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동영상)

날짜: 
2013/05/05
말씀: 
빌1:12-14
말씀구절: 

(빌 1: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 1:13)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빌 1:14) 2)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설교: 

빌1:12-14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여러분께서는 그 동안 살아온 인생 가운데 혹 지워버리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너무나 쓸데없는 일로 허송세월을 해서 생각할수록 아깝고 안타까운 그런 시간들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결론적으로, 인생에 별 의미가 없어서 지우고 싶었던 그 시간들이 이제 와서 생각하니 오히려 약이 되고 복이 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제게만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누구든 이런 일, 이런 시간은 있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낭비했고, 기억조차 싫은 일을 겪었더라도 그것은 충분히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자주 예기치 않은 상황과 생각도 못한 일들을 겪습니까?

꿈이면 좋겠다 싶은 일,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길 바라는 일들이 생각보다 자주 옵니다. 물론 안 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지만, 그런다고 해서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크든 작든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오늘 그것을 배우기 원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것을 너희가 알기 원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바울이 지금 당하고 있는 일이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옥중에서 자기가 처음 유럽 땅을 밟으면서 세웠던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는 겁니다.

사실 바울은 감옥에 갇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고난당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감옥에 갇히게 되면 복음을 전할 수 없잖아요. 그는 어디서든 자유롭게 복음 전하며 다니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재판도 없이 2년간이나 그 곳에 갇혀 있게 됩니다.

"빨리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시간이 별로 없는데..." 하면서 노심초사했을 겁니다. 또 한 두 달도 아니고 2년씩이나 갇혀 있었으니 얼마나 갑갑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옥에서 나갈 한 가지 방법을 궁리해 냅니다.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로마 시민은 재판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나 구금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굳이 자기가 로마 시민인 것을 밝히지 않는 바람에 그렇게 옥에 갇혔던 겁니다. 만약 황제에게 상소를 하면, 그 로마시민 죄수는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도록 법이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상소를 하면 그 죄수는 무조건 로마까지 압송돼야 했던 겁니다. 원래 계획은 그냥 소박하게 가이사랴 빌립보 감옥을 나가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건데 일이 커져버렸습니다.

로마로 가는 길 또한 평탄치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그가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중에 일어난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중해를 따라 가다가 유라굴로라는 폭풍을 만나서 죽다 살아납니다. 거의 보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또 그를 호송하던 배는 다 깨져서 수많은 양곡을 바다에 던져야 됐습니다. 그러나 그 뱃길에서 살아나 로마에 도착하게 되고, 그 로마의 감옥에서 다시 2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보십시오. 바울은 지금 거의 4년에서 5년 가까운 세월을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이 빌립보서 역시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무척 답답했을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긴 세월 동안 감옥 문을 열어주시지 않는 걸까?" 분명히 그 생각을 했을 겁니다. 언제 감옥의 문이 열릴지, 아니면 그 감옥에서 인생을 마감하게 될 지 아무 기약이 없는 겁니다.

막막하고 고통스런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겁니다. 처음에는 제 아무리 사도 바울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괴로웠을 겁니다. 자기가 자유의 몸이 될지 어떨지 그 여부도 확실치 않은 겁니다. 오히려 사형당할 징후만 더욱 짙게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그는 아주 귀한 고백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아! 너희는 내 일 때문에 걱정하지 마라. 오히려 이 일로 복음 전파에 놀라운 진전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진전' 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코페'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나무를 찍어가면서 앞으로 전진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주로 군대에서 공병대가 앞서 나가면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길을 놓거나 다리를 놓을 때 쓰는 단어입니다. 로마군은 부대 전체가 공병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 길을 똑바로 뚫고 도로를 냈습니다. 그리곤 그 위로 말이 끄는 전차를 자유롭게 통행하도록 했던 겁니다.

그게 '프로코페(진전)'입니다. 로마시대의 지도를 보면, 지금 못지않게 온 제국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로마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스코틀랜드 바로 아래쪽에서부터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갈리아(지금의 영국, 독일, 프랑스), 그리고 동쪽으로는 옛 유고연방, 헝가리, 그리스 등 동유럽 전체와 나아가서 터키와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그래서 유프라테스 강 바로 전까지 로마가도를 '프로코페' 했던 겁니다.

지금의 유럽 고속도로는 거의 대부분이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닦아놓은 로마가도를 포장만 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바로 그 얘기를 사도 바울은 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바울에게는 '프로코페'할 복음의 새로운 영지가 나타난 겁니다. 어디지요? 13절을 다 같이 읽어볼까요?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아멘!

