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때가 가장 감사할 때였다.

날짜: 
2022/10/08
말씀: 
롬8:28
말씀구절: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설교: 

여러분 각자는 인생을 살면서 나름대로 몇 번의 아주 힘든 시기기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힘든 시기를 겪을 때 감사가 제대로 나오던가요? 아마 거의 대부분의 분들은 감사대신 불평과 원망이 나왔을 겁니다. 물론 성경은 그런 힘든 시기에도 감사를 하라고 하지만 그게 성경의 말씀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어려운 시기가 모두 지나간 후에는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지나갔으니 이제는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씁쓰름합니까? 혹은 아직도 그때의 일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자다가도 화가 나고 소리를 지르곤 하지는 않습니까?

사람이 좀 더 완벽하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과거의 힘들었던 그 일, 그 사건, 그 추억, 그 상처가 주님 안에서 치료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치료가 완벽히 이루어진 증거는 바로 감사입니다. 옛날의 그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지금 생각하면 다 감사의 제목이었다고 깨닫고 고백할 수 있다면 이미 그 사람은 완벽한 치료가 된 사람입니다. 그렇게 과거의 힘들었던 일조차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오늘에도 내일에도 계속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그 힘든 일로 인해 원한이 맺히고, 그 원한이 아직까지 풀어지지 않았다면, 그 사람에게는 진정한 감사가 나오지 못할 것이고, 진정한 치료도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사람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즉 완벽한 감사가 완벽한 행복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적당히 감사하는 사람, 감사와 불평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불완전한 행복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떤 때는 행복하다가도 어떤 때는 불행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늘 불평하는 사람은 당연히 늘 불행할 겁니다. 즉 보다 완벽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완벽한 감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뭐- 좋을 때는 누구나 감사하며 잘 지냅니다. 나름대로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주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감사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의 행복지수는 매우 높아지게 됩니다. 오늘 저는 그 어려운 시기에도 감사할 수 있는 스토리를 몇 개 소개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청년회 조장으로 봉사하고 있을 때입니다. 저의 조식구들 중에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다니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전도를 받고 갓 예수를 믿었지만, 성령의 은혜를 받아 조그만 월급 중에서도 십일조도 드리고, 기도와 전도도 참으로 열심히 하는 아주 신앙이 아름답게 성장하는 20살 정도의 자매님이었습니다.

이 자매님이 한번은 여름 휴가철이 되어 딴 곳에 놀러가지 않고 기도원에 삼일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직장 기숙사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시골에서 고등학교 다니는 자기 동생 등록금을 숨겨놓은 것이 있었는데 그게 감쪽같이 없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쁜 손이 틈탄 것입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들으면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아니- 하나님, 세상에 돈 가져가실 것이 따로 있지. 그걸 가지고 가시면 어떡합니까? 아이 참, 자라나는 신앙의 새싹을 그렇게 무참히 꺾으면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일을 하겠습니까? 빨리 가지고 간 돈, 돌려주세요. 당장 돌려주세요.”

그런데 그 자매님이 며칠 후 얼굴이 환해져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간증을 합니다. “조장님, 제가 큰돈을 잃어버려 너무나 당황이 되고, 낙심이 되었지만, 더구나 삼일 금식기도를 하고 왔는데 이런 사고를 당하고 나니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더니 오늘 너무나 좋은 소식을 들었어요.”

“아니, 그럼 잃었던 돈을 다시 찾았습니까? 도대체 누가 훔쳐간 거예요?” 그러자 그 자매님 말합니다. “조장님, 돈을 찾은 것 보다 더 좋은 소식이에요. 제 동생이 얼마 전 시골에서 전화가 왔어요. ‘언니, 돈 잃어버린 것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이번 학기부터 공부를 잘했다고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됐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등록금 내지 않아도 된데요.”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면서 “아- 하나님이 그러면 그렇지!” 하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괜히 하나님 원망하고 하나님께 따진 것 용서하세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여러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재난과 실패와 역경 속에서도 불평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옛날 노르웨이 조그만 어촌 마을에 한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 어부는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자주 나갔습니다. 그는 두 아들이 좋은 어부가 되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화창한 봄날 삼부자는 낚시 준비물을 챙기고 어머니는 점심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어부의 아내는 선창까지 나가서 삼부자를 배웅했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그처럼 맑은 날씨가 갑자기 음산해지면서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캄캄해지면서 폭풍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삼부자가 탄 조그마한 배는 쉴 새 없이 곤두박질했습니다. 맹렬히 배를 때리는 파도와 싸우는 그들은 방향을 도무지 잡을 수 없었습니다. 밤이 왔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절망의 밤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둘째 아들이 외쳤습니다. “아버지, 저 쪽이에요. 저 점점 커지는 불기둥을 보세요. 우리는 이제 살았어요.” 삼부자는 희망을 품고 필사의 힘을 다해 포구를 향해 노를 저었습니다. 가까스로 포구에 도착한 삼부자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환성을 지르고 달려와야 할 어부의 아내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여보,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는데 당신은 기쁘지가 않소?“ 남편의 이 말에 그녀는 울먹이면서 말합니다. ”여보, 오늘 저녁 때 우리 집 부엌에서 불이 나 집이 다 타버렸어요. 저만 이렇게 살아남았어요. 여보, 죄송해요.“ 그 순간 어부의 입에서는 ‘아하’ 하는 탄성과 함께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불이 우리 집 타는 불기둥이었구나. 그러나 그 불기둥 때문에 우리 삼부자가 살아난 걸. 여보, 우리가 방향을 잡지 못해 파도 속에서 몇 시간 이리저리 밀리면서 난파직전에 있었는데 그 불기둥을 보았어. 우리는 그 불을 보고 노를 저었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온 거야. 여보, 너무 상심 마. 우리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으니 집이야 다시 지으면 되지.” 네 식구는 서로 얼싸안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성경의 이야기 하나 더 해드리려고 합니다. 구약 성경에 요셉이란 사람이 나옵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열한 번째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당연히 배 다른 형들이 요셉을 질투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형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애급에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세상 말로 일순간에 인생 끝장났습니다. 인생 완전히 망쳤습니다. 요즘 같아도 누가 인신매매를 당하여 어느 외딴 섬에 끌려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 인생 망친 것 아닙니까? 그 사람, 인생 끝장 난 것 아닙니까? 하물며 옛날 인권이 유린되고 노예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시대인데, 그런 일을 당했으니 요셉은 앞날이 캄캄합니다.

