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몇 년 전에 COVID-19이란 판데믹 바람이 전 세계에 세차게 불어 닥쳤을 때, 우리는 생전 처음 겪는 그 일로 인해 너무도 황당하고 난감했었습니다. 그리고 COVID-19을 몇 년 간 겪으면서 우리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많은 분들이 COVID-19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아픔과 슬픔도 있었고, 아직까지도 COVID-19으로 인해 후유증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COVID-19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겪은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 역시 이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 제법 잘 나오시던 분들이 그만 믿음을 잃고 교회를 등지거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 후 COVID-19의 세력이 약해지고, 인원제한도 해제되고, 정상적으로 돌아왔지만, 교회는 마치 전쟁이 나서 여기저기 포격을 맞은 것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부서진 곳을 수리하고, 믿음이 떨어진 성도님들도 추슬러야 하고, 으샤으샤- 새롭게 전도도 하면서 다시 교회를 재건해야 합니다.
다행히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열심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COVID-19 이전의 모습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전보다 더욱 부흥을 이루기 위하여 모두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 역시 어느덧 나이가 들게 되고, 목회에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힘쓰고 애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은 이겁니다. “이대로 목회를 마칠 수는 없다. 교회를 더욱 부흥시키고, 교회를 보다 튼튼하게 하고, 교회를 보다 보기 좋게 해놓고 은퇴를 해야겠다.” 물론 이런 생각은 하나님이 저에게 계속 목회를 하라고 하셨기에 가능한 생각입니다.
아- 그러잖아요. 교회의 주인 되시고, 저를 목회자로 불러 주신 주님이 저에게 “김목사야, 너 그동안 수고 많이 했다. 이제 그만 은퇴하고 쉬어라.” 하시면, 한편으론 시원하고, 한편으론 아쉽지만, 주님의 뜻을 따라 아무튼 ‘할렐루야’ 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이 있기에 계속 목회를 하면서 요즘 제가 절실히 느끼고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그렇게 능력이 많은 종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름대로 교회를 부흥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너무 부족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제가 교회를 부흥시키기에 아니다 싶으면 빨리 다른 사람을 세우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이 저에게 목회를 계속 하라고 하시니 당장 그만 둘 수도 없고... 저 또한 하나님께 받은 약속도 있어서 계속 희망의 끈을 붙잡고 있습니다만... 요즘 부흥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서 기분이 별로 안 좋습니다. 주님은 기분이 어떠세요?”
물론 이런 경우 “아-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기간이다. 좀 더 내실을 다지는 기간이다. 혹은 인내를 이루는 기간이다.”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위로하며 추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동안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면 아- 그동안 숨고르기 참 많이 했습니다. 내실을 다지는 노력도 제법 했습니다. 인내요? 그것도 지겹도록 했습니다.
아- 그러잖아요. 제가 지금 여기 캘거리에서 이민 목회를 한지가 올해 27년째가 되어 갑니다. 여기 캐나다 앨버타 주에 있는 한인교회들 중에 제가 가장 오래된 목회자입니다. 그런데 27년이나 되었으면 아- 뭔가 좀 더 좋은 결과를 만들고, 더 큰 부흥을 이루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도 기분이 좋고, 여러분들도 기분이 좋고, 주님도 기분이 좋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맞잖아요?
그런데 지금 제가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저의 아버님의 생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사업을 하시다가 다른 회사의 부도 수표에 연관이 되어서 감옥살이를 6개월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터지자 사업이 순식간에 쫄딱 망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오시자 저의 아버님이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고백합니다.
“이제 나는 나이가 60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일어날 힘이 없다. 미안하다.” 요즘 제가 느끼는 심정도 저의 아버님처럼 이렇습니다. “나는 이제 나이가 64세가 되었다. 내 힘과 능력으로 교회의 부흥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미안하다.” 아- 하나님께 죄송스럽고요. 또한 저를 담임 목사라고 따라주었던 여러분들에게도 많이 미안함을 느낍니다.
