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날짜: 
2006/12/17
설교: 

잠16:9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한 나무꾼이 열심히 나무를 하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땅을 보니 한 개미가 열심히 먹이를 구하려고 분주히 다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무꾼은 자기가 먹고 있던 밥 한 톨을 그 개미 앞에 떨어뜨려 주었습니다. 그러자 개미는 자기가 그 밥알을 스스로 발견한줄 알고 뛸 듯이 기뻐하며 그 밥알을 물고 열심히 뒷걸음질 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지나가던 또 다른 개미 한 마리가 그 밥알을 빼앗으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래서 개미 두 마리가 싸움이 붙었습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하면서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그러자 나무꾼이 한 나뭇가지로 뒤에 온 개미를 탁 튕겨 버렸습니다. 그러니 그 개미가 멀찌감치 튕겨나갔습니다. 그러자 처음 밥풀을 물던 개미가 자기가 힘이 있어서 이긴 줄로 알고 의기양양하게 밥풀을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튕겨 나간 개미는 “와~ 저 개미 녀석 힘이 되게 세내! 나를 그냥 탁 발로 차버렸는데 이렇게 튕겨 나오고 말이야!” 하면서 슬금슬금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자 나무꾼은 웃으면서 말합니다. “싸움은 너희가 싸웠으나 승패는 내가 결정해 주었다. 실상 배후의 힘은 나였다.”
여러분, 인생 30대와 40대가 느끼는 것이 좀 다릅니다. 인생 30대에는 내가 마음만 먹고 힘을 쓰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인생 40고개를 넘으면 어렴풋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은 내가 생각한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 중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배후의 힘이 자신의 운명과 팔자를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운명을 알아볼 수 있을까 싶어서 손금도 보고, 관상도 보고, 사주팔자도 보고, 혹은 점치는 집에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나도 아니요, 타인도 아니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인 것을 믿습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을 보십시오.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자신들도 아니요, 애급도 아니요, 눈에 보이지 않는 막강한 하나님의 능력이요, 영향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따라서 430년간 종살이 하던 애급 땅을 떠나 의기양양하게 나왔지만 얼마 있지 아니하여 홍해라는 장애물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한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애급왕 바로가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종으로 잡기 위해서 습격해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래도 절망이요 저래도 절망입니다. 그들의 운명은 홍해가 결정하는 것 같았고, 애급왕 바로가 결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이 비극의 운명을 만든 장본인이 모세인 줄 알고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홍해수도 아니요, 애급왕도 아니요, 모세도 아닌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니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운명은 바뀌어 기적적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반면 승리의 쾌재를 부르며 전진하던 애급 군대는 모두 홍해수에 매장되는 운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하,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이 결정하시는구나!” 여러분, 아무리 군대가 많아도 전쟁에서 이기라는 법이 없고, 아무리 잘 뛴다고 해도 반드시 일등 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운명과 역사의 주인이시요, 우주의 주인이시요, 인간의 주인이신 배후의 하나님의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실화입니다. 태종이 모든 정사를 아들 세종대왕에게 넘기고 풍양궁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뜰을 거니는데 두 신하가 하늘과 사람의 이치를 논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갑이라는 신하가 “부귀와 영달은 모두 임금님에게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을이라는 신하가 갑이라는 신하의 의견에 반박을 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다. 한 계급이 오르거나 벼슬을 하게 되는 것은 모두 하늘이 정하신 것이다. 비록 임금님이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말을 듣고 있던 태종이 “이런 고약한 놈! 아니 모든 계급이 높아지고 행복하게 되는 것은 임금님이 결정하는 것이지 어떻게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냐?” 하고, 태종은 당장 아들 세종대왕에게 이런 편지를 적었습니다. “애야, 이 편지를 들고 가는 신하를 한 계급 특진을 시켜라!” 그리고 이 편지를 봉투에 넣어서 모든 축복은 임금님에게서 온다는 사람을 불러서 “이 편지를 세종대왕에게 전달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그 신하는 그 편지 내용이 뭔지도 모르고 “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그 편지를 세종대왕에게 가지고 가려고 막 준비를 하려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뜻하지 않게 복통이 생겼습니다. 막 설사가 나오고, 배가 뒤틀리고, 너무 아파서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편지는 전달을 해야 하니까 조금 전에 자기와 말을 하면서 ‘모든 축복은 임금이 아닌 하늘로부터 온다.’고 말한 사람에게 “야! 이 편지를 빨리 세종대왕에게 전달해라! 나는 급히 화장실에 가야 되겠다.” 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편지를 들고 한 신하가 오니까 세종대왕은 편지를 펼쳐보면서 아버지 태종이 부탁한대로 “한 계급 특진!” 하고 벼슬을 올려줬습니다. 그 이튿날 태종이 보니까 아니 이럴 수가 있습니까? 자기가 계급을 올려주려고 했던 신하는 안 올라가고, 안 올려주려고 했던 신하의 계급이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태종이 편지를 전달하라고 명령했던 신하를 불렀습니다. “야~ 모든 축복이 임금님에게 온다고 말한 너에게 내가 한 계급 특진시키라고 세종대왕에게 편지를 써주었는데 어떻게 네가 올라가지 못하고, 모든 축복이 하늘로부터 온다는 신하의 계급이 올라갔느냐?”