더구나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자기 가족이요, 자기 형들인데, 그들에게 인신매매를 당하여 노예로 끌려갔으니 얼마나 기가 찹니까? 세상에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후 인생이 더욱 꼬입니다. 애급의 시위대장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이 미남인 것을 보고 살 시중을 들라고 합니다. 성적 서비스를 하라는 겁니다.

요셉은 마나님의 명령과 유혹을 뿌리치고 나오다가 도리어 강간범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수년간 옥살이를 합니다. 세상에 참- 이런 기막힌 일을 당했으니 요셉은 얼마나 억울합니까? 얼마나 미운 사람이 많고, 이빨을 갈 사람이 많습니까? 당연히 그는 원망 불평을 해야 합니다.

아니- 원한에 사무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 죽일 연놈들!" 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원망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미움과 원한으로 몰고 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노예 생활을 하면서, 감옥생활을 하면서 용서의 사람, 자비의 사람, 인내의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령한 사람, 꿈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때가 되매 요셉을 감옥에서 나오게 하시고, 애급의 국무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큰 기근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런 환난이 요셉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즉 내가 싫어했던 그 일, 그 사람, 그 환경이 도리어 내게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들, 그런 사람 때문에 나의 교만이 깨지고, 그나마 내 인격이 이 만큼이라도 다듬어졌습니다. 고로 이런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불평의 제목조차 감사의 제목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여러분에게도 어떤 불평 거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불평 거리가 나중에 큰 감사의 제목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요?

저의 경우에도 인생을 살면서 매우 어려운 시기가 세 번 정도 있었습니다. 그 각각의 어려움은 모두가 몇 년 동안 지속하는 극심한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내 인생이 거의 파멸될 순간이었고 위기였습니다. 만약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미쳐버리거나, 큰 사고를 치거나, 남을 죽이거나 혹은 스스로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만약 그 당시에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늘과 같은 감사하라는 설교를 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반응했을 겁니다. “뭐야? 지금의 상황에서 나보고 감사를 하라고? 지금 누굴 놀리는 거야? 당신도 제 입장이 되어보세요. 이 순간에 감사가 나옵니까? 도리어 욕이 나오지 않습니까? 에이- 투덜투덜, 원망원망, 불평불평, 엑스엑스...”

그러나 그 힘들었던 시기를 지난 후 그때의 일들을 뒤돌아보면 지금은 감사가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어려웠던 일들이 알고 보니 다 나를, 너를 더 좋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세밀한 섭리였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즉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그 일들이 실지는 나를 가장 유익되게 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 일들이 나중에 큰 유익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늘 감사해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단순히 머리로 아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며 체험하며 아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작은 고난에는 나름대로 신앙의 지식이 적용됩니다. 긍정적인 힘도 작동됩니다. 책임감도 작용합니다.

그래서 그 고난, 그 사건 속에서 나름대로 스스로 위로도 하고 인내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인간의 한계 혹은 나의 한계에 도달하는 극심한 고난이 올 때는 사실 신앙을 유지하기조차 힘들어집니다. 그 고난이 나의 자존심마저 뭉개어버립니다. 살았다 하나 죽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내일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절망과 탄식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세월이 지나갑니다. 1년 2년 3년... 5년 10년 20년 30년... 그 세월 속에서 서서히 이것저것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어라? 내가 지금도 살아 있네. 조금은 견딜 만하네. 좀 나아지고 있네. 어- 괜찮네!” 즉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감당치 못할 때에는 피할 길을 내신다는(고전10:13)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롬8:28) 말씀이 나의 인생에 응하는 겁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처했을 때에는 하나님도 나를 멀리하는 것 같았고, 그 고난이 영영 나를 괴롭힐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다 괜찮아지고, 도리어 유익이 되었다는 깨달음이 오는 겁니다.

이때가 되면 마음속에서 진정한 감사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나온 과거의 상처가 모두 아물고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덧 짧은 인생이 모두 지나가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해도 “주여- 감사합니다. 그 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할렐루야!” 하고 세상을 뜰 수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오늘은 감사절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절대 강요가 아닙니다. 스스로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당장 감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믿으십시오. 결국 언젠가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힘들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불평을 조금 자제해 보십시오. 그러면 결국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아무쪼록 감사의 깨달음이 와서 더욱 행복해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