저의 아버님의 경우는 총각시절 6.25가 발발하기 바로 직전에 혼자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오셔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런 저런 사업을 많이 하셨고, 결국에는 모두 실패하셨습니다. 그리고 60세가 되어서는 감옥살이도 6개월 하시고, 사업은 완전히 망하여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습니다. 아주 절망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은혜가 충만하여 아버님께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님,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거예요.” 아닌 게 아니라 그 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매번 실패하던 아버님의 사업이 신기한 하나님의 도움으로 마침내 성공을 했습니다.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 후 우리 가정에겐 돈의 궁핍함이 없었습니다. 제법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그 돈으로 걱정 없이 주의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바라보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저의 나이 올해 65세가 됩니다. 캐나다 사람들의 은퇴하는 나이가 보통 65세입니다. 어찌 보면 저도 이제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아직은 저에게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 하십니다. 좀 더 하라고 하십니다. “아니- 주님! 그러려면 뭔가 좀 기적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힘이 나고, 우리 성도님들도 힘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전에 주님이 저에게 주셨던 그 약속이 있는데... 그건 또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러분, 저는 목회 경력이 이제 40년이 되어 갑니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입니다. 어찌 보면 저는 목회에 있어서 거의 백전노장까지는 아니더라도, 80-90전 노장정도는 될 겁니다. 고로 지금처럼 내 힘과 능력으로 안 되고 낙심과 절망감이 닥칠 때, 이를 돌파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고, 모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겁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겁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 일행이 소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큰 절망을 맛보았습니다. 희망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죽을 처지에 빠졌습니다. 이제는 끝장이 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1:8-10)
때로는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도 사도 바울의 일행처럼 그럴 수가 있습니다. 인생의 고난이 너무 심하여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죽고 싶을 때도 있고, 또 죽을 처지에 놓일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바로 죽은 자를 다시 살려주시는 희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고 저와 여러분들도 다시 살려주신다는 겁니다.
이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주셨고, 앞으로도 기적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고로 주저앉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올려야 됩니다.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자고로 성경에 나타난 기적들은 일단 인간의 절망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즉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기회요,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때때로 우리 각자는 자신의 실력의 한계점에 도달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이 외국 땅에서는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나름대로 한국에서는 실력도 있고, 능력도 있어서 제법 잘 나갔었는데, 여기 캐나다 땅에 와서는 고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 오고, 이것이 낙심이 되고, 심령이 심히 처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괜찮습니다. 도리어 그런 낙심과 절망감이 찾아와서 나의 교만함이 깨어지고, 더욱 겸손히,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이 바라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은 나를 더욱 하나님께로 가까이 이끌기 위해서, 더 큰 주님의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런 절망의 환경들을 우리들에게 일부러 역사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저와 여러분들에게 그런 절망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고, 하나님이 새롭게 주시는 희망을 발견하라는 의도입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나의 절망, 너의 절망, 우리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입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 절망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고로 나는 이제 끝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인생의 마침표를 절망으로 찍지 마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으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으며, 희망의 주인공이 되어서,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간증하십시오.
여러분, 혹시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 마을’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대한민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땅끝 마을에 가면 거리마다 종종 이런 표지판들이 눈에 뜁니다. ‘땅끝 마을, 희망의 시작’ 즉 그 땅끝 마을은 끝에서 시작을 만나는 곳이라는 겁니다. 거기 땅끝 마을, 맨 끝 바닷가에 세워진 ‘땅끝 탑’에 ‘땅끝 희망점’이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일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시작 되는 길
끝점에 서서 얽히고설킨 고(매듭)를 시원스럽게 풀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인 삶으로 부터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는 뭍(땅)이 끝나는 곳에 섰을 때
비로소 다시 새로 시작할 길을 발견한다.“
즉 우리가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절망의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희망의 시작을 알리는 길을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은 바로 그 희망의 길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전부터 우리들의 희망의 길이 되셨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고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딴 데로 가지 마십시오. 희망의 예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일단 예수님께 나왔으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마시고, 좀 더 가까이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 분은 나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희망의 그 분께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솔직히 아뢰십시오. 그리고 절망 대신에 희망을 얻고, 희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희망을 노래하며 간증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때때로 우리는 이 외국 땅에서 심한 절망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겨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봅니다. 주여, 지금도 이 시간 기도합니다. 우리를 또 다시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겨주시옵소서. 또 다시 주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당신이 희망의 메시지가 우리 각자에게 성취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