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꿈이 없으면 망한다
본문말씀 : 잠 29:18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법 성경을 읽은 분들이 "아니, 목사님. 그런 말씀이 도대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런 말씀을 도저히 발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한글 성경에는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 킹 제임스 번 역에 보면 분명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perish"(잠 29:18) 즉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꿈이 없으면 망할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내일에 대한 꿈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게 되고, 단지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육신의 쾌락에만 도취되어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결국 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꿈이 없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지긋지긋게 못된 남편(아내), 방탕한 자녀, 혹은 나를 괴롭히는 아무개가 가면 갈수록 그 상태가 나빠져서 그로 인해 내 마음이 더욱 상하게 된다면,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기는 커녕 더욱 꼬여진다면, 그리고 질병도 더욱 악화되어 조금 있으면 나는 죽고 만다면, 우리는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즉 우리가 사는 이유는 그래도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나를 괴롭히고 있는 그 문제도, 그 사람도 이제 곧 변하게 된다는 꿈이 있기에, 그리고 질병도 치료가 되고 곧 건강해질수 있다는 꿈이 있기에 우리는 기뻐할수 있고, 그러한 꿈이 있기에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유럽의 아주 잘사는 나라의 사람들이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대체 왜 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합니까?
분명히 남들보다 더 가졌고, 남들보다 더 잘살고, 남들보다 더 많이 누리고 있는데 왜 그들이 그런 비극의 길을 택해야만 합니까?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에게 꼭 있어야 하는 내일에 대한 찬란한 꿈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벌레의 눈을 가진 사람은 망하고 새의 눈을 가진 사람은 흥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벌레처럼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꿈과 비젼이 없으면 결국 스스로 좌절하다가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처럼 멀리 내다보는 미래의 꿈과 비젼이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고 결국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내일에 대한 찬란한 꿈과 비젼을 갖기 보다는 늘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원망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내일에 대한 찬란한 꿈을 스스로 포기하고, 그 꿈을 스스로 저버리는 큰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자신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식구의 마음속에도 쓰디쓴 절망과 좌절을 안겨주고, 사회를 온통 어두컴컴한 지옥으로 만들고 맙니다.
이렇게 내일의 꿈과 비젼을 잃어버리고 컴컴한 지옥의 길을 가는 인생들이 하도 안타까워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시자 좌절과 절망속에서 방황하던 제자들에게 부활의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안타깝게 말씀하셨습니다. '
성령을 받아라'(요20:22) 하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면 꿈과 비젼이 없는 사람이, 그리고 희망을 잃어버리고 좌절과 절망과 탄식에 사로잡힌 사람이 내일에 대한 찬란한 꿈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행2:17)
즉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늘 장래에 대한 희망찬 꿈을 꾸고, 그 꿈을 이야기하며,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없는 사람은 꿈과 비젼이 없으므로 늘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도 행복도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괴적이고, 절망적인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소망적이고 창조적이고 꿈이 있는 하나님입니까?
명심하십시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내일에 대한 찬란하고 영롱한 꿈을 가진 꿈의 하나님이십니다. 비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꿈과 비젼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처럼 꿈과 비젼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원하시고, 그러한 사람과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러한 꿈의 사람에게 큰 축복을 안겨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나이가 75세가 되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아내 사라 역시 65세가 되어 인간적으로 도저히 자녀를 가질 희망과 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12:22)
아브라함이 그의 나이 75세에 정든 고향을 등지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낯선 나라로 이민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찬란한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가뭄과 기근이 다가오고, 환경이 너무 어려워 좌절에 빠져 하나님이 주신 꿈을 포기하려고 하자 하나님은 그를 다시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꿈을 포기하는 것을 절대로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꿈의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요,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는 것입니다.
고로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우리는 계속 꿈을 꾸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계속 바라보고 외쳐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오늘도 너와 나는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에 부딪혀 도저히 꿈을 이룰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그의 이름을 아예 바꾸어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 17:5)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아. 네 아내 사래는 그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머리가 되게 하리라'(창17:15-16)
여러분! 아브라함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이 얼마나 대단하고 집요한지, 결국 하나님은 25년 후에 아브라함의 나의 100 세에,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90 세에 꿈의 아들인 이삭을 주시는 기적을 베풀어 놓으십니다.
야곱의 경우를 보십시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목동으로 일하고 있을 때에 새로 태어나는 얼룩덜룩하고, 점이 있고, 아롱진 가축을 자기의 몫이라고 외삼촌과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버드나무, 살구나 무, 신풍나무의 껍질을 벗겨 얼룩덜룩하게 무늬를 만든 다음 가축들이 새끼를 배는 곳에 두어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자 그것을 바라본 가축들이 얼룩덜룩하고, 점이 있고, 아롱진 것들을 낳아서 야곱은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꿈을 갖고 바라보면 짐승도 환경도 그 꿈을 이루도록 하나님이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꿈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고로 이 세상은 꿈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발전이 됩니다.
라이트 형제가 '사람도 하늘을 날 수 있다' 는 꿈을 가졌기에 비행기를 발명한 것처럼 꿈은 자기의 운명을 변화시킬 뿐만 하니라 세상을 변화시킵니 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발전되고 부흥이 되려면 목사를 비롯해 성도들이 꿈이 있어야 열심히 기도도 하고, 꿈이 있어야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믿음도 가질 수 있고, 꿈이 있어야 목숨을 바치고 충성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 왜 나오셨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보내서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많은 교회 중에서 우리 교회에 나오게 만드셨습니까?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이곳은 꿈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캘거리에서 늦게 섰지만 하늘나라를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가꾸려고 하는 꿈이 있는 목사, 꿈이 있는 성도가 모인 교회이기에 나온 것이 아닙니까?
만약 이곳에 꿈이 없다면 이곳이 어찌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가?
만약 제가 꿈이 없다면 어찌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에게 꿈이 없다면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찬란한 꿈이 있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어찌하든지 하나님이 기뻐하는 복음전파와 세계선교의 영롱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기도도 있고, 열심도 있고, 충성도 있고, 헌신과 눈물겨운 희생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많은 단점과 인격의 결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담대히 외칠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은 허황되고 자기의 욕심만을 이루는 이기적인 꿈이 아니라, 온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 고자 하는 하나님의 꿈이라는 것입니다.
일찌기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I have a dream)'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그 당시의 어려운 상황속에서 결코 그 꿈을 잃지 않았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목숨 걸고 애쓰고 노력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젊은 나이에 흉탄에 맞아 쓰러져 죽었지만 미국인들은 그의 생일인 1월 15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그의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엇이 그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게 만들었습니까?
오직 한가지. 그는 꿈의 사람이었기 때문입 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인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꿈과 비젼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꿈과 비젼이 없이 방황하는 사람입니까? 당신으로 말미암아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희망과 꿈이 넘쳐납니까? 아니면 좌절과 불평과 탄식만이 생겨납니까?
만약 당신이 꿈과 비젼의 사람이라면 당신의 미래는 분명히 성공입니다.
그리고 행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처럼 꿈을 가진 사람을 도와주시고, 당신처럼 꿈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부탁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가지십시오.
될수 있으면 입을 넓게 여십시오. 그리고 누가 묻거든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가정, 우리 교회에는 꿈이 있다고 말씀하십시오.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을지라도 꿈을 주신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자신처럼 꿈을 가진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오늘도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시고 그들의 꿈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 오늘도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지금도 일하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