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공경하라

날짜: 
2011/05/08
설교: 

딤전5:1-8 부모를 공경하라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에서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시작하고 끝에서도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고 마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인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물질로 경배하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생명까지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아버지를 섬기는데 열심인 기독교인들이 눈에 보이는 육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 땅에서 잘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가 영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에게 축복을 주듯이 성경은 우리가 육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잘 섬기면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2-3)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골3:20)
그러나 이와 반대로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기지 못하고 저버리면 우리에게 저주가 임하듯이 육의 부모님을 저버리면 우리에게 저주가 임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신27:16) “아버지를 조롱하고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는 그 눈을 까마귀와 독수리에게 쪼이리라.”(잠30:17)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마15:4)
다시 말해 기독교인들은 영의 부모님인 하나님과 육의 부모님을 잘 모시므로 축복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성도님들을 살펴보면 육의 부모님을 잘 모시는 분들이 영의 부모님인 하나님 아버지도 잘 모시는 바른 신앙으로 성장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육의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고 부모님 모시기를 싫어하는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 신앙이 삐뚤어진 신앙, 이기적인 신앙으로 자라나는 것을 봅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약 30년 전에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그 당시 백억이라는 큰돈을 기부하여 엘림 복지회관을 건립했습니다. 그곳에는 불우한 청소년을 위해 공부도 가르치고 직업 훈련도 시켜주고 숙식도 무료로 제공해주는 곳이요, 또한 무의탁 노인 분들을 위해 무료 양로원도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한 할머니가 들어오셨습니다. 물론 돌아볼 자녀가 없는 무의탁 노인 분이기 때문에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만 병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이 되자 복지회관 측에서 보호자나 친척을 찾아보려고 할머니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혹시 자녀분들이나 친척들이 있으면 연락을 취해야 되니까 그 분들의 전화번호가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그러자 그 할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대답합니다. “나는 아들도 딸도 없어요. 그리고 죽어도 찾아올 사람도 없어요.”
혹시 몰라 복지 회관 측에서 할머니 소지품을 검사해 보니 조그만 수첩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기에 그곳에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여기 엘림 복지회관인데요. 혹시 아무개 할머니를 아세요?” 그러자 전화를 받은 한 중년 남자 분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합니다. “아니, 그 할망구가 미쳤나! 절대 나에게 전화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할망구가 나에게 전화하라고 합디까? 나는 그 사람 모릅니다.” 하고 전화를 딱 끊으려고 하기에 복지회관 측에서 “할머니가 병들어 돌아가실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기에 전화를 드렸는데 혹시 가족이나 친척 분을 아시면 연락 좀 해주시겠어요?” 하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그 할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놀랍게도 여의도 순복음 교회 안수집사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조용기 목사님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예배 시간에 “이런 것이 뭐가 안수집사입니까? 이런 사람은 안수집사는커녕 성도로서의 자격도 없는 사람이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하고 심히 책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입장을 한번 바꾸어 놓고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자녀가 아프면 마음 졸이며 밤새도록 간호해주고, 그 자녀를 위해 그토록 애를 쓰고 노력했는데, 그 자녀가 내가 늙을 때 나를 돌보기 싫다고 길거리에 버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병들어 죽을 날이 가까웠는데도 장사지내기 싫어서 찾아오지도 않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참으로 비참하고 슬픈 일이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그 자녀를 고소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자녀에게 “내가 몸이 약하니 나를 데리고 살아 달라.”고 애원을 하겠습니까?
대부분의 부모가 자신이 죽을 지경이 되어도 자녀들에게 손 벌리기 싫어하고, 병들어 거의 죽게 되어도 자녀에게 폐가 될까봐 연락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바로 부모님의 마음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부모님의 은혜보다 더 큰 은혜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늘같은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그 부모님이 나에게 옛날에 못해주었다고 그 부모님을 욕하고, 늙어서 냄새난다고 저리 가라하고, 방을 어질러 논다고 큰소리 치고, 잔소리가 많다고, 돈이 없다고, 자신들의 행복에 방해가 된다고 모시기 싫어하면 이 얼마나 큰 불효자요 악인입니까? 이 악인을 어떻게 하나님이 복을 주며, 이 악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겠습니까?
