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1:3-7 산 소망을 가지고
"여자로 살래? 여왕으로 살래?" 이런 문구가 담긴 선전을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다름 아닌 ‘곽앤지 성형외과’에 나오는 선전문구입니다. ‘성형외과’와 “여자로 살래? 여왕으로 살래?”라는 광고를 대입시키면 대강 무슨 말인지 짐작이 되지요? 즉 성형수술로 얼굴에 작업을 가하면 여왕이 되고, 자연 그대로 얼굴을 내버려 두면 별 볼일 없는 여자가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그런가요? 성형수술이, 아니 사람의 얼굴이 그 인생을 전적으로 결정합니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이나 여기 캐나다도 보면 창녀촌이나 술집의 여인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여왕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여왕입니까? 그렇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즉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외모를 비롯한 외부의 요소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마음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산 소망이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나서 예수님이 주시는 살아 있는 소망과 희망을 붙드는 그 사람이 행복하며, 그 인생이 의미가 있으며, 그 인생이 왕이요, 여왕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이십니까? 아멘을 안 하시는 분은 여전히 얼굴을 뜯어 고쳐야 왕이 되고 여왕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여러분,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기 앞의 어려움들에 대해 절망하고, 그래서 현실도피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기 앞의 그 두려움과 절망감들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술과 방탕으로 회피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삶이 문뜩 의미가 없다고 느끼면 죽을 결심도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보면 가끔 ‘자살 사이트’가 등장합니다.
특히 한창 예민한 청소년들이 사랑하는 애인과 헤어지거나, 가정에서 부모님과 불화를 겪게 되면 그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인생을 비관합니다. 그리고 자살 사이트에 ‘저랑 같이 가실 분’이라는 문구를 적어놓고는 합니다. 여러분, 애인과 헤어진 일이 과연 죽을 일입니까? 가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친구와 싸웠다고 그것이 자살할 이유가 됩니까? 그렇게 되면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안 죽고 남아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들이 죽으려고 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안보이기에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살아봐야 내 앞은 깜깜한 절벽이다"라고 절망하기 때문에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가장 큰 고통은 지금 당장 자기 앞에 펼쳐져 있는 시련이 아니라, 미래에 희망이 없으니까 죽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산 희망이 없으면 우리 역시 작은 어려움에도 절망하고, 포기하는 인생이 되기 쉽습니다. 쉽게 낙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미래에 대한 찬란한 희망을 주시면 우리는 어떠한 역경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타락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지식이나 명예가 없어서 그렇습니까? 단순히 자신에게 임한 시련이나 고통이 너무 커서 그렇습니까? 그것 보다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넉넉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나름대로 타락하거나,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삶이 무의미로 인해 혹시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예수님을 오래 믿어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어도 시련이 닥칠 때마다 흔들리며 마음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부활하여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신 예수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온전히 붙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결코 포기 하거나 타락하지 않습니다. 왔다 갔다 하지 않습니다.
남한의 어떤 사람이 북한의 고위층 인사들을 만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그래, 북한의 고위층을 만나봤더니 이제 김정일도 항복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통일을 하고 싶다고 하던가요?" 그러자 북한에 다녀온 분이 이렇게 말을 전합니다. "웬걸요. 저들은 남쪽이 먼저 망한다고 그러던데요? 자기들은 가난하지만 깨끗하다. 그런데 남쪽은 부정과 부패, 젊은이들의 방황과 타락으로 머지않아 망하게 될 터이니 지금은 좀 어렵지만 그때를 대비하고 준비하여 북쪽으로 흡수 통일을 할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기에 북한은 가난에 지쳐 곧 무너질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북한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다름 아닌 나름대로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김정일이는 남한이 망하고, 남한을 흡수 통일할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이길 수 있다. 곧 역전하여 남한을 흡수해서 통일할 수 있다"라는 소망이 있기에 그렇게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한낱 죽은 소망도, 황당한 소망도, 한 나라를 유지시키는데 우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살아있는 소망을 붙들면 얼마나 우리의 삶이 견고하겠습니까?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에게는 죽은 희망, 개꿈이 아니라 살아있는 희망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당장 어려워도 장차 이 모든 어려움이 극복되고,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희망을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지 않았습니까? 고로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합니다. 위기 가운데에서도 평안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무한한 기쁨을 느낍니다.
물론 큰 문제나 시험이 오면 잠시 근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나 시험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발견하기에 도리어 크게 기뻐합니다. 고로 오늘의 본문 6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여러분 믿음의 초기 때에는 가끔 이런 딜레마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으면 모든 일이 잘되어야 되는데 왜 힘든 일이 생기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으론 하나님이 보우하사 병도 안 걸리고, 시험 보면 척척 붙고, 선을 보면 척척 시집가고, 복권사면 바로 수십억이 당첨되어 우리나라 만세가 되어야 할 텐데, 도리어 왜 시련들이 우리의 삶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그 이유가 나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4절에 보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을 물려주시려고 시련을 통해서 연단하고 훈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돼지의 3대 사명이 뭡니까? 먹자 자자 싸자입니다. 그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서 살 많이 쪄서 사람 식탁에 오르는 것, 이것이 돼지의 사명입니다. 그러기에 돼지주인이 돼지 운동시킵니까? 안 시킵니다. 시키면 큰일 나지요! 돼지가 뜀박질하거나 높이뛰기 하다가 다이어트 되가지고 살빠지면 어떡합니까? 고로 절대 운동 안 시킵니다. 그저 돼지님이 드시고 싶은 대로 맛있는 음식 잔뜩 드리고, 잠자리 편하게 해주어서 하루 20시간씩 주무시게 해서 스트레스 안 받게 줍니다. 왜요? 이것은 잡아먹을 거니 까요!“ 그러니까 돼지님이 원하시는 대로 편하게, 안락하게 놔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님 믿어 하나님 아들 딸 된 우리들에게 왜 힘든 고난의 달리기를 시키십니까? 왜 높이뛰기 시키시고, 때론 잠도 못 자게 합니까? 왜 편하게 안두시고 우리에게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시련들을 주십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를 돼지와 같은 용도가 아니라, 우리를 훈련시켜서 하나님의 후계자로 삼으시고, 기업을 잇게 하려고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고로 어떤 분은 교회 안 나올 때는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교회 나오기 시작하니까 오히려 그 다음주에
운전하다 접촉사고가 나기도 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름 아닌 하나님이 우리를 돼지로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업을 물려줄 후계자로 생각하시기에 후계자 수업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까? 그러나 확실한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마지막엔 나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실 것, 그리고 하나님의 기업을 잇는 자가 되게 해주실 것, 그걸 믿는 것, 이것이 성숙한 크리스천의 모습인 것입니다. 고로 이 외국 땅에서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항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 소망을 가지고 나를 온전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산 소망을 가지고
날짜:
200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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