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노인)공경 왜 해야 하는가?

날짜: 
2025/05/10
말씀: 
레19:32
말씀구절: 

32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설교: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를 들었는데, 그 말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던 경험입니다. 얼마 전 제가 여기 캘거리 H마트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나이 지긋한 한 노인 분께서 계산을 하면서 젊은 여성 직원에게 무심코 “얼마야?”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여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응- 50불이야.” 하고 퉁명하게 대답을 합니다.

저는 그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노인의 얼굴빛을 보니까 그 노인 분도 젊은 여직원의 그런 반말에 심히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리고 그 노인 분이 잠시 후 그 젊은 여성 직원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얼마 나왔지요?” “예, 50불이에요.”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젊은 여직원에게 물었습니다. “너 존댓말 할 줄 아는데 왜 처음에 반말로 했니?” 물론 이 질문을 제가 그 직원에게 직접 했다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질문을 하고 싶었다는 겁니다. 그럼 그 직원이 뭐라고 대답할까요? 아마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손님이 먼저 반말로 했잖아요.”(×2)

그 말이 제 가슴에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제 공경과 존댓말도 조건부가 되었구나.” 여러분, 한번 물어봅시다. 상대방이 반말로 하면 나도 반말로 해야 되는 겁니까? 이에 대해 “아- 당연하지요.”라고 대답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 문제를 다른 예시를 들어 풀어봅시다. 아버지의 성함이 ‘김원효‘입니다.(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자녀의 이름은 철수입니다. 김철수.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예요. 저는 철수라는 혼외자식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반말을 하며 부탁합니다. “야- 철수야, 물 한 컵 가져와라.” 그러자 아들 철수가 아버지에게 대답합니다. “원효야, 니는 손이 없니 발이 없니. 니가 갖다 먹어라.”

어라- 이거 무슨 개 같은 시추에이션입니까? 또 다른 예시입니다. 직장에서 사장님이 직원을 야단치며 말합니다. “어이- 김부장, 이걸 보고서라고 작성한 거야? 다시 해 와.“ 그러자 기분이 상한 김부장이 사장님에게 대답합니다. ”어이- 김사장,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니가 직접 해봐.“

어때요. 여러분, 이 대화 속에서 뭔가 느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혹시 철수나 김부장이 내 대신 갑질을 부리는 그 꼰대들에게 똑같이 되갚아줘서 마음이 시원하다고 느끼는 분이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아버지가 아들 철수에게 반말로 한 것은 엄격히 따지면 잘못입니다. 아버지는 철수가 자신의 아들이라도 이렇게 말해야 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철수야, 아빠에게 물 한 컵 가져다 줄 수 있겠니?”

물론 아빠가 철수에게 이렇게 공손히 부탁하면 철수도 “예- 알겠어요.” 하고 좀 더 공손히 대답을 하고, 아빠의 부탁을 들어줄 확률이 매우 높을 겁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김부장에게 “김부장님, 이 보고서가 좀 이상한데 다시 검토를 해보시겠어요.”라고 공손이 부탁을 하면 김부장님도 사장님에게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검토하고 곧 보고 드리겠습니다.” 하고 공손히 대답을 할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반말을 한다고 아들도 반말을 했다가는 자칫 ‘호래자식’으로 낙인찍히고, 김부장의 경우는 당장 회사를 그만두어야할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름 아닌 이 세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공경을 받아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곤경을 해야 할 권세와 질서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철수가 아버지에게 반말을 하고, 또한 김부장이 사장님에게 반말을 하고 난 후 “아- 아빠가 나에게 먼저 반말을 했기 때문에, 사장님이 먼저 나에게 반말을 했기 때문에, 나도 아버지에게, 사장님에게 반말을 했다. 고로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라고 대답하면 어떨까요?

이 상황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실 겁니까? 앞서 말한 H마트 젊은 여직원의 경우처럼 손님의 그 반말을 빌미로 노인에 대한 존중을 내려놓고 자기도 반말을 한다는 것은 서비스 직종에 있는 사람으로서 미성숙한 태도일 겁니다. 더구나 그 H마트 직원이 크리스천이라면, 그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바른 태도가 아닐 겁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실 때, 우리가 하나님을 무례히 대했다고 하나님도 우리를 대하실 때 “야- 니가 먼저 나를 무례히 대했으니까 나도 너를 싹- 무시할게.”라고 하셨다면 우린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즉 공경이란 상대가 마땅히 공경을 받을 만해서 공경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택하는 태도입니다.

노인 공경을 하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인격이요, 신앙의 표현이요, 우주의 질서입니다. 즉 우리도 하나님처럼 남을 대해야 합니다. 비록 그 사람이 나를 무례히 대하고, 마음에 심히 들지 않고, 비록 원수일지라도, 하나님이 노인 공경을 하라고 했고, 부모 공경을 하라고 했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 나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적으로, 이해관계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내가 죄인이었고,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식하고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여러분,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호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착해서, 우리의 행위가 올바르기 때문에 우리를선택하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님이 선하고 착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해주신 겁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노인을 공경하라고 하신 것이나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것은 단지 그분들이 착하고 마땅히 공경을 받을 고귀한 인격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노인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마땅히 인간들의 가져야할 바른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레19:32) 한국의 경우 전철에는 임산부석이나 노약자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노약자인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보기에 좋기 때문에 그런 제도를 만든 겁니다.

