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날짜: 
2004/12/12
설교: 

삼하23:13-17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어느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남이 알지 못하는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눈썹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짙은 화장으로 눈썹을 그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 그린 눈썹 때문에 마음은 늘 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에게 사랑하는 남성이 생겼습니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어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사랑하는 남편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면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혹시라도 이 눈썹이 그린 눈썹이라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나를 싫어서 버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늘 이런 걱정이 그의 마음 밑바닥에 감돌고 있었습니다. 일 년, 이 년, 삼 년을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한 삼 년쯤 되었을 때, 그만 그 가정에 예기치 않았던 불행이 닥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입니다. 완전히 알거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제일 밑바닥의 인생부터 다시금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부부는 제일 먼저 연탄을 배달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리어카에 연탄을 가득 싣고서 남편은 앞에서 당기고, 아내는 뒤에서 미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연탄을 배달하는데 그 날 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었습니다.
그래서 연탄의 시커먼 잿가루가 뒤로 계속 날아와 아내의 얼굴이 그만 연탄재로 온통 시커멓게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이따금씩 잿가루가 눈 속에 들어와서 눈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눈물이 절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마음대로 눈물을 닦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물을 닦다가 그만 화장한 눈썹이
지워지기라도 하면 그 동안 남편 모르게 숨겨왔던 비밀이 모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하고 혼자서 고통 가운데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남편이 리어카를 잠시 멈추고서는 아내에게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목에 걸치고 있는 수건을 벗어서 그것으로 아내의 얼굴을 닦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탄로가 났구나!"
이런 불안한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자기의 수건으로 계속해서 아내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었습니다. 눈물도 다 닦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자기 아내의 눈썹 주위만큼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남편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를 생각해서 일부러 그 동안 모르는 척 해왔던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다 닦아주고 난 뒤에 씽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의 얼굴이 이제는 예전처럼 예뻐졌구려!" 그러면서 남편은 태연하게 리어카 앞으로 가서 다시금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그토록 사랑해 주는 남편의 마음이 아내는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가슴이 뭉클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마음,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합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주면 그 가정은 절로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교회는 절로 은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라는 사회가 그래도 포근하다고 느끼는 것은 서로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 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뒤를 이어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급선무는 사울 왕 때에 블레셋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영토를 다시금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 군사들을 이끌고 진두 지휘하면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의 고향 땅이었던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을 회복하기 위해서 군사를 이끌고 블레셋과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진두에서 지휘를 했기 때문에 무척 목이 말랐을 것입니다. 때는 곡식을 벨 때라고 했습니다. 더위가 아주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갈증을 느꼈겠습니까? 그 때 다윗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고향 땅, 곧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 양을 치면서 자기가 직접 그 물을 길어, 자기도 마시고 또 치던 양무리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 때의 시원한 물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고향 땅, 베들레헴은 지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방인에게 고향 땅이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속이 상한 나머지 탄식 가운데 이렇게 말했습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그 소리를 들은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 세 사람이 나섰습니다. 그들은 용감하게 적진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기어이 물을 길어왔습니다. 그들은 적군들과 좌충우돌하면서 싸우는 가운데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부하들이 건네주는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차마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물이라기보다도 오히려 그들의 피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자기가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때문에 사랑하는 부하들이 목숨이 위태로웠던 것을 생각하면서, 두 번 다시 다윗은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는 절로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하들이 왕을 위하는 마음, 그리고
왕이 신하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가는 곳마다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더욱더 강성한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즉 서로를 위해주는 따뜻한 마음, 상대방의 고통을 배려해주는 세심한 마음이 국가의 발전을 이루어내고 행복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말세라고 하는 오늘날의 특징은 극한 이기주의 때문에 서로가 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남편과 아내,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시어머니와 며느리,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지도자와 백성들 때문에 불행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 나라만 생각하고, 내 교회만 생각하고, 내 가정만 생각하고, 내 집단만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 현상은 마침내 인류를 큰 불행과 파멸로 몰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생각해주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를 생각해주고, 지도자와 백성이 서로를 생각해주고, 너와 내가 서로를 생각해준다면 불행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행복의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얼굴이 보다 밝아지고 환해지지 않겠습니까?
