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굴빛을 비추사

날짜: 
2024/02/03
말씀: 
민6:24-26
말씀구절: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설교: 

요즘의 최신 과학인 ‘양자역학’에서는 사람이 관측하는 것, 즉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전자의 성격이 파동에서 순식간에 입자로 바뀌는 요술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세상 말로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양자 역학자들의 설명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본다는 것은 빛을 통하여 물체에서 반사된 것을 우리 눈에서 인식하고, 뇌의 작용이 일어나서, 다시 눈을 통해 그 사물에게 빛을 비추는 에너지 과정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즉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빛이라는 에너지가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빛의 에너지 작용이 관측 즉 바라봄을 통하여 전자에게 전달이 되었기 때문에 전자가 파동에서 입자로 순식간에 바뀌는 것이다.”

어때요? 양자역학이 좀 이해가 되시나요? 아직도 어렵지요? 여러분, 이 세상에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큰 에너지가 되어서 어떤 물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의 에너지는 곳곳에 존재합니다.

그 바람을 이용해 풍력 발전소도 만들고, 또한 인공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선풍기도 만들고, 태풍이나 토네이도 같은 바람은 도시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양자역학에서는 우리가 ‘바라본다’는 것을 통하여 에너지가 발산되고, 또한 그 바라봄을 당하는 물체가 에너지를 받아서 성질 자체가 파동에서 물체로 바뀌는 요술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자- 이런 신기한 현상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고로 이런 신기한 현상을 성경의 진리와 대입해서 풀어봅시다. 여러분, 혹시 ‘바라봄의 법칙’이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 말을 처음 쓰신 분이 누구시지요? 제가 이에 대해 찾아보니 조용기 목사님이 아주 오래 전에 하신 설교 중에 ‘바라봄의 법칙’이란 제목이 있어서 최근에 다시 보았습니다.

거기 보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것을 ‘바라봄의 법칙‘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또 누가 붙였는지 모르겠어요. 저보다 먼저 붙인 사람이 있으면 특허권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바라봄의 법칙을 우리 성도님들에게 오래 전부터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이 설교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처음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75세 때에 그를 부르시고, 그에게 고향 땅을 떠나라고 하시고,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약속한 축복을 이루시기 위하여 ‘바라봄의 법칙’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밤중에 밖으로 나가보라고 하시며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하늘을 우러러 못별을 셀 수 있나 바라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즉 자식도 없고, 땅도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그에게 약속한대로 자녀도 주시고, 또한 약속의 가나안 땅도 주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청년 때에 이 설교를 듣고, 또 이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에는 “아- 그런가 보다.” 하고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그렇게 바라본다고 뭔 일이 일어난다고... 아- 그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과 더불어, 그렇게 말씀하시는 조용기 목사님이 괜히 동양의 신비주의나 최면술 같은 것을 말하는 이상한 목사님처럼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봅시다.

여기 길을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성 혹은 아주 핸섬한 남성이 있습니다.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저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를 계속 뚫어지게 바라보고 쳐다보았더니 그 여자(남자)가 내 여자(남자)가 됩니까? 아- 바라보는 시간이 짧아서 안 되는 겁니까? 아니면 바라보는 에너지가 약해서 안 되는 겁니까? 그러면 더 오랫동안, 더 강력하게 바라보면 어때요?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스토커로 잡혀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건 좀 아니잖아요? 그치요? 이전에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자들과 열띤 토론을 하면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니, 당신들은 어떤 물체를 바라보면 그 물체가 변한다고 하는데, 어찌 그런 비과학적이고 무책임한 말을 합니까? 내가 달을 바라보면 달이 있고, 내가 달을 바라보지 않으면 달이 없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자 ‘닐스 보어’라는 양자역학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인슈타인 박사님과 내가, 그리고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달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달이 그곳에 있는지 누가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달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은 달을 바라보는 겁니다.” 즉- 이 분의 말은 달도 누군가 바라보았기 때문에 생겼다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누구 말이 맞는 것 같습니까? 어찌 보면 아인슈타인의 말이 맞는 것 같고, 닐스 보어라는 사람의 말이 비과학적이고 틀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말을 고전 역학 즉 거시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의 말이 맞지만, 양자역학 즉 미시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닐스 보어의 말이 맞습니다.

즉 그 유명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도 바라봄의 법칙을 통하여 에너지가 나오고, 그 에너지가 물체의 성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인 양자역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의 그런 의심이 도리어 틀렸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바라봄을 통하여 물체의 성질이 변합니다.

자- 이게 최신 과학입니다. 일명 ‘양자역학’이라고 합니다. 반면 뉴턴과 아인슈타인 같은 분들이 연구하는 것을 ‘고전역학’이라고 합니다. 이를 좀 나쁘게 표현하면 ‘구식과학’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학의 세계도 요즘 아주 급속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 물론 ‘바라봄의 법칙’이 어디까지 적용이 되는지에 대한 연구가 요즘 과학자 들 사이에 한창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 양자역학을 공부하다 보니 이전에 무심코 지나쳤던 ‘바라봄의 법칙’이 새삼 새롭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 인간이 어떤 물체를 바라봐도 거기서 에너지가 나와서 그 물체를 변화시키는데, 하물며 모든 에너지의 근본이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면 우리도 변하지 않겠는가?”