그런데 ‘센 머리 앞에서 일어나라“고 하는 말씀을 우리의 실생활에서 적용을 해보십시오. 어떤 경우가 있을까요? 어른이 방에 들어오거나, 어른에게 처음 인사를 드릴 때, 젊은 사람이 떡- 하니 의자나 소파에 앉아 있으면, 그건 노인 공경의 태도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어른이 자리를 뜨시거나, 오실 때에도 일어나 인사를 하거나 배웅을 하는 것이 공경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것을 NIV 영어성경에 보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show respect for the elderly“ 이 표현을 따라서 어떻게 노인에게 공경을 표시할까요? 이에 대해 잠언 23:22에 말씀합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즉 노인 분이나 부모님이 말씀하면 그 말을 무시하지 말고 귀담아 들으라는 겁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12:12) 물론 노인분이라고 그 하시는 말씀이 다 지혜로운 말씀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시대에 매우 뒤떨어진 잘못된 지식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욥32:9)

그렇다고 부모님이 자녀에게 말하고, 노인이 젊은이에게 말하는데, 자녀나 젊은이가 말대꾸를 하고, 혹은 그 말을 처음부터 싹- 무시하거나, 도리어 자녀나 젊은이가 부모나 노인을 가르치려 하고, 마치 아랫사람을 꾸짖듯이 말하여 노인들에게 큰 상처를 입힐 필요는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씀합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라.”(딤전5:1)

여러분, 누가 누구를 꾸짖을 때에도 질서와 권세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학생을 꾸짖어야지, 학생이 선생을 꾸짖으면 이상한 겁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녀를 꾸짖어야지, 자녀가 부모님을 꾸짖으면 그것도 이상한 겁니다. 그리고 노인이 젊은이를 꾸짖어야지, 젊은이가 노인을 꾸짖으면 그것도 이상한 것이요, 더 나아가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꾸짖어야지,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꾸짖으면 그건 우주의 질서가 깨지는 겁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공경을 표시하는 방법 중에 또 하나는 실질적인 도움과 봉사를 제공하는 겁니다. 노인이나 연로하신 부모님의 필요를 살피고, 도와드리는 겁니다. 예를 들면 차가 없으신 분들에게 라이드를 해드리고, 영어가 안 되시는 분들에게는 병원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같이 동행해드리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무거운 물건도 들어 들이고... 등등입니다. 그리고 노인 분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는 것도 노인공경의 하나입니다.

한국어의 경우는 영어와 다르게 존댓말의 체계가 아주 명확합니다. 영어의 경우 “Did you eat?"라는 문장은 상대방이 누구든지 같은 문장을 쓰면 됩니다. 그러나 한국어는 사뭇 다릅니다. 친구끼리는 ”너 뭐 먹었니?“라고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선생님, 뭐 좀 드셨습니까?“라고 해야 합니다.

이점에 있어서 이민교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민 2세대 자녀들이 이민 1세대인 부모님들과 같이 한인 교회를 다니면서 한국어가 서툴러서 종종 말실수를 합니다. 1세대 어른이 2세대 청년에게 묻습니다. “너 뭐 먹었니?” 이에 대해 한국어가 서투른 그 청년이 대답합니다. “응, 너도 뭐 먹었니?”

그러자 1세대 어른이 “어라- 이 녀석, 어른에게 반말을 하네.”라고 기분이 언짢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그 청년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닫고 그만 창피하고, 자신감이 떨어지고, 어른 기피증이 생기고, 마침내 교회에 가기가 껄끄러워지고, 결국 교회에 안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어르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영어라는 언어가 존경을 표시하기에 부족했고, 한국어는 서툴러서 그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 일어난 단순한 해프닝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한 해프닝이 이 청년을 교회에서 아웃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노인 분들은 청년 분들을 “싸가지 없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처지를 이해해주고, 더욱 친절하고 따뜻이 대해주어야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청년 시절에 누구나 그런 실수를 알게 모르게 참 많이 합니다. 나이가 30세 정도 되고, 대학원까지 나오면, 스스로 제법 안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에 따라 위아래가 안 보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결국 언어와 행동에서 나타나게 되서 나도 모르게 어른들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어른들의 눈에는 참 맹랑하고 가소롭게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나 노인 분들은 그런 청년들을 바라보면서 “아- 나도 옛날에 그랬었지. 그래 너도 그럴 수 있다. 사람은 다 그러면서 크는 거다.” 하고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며 이해해주면 됩니다.

결론입니다. 어버이주간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면 이 땅에서 네가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습니다.(엡6:1-4) 즉 모범을 보이라는 겁니다. 아무쪼록 자녀와 부모, 젊은이와 노인들이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더욱 축복을 받고 행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자녀인 우리도 어느덧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자녀일 때 부모님을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고, 젊었을 때 노인을 제대로 공경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힘들게 한 것을 회개합니다. 저희들을 용서하시고, 저희들에게 부모 공경과 노인 공경을 잘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