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날짜: 
2010/11/28
설교: 

사49:14-17 내가 너를 잊지 아니 하리라.
성경공부를 하거나 신학공부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과정이 바로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즉 신론에 관한 것인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속성을 공부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자, 전능자, 복의 근원,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분, 동행자 등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은 무엇입니까?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표현은 많이 사용해도 '하나님 어머니'라는 표현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은 남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아버지'라는 표현은 우주의 대표, 인류의 대표, 민족의 대표, 가정의 대표로서 사용된 것이지 하나님이 여성이 아닌 남성이므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본떠서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남자였다면 아담만 만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와도 지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은 남성과 여성, 양쪽의 속성을 다 가지신 분이라고 생각해야 옳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하나님을 너무도 남성적인 하나님으로만 생각해왔습니다. 남성의 특징이 뭘까요? 강한데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가로막힌 홍해를 단번에 가르시는 힘이 있습니다. 전쟁에서 몇 십만이나 되는 군사들을 하루 밤 새에 전멸시키시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하나님의 강력한 남성의 위력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성적이신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여성의 특징이 뭡니까? 부드러운 겁니다.(물론 개중엔 안 그런 사람도 가끔 있지만요) 또한 섬세한 겁니다.(물론 투박한 여성도 가끔은 보이더군요) 특히 여성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모성애가 있습니다.
여성의 모성애를 보면서 도대체 저 모성애는 어디서 왔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성애도 바로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남녀가 연애하고 결혼할 때에 보면 가끔 여성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남자는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즉 제법 괜찮은 여성이 별로 괜찮은 남성을 배우자로 삼을 때에 모성애가 발동이 되어서 결혼까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성들은 이런 여성의 모성애를 발동시켜 여성의 마음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고 하는 고단수의 수법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성애의 특징이 뭡니까? 포근하고, 부드럽고, 그윽하고, 끝없이 희생적입니다. 그리고 모성애 하면 어린 아이가 엄마의 젖을 물고 엄마의 품속에서 새근새근 잠자는 모습을 연상케 됩니다. 그리고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모성애가 발동될 때 여성은 종종 남성보다 한없이 강한 존재가 됩니다.
한국에도 보면 어린 자녀를 남기고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도 어머니는 모성애로 자녀들을 아름답게 키워내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성애가 없기에 여성만큼 자녀들을 잘 키워내지 못합니다. 물론 부성애라는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모성애만큼은 훨씬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녀가 이혼을 하면 어린아이를 모성애가 있는 어머니가 키우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뒷돈을 대야지요. 아버지로서 억울하면 이혼하지 마십시오.
오늘 14절을 보면 하나님을 부모로 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만이 있습니다. 그들의 불만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렸고 잊어버렸다는 겁니다. 어찌 보면 그들의 불만은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급을 나와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먹을 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비같이 내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안 먹으면 안되니까 메추라기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은 지켜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이 죽고 나자 이스라엘에는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좋은 지도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범과 질서가 무너지고 나라가 엉망이 됐습니다.
백성들은 생각하기를 "만약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우리를 왜 이렇게 가만 두시느냐? 왜 우리가 원수들의 침략에 늘 시달려야 하느냐?" 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자기들을 위해 싸워줄 왕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몇몇 왕을 세워 봤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아무 일도 안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아예 이스라엘을 완전히 잊어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이 나온 겁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나를 버리고, 나를 잊으신 걸까요? 만약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나를 전폭적으로 주관하셔서 죄를 짓지도 못하게 원천봉쇄 하시고, 아예 죄성(罪性)마저도 깡그리 없애 주시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나를 잊지 않았다면, 왜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그냥 두셨을까요? 하나님은 스스로 전능하시다면서 왜 나 하나 훌륭한 신앙인으로 만들지 못하시는 겁니까?
정말 하나님이 나를 잊은 건 아닙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본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저는 여인이 아니라서 어린아이를 젖 먹이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자기 아이를 젖먹이는 엄마의 심정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도 아이가 있어서 대충은 압니다.
대충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처음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그 아기가 너무 예뻐서 정신을 못 차립니다. 기저귀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는 게 매일 있는 일인데도 지겨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마냥 즐겁고 신비한 겁니다. 정말 아기가 싸 놓은 똥까지도 예뻐 보입니다. 아이가 울 때는 어쩔 줄 몰라서 같이 울기도 합니다. 아이가 예쁘게 성장해가는 게 엄마에게는 너무나 큰 보람이고 기쁨입니다.