아- 어때요? 최근의 과학적 지식으로 보면 이것도 아주 합리적인 추론이 아닙니까? 여러분, 태양빛이 동식물에 쬐이면 그 동식물들이 빛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받고 살아납니다. 물론 그 빛을 너무 많이 받으면 도리어 말라죽기도 합니다. 이는 빛의 에너지가 너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돋보기의 원리도 그렇습니다. 태양빛을 돋보기로 모아서 한 곳에 집중시키면 불이 납니다. 아주 큰 돋보기를 사용하면 돌도 녹일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달빛은 어떻습니까? 달빛을 돋보기로 모아서 불을 붙일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아직 제가 못 보았습니다. 그건 왜 그러지요?

아시다시피 달빛은 자체의 빛이 없습니다. 단지 태양빛을 받아서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달빛은 태양빛의 50만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걸 아무리 돋보기로 모아봤자 불을 붙일 정도의 에너지가 안 나옵니다. 하물며 그보다 약한 별빛을 돋보기도 모아서 불을 붙일 수는 없을 겁니다.

여러분, 제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최신 과학 그 자체를 소개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그 최신 과학이 성경의 진리와 기적을 밝히는데 더욱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깨달음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의 진리와 기적은 결코 미신이 아닙니다. 최근의 그 어떤 과학보다도 더욱 과학적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이렇게 불신의 말을 합니다. “에이, 성경 그거 과학적으로 증명도 안 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어?” 더구나 성경의 기적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그거 구라라고, 거짓말이라고, 과장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 특히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아- 그런 기적들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될 수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자-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신약시대 즉 요즘의 목사님들은 축도하실 때에 고린도후서 13:13을 인용하여 축도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은 오늘의 본문인 민수기 6:24-26의 말씀으로 축도를 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이 구절에서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 얼굴을 네게 비추사’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즉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며 우리에게 빛의 에너지를 공급하신다는 겁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빛이시라.”(요일1:5)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여러분, 빛은 에너지가 있습니다. 물체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고로 현대 의학에서도 빛(광선) 에너지로 환자들의 병을 치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암환자들에게 방사선으로 치료를 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이미 2500년 전에 구약 성경 말라기 4:2에 이런 과학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즉 의로운 해가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치료하는 광선 에너지가 나와서 병을 치료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기독교에서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는 것에 대해 “그거 미신이다, 비과학적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아니에요. 요즘의 최신 과학인 양자역학에서 보면 도리어 그게 과학적입니다.

생각해보세요. 평범한 인간이 바라보는 행위로 인해서 에너지가 나오고, 그로 인해 ‘전자’라는 파동이 전혀 다른 입자의 모습으로 바뀌는데, 하물며 모든 빛과 에너지의 근원이 되시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신 창조주 하나님이 친히 피조물을 바라보는데 어찌 에너지가 안 나갑니까?

성경에 보면 ‘그 얼굴빛을 비추사’라는 표현이 제법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많이 나오는 곳이 시편 80편입니다. 이 시는 ‘아삽’이란 사람이 쓴 시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추소서.”(1절)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3절) “주의 얼굴의 광채를 비추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7절) “주의 얼굴빛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9절)

즉 태양빛의 에너지를 받으면 시들시들 죽어가던 동식물이 살아나듯이, 하나님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의 에너지를 받으면 죽어가는 영혼과 육체가 살아난다는 것을 아삽이란 사람이 깨닫고 노래한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의 얼굴을 우리들에게 비추며, 우리 각 사람을 치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고로 저와 여러분은 빛 되신 하나님의 얼굴을 향하여 바라보십시오. 그 얼굴빛을 받으면 우리도 변합니다. 우리도 치료됩니다. 우리도 회복됩니다. 우리에게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는 무서운 핍박자였습니다. 시리아에 사는 크리스천들까지 핍박하려고 권세를 받아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신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행9:3)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행22:6)

바울은 그때 거기서 빛 되신 주님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았고, 그 분으로부터 말씀을 듣는 순간 변화가 되었습니다. 핍박자에서 위대한 사도 바울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변화가 되고 싶습니까? “아- 목사님! 나는 말고요. 우리 남편이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아니에요, 우리 아내가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암튼 누가 먼저 변화가 되던지 주님의 그 빛의 에너지를 받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신기하게 인격이 변화가 됩니다. 잘못된 생각이 고쳐집니다. 그래서 못된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인생의 활력이 생깁니다. 기쁨이 솟아납니다.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빛 되는 주님으로부터 에너지가 나에게 전달이 되었다는 겁니다. 고로 그 분의 얼굴빛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날마다 받으십시오. 날마다 스마트폰 충전하듯이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 빛의 에너지를 충전하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생명이 넘치고 행복하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시36:9) 아무쪼록 주님이 그 얼굴빛을 각자에게 비추사 저와 여러분들이 치료를 받고, 축복을 받고, 크게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빛이 있으라.” 하시며 모든 빛과 에너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그 얼굴빛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고통 속에서 구원을 받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환경에도 그 빛을 비춰주시옵소서. 형통의 환경, 복된 환경으로 변화가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그 빛을 받아 우리도 빛의 자녀로서 타인에게 빛의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