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날짜: 
2026/06/13
말씀: 
마24:13
말씀구절: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설교: 

여러분, 사람들이 이곳 캐나다를 가리켜 평화의 땅,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합니다. 예- 그 말이 맞기는 맞습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전쟁과 기아와 각종 인권 유린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 나라에 비하면 진짜 이곳 캐나다 땅은 평화롭고 살기 좋은 땅입니다.

더구나 이곳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곳이기에 일단 기독교인들인 우리에게는 참으로 안전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캐나다가 많이 어려워지므로 우리 이민자들도 이곳에서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곳 캐나다는 대부분 부부가 함께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는 구조입니다.

요즘은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도님들 중에 직장에 묶여서 예배에 못 오시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전에는 금요 철야 예배에도 잘 나오셨는데, 요즘은 못 오시는 분들을 봅니다. 이런 분들을 볼 때, 제가 목사로서 이런 마음이 듭니다. “말세에는 더욱 깨어서 기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기도를 못 하면 어떻게 하나?“

여러분, 마태복음 24장은 ‘종말장’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말세에 일어날 징조들에 관하여 세밀히 이야기하셨습니다. 전쟁, 기근, 지진, 거짓 선지자의 미혹, 불법이 많아지고, 사랑이 식는 현상, 서로를 잡아 죽이는 시대가 온다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고통의 시대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기가 점점 힘들어지므로, 우리 이민자들도 이 외국 땅에서 신앙을 지키기가 점점 어려워져서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분명한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일단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리에 오시기까지 각자 나름대로 힘든 일이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이 주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오시지 못했을 분도 있을 겁니다. 하여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곳에 예배드리러 오셨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 다 같이 격려의 박수를 보냅시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의 예언대로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계속해서 말세의 힘든 상황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대로 솔직히 말하면 말세로 갈수록 살기는 더욱 힘들어집니다. 이때 주님의 이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어찌 보면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천국에 가는 구원은 너무나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고 말씀한 것처럼 예수님 믿고 그 이름을 부르면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지요? 믿다가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오늘은 교회 나오다가 내일은 못 나오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귀한 구원은 끝까지 견뎌야만 하는 인내가 반드시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됩니다. 마라톤 코스 42.195km에서 단 100m만 모자라도 그 사람은 탈락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무리 잘 달려왔어도 앞으로 달려야 할 그 믿음의 경주에 단 한 발자국도 모자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견뎌야만 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물론 오늘 당장도 견디기 힘든데 또 견디라고 하면 ”아- 뭐야? 또 견디라고? 싫어 나는 포기하고 말 거야.“라고 하시는 분이 있지나 않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너무나도 중요한 ‘끝까지 견디는 것’에 대해 알아봄으로 구원을 완성시키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에 온전히 도달하기 원합니다.

‘끝까지 견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약의 인물은 동방의 의인이라고 하는 ‘욥’입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서도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라며 그를 인내의 본보기로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평화롭게 살던 욥에게도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사단이 하나님께 참소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고, 열 명의 자녀를 잃었으며,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한 종기가 나는 극한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런 고통 중에 자신을 옆에서 위로해줘야 할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매정하게 그를 떠났습니다. 멀리서 찾아온 친구들은 도리어 그를 정죄했습니다.

이 와중에서 욥은 하나님을 욕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하고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욥이 이렇게 신앙의 절개를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나오리라.”(욥23:10) 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견딘다고 하는 것은 아무 문제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고,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는 것입니다.

비록 환경이 나를 속이고, 사람이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을 붙잡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인내요 견디는 겁니다. 그리고 그 견디는 힘은 내 의지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서 나를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도움으로 견디는 겁니다.

인내에 대한 최고의 실화가 있습니다. 남극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의 이야기입니다. 1914년, 섀클턴과 27명의 대원은 남극 탐험을 위해 배 한 척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그 배의 이름은 ‘인듀어런스(Endurance: 인내)’라고 명명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안의 가훈과 좌우명이 “인내로 승리한다. (By endurance we conquer)“였기 때문입니다.

그와 대원들은 ’인내’라는 배를 타고 남극 횡단에 용감히 나섰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내’라는 이름의 배는 얼음에 짓눌려 부서지고, 빙하에 갇혀 깊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배(물질, 환경, 식량, 조건)는 사라졌어도 섀클턴과 대원들의 마음속에 있던 진짜 인내는 침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하 수십 도의 남극의 추위 속에 조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섀클턴은 절망에 빠진 대원들을 독려하며 무려 634일(약 1년 9개월) 동안 얼음 위에서 견디고 버텼습니다. 그는 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작은 구조 보트를 타고 목숨을 건 항해를 떠나 결국 구조대를 데려왔습니다.

결국 놀랍게도 28명 전원이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모두 무사히 영국으로 귀환했습니다. 섀클턴의 가훈과 좌우명인 ”인내로 승리한다. (By endurance we conquer)“대로 그들은 인내로 승리했습니다. 인내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희망의 성취는 결국 끝까지 견디는 자의 것입니다. 본문에 예수님도 말씀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끝까지 견디는 자’라는 말씀의 가장 완벽한 모델이자 원형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의인이신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각종 조롱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지만, 그들은 무지하여 도리어 자신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하늘 군대를 동원해 십자가에 당장 내려오실 수 있었지만, 그분은 참고 또 참았습니다. 견디고 또 견디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죽기까지 참고 견디신 이유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면 우리가 영영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신성을 감추는 인내를 선택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히12:2) 즉 주님은 우리들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끝까지, 죽기까지 고통과 수치의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제자들의 배신, 수제자 베드로의 부인,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외면당하시는 영적 단절의 고통까지도 주님은 홀로 견뎌내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죽기까지 참고 견디신 인내가 있었기에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이 비로서 성취되고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끝까지 참고 견딤으로 구원을 완성하신 주님이 우리들에게도 권면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여러분, 지금 아주 힘드신 분이 있을 겁니다. 차라리 죽고 싶은 충동도 생길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오늘의 주님의 권면을 잊지 마십시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물론 언제까지 견뎌야 할지 나는 잘 모릅니다. 이때 죽기까지 견디신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나도 주님처럼 죽기까지 견뎌보겠다고 다짐을 하십시오.

여러분, ‘끝까지 견딘다’라는 말씀은 낯선 외국 땅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민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생존의 법칙이자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한국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였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으로 부르신 진짜 이유는 이 땅에서 하늘의 소망을 품고 나아가는 나그네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때로는 나그네의 삶이 피곤하고 고단합니다. 때로는 언어가 서툴러 자존심이 상하고, 고개를 숙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자녀와의 대화가 막혀 가슴을 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 땅에서 겪는 외로움과 고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잠을 설칠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오늘의 본문을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기도 : 고난 중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세상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우리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의지를 붙들어 주시고, 오직 주님의 약속만을 바라보며 인내하게 하소서. 마침내 구원의 완성에 이르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