25
말씀: 
마1:20-23
말씀구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설교: 

여러분, “그분이 오셨다.” 그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 누구입니까?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늘 같이 성탄절에는 당연히 “아-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바로 그분 즉 예수님이 떠오를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은 누구인가?“ 하고 구글을 통해 찾아보았습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글이 이겁니다. ‘그분’은 ‘그 사람’을 아주 높여 부르는 말.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것은 ‘신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자신이 믿는 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으니까 ‘그분’이라고 높여 부르는 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어서 나오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그분’은 스포츠에서 먹튀(먹고 튀는 선수, 영어로 eat and run 혹은 dine and dash)를 가리키는 은어로 쓰인다는 겁니다. 왜 이렇게 은어로 쓰느냐 하면 먹튀 선수를 잘못 비난하다가 그만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같은 법적 책임을 당하니까 그것을 회피하면서 돌려 까기 식으로 말하는 겁니다. 일종의 ‘사케즘(sarcasm)’입니다.

반면 스포츠에서 특히 골프에서 퍼팅이나 샷이 아주 기가 막히게 잘될 때에 “그분이 오셨다.”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우리 박정규(프로 골프 선수) 집사님, 그렇지요? 그리고 “그분이 오셨다.”라는 표현을 다른 여러 가지 상황 속에도 씁니다. 예를 들면 밥을 잔뜩 먹고 식곤증이 와서 눈이 감기고 심히 졸립니다. 이때 “아- 그분이 오셨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COVID-19으로 인해 온몸이 죽을 것 같이 아픕니다. 그런 증상을 가리켜 “그분이 오셨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특히 저의 경우는 “그분이 오셨다.” 그러면 저의 집 강아지가 생각납니다. 저의 집 강아지가 요즘 한국에서 매우 인기 있는 견종 중 하나인 ‘비숑’입니다.

그런데 이 강아지의 특징 중 하나가 ‘비숑 타임’입니다. 이게 뭐냐면 가끔 애가 들소 떼나 멧돼지 떼처럼 집안을 미친 듯이 마구마구 달립니다. 우다다- 우다다- 너무 속도가 빠르게 달리다 보니 부딪히면 크게 다칠까봐 일단 피하고 지켜봅니다. 그렇게 미친 듯이 달리는 것을 가리켜 “그분이 오셨다.”라고 재미있게 표현합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조용한 집에 손자 손녀들이 놀러오면 처음엔 아주 반갑습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 보면 애들이 뛰어놀면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게 실컷 놀다가 자기 집에 돌아갈 때가 되면 집안이 온통 어질러졌습니다. 아- 그거 치우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매우 힘듭니다. 그래서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손님을 표현할 때 “그분이 오셨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애들에게 성탄절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우리 교회 유초등부 아이들은 “예수님 오신 날이에요.”라고 잘 대답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 다니는 애들은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주는 날이에요.”라고 많이들 대답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성탄절을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는 거룩한 날로 지킵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징글벨 징글벨’ 하고 징그럽게 노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젊은이들에게는 성탄절이 성적으로 타락하는 날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날에 술집, 클럽, 러브호텔 같이 노는 데가 북적북적합니다. 그런데 여기 캐나다에 와서 보니 성탄절이 아주 조용한 날입니다. 웬만한 가게들은 이날 거의 다 쉽니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오순도순 특식을 먹으며 지내는 날입니다.

여러분의 경우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물론 이 자리에 성탄절 예배로 교회에 오신 여러분들에게는 성탄절은 글자 그대로 성자 메시아가 오신 날입니다. 혹 어떤 분은 “예수님이 몇 년, 몇 월, 몇 시에 이 땅에 오셨느냐? 12월 25일이 진짜 예수님의 생일이냐?“ 하고 그 날짜와 시간을 가지고 너무 따지시는 분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 따지시는 분들을 보면 좀 웃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아- 그게 동부 시간대에요, 서부 시간대에요, 중부 시간대에요. 그게 나라마다 지역마다 날짜와 시간이 다를 수 있는데... 그리고 옛날에는 먹고 살기가 바빠서 자기가 태어난 날을 자기도 모르고, 부모님도 모르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더구나 그 날짜의 기준이 태양력이에요. 태음력이에요. 율리우스 역이에요. 그레고리우스력이에요, 종교력이에요. 각 나라마다 쓰는 역법이 다를 수 있는데, 도대체 그걸 어느 기준으로 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겁니까? 아- 이거 날짜와 시간을 따지면 무지하게 복잡한 겁니다.