때때로 아이가 약간의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마저도 귀엽게 봐 줍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더 크게 되면 아이가 자기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엄마가 생각도 못한 일을 벌이게 됩니다.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부모 말을 거역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타이르기도 하고, 훈계도 하고 야단도 치는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매를 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부모도 실수를 많이 합니다. 때려서 잡아야 될 때, 그저 야단만 치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잘못의 대가를 아이에게 치르게 해야 될 때도 그저 엄마가 대신 치르고 맙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걸 모릅니다. 또 엄마도 나중에서야 압니다. "아 그때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됐었는데! 더 혹독하게 때리고 두 번 실수 안 하게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후회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커가면서 이제는 부모가 자기 인생에 개입하는 걸 싫어합니다. 그냥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놔둬 봤는데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또 야단치고, 가르치고 어르기도 하고, 위협도 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그 모든 걸 간섭으로만 듣습니다. 급기야 아이가 엉망으로 살기 시작합니다.
이때쯤이면 엄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알 때가 오겠지. 그래 그냥 한 번 그냥 놔둬보자!" 그러면서 그때부터 엄마는 아이를 당분간 그냥 둡니다. 그러나 아이를 생각하며 매일매일 초조와 긴장 속에 삽니다. 아이는 자기 멋대로 살아보았지만 생각대로 일이 되지 않습니다. 고생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도대체 엄마 아빠는 뭐하는 분들이야? 나를 자식취급이나 하는 거야? 혹시 나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아이는 자기가 잘못된 걸 알고 마치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듯이 힘없이 집으로 돌아옵니다. 성경에 보니 아버지가 맨발로 뛰어나왔고,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도대체 어머니는 어디 갔습니까? 아마 이 집안은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 같습니다. 대게 보면 어머니가 맨발로 뛰어나오고 어머니가 돌아온 아들을 위해 밥을 차려줍니다.
저도 중학교 때 나흘간 집을 나갔다가 배가 고파서 집에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집 나가서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씩 웃으시며 "왜 좀 더 있다 들어오지. 임마" 하시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신문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고, 우리 아들 배고프지 않니? 어디 갔다 왔니? 잠은 어디서 잤고? 잠간만 기다려라." 하더니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옵니다. 그리고 제가 사흘 굶은 거지 모양 밥 먹는 모습을 보시며 눈물을 닦으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집 나간 아들을 아버지는 사업하느라 바빠서 잠깐 잊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성애가 있는 어머니는 아들을 한시도 잊는 적이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관심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결코 우리를 잊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1997년 8월 5일 괌에서 KAL기가 추락하여 229명이 죽었습니다. 이때 한국의 아주 유망한 정치인 한 사람이 죽어서 안타까움을 산 적이 있었습니다. 신기하 의원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50일 후 또 다시 안타까운 소식이 세인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신기하 의원의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내용이 우리를 뭉클하게 합니다. 아들이 죽은 후에 그 어머니는 곡기(穀氣)를 끊고 다락방에서 지내다가 아사(餓死)했다는 것입니다. 아들 생각에 50일 동안이나 굶다가 그렇게 아들의 뒤를 따라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시신을 보니 가슴이 온통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는 겁니다. 가슴을 치고 슬퍼하다가 그렇게 죽었다는 겁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그 아들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낳아서 기르고 키운 자식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무슨 말씀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손바닥에 새겼다는 겁니다. 너무 귀중하니 손바닥에 새기고 늘 보살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 왜 나를 잊으셨습니까?" 하고 따지고 물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단지 법적인 상속인이 되어서 천국만 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어머니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정성껏 돌보아주듯이 그렇게 돌보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이 있습니까? 그래서 어머니의 모성애가 그립습니까?
돌아가신 내 친어머니보다도 나를 더욱 아끼고 사랑하고 돌보아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 어머니입니다.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찌 우리를 잊어버리겠습니까? 아무리 못나도 하나님은 나를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못난 자식을 더욱 깊이 안타깝게 생각하듯이 하나님은 내가 못날수록 더욱 정성껏 돌보아주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면서 종종 힘이 듭니까? 당신을 잊지 않고 잠잠히 바라보시는 하나님이 옆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나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이 외국 땅에서 나를 돌보아주시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입니다. "내가 너를 잊지 않을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