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 그대로

날짜: 
2025/12/20
말씀: 
마11:28
말씀구절: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설교: 

세상은 말합니다. “정신 차리고 오라.” “깨끗이 하고 오라.” “정리되면 오라.” “건강하면 오라.” “준비되면 오라.”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마11:28) 즉 짐을 진 모습 그대로, 병든 모습 그대로,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오라는 겁니다.

병원은 건강한 사람을 위해 있는 곳이 아닙니다. 병든 사람을 위한 곳이 병원입니다. 의사는 병든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건강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아픈 영혼들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만병의 치료자 되시는 예수님도 말씀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5:31-32) 교회에 못 오시는 분들 중에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병이 좀 나아서 건강하면 그때 교회에 오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병이 낫기 전에 그 모습 그대로 오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치료하는 능력이 그분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병원이 문 앞에 “병이 완치된 사람들만 오십시오.”라고 써 붙였다면 그건 병원이 아니라 박물관일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 천사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못난 사람, 부족한 사람, 병든 사람들이 치료받으러 오는 곳입니다. 제가 기도하는 분들 중에 교회에 못 나오시는 분들을 위해 주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분들 중에 이런저런 병으로 인해 교회에 못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 제가 기도하면서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이 분! 이제 교회에 나왔으면 좋겠다. 죽어서 오지 말고, 살아 있을 때에 왔으면 좋겠다. 더 힘들어져 기도할 기력조차 다 떨어져 오지 말고, 기도할 기력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에 와서 기도하면 좋겠다.”

여러분,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초청은 “깨끗해지고 나서 오라.”가 아닙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오라.”(사1:18)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미 나은 건강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나아야 할 사람을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병이 있으면 그 모습 그대로 교회에 오십시오. 마음이 지쳤으면 그 모습 그대로 교회에 오십시오. 죄로 더러워졌으면 그 모습 그대로 교회에 오십시오.

마음에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으면 그 모습 그대로 교회에 오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사34:18) 혹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돈 좀 벌어서 부자 되면 그때 교회에 오겠습니다.”

“아니, 왜 부자 되서 교회에 오려고 해요?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당신에게 돈 좀 꿔달라고 합니까? 하나님은 도리어 당신에게 돈을 거저주시는 가장 부자이신 분이신데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돈이 있어야 헌금도 내고, 그래야 미안하지 않고,..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돈이 있어야 대접도 좀 받지 않습니까?“

아- 그게 아니라니까요. 그건 당신 생각이고, 사람들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라니까요. 하나님은 당신이 돈이 있어서 ‘에헴-’ 하고 뻐기며 교만해서 교회 오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도리어 가난해서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오는 것을 원하신다니까요.

아- 예수님도 말씀하고 있잖아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장사꾼은 돈 있는 사람들을 향해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사꾼이 아닙니다. 교회는 장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을 주시고, 병든 자에게 치료를 주시고, 심령이 상한 자를 위로하시며,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고로 돈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와서 돈을 받으십시오. 병든 사람은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마음이 상한 자는 위로를 받으십시오. 실패한 자도 오십시오. 무능한 자도 오십시오. 지치고 고단한 자도 오십시오. 낙심한 자도 오십시오. 다 와서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선물을 풍성히 받으십시오.

괜히 스스로 “나는 하나님께 자격이 없다.”고 주저하지 마십시오. 혹은 “나는 가진 것이 많으니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가 없다.”고도 말하지 마십시오. 있으나 없으나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피조물의 목적이요 사명입니다. 그것이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영적인 존재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나님과 만남도 없이, 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도 없이, 홀로 고독하게 인생을 산다는 것은 비극 중의 비극이요, 슬픔 중의 슬픔이요, 고통 중의 고통입니다. 고로 당신이 하나님께 드릴 가장 최선의 모습은 당신 자신을 그 모습 그대로 드리는 겁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당신의 행복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입니다.

어느 마을에 두 아들을 둔 부자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둘째 아들이 자기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둘째 아들에게 돌아갈 막대한 유산을 미리 떼어주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그 즉시 그 모든 유산을 챙겨서 아버지를 멀리 떠나 외국 땅으로 갔습니다.

그는 거기서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허랑방탕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돈은 다 떨어지고 한 푼도 남지 않았습니다. 가까이 지냈던 세상 친구들도 다 떠나고 말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 그 나라에 큰 기근이 왔습니다. 결국 남의 집에서 돼지를 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 배를 채우려고 해도 그나마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계속 살은 빠지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초췌해져 갔습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해 심한 악취도 나고 완전 상거지가 되었습니다. 잘못하다간 외국 땅에서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둘째 아들은 그제야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굶주려 죽겠구나.” 그 상황에서 그가 살 수 있는 일은 오직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죽기 전에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힘들고 고단해도 아버지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지치고 넘어지고 쓰러져도 아버지에게 가야만 합니다. 자존심이 상해도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가 간신히 일어나 아버지가 있는 고향 땅에 이르렀을 때에 아버지는 아들이 이제나 저제나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꿈인지 생시인지, 멀리서 아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니 아- 너무나도 불쌍합니다.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들아, 잘 왔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 하며 기쁘고 반갑게 아들을 맞아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고개를 숙이며 말합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저를 품꾼의 하나로 보십시오.”

