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꿈꾸며

날짜: 
2022/04/17
말씀: 
빌3:10-11
말씀구절: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설교: 

육체를 가진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죽습니다. 그리고 모두 그 몸이 부활합니다.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부활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즉 모두가 부활을 하지만 의인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부활이요, 악인은 영원한 사망에 처하는 심판의 부활입니다. 그러니까 한쪽은 부활의 날이 가장 좋은 날이요, 또 다른 한쪽은 부활의 날이 가장 나쁜 최악의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 장차 생명의 부활을 얻을 크리스천 중에 종종 이렇게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아- 부활하면 또 다시 육체를 입고 인생을 살아야 되는데 그거 피곤한 일 아닙니까? 그냥 부활하지 않고 영으로만 지내면 안 됩니까?” 이렇게 말하는 분들은 장차 우리가 입을 부활의 몸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활절을 앞두고 몇 달 전부터 장차 부활의 날에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에 대하여 상상해 보았습니다.

1. 부활의 몸은 쇠하지 않는 몸, 병들지 않는 몸, 죽지 않는 몸입니다.

현재 우리들의 몸은 늘 피곤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매일 휴식을 취해야 하고, 잠을 자야만 합니다. 그래야 육체가 버티고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피곤을 모릅니다. 지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먹어도 약해지지 않습니다. 이빨이 빠지지도 않습니다. 피부가 탄력을 잃고 쳐지지도 않습니다.

얼굴에 기미나 주름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암도, 각종 질병도 생기지 않습니다. 늙지 않습니다. 물론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불멸의 몸입니다. 그리고 현재 인간의 체온은 36.5도입니다. 즉 추위와 더위를 느끼는 몸입니다. 저는 더위보다 추위를 싫어합니다. 캘거리에서 오래 살다 보니 더욱 추위가 싫어집니다.

그런데 부활의 몸은 추위를 이기는 몸입니다. 물론 더위도 이기는 몸입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추위와 더위를 이길까요? 일단 용광로 속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몸입니다. 그리고 영하 수천도 혹은 수만 도에도 얼지 않는 몸입니다. 그래서 우주 어디에 거해도 그곳의 극한 온도에도 견딜 수 있는 몸입니다.

그때에는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이 필요 없고, 아무리 추워도 히터가 필요 없습니다. 두꺼운 외투도 필요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체온이 36.5도 인데 부활의 몸은 체온이 과연 몇 도일까요? 아시는 분? 777도입니까? 아니면 장소에 따라, 주위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화합니까? 하여간 온도나 습도나 기타 여러 가지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는 몸입니다.

혹 어떤 분은 “아- 부활의 몸을 입으면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못 먹을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 되게 섭섭한데요. 저는 먹는 것이 취미이고 먹는 것이 낙인데요.” 하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활의 몸은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어도 살 수 있는 몸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의 몸을 입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영으로 나타나신 줄 알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 그리고 예수님의 그 부활의 모습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너희에게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그것을 그들 앞에서 잡수시니라.”(눅24:41-43) 이 사건에서 보면 예수님이 부활 후에 배가 고파서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과 뼈가 있는 부활의 몸으로 확실히 부활했고, 부활체는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부활체는 음식을 먹어도 100% 다 소화가 되고 몸 안에서 처리가 되기 때문에 화장실이 필요 없습니다. 그때에는 화장실 청소 안 해도 되고, 화장실 변기가 막힐 일도 없고, 뻥-뚫어 약도 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몸은 나이가 들면 오줌이 새는 요실금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때에는 요실금도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 기관이 잘 작동됩니다. 고장이 안 납니다. 완벽하게 건강한 몸입니다.

혹 어떤 분은 이렇게 묻는 분이 있습니다. “목사님, 부활체도 성행위를 하고 결혼을 하는가요? 그리고 자녀도 낳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이 대답하신 적이 있습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30) 즉 부활의 몸은 성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출산도 하지 않습니다. 고로 그때에는 산부인과 병원도, 산후조리원도 필요 없어집니다.

그리고 성행위에서 얻는 쾌락보다 더욱 큰 기쁨과 행복이 주어지게 때문에 성행위를 못한다고 섭섭해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혹 어떤 분은 “부활해서도 골프를 칠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술 더 떠 어떤 분은 예수님이 골프를 굉장히 잘 치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 보면 그냥 웃고 싶습니다. 부활의 몸은 그 어떤 오락을 할 때의 즐거움보다 수천만 배의 기쁨을 누리는 몸입니다.

2. 부활의 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령한 몸입니다.

