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미혼의 여성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나쁜 남자 좋아하세요? 착한 남자 좋아하세요?” 이 질문에 사람마다 대답이 다르겠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예- 솔직히 젊었을 때는 나쁜 남자가 좋았는데, 이제 나이가 먹으니까 착한 남자가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질문을 미혼의 남성분들에게 똑같이 물어보면 어떨까요? “나쁜 여자 좋아하세요? 착한 여자 좋아하세요?” 이 질문에 역시 사람마다 대답이 다르겠지만 거의 대부분의 남성분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 당연히 착한 여자가 좋지요.” 그리고 이런 똑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해보면 어떨까요?
“하나님, 하나님은 착한 사람이 좋아요? 나쁜 사람이 좋아요?” 이 질문에 하나님은 조금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이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아- 나는 당연히 착한 사람이 좋다.” 왜 그러지요?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착한 하나님이시고, 착한 일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가끔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악인을 계속 용서하시고, 그렇게 못된 죄인들도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보고 착각하는 겁니다. “어- 하나님은 악인과 죄인을 사랑하시는구나.” 더구나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3)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보세요. 예수님은 의인보다 죄인을 더 좋아하시잖아요.”라고 생각하면 진짜 착각하는 겁니다. 여러분, 이 말뜻은 이 세상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완전한 의인이 한 사람도 없고, 모두 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이 땅에 의인을 부르러 왔다면 한 사람도 못 만납니다.
그렇게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완전한 의인이 있다면 굳이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그 의로움으로 떳떳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착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두 다 죄인이기 때문에 그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지, 예수님이 착한 사람은 싫어하고, 죄인과 악인을 좋아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착한 하나님이시고, 착한 사람 좋아 하시고, 오늘도 여전히 착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예수님 믿고 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착한 사람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고로 저와 여러분은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쁜 일, 못된 죄를 짓고 있다면 돌이키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처음 외치신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 그리고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서 오신 세례 요한도 처음 외치신 말씀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3:2)
즉 나쁜 사람, 못된 사람 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그러면 지옥은 물러가고 천국이 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즉 오늘날로 말하면 세례 교인이 되었는데 여전히 악하고 못됐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다시 외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3:7-8) 즉 말로만 신자, 겉으로만 신자가 되지 말고 착한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 착한 행실을 하는 착한 신자가 되라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예- 당연히 아멘입니다.
착한 신자가 되려고 우리는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죽을 때까지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늘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있습니다. 늘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그 착한 일을 행할 능력은 내게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은 착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결국 나도 모르게 또 다시 죄를 짓는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18-19, 24)
즉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그 죄의 뿌리가 얼마나 질기고 얼마나 견고한지, 그리고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심한지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건 있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그 죄의 정죄함을 받고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갈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죄의 용서함을 받아 심판을 당하지 않습니다.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믿고 죄 용서함을 받아서 확실히 천국에 간다고 “아- 이제는 다 됐다. 나는 아무리 죄 지어도 예수님 믿었으니 천국에 간다.” 하고 여전히 못되고, 여전히 악하게 굴면서 죄를 계속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런 사람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1, 23)
즉 예수님 믿었으면 착하게 살면서 좋은 열매, 착한 열매를 맺어야지 나쁜 열매, 못된 열매를 맺으면 찍혀서 불에 던져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뭐- 거의 모든 종교는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착하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아무리 가르치고 아무리 배워도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왜 그럴까요? 다름 아닌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totally corrupted 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이 내 속에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2)”고 계속 외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양심도 화인을 맞아서 마비가 되어 전혀 작동이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완전히 마귀화가 된 사람입니다. 죄를 지어도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습니다. 혹시 살면서 주위에 그런 사람 본 적 있습니까? 뭐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지옥 갑니다. 암튼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 가장 큰 숙제는 일단 예수님 믿고, 그 다음에 착하게 사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착하게 살 능력이 부족하니까 성령을 통해서 그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즉 내 안에 착한 하나님의 영이 들어와 내 인격을 완전히 바꿔주시는 겁니다. 우리를 이를 가리켜 신학적으로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는 착한 마음이 생깁니다. 착한 일을 보다 쉽고 용감하게 하게 됩니다. 다름 아닌 내 안에 착한 주님이 영으로 들어오셔서 착한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예수님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교회가 부흥되고 성장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을 수가 있는데 그 중 제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겁니다. 저를 비롯해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 충만하여 착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이 교회를 다닐 때 착한 목사님, 착한 장로님, 착한 집사님, 착한 성도님들이 있는 곳에 다니고 싶지, 나쁜 목사님, 나쁜 장로님, 나쁜 집사님, 나쁜 성도님들이 있는 곳에 다니고 싶겠습니까? 물론 교회를 다닌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착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교회는 알곡과 쭉정이와 가리지가 섞여있습니다. 바다에 그물을 내리면 좋은 물고기도 잡히고, 나쁜 물고기도 잡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채울 때, 즉 전도를 할 때에 착한 사람만 골라서 전도하고, 나쁜 사람은 전도하지 않고, 그렇게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들이 나가서 만나는 대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리고 왔는데 악한 자와 선한 자가 섞였다고 했습니다.(마22:9-10) 물론 그런 죄인들과 악인들이 교회 와서 회개하고 변화가 되어 착한 사람이 되면 가장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렇게 오래 믿고도 변화가 되지 않고 계속 악을 저지르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나중에 골라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착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끝이 안 좋아 질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즉 착한 사람이 되어 착한 행실을 통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전도를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30배, 60배, 100배 결실하는 사람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라.”(눅8:15)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각종 축복과 은혜를 풍성하게 베푸시는 이유도 바로 이겁니다. 그 받은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착한 일을 하라는 겁니다. 이에 대한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10)
결론입니다. 반드시 착한 사람이 되십시오. 착한 아내, 착한 남편, 착한 자녀가 되십시오. 착한 이웃, 착한 성도님이 되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아무쪼록 착한 사람이 되어 끝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많은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