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열심 잘못된 열심

날짜: 
2003/09/01
설교: 

제 목 ; 바른 열심 잘못된 열심
본 문 ; 롬 10:2-3

인터넷 유모집을 보다가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우리 아버지께서 교회에 너무 심하게 빠졌습니다. 제가 볼 때도 이런데 주위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 친척들도 다 우리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이거 어떻게 고치는 법 없을까요 ? 정말 괴롭습니다. 밤마다 돼도 안한 설교를 들어야하고... 들어보면 정말 말도 안됩니다. 사탄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우리 아버지가 너무너무 불쌍합니다 ! 그리구 교회가 너무 밉습니다. 돼도 안된 설교를 하면서 헌금이나 거둬가고... 뭐할 때 헌금 내라... 머할 때 헌금 내라... 헌금 종류도 엄청 많더군요. 그것두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 이렇게 거둬가더군요. 교회에서 벗어나는 법 아시는 분, 제발 좀 가르쳐주세요. 꼭 좀 부탁합니다. 개인적으로 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 글에 대한 어느 사람의 답변 내용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 교회에 빠지다니 당신은 참으로 행운아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불교에 빠지셔서 지금까지 일년이 넘도록 산에서 안 내려오십니다. 당신의 아버지께서 교회에 빠진걸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아버지- 보고싶습니다 !!!"

여러분, 영어로 '광신적'이라는 말을 쓸 때 'fanatic'이란 말을 씁니다. 즉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입각하지 않고 무식한 열심, 잘못된 열심을 내는 종교인을 가리키면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물론 앞에 소개한 글에서 언급된 아버지가 광신자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 글을 읽다보면 열심히 하나님을 믿는 아버지에 대해 아들이 잘 이해를 못하므로 "우리 아버지는 광신자다 !" 하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다른 교단에서 볼 때에 오순절 교단이나 순복음 교인들은 너무 광신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벗어난 광신적인 열심, 잘못된 열심과 진리에 입각한 바른 열심은 구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열심을 낸다고 무조건 다 광신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진리에 입각하여 열심을 내는 것은 주님이 크게 기뻐하시는 모습이요, 우리는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열심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 영어로는 '열심'이란 단어를 쓸 때 'enthusiasm'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을 분석하면 en(in : 안에) + theos(하나님)입니다. 즉 그 안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이 진정한 열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열심은 참된 열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 수요 예배 때에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는 내용으로 말씀을 전한바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열심'이란 너무나도 필요하고 좋은 덕목이 되고 입습니다.
그러나 열심에도 바른 열심이 있는 반면 잘못된 열심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열심은 오히려 모든 것을 망쳐놓고 더욱 큰 상처와 슬픔을 안겨 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잘못된 열심을 내는 사람은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잘못된 열심은 버리고, 참되고 바른 열심으로 주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잘못된 열심은 무엇일까요 ?

오늘 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즉 하나님을 위한 열심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한 열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경고한 말씀입니다.
미국의 보너 박사가 하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보너 박사의 열심을 저울에 달아보겠다는 것입니다. 보너 박사는 자기의 열심이 하나님과 천사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고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말을 합니다. "당신의 열심을 달아보니 100근입니다."
이 말을 들은 보너 박사는 마음속으로 깨 무겁다고 느껴져서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곧이어 열심의 내용을 분석해 보여 주었습니다. 보너 박사의 열심은 100근인데 그중 50근은 이기적인 열심이고, 25근은 당파를 짓는데 사용한 열심이었으며, 22근은 자기의 명예를 위해 노력한 열심이었고, 3근만이 진정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시절 유대인들의 열심을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려는 열심은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데에는 여전히 열심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열정이 잘못된 열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열심이 많을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열심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절 유대인들 중에는 열심 당원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너무 지나쳐서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즉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입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 시절의 유대인들은 지식이 없는 무식한 열심, 잘못된 열심을 내었던 사람들이요, 그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생겼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에는 지식은 있는데 열심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열심을 내면 좋은데, 열심은 내지 않고 단지 머리만 돌리고 잔꾀만 부리려고 합니다.
바른 지식 없이 열심만 내는 것도 문제지만, 지식은 있으나 열심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즉 바른 지식에 입각한 열정이 같이 어우러져야만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신앙을 갖출 수가 있습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들의 열심은 참으로 무서울 정도로 대단합니다. 특히 몰몬교나 여호와의 증인의 경우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집집마다 다니며 전도하는 열정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리가 왜곡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의 열심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피아노를 샀다고 합시다. 그리고 그는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고, 제대로 칠 줄도 모르는 피아노에 대해 전혀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열정만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었습니다.
물론 자기가 듣기에는 꽤 괜찮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불협화음 소리를 듣는 사람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더운 날에 더욱 더워지고 맙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사랑해고,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즉 열심이 올바른 지식과 동행해야만 보기가 좋다는 것이요, 좋은 작품이 나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른 진리에 입각한 바른 열심을 갖추어야 좋은 크리스천이 될 수가 있습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해보십시다. 어떤 청년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운전면허도 없고, 운전할 줄도 몰랐습니다. 단지 운전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운전석에 앉아 열심히 시동을 걸고 운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분명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게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려고 굳게 결심하고 열심히 믿으려는 사람도 그 열정이 성경의 지식에 기초해야 하고, 교회의 질서에도 맞아야만 합니다. 바른 지식이 없는 열정은 오히려 자신의 장래를 망치고, 자신의 가정의 축복을 저해하고, 교회의 질서를 파괴하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사탄의 도구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식 없는 잘못된 열심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물론 열심 그 자체를 비판하고 부정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바른 지식에 입각한 바른 열심을 낼 때 우리의 신앙은 아름답게 자라나고, 가정과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하고, 주님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바른 하나님의 지식에 입각한 뜨거운 열정을 일으키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늘 간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