그러나 아버지는 말합니다. “아들아, 괜찮다. 염려하지 마라. 너가 돌아왔으니 이보다 기쁠 수 없다.” 그리고 아버지는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여봐라, 돌아온 내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금가락지를 끼우고, 새 신을 신겨라.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 크게 잔치하고 즐거워하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아버지는 냄새나고 거지꼴을 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야- 이놈아! 너 왜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왔니? 이 뻔뻔하고 못난이 같은 놈아!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 하고 그를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그 모습 그대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시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죽기 전에 아버지께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죽기 전에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나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줬으니, 나도 그 사람을 그 모습 그대로 용서하고 받아주어야 합니다. 조금 있으면 너도 가고 나도 갑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버지께로 신속히 돌아와야 하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달래줘야 합니다.

여러분, 성공한 후에 아버지께로 돌아오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성공이 아니라, 여러분을 있는 모습 그대로 하루라도 빨리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뿐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 아직도 당신이 코와 입으로 호흡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죽어서 오지 말고 살아 있을 때에 오라고 하는 아버지의 부르시는 신호입니다.

제가 20년 이상 기도하는 성도님들 중에 아직도 교회에 나오시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인사차 몇 번 교회는 왔지만, 그 후 계속 교회에 안 나옵니다. 이 분은 왜 교회에 안 나올까요? 이 분의 남편이 교회 나오기를 아주 싫어합니다. 남편이 옛날에 교회에 다녔는데, 그때 안 좋은 추억이 상처로 남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얼마 전 마트에서와 장례식장에서 만났습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이제 교회 좀 나오시지요?” “아- 예 목사님, 저는 이 양반에게 교회에 가자고 하는데, 아- 이 양반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이 양반 죽으면 교회에 갈게요.”

이 말을 듣고 제가 속으로 뭐라고 말했을까요? “그래, 이 지긋지긋한 남편 놈아, 너 빨리 죽어야겠다. 그래야 니 아내가 교회에 나올 수 있겠다.”라고 말하지 않고 “주여, 살아 있을 때, 건강할 때, 기력이 있을 때, 좋은 말 할 때, 교회에 나오게 하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55:6)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그렇습니다. 죽은 뒤엔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죽고 나면 예배드릴 수도 없습니다. 죽어서 오는 건 너무 늦습니다. 살아있을 때에 와야 합니다. 지금 와야 합니다. 그 모습 그대로 와야 합니다. 물론 마귀는 늘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야- 너 지금 일처리 할 것이 얼마나 많은데 교회에 가려고 하느냐? 그 일이나 처리하고 좀 괜찮아지면 그때 교회에 나가라.”

그러면서 마귀는 뒤에서 교회에 나오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문제를 만듭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해결 되면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마귀에서 완전히 속는 겁니다. 인생을 아주 바쁘게 사시는 어떤 분이 차를 타고 교회 앞을 지나가면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시지요. 제가 지금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으니 나중에 은퇴를 하면 그때 교회에 나오겠습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교회 안에 들어온 날은 그의 장례식 날이었습니다. 그 분의 장례식을 치루며 목사님은 관 속에 누어있는 그 분의 모습을 보며 말했습니다. “이제야 교회에 오셨군요. 이제야 아버지께 오셨군요. 좀 더 일찍 살아계실 때에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 이 자리에 살아서 교회에 오신 여러분이여, 정말 잘 오셨습니다.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반면 오셔야 할 분이 못 오시고, 이 자리에 앉아있어야 할 분이 안계시면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을 향해 기도합니다. “주여, 이제 그만 그들도 돌아오게 하시옵소서.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오게 하시옵소서.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자여... 돌아와 돌아오라.”(찬송가 525장) 이제 이번 주 목요일은 성탄절입니다. 이날 우리는 총동원 전도 축제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 모습 그대로 돌아왔으니, 그들도 하나님께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오도록 같이 기도하시고, 같이 애를 쓰시는 중에 모두가 행복한 성탄을 맞이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에겐 인생의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웬만하며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오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아버지와 평화를 누리며 함께 즐거워하게 하시옵소서. 오늘 이렇게 당신께 돌아온 백성들을 보시옵소서. 그 모습 그대로 왔사오니 친히 만나주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옵소서. 또 치료해주시옵소서. 또 사랑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