그렇게 따지면 매년마다 성탄절 날짜가 달라지는 겁니다. 어떤 때는 성탄절이 일 년에 두 번 생길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성탄절이 일 년에 한 번도 없을 수가 있습니다. 저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제가 생일이 음력 11월 22일입니다. 그런데 이걸 양력으로 환산하면 매년마다 날짜가 다릅니다. 아무튼 제 생일은 대충 성탄절이 됩니다.

어떤 때는 저의 생일이 일 년에 한 번도 없을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일 년에 두 번이 있을 때도 생깁니다. 그래서 저의 경우 아예 제 생일을 12월 25일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서로 편합니다. 기억하기도 좋고... 뭐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제 생일을 기억해달라는 것 절대 아닙니다.

저희 집은 옛날부터 그렇게 무슨 날이라고 그것을 기념하여 생일 차려 먹고 그러는 집안이 아닙니다. 그냥 오늘 잘 먹으면 그날이 생일인 겁니다. 생일 상 안차려 줬다고 그것 가지고 섭섭하다 뭐하다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예수님의 생일이 12월 25일이니까 저도 그냥 거기에 묻어가는 겁니다.

성탄절 날짜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거 따지면 일단 우리 기독교인들이 불편합니다. 그러니까 성탄절 하면 “아- 예수님 오신 날.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할렐루야!”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날짜와 시간이 아니라, 분명히 구세주 예수님이 이 땅의 인간의 역사 가운데 오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은 참 다행인 것이 이렇게 한국이나 캐나다에 태어나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고 성탄절을 찬양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지킬 수 있으니 참 다행이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북한이나 이슬람권 나라에서 태어나면 성탄절을 어케 지키겠습니까? 동무들!

물론 북한의 선전용 교회에서 예배와 미사를 드린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전에 불과하고, 실지 북한 주민들은 오히려 그날을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의 생일(12월 24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한에서 지하교인들이 대놓고 성탄절 예배를 드린다고 해보십시오. 그 다음 날 소리 소문 없이 수용소로 끌려가고 맙니다.

아- 그런데 어떤 미친 목사가 이런 북한을 좋다고 찬양하고 있는데... 그거 가짜 목사입니다. 여러분, 옛날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렇게 기독교를 핍박하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겐 성탄절의 기쁨도, 성탄절의 예배와 행복도 없습니다. 초대 교회 때도 그랬습니다. 신자들을 무섭게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끼리 서로를 인식하는 암호가 생겼습니다. 다름 아닌 물고기 형상의 표시입니다. 그 물고기 표시를 보면 “아- 여기에 크리스천이 다녀갔구나.”라고 서로 알아차리는 겁니다. 여기 캐나다와 한국에서도 차 뒤에 보면 물고기 형상의 표시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 물고기를 그리스어로 ‘익투스’라고 합니다. 이 ‘익투스’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의 첫 글자의 알파벳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수천 년 혹은 수백 년 전부터 하나님은 인류를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구세주를 보낼 것을 약속하시고 성경에 예언해놓으셨습니다. 이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참으로 신기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탄생합니다.(창3:15) 여러분, 모든 사람은 태어나기 위해 남자의 씨, 즉 남자의 정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자의 씨가 아닌 단지 마리아라는 여인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둘째, 예수님은 유부녀가 아닌 처녀의 몸에서 탄생됩니다. 본문 23절 말씀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처녀는 영어로 ‘virgin’입니다. 즉 한 번도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않은 그런 순수하고 깨끗한 여자의 몸을 빌려 예수님이 탄생하신다는 겁니다.