그러자 신하가 말합니다. “아이구~ 임금님, 제가 편지를 들고 가다가 그만 배탈이 나가지고서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서 화장실 가는 동안에 편지를 전달해주라고 그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 친구가 그 편지를 가지고가서 한 계급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태종이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아하- 임금도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가 없구나!”
여러분, 인생의 생사화복과 부귀공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그 계획의 성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고로 오늘의 본문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나는 이렇게 하겠다. 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어디 그 계획이 내 마음대로 다 100% 됩니까? 나도 모르게 내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곳에 오기 전 태국 선교사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태국 선교사 파송장도 이미 받았고, 제가 가야할 태국의 전임 선교사에게 인수인계도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태국에서 해야 할 계획을 논하려고 주일날 담당자들의 회의가 잡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 전날 밤에 제가 꿈을 꾸었습니다. 다름 아닌 제가 여러 사람과 스케이트를 타는 꿈이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주일날 잡혔던 담당자 회의가 갑자기 취소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태국의 현지사정으로 인하여 제가 선교사로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저는 이곳 캐나다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꿈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하, 꿈에 스케이트를 탔었는데 그것이 바로 추운 나라인 캐나다로 가는 것을 뜻하는구나! 더운 태국에서는 스케이트를 탈 수 없지!”
여러분의 경우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 캐나다 추운 캘거리까지 오는데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요셉이란 사람의 인생도 보십시오. 아버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특별히 신앙이 좋았습니다. 요셉은 늘 하나님과 교통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요셉에게는 특별한 꿈을 보여주었습니다. 꿈에 보니 그가 형들과 추수하러 갔는데 형들의 추수단이 자기의 추수단을 둘러싸서 절하는 것도 보았고, 해와 달과 열한별이 자기를 향해서 절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요셉이 이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하자 형들은 분노해서 “네가 과연 우리의 임금이 되겠느냐?” 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형들이 멀리서 목축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요셉을 부릅니다. “애야, 이 음식을 형들에게 갖다 주고 형들의 안부도 가지고 오너라.” 아버지의 심부름을 받고 요셉이 들판으로 오자 형들이 말합니다. “아~ 꿈꾸는 놈이 온다. 우리 저 자식을 잡아 죽여 버리자! 그리고 그 꿈이 어떻게 되는가 보자.”
형들은 요셉을 당장 잡아서 발가벗기고 그를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습니다. 광야의 마른 우물에 빠진 요셉은 사람이 구해줄 수 없기 때문에 그는 그 자리에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형들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요셉은 이제 죽었다고 생각하고, 요셉의 꿈도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아라비안상인들이 지나갑니다. 그러자 형들이 의견을 나눕니다. “야, 우리 요셉을 우리 손으로 죽일 것이 무엇이냐? 아라비아상인들에게 요셉을 팔아먹으면 돈도 벌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 아니냐?”
보십시오. 그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마른 우물에 던져 넣었으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배후에서 아라비아상인을 때마침 보내시고 요셉을 애급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형들이 요셉을 노예로 판 것 같이 보이고, 인간이 요셉을 애급으로 보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이 인간의 나쁜 생각도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쓰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하필 애급의 시위대장인 보디발 장군의 노예로 팔리게 되고, 더구나 보디발 장군의 마나님의 모함으로 강간범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므로 왕의 신하들만이 들어오는 같은 감옥에 갇히므로 왕의 떡장관과 술장관을 만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로 요셉은 나중에 애급왕에게 발탁이 되어 애급의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배후에서 요셉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배후에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여러분이 결혼한 아내와 남편도 희한하게 하나님이 결정한 것이요. 이곳까지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이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와 여러분의 짧은 인생은 배후에서 하나님이 결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삶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다가올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우리 인간의 손에 의하여 결정이 된다면 우리는 늘 불안에 떨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내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 뜻대로 되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 주세요.“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운명을 하나님께 부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겠다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배후에서 우리들의 인생을 가장 좋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내 운명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면 당시에는 좋은 것 같지만 얼마 지나면 그 모든 것이 이리저리 틀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로 우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내 운명을 주관하고 일일이 내 운명을 인도해 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운명을 일일이 주관하고 간섭하면 짜증이 나고 귀찮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내 운명을 주관하고 간섭하면 나는 기쁩니다. 나는 평안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고, 나보다 더욱 선하시고, 나보다 더욱 능력이 많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실력이 내 실력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모셔드리는 사람에게 찾아오셔서 그 인생을 주관하시려고 하시지, 하나님을 초청도 안하고, 하나님이 보낸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사람에게는 그 인생을 스스로 살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생을 살면 그 인생은 나중에 반드시 꽝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곳 캐나다에 꽝된 인생을 살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어찌하든지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힘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려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아무쪼록 이 외국 땅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아 보다 행복한 인생, 보다 뜻 깊은 인생, 보다 아름다운 인생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