이전에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 전도사님이 조용기 목사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 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조 목사님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결혼해서 아기를 낳아라.”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결혼해서 남녀가 한 지붕 밑에서 살다보면 이기심과 고집이 꺾어지고 양보하는 마음, 인내하는 마음, 타협하는 마음, 화목 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를 위해 똥 기저귀 갈아주면서 희생하는 마음도 생기고, 자기를 키워준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고, 결국 영의 부모님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알게 되므로 목회를 보다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보다 잘 섬길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 공경=부모님 공경'으로 설명을 합니다. 즉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도 잘 이해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잘 깨닫고 감사하게 되고, 자신의 생활이 어렵고 힘들어도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사람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착하고 충성된 성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해관계가 나빠지면 부모님을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다가도 이해관계가 나빠지면 쉽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게 하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데 큰 장애가 되고 골칫거리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저는 부모님 안 모시려고 요리 저리 빼고 애를 쓰는 사람들의 신앙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반면 비록 자신이 장남이 아닌 차남이라도 부모님을 모시기 원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그 분을 매우 귀하게 봅니다. 그리고 그런 분이 우리 교회 성도가 된 것을 무척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효도의 마음이 잘 갖추어진 분들이 우리 교회의 기둥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더구나 맏며느리가 아닌데도, 그리고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않더라도 늙으신 시부모님 모시려고 애를 쓰는 아내가 있다면 저는 그런 아내를 둔 남편은 굉장히 축복 받은 사람이요,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아내들이 우리 교회의 귀한 일군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요즈음 사람들을 보면 자기 자녀들에게는 끔찍이 잘하지만 자기의 부모님에게는 제대로 효도를 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자녀에게는 먹을 것 입을 것을 못해주어도 부모님을 더욱 잘 보살펴 주시는 것이 바른 신앙이요, 바른 자녀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모님을 무시하고, 부모님에게 불효를 하고, 부모님을 저버리고 난 후 아무리 자기 자녀에게 잘해주어 보았자 그 자녀는 바르게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 자녀는 역시 불효자가 되고 맙니다. 그 자녀의 신앙 역시 삐뚤어진 신앙, 이기적인 신앙이 되고 맙니다. 나중에 자신도 자기 자녀들에게 불효를 당하고 저버림을 당하고 맙니다.
혹 어떤 분은 “나는 늙어서 절대로 자녀들에게 신세지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세지기를 원하고 짐이 되기를 원합니까? 더구나 며느리가 시부모님 모시기 싫어서 가정이 깨질 지경이라면 이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아들하고 같이 살기를 원하겠습니까?
부모님의 마음은 자기 자녀가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자신으로 인해 자녀의 가정이 깨어지고 자녀가 불행해진다면 하루 빨리 죽고 싶은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신세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먹어 늙어지고, 병들어 아프고, 돈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자녀에게 신세를 져야만 하는 것이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사정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세지는 것을 자녀가 안 좋은 눈초리로 바라보고 뭐라고 하면 부모님은 인생의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제가 이곳 캐나다에 온지 13년째가 됩니다. 한국에 방문한 숫자를 세어보니 5번입니다. 조용기 목사님 성역 40주년 선교대회 때에 방문했고, 아버님 유언 받으러, 어머님 유언 받으러,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 장례 치르러 간 것입니다. 저의 아버님이 폐암으로 몸이 불편하셔서 제가 한국에 갔을 때 일입니다. 물론 저희 어머님이 병간호를 하시지만 연세가 많고 여성의 몸이라 힘이 없다보니 저희 아버님을 휠체어에 앉히기가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저의 아버님을 번쩍 들어 휠체어에 앉히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니까 저희 아버님이 좋아하시면서 “야, 너도 아들을 낳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도 몸이 아프시기 전에는 절대로 자녀들에게 신세지지 않는다고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몸이 병들어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니까 결국 자녀에게 신세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부모님이 자녀에게 쏟은 정성에 비하면 이것은 신세도 아니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자녀에게 만 개의 은혜를 베풀고도 한 개의 신세를 지기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가 어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겠습니까?
그리고 저의 어머님이 간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한국에 가서 며칠 간 간호를 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저를 보자 무척 반가워하시면서 아들 왔다고 성치 않은 몸으로 밥을 차려주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남기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는데 비행기를 타면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철야예배를 마치고 밤에 집으로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이런 노래가 나왔습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저 바다가 육지였다면 비행기 티켓팅을 하지 않고 곧 바로 한국의 부모님에게 가서 뵙고 올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더 이상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가 나오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있어야 한국이 고향이지 부모님이 돌아가시니까 한국이 더 이상 고향의 따스함이 없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한국에 가도 부모님이 있으면 갈 데가 있는데 부모님이 없으니 갈 데도 없습니다.
저희 어머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는데 의사가 묻습니다. "아주머니, 안아프세요?" "아- 안아프니까 이렇게 걸어 다니지요." "이상하다. 아주 많이 아파야 되는데..." 다행히 하나님이 저의 어머니가 간암에 걸리셨지만 하나도 안아프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손수 밥도 해 드시고, 성경을 보시고 일기도 써놓고 주무시다가 가셨습니다. 그 후 얼마 후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러 한국에 갔습니다. 저의 누님이 말합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캐나다에 있는 아들이 왔었다고 이웃들에게 자랑을 하더라."
여러분, 늙으신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은 자녀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역시 자녀의 얼굴을 보는 것입니다. 반면 부모님의 가장 큰 슬픔은 사랑하는 자녀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불효는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라고 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는 늙습니다. 늙으면 병이 들고 아프게 됩니다. 늙고 아프신 부모님을 돌보는 것은 인간의 도리요, 자녀의 도리요, 성도의 도리입니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님을 돌보지 못하면서 어찌 그 사람이 성도를 돌아보고 교회를 돌아보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누구든지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4,8)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은행 빚은 매달 잘 갚으면서, 그리고 남에게 진 빚은 잘 갚으면서 어찌하여 부모님의 은혜는 제대로 갚지를 못합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 성도님들은 부모님에게 효도를 행하여 그 보답을 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고, 자기 자녀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조차 효도를 행하도록 교육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의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잘 보답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부모님을 잘 공경하는 모범된 모습을 보이고 삽시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따라서 효자 효녀가 되어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