현재 우리의 몸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습니다. 그래서 좀 답답합니다. 캘거리에서 밴쿠버를 가려고 하면 차로 10시간, 비행기로 1시간은 걸려야 합니다. 더구나 한국에 급한 일이 있어 가려고 하면 12시간 비행기를 타야합니다.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시간과 공간을 순식간에 뛰어넘는 상상을 합니다. 바로 ‘타임머신’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몸은 그 자체에 타임머신 기능이 있습니다. 캘거리에서 한국까지 가는데 1초도 안 걸립니다. 생각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저 우주의 수억 광년 떨어진 별들이 모인 은하계에도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여행이 가능합니다. 저는 부활의 몸을 입으면 도대체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그곳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가끔 인터넷에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아름다운 장소를 100군데 선정해놓고 평생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곳 별로 가보고 싶지 않습니다. 도리어 부활의 몸을 입고 저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곳 100군데를 가보고 싶습니다. 아- 그래서 빨리 부활의 몸을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혹 어떤 분은 이런 걱정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 목사님! 그렇게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가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고요, 또 경치가 좋은 곳은 부활한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너무 복잡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혹 부활한 사람이 과거나 미래로 가서 역사를 뒤집어 놓으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저도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부활체에도 질서라는 시스템을 작동시키십니다. 저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질서 있게 운행하도록 만드신 하나님이 부활체도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질서 있게 운행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해놓으실 겁니다.

그리고 부활체는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부활한 사람들이 많다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활 때에는 집 평수에 따라서 빈부격차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부활한 사람들이 수십 억 명이 모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공간과 장소가 필요할까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공중 재림 하실 때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모두 부활하고, 그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부활체로 변화가 돼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고 말씀합니다.(살전4:16-17) 이때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공중 어디에서 예수님을 만나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수십 억 명이 모이고 만나기 위해서는 그 만남의 장소가 어마어마하게 커야 될 터인데 그게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예- 그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활의 몸은 공간을 초월하는 몸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이 성전에 한 줄기 강한 빛을 비추면 그 빛을 따라 먼지가 보입니다. 그 먼지의 수가 도대체 얼마나 됩니까? 이 성전에 있는 먼지의 수는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즉 부활의 몸은 지금 이 성전에도 수십 억 명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초월하는 몸입니다.

“아- 목사님! 그거 확실합니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하고 물으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물리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신비한 물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신비한 것들도 우주에는 계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부활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몸은 공간이라고 하는 물리법칙을 초월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의 몸을 입고 제자들이 모인 장소에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분명히 문을 잠갔고, 밖에 인기척도 없었는데 그냥 쓱- 예수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예수님이 공간을 초월한 부활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그 때가 되면 우리의 IQ가 상당히 높아지겠지요?” 그렇습니다. 부활의 몸을 입으면 지금의 지혜와 지식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집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 나오는 과거의 사람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 같은 사람들을 우리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때가 되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바로 알아보게 됩니다. 부활체는 그만큼 깨닫고 인식하는 능력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 그 때가 되면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성경을 읽다가 풀어지지 않는 궁금한 사항도 그때는 다 알 수가 있습니다.

3. 부활의 몸은 죄를 이기는 영화로운 몸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자들은 피곤하여 잠을 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26:41) 제자들은 예수님을 도와서 기도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술과 담배를 끊어보려고 합니다. 며칠간은 잘 참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또 다시 슬그머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웁니다. “아이고- 이 녀석아! 너 또 왜 그러니?” 하고 자책합니다. 자기의 마음에는 술과 담배를 끊고, 보다 성결하고 거룩하게 살고 싶은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 겁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죄를 이기지만 육체가 죄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몸은 죄를 이기는 몸입니다. 그때에는 죄를 지으면서 “에고-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자책하는 말이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죄를 이기는 영화로운 몸이기에 마음과 육체가 따로 놀지 않습니다. 마음도 영화롭고 육체도 같이 영화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의 솔직한 고백이 나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받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사도 바울도 죄와의 싸움에서 자꾸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곤한(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즉 사도 바울은 지금은 자기도 죄를 짓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망의 몸에 갇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중 재림 시에 부활의 몸을 입음으로 죄와 사망의 몸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마음도 몸도 죄를 짓지 않으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와우- 이제 죄와 사망의 몸에서 완전히 해방되었구나. 할렐루야!” 하고 외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의롭다고 여겨줍니다. 신학적으로 ‘칭의(justification)’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칭의함을 받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신학적으로 이를 ‘성화(sanctification)'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 시 우리의 육체가 부활체를 입어 전혀 죄를 짓지 않는 하나님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을 신학적으로 ’영화(glorification)'라고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최종의 목표는 바로 이런 영화로운 몸, 부활의 몸을 입는 것입니다. 즉 부활은 구원의 완성입니다. 부활의 날은 하나님의 소원과 우리들의 소원이 완벽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고로 부활할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부활을 상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가끔 사람들 중에 복권에 당첨이 되어 억만장자가 되는 상상을 합니다. 그 돈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다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거의 다가 개꿈입니다. 꽝입니다. nothing입니다. 혹 재수 좋게 당첨이 되어 그 돈으로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려도 잠시 후에 죽으면 끝납니다. 아- 너무 허무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부활의 꿈은 결코 헛된 꿈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확실히 일어날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누구나 피곤하고 지칩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희망의 부활이 있습니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고 외치고,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하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재림의 날 부활의 영광의 노래를 다 함께 부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