셋째,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납니다.(창22:18)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탄생하신다고 이미 수천 년 전에 예언해놓으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야곱의 후손으로 탄생합니다.(눅1:33)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 야곱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인격은 그리 추천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야곱은 복을 얻기 위해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였습니다. 사기꾼 기질이 아주 다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에게 12명의 아들을 주시고, 그 이름을 사기꾼 ‘야곱’에서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야곱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유다의 후손으로 탄생합니다.(창49:10)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 12명의 아들들이 번성하여 각각의 12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 중 네 번째 아들인 유다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예언도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여섯째,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합니다.(시132:11) 유다의 후손 중에 다윗이라는 아주 유명한 이스라엘 왕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다는 겁니다.

일곱째,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합니다.(미5:2) 마태복음 2:6 말씀입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예수님의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고로 원래대로 하면 예수님도 나사렛에서 탄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 황제인 아구스도가 천하로 다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요즘 말하면 각자의 고향 땅으로 가서 인구센서스 등록을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마리아가 호적을 하려고 만삭의 몸을 이끌고 자기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 간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산통이 오고 예수님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는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겁니다. 참 신기합니다.

여덟째, 예수님이 탄생할 때에 그것을 알리는 특별한 별이 나타납니다.(민24:17) 그래서 당시 동방의 박사들 즉 페르시아의 천문학자들이 그 별을 보고 “아- 드디어 메시아가 탄생하셨구나!” 알아차리고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그 별을 보고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동방 박사들의 말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2:2)

아홉째, 예수님은 ‘임마누엘’로 탄생합니다.(사7:14)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분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 세계에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꾸며낸 가상의 인물이 아닙니다. 실지 우리와 같이 살과 뼈와 피가 있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이스라엘 땅에서 사람들과 같이 사셨고, 그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치료하시고,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함께 거하시는 임마누엘로 오신 겁니다.

열째, 예수님은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십니다. 자고로 유명한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의 탄생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한 목적이 무엇일까요? 본문 21절에 천사의 말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라는 말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는 자칭 구원자라는 사람이 많지만 진짜 인류를 구원할 분은 예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외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4:12)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행2:2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롬10:11)

보십시오. 수천 년 전, 그리고 수백 년 전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분명한 예언이 있었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말한 그분이 드디어 오셨습니다.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구원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성경의 주제는 그 분이 오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주제는 마침내 그분이 오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신 예수님은 이 땅에 다시 오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외롭고 쓸쓸하고 처량하게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계속 우리와 같이 동고동락하며 같이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찬송을 부르고, 또한 “성령이 오셨네...”라는 찬송도 아울러 부르는 겁니다.

여러분, 혹시 여기 캐나다 캘거리 땅에서 지내는 동안 외롭고 쓸쓸하지 않습니까? 인생 살기가 힘들고 어렵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도 구원자 예수님, 임마누엘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2020년 한국에서 발표된 뮤지컬 중에 “그분이 오셨다.”라는 뮤지컬이 있습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많이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그 뮤지컬을 소개하는 포스터에 보니까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오셨다! 나를 짓누르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날려줄 뮤지컬, 성경 속 위로의 이야기를 락으로 전달한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다. 여덟 명의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폭발적인 락 음악과 안무, 웃음과 가슴 뭉클함으로 하나 되는 무대와 객석,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는 인생의 바이블 성격을 현대적으로 풀어내어 관객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달한다.”

얼마 전 여기 캘거리 연합 집회에 오신 이찬수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의 고백 중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혼자 울던 1992년 12월 24일 밤에 그분이 나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주시며 놀라운 약속을 주셨다... 그날 이후 나는 엄청난 용기가 생겼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구원자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위로와 용기를 주시기 원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당신이 예수님에게 오기를 그렇게 원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그분이 오셨다.“는 것은 다름 아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당신은 바로 ‘그분’입니다. 당신이 바로 VIP입니다. 오늘 성탄절 날 당신이 교회에 오셨기에 예수님은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행복하니 우리들도 행복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탄절 날 하루만 예수님께 오시고 다음 주일에는 안 오신다면 예수님은 또 슬퍼집니다.

여러분 간절히 부탁합니다. 다음 주일에도 웬만하시면 꼭 좀 교회에 오십시오. 물론 다음 주일은 오늘처럼 성탄절 식사도 없고, 선물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선물을 직접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매주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과 함께 날마다 즐겁고 행복한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veryday Happ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