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10:23-35 목사님, 개고기를 먹어도 좋습니까?
어떤 한국 성도님이 한국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개고기를 먹어도 좋습니까? 먹지 말아야 합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아주 쉽게 답변해주었습니다. “성경대로 하십시오.” 그 성도님은 성경을 생각하면서 개고기를 먹어도 좋은가 안좋은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개고기를 먹으라고 하시는지 먹지 말라고 하시는지 성경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개고기를 먹으라 말라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적이 없었음을 알았습니다.
단지 노아의 홍수 이후에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들과 그 후대의 사람들에게 동물들을 양식으로 먹으라고 허락하셨습니다. 창세기 9장 2-3절에 노아의 가족들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었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주노라.”
이 구절에서 보면 ‘땅의 모든 짐승, 하늘의 모든 새, 바다의 모든 고기’를 전부 양식으로 주었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셨기에 이를 확대 해석하면 분명히 개고기도 땅의 모든 짐승 중의 하나이기에 양식으로 먹어도 좋다는 생각을 그 성도님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동물을 취하여 양식으로 먹을 때 그 종류를 가려서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양식으로 먹어도 좋을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자세히 나옵니다.
먼저 땅의 동물들 중에는 되새김질을 하며 발의 굽이 갈라진 것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 중에는 일일이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독수리, 솔개, 매, 까마귀, 타조, 갈매기 올빼미, 학, 박쥐는 가증하니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곤충들 중에는 날개가 있고 기어 다니는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기준으로 볼 때 개는 굽도 없고 되새김질도 못하기 때문에 분명히 먹지 말아야 할 동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약의 조건이 신약에 와서 갑작스럽게 전면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즉 신약시대에는 구약시대에 먹지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동물들을 오히려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아- 왜 하나님이 이랬다저랬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옥상에 올라가 기도하려고 할 때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며 큰 보자기가 내려오는데 거기에 보니 레위기 11장에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부정한 짐승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그러자 소리가 났습니다.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개도 깨끗하게 했으니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한 짐승처럼 생각하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리고 동물을 취하여 먹는 문제로 모든 사도들이 모인 가운데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할레도 받게 해야 하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에는 부정한 음식에 대한 규제도 포함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개고기도 먹어도 좋은가 안되는가 하는 해답도 얻을 수 있는 회의였습니다.
당시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많은 이방인들이 오직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할레를 비롯해 율법의 행함이 구원에 또 필요하다고 몇몇 유대인들이 주장하니 참으로 헷갈렸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방인들이 복잡한 유대인들의 율법을 지키려고 하니 예수님을 안믿겠다고 떨어지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사도들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했습니다. 많은 토론이 있은 후 내려진 결정은 이렇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행15:28-29)
이 결정에서 보면 구원을 받는 데에는 오직 믿음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의식들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이므로 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행, 우상의 제물, 피,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결정 사항을 토대로 확대 해석하면 어찌 보면 개고기를 먹기는 먹되 목매어 죽여서는 먹지 말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됩니다. 동물을 목매어 죽이면 그 속에 피가 있기 때문에 결국 피를 먹는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개고기를 먹어도 좋은 것인가 안좋은 것인가에 대하여 성경에 나온 지식들을 토대로 이야기 했지만 어쩐지 완벽한 해답으로서는 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다시 한번 개고기를 먹는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본문 23-24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아마 머리 회전이 빨리 돌아가시는 분들이나 오늘의 성경 본문이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신 분들은 개고기를 먹느냐 마느냐에 대한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개고기는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좋습니다. 그러면 먹어도 좋을 때는 언제고 먹지 말아야 좋을 때는 언제입니까? 오늘의 성경 본문에 보면 자기가 처한 상황을 보면서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 자리에 개고기를 먹는 것을 야만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에서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여기 캐나다와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나라들은 개고기를 먹는 것은 마치 식인종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들의 문화가 개고기를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이 여기다가 개시장을 만들어 놓고 식용으로 개고기를 팔면 한국인들은 너무나 불쾌한 민족이 되고 맙니다. 이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들의 이러한 생각과 문화를 무시하고는 전도도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판단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게 됩니다.
이럴 때는 절대로 개고기를 먹어서는 안됩니다. 개고기를 먹는 우리로 말미암아 그들이 실족하기 때문입니다. 화목이 깨지고 연합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즉 음식을 먹어서 상대방을 세워주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해야지 음식으로 상대방을 실족시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를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어떤 성도님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고린도 전서8-10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고 음식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깨끗한 것이니까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고 하셨고, 한편으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귀신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엄격히 금하고 있는데 왜 성경에 이렇게 한 사람이 같은 문제를 가지고 상충되는 발언을 합니까? 참으로 헷갈립니다.”
어찌 보면 성경에 이렇게 서로 상충되는 사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잘못되고 불합리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상충되는 것들을 잘 살펴보고 비교하여 조사해 보면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상충되는 발언을 한 것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예를 들어 보지요. 한국 서울의 세검정에 가면 삼각산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그곳에는 기독교인들의 기도처로 사용이 되었고, 한편으로는 무당들도 굿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던 곳이었습니다. 몇 분의 목사님들이 삼각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나니까 상당히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다 보니 무당이 굿을 하고 간 자리에 음식이 푸짐히 놓여져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무당이 굿하고 남겨놓은 음식을 아주 맛있게 드셨습니다. 왜냐하면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고 음식은 깨끗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성도님들과 같이 산기도를 하고 내려오다가 무당의 음식을 보면 그 음식을 성도님들 앞에서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에게도 먹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자리에 혹시 믿음이 약한 성도님이 있어서 실족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 즉 약한 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에 내 자유를 스스로 절제하고 제한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 두 가지 서로 상충되는 말씀을 한 것입니다. 즉 남을 위하여 나의 자유를 제한하라는 권고입니다. 이에 대한 성경 구절은 이렇습니다. 고린도전서 8:9절입니다.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라.” 로마서 14장15-16절 말씀입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9장 19-22절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라.“
이 말씀들을 들으면서 오늘의 주제가 단지 개고기나 먹는 것만이 아닌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오늘의 주제는 남을 위하여 상대방을 생각해주는 마음입니다. 특히 먹는 것조차도 상대방을 생각하며 먹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 예배를 마치고 모든 성도님들이 다함께 식사를 합니다. 이때에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생각해주어야 합니다. 처음 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아는 분들이 없어서 서먹서먹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먼저 온 분들은 끼리끼리 좋아하는 자들만 모여서 식사를 하면 그날 처음 오신 분들은 먹는 자리가 시험이 드는 자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경에 말씀하신바 먹는 것으로 형제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계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하나님 사랑이고 둘째는 이웃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사랑해야 하고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진다고 성경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나만 생각하고 상대방과 이웃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기적인 생각은 복음에 큰 방해가 됩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는 아무리 복음을 외쳐도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상대방을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마음이 있을 때 불신자들이 구원을 받고, 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오늘의 본문 33절입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아멘!
목사님, 개고기를 먹어도 좋습니까?
날짜:
200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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