복음의 새로운 영지는 바로 시위대였습니다. 시위대란 로마 황제의 경호를 맡고 있는 황제의 친위부대입니다. 당시 이 부대는 엄청난 특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유력한 집안의 자식들이었고, 그래서 로마정신에 투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경호부대였기 때문에 여기에 선발되면 급료도 다른 부대의 곱을 받고, 남과는 확실히 다른 좋은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로원 의원들이나 상권을 쥐고 있는 가문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이 시위대에 뽑히기를 원했습니다. 이 부대를 처음 조직한 황제가 바로 그 유명한 아우구스투스 황제였고, 그 수는 만 명 정도였습니다. 부대 자체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부대였습니다. 로마는 '명상록'으로 유명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사후,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콤모두스는 역대 최악의 정치를 하게 됩니다. 그러자 제국 내 여기저기서 군단장들이 황제를 자칭하고 나섰습니다. 이때 황제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 시위대가 그를 인정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당시 페르티낙스란 사람이 황제가 된 것도 완전히 시위대의 작품이었고, 그 뒤의 황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튼 이들은 로마인들 가운데 가장 큰 특권을 누리는 세력들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아무나 시위대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로마 정치의 핵심이요, 로마의 사상과 정신에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황제를 숭배하는 데에도 철옹성을 쌓고 있던 로마의 최정예 엘리트 집단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 가운데 사도 바울이 들어가게 된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매임'이란, 사도 바울이 바로 그 시위대 병사들이 지키고 있던 로마의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냥 '매임'이라고 되어 있지만 에베소서 6:20절이나 사도행전 28:20절에 보면 그는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쇠사슬에 매였다고 하는 이것이 그가 어떻게 시위대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는가 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로마는 중 죄수를 가둘 때에는 간수 두 사람이 죄수의 양쪽 팔에 각각 손을 같이 묶어두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형사가 범인을 잡은 후에 범인 뿐 아니라 자기 손목에도 같이 수갑을 채우지요?

바로 그 모양입니다. 지금 죄수의 양 손목을 다 그렇게 묶어둔 겁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탈옥을 방지하기 위해서기도 했지만 만의 하나 있을지 모르는 죄수의 자살을 막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겁니다. 그렇게 양쪽에서 손끼리 묶어두었을 뿐 아니라 감옥 문 앞에는 별도로 두 명의 간수가 또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중죄인을 지키기 위해서 네 사람의 시위대 병사들이 배당되는 셈이지요.

근무는 하루에 여섯 시간씩 4교대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 곁에는 하루 최소한 16명의 시위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사도 바울은 뭘 했겠습니까? 우리는 바울이 무엇에 미친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전파에 미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감옥에 갇혀서 시위대 군사들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을 때 뭘 했겠습니까?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보면서 아무 할 일도, 아무 할 얘기도 없는 사람들을 두고 사도 바울은 뭘 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그는 그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을 전해들은 시위대 병사들의 마음은 조금씩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들은 누군가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복음은 황실의 친척에게로 들어가고, 그의 친구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어느 순간엔가 황제의 아주 지척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네로 황제의 삼촌과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었고, 또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어머니와 딸들도 기독교인이 됐습니다.

또한 그 전에, 사도 바울이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는 로마의 온갖 고관대작들이 함께 자리를 했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때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 받는 바울의 모습을 눈여겨본 많은 귀족들이 로마의 감옥에 바울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옛날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처럼 로마의 고관들이 밤중에 찾아와서 복음을 들었습니다.

결국 시위대 감옥에서부터 영글기 시작한 복음이 로마의 황궁과 제국 전체에까지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기의 매임이 시위대 뿐 아니라 뒤에 보면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감옥생활이 이런 복음의 큰 진전을 가져왔다니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당한 일', 즉 바울이 당한 일 뒤에 숨어있던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그것을 안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위대 병사들에게, 그리고 법정에서, 또한 자기를 찾아 온 고관대작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 내가 감옥에 몇 년간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4, 5년 동안 감옥에 두셨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바울은 여기서 그가 로마서에서 고백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았을 겁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또한 사랑하는 디모데에게는 유언처럼 이런 말을 했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2: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분들 중에는 오랜 시간 동안 어려운 환경 가운데, 답답해하고 실망하는 분이 있을 겁니다. 도무지 왜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꽉꽉 막힌 감옥처럼 느껴져서 절망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그 모든 원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힘과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한숨짓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학교문제 때문에, 건강문제 때문에, 경제문제 때문에, 인간관계 문제 때문에, 직장문제 때문에 아파하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어려운 환경과 역경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입니다.

바울에게 감옥에서의 생활이 복음의 진전을 가져온 것처럼 여러분의 역경과 고난은 여러분의 인생을 한 걸음 더 전진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물론 지금은 그 당하는 일의 이유를 모를 수 있습니다. 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바닥에 그 이름을 새겨놓은 당신의 자녀입니다. 자기의 피로 구원한 자녀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자기의 자녀를 고통가운데 그냥 두시겠습니까? 여러분!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문제 가운데 있습니까? 갈피를 못 잡겠습니까?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내 딸아! 나는 너희가 당하는 일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는 계획과 뜻이 있단다. 그러니 힘을 내라. 용기를 내라. 내가 옆에 있잖니?"

그러므로 고난이 닥쳤을 때 이렇게 외치십시오. "나의 당한 일이 복음의 진전이 되었노라." "나의 당한 일이 내게 복된 일이 되었노라." "나의 당한 일이 우리 모두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복이 되었노라." "나의 당한 일이 내 가정과 교회와 민족에게도 복된 일이 되었노라." 그렇게 외쳐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