일본 도쿄 올림픽 때였습니다. 스타디움 확장을 위해 지은 지 3년 밖에 안된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려는데 꼬리 쪽에 못이 박힌 채 움직이지 못하는 도마뱀 한 마리가 살아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움직이지 못하는 그 도마뱀이
어떻게 3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었는지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인부들은 철거 공사를 중단하고 도마뱀을 지켜봤습니다.
그랬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 친구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꼬리가 못에 박힌 도마뱀은 얼마나 몸부림쳤을까요? 몸부림 칠 때마다 살을 찔러 오는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친구 도마뱀은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사랑하는 친구가 받는 고통을 바라보면서, 또 다른 친구 도마뱀은 어딘 가로 가서 먹을 것을 물어 왔습니다. 꼬리에 못이 박힌 도마뱀은 처음엔 고통과 절망에 빠져 친구가 갖다 주는 것을 거부하며 팽개쳐 버렸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위험을 무릅쓰고 먹을 것을 구해 가지고 입에 넣어 주는 친구를 보면서 그 부상당한 도마뱀은 삶의 의지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어두운 지붕 밑에서 그렇게 함께 고통을 나눈 지 3년, 그 도마뱀은 부상에서 회복되고 둘은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 도마뱀은 마음껏 들판을 돌아다니며 기쁨과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낱 짐승도 이렇게 친구의 고통을 생각해주며 같이 짧은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서로를 생각해주지 못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과 사회와 교회가 불행해지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남성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서 옷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긴 바지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내일 그 바지를 입고서 어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저녁 식사 후에 가족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사온 바지를 입어보니까 아무래도 너무 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옷을 벗어 거실에 있는 소파 위에 걸쳐놓고 아내에게 이렇게 일렀습니다. "여보! 내일 아침 일찍 내가 이 옷을 입고 가야되는데, 아무래도 조금 긴 것 같으니까 당신이 밑단을 5cm정도만 줄여주구려."
그 뒤 아내는 설거지를 마치고 옷을 수선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기가 자꾸 칭얼거립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아기를 재워두고 나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에 들어가 아기를 옆에 누이고 재웠습니다. 아내는 아기를 재우다 자신도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남편의 여동생인 시누이가 그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니가 살림을 하랴, 또 아기를 키우랴, 얼마나 힘들고 고단하겠는가? 언니를 깨우지 말고 차라리 내가 하지." 그러면서 오빠의 옷을 가져다가 5cm를 자르고, 밑단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림질까지 정성껏 해서 옷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깊은 밤중이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잠시 일어났습니다. 거실을 지나가다 보니까 옷이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쯧쯧, 젊은 아이가 얼마나 고단했으면 저렇게 정신 없이 잘까? 그래 깨우지 말고 그냥 두자. 내가 하지 뭐." 그러면서 시어머니가 또 5cm를 잘랐습니다.
새벽녘이 되었습니다. 깜박 잠이 들었던 아기 엄마는 놀라서 깨어보니 이미 새벽 5시입니다. 정신 없이 나와서 5cm를 또 잘랐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몇 cm를 잘랐습니까? 15cm를 자른 것입니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어보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바지가 깡총해졌습니다. 반바지가 다 되어버렸습니다. 남편은 바지를 보며 왜 이렇게 많이 잘랐느냐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알고 보니까 자기 여동생이 5cm를 자르고, 또 어머니가 5cm를 자르고, 아내도 5cm를 자른 것입니다. 비록 바지는 짧아져서 볼 모양이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래, 바지의 길이가 짧은 것이 무슨 대수냐? 우리 가족이 이만큼 서로 생각해 주고 위해주고 아껴주는데 내가 더 부러울 것이 무엇이냐?" 그러면서 그는 자랑하는 마음으로 그 짧아진 바지를 입고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일터가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각 부서도 이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해 주고, 위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아름다운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있는 곳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복을 허락하지 않겠습니까? 아무쪼록 서로를 생각해주는 따스한 마음으로 추운 캘거리의 겨울을 보다 포근하게 지내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