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여러분, 성경과 과학은 어떤 관계일까요? 서로 충돌하고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좋지 못한 관계일까요? 아니면 서로 보완하고, 서로 협조하는 좋은 관계일까요? 중세시대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인 ‘갈릴레오‘란 사람이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하는 일명 ’지동설‘ 다른 말로 ‘태양 중심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지동설은 당시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 다른 말로 ‘지구 중심설‘을 주장하는 교황청과 충돌이 되었습니다. 이를 놓고 보면 성경과 과학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결국 과학자인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옳았으니 성경이 틀리고 과학이 맞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교황청의 무지와 잘못 때문이지, 결코 성경의 오류가 아닙니다. 도리어 성경은 처음부터 지동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경 구절을 보면 욥기 26:7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즉 하나님이 지구를 만들 때, 지구가 우주라는 공간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 하나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영국의 생물학자인 ‘다윈’의 진화론과 성경이 말하는 창조론은 분명히 충돌됩니다. 두 개가 같이 양립할 수는 없습니다. 도대체 어느 것이 옳을까요? 1925년 미국의 테네시 주에서 이에 대한 재판이 열렸습니다. 일명 ‘원숭이 재판’입니다. 즉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가 되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표적인 충돌입니다. 그래서 일명 ‘원숭이 재판’이라고 하는 겁니다.
당시 과학 교사였던 ‘존 스콥스’라는 사람이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당시 테네시 주의 법률은 기독교의 창조론에 바탕을 두고 학교 내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재판에는 진화론자와 창조론자가 첨예하게 대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판은 당시 라디오로 중계가 되어 미국 전역에 알려졌고, 세간의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습니다. 재판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진화론을 가르친 ‘존 스콥스’라는 과학 교사가 100달러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그 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진화론자와 창조론자 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쌍방 간의 충돌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2012년 ‘한국 갤럽’이란 기관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613명에게 인류의 기원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인간은 다른 생물 중에서 진화했다.“고 대답한 사람이 45%이고,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32%이고, ”모르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23%였습니다. 즉 진화론이 좀더 많습니다.
반면 개신교 신자들의 대답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창조론이 75%, 진화론이 14%, 모르겠다가 11%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 과학과 성경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서로 보완이 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학자도 신학자도 시간이 갈수록 더욱 사실과 진실을 좇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진실을 좇아가다 보면 결국 과학과 성경은 서로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과학이 추구하는 것도 진실이고, 성경이 추구하는 것도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자- 이게 오늘의 서론이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제가 요즘 과학자들 사이에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양자 역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수학과 관련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더욱이 저는 이과대 출신도 아닙니다. 도리어 문과 중에서 진짜 문과라고 하는 ‘영어영문학과’ 출신입니다.
고로 저의 뇌는 문과식 구조로 세팅되어 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수학, 물리학, 화학입니다. 아- 이 녀석들이 표현하는 복잡한 수학적 공식들을 보면 아직도 짜증이 납니다. 그런 제가 얼마 전부터 현대과학의 쌍두마차라고 하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뭐- 이에 대해 공부한다고 해서 제가 그에 대한 학위를 따거나, 그에 대한 전문적 수준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아니고, 도대체 이게 뭔가 궁금해서 쳐다본 겁니다. 특히 요즘 너도 나도 ‘양자 역학’에 대해 말들을 하니까 그냥 “목사로서 무식쟁이는 되지 말아야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공부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양자 역학’에 대해 몇 달간 공부하면서 “어- 이거 뭐야? 이거 성경의 수많은 기적들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가?“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이 ‘성경의 기적과 양자 역학’입니다. 즉 성경의 기적들을 최신 과학인 ‘양자 역학’으로 살펴보면서, 성경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하자는 겁니다.
여러분, ‘양자 역학’ 하면 좀 생소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근데 양자역학은 지금 우리들의 실생활에 너무도 중요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바로 양자 역학의 원리를 적용한 겁니다. 즉 양자 역학이 없으면 컴퓨터 스마트폰의 탄생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의료기계인 MRI와, 정보 통신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양자 암호화 기술도 역시 양자 역학 원리로 작동되는 겁니다.
또한 지금 과학자들이 만들려고 하는 양자 컴퓨터는 현재의 슈퍼컴퓨터보다 30조 배나 빠르다고 합니다. 기존의 슈퍼컴퓨터로도 1만년이 소요되는 문제를 단 3-4분 만에 해결하는 꿈의 컴퓨터입니다. 이것이 실현되면 인류에게 4차 산업혁명을 완성시킬 것이요, 무한시대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양자 역학이란 학문은 1900년대 초부터 대두된 학문입니다. ‘양자’란 ‘미시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의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 전자, 중성자, 양성자... 등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고, 이에 대한 현상을 다루는 학문을 ‘양자 역학’이라고 합니다. 양자란 양쪽이란 뜻이 아니고, 영어로 ‘Quantum Mechanics'입니다. 즉 ’질과 양‘이란 말에서 양을 뜻하는 ’Quantity'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현재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 모든 물질은 최소 단위인 ‘원자’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 원자는 너무 작아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머리카락 굵기의 100만분의 1 크기입니다. 일반 광학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배율이 좋은 특수 전자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1000억분의 1 크기인 원자핵과 그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전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 자꾸 복잡해지는데... 여기서 잠깐 스톱(stop)합시다. 오늘 뭐 물리학 시간도 아니고.... 양자 역학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 중에 ‘닐스 보어’라는 학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양자 역학 이야기를 듣고 한 번에 이해하면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
그리고 양자 역학의 또 다른 대가인 ‘파인만’이란 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양자 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아니, 여러분, 이렇게 어려운 양자 역학을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더구나 교회의 주일 예배 시간에 논한다니, 이거 우리 수준을 뭐로 보고 하는 겁니까?
우리가 뭐 아인슈타인보다 뛰어난 물리학의 천재입니까? 여러분, 아인슈타인도 생전에 양자 역학을 부정한 사람입니다. 왜 그가 양자 역학을 부정했느냐 하면, 양자 역학은 불확실합니다. 이전의 고전 역학(거시 물리학)에서는 이 세상의 현상들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합니다. 수학적 공식으로도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그러나 양자 역학에서는 이 세상 현상들에 대한 예측이 종종 불확실 합니다. 고전 역학이 결정론적 입장이라면, 양자 역학은 확률론적 입장입니다. 아니, 과학이 진짜 과학이 되려면 99%를 넘어 100%로 맞아 떨어져야만 그것을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그게 과학의 법칙이 되고, 과학의 원리가 됩니다.
그런데 양자 역학이 최신 과학이라고 해놓고 확률론적 입장을 취하면 그게 어디 과학입니까? 거기다 한수 더 떠서 ‘불확실성의 원리’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양자 역학에 대해 설명합니다. 아니, 불확실한 것을 최신 과학이라고 하니까 아인슈타인이 영- 마음이 안 들어서 양자 역학자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그러자 양자 역학의 대가인 ‘닐스 보어’라는 학자가 이렇게 대꾸합니다. “아인슈타인, 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지 마시오.(Stop telling God what to do.)” 즉 아인슈타인의 말뜻은 “신(하나님)은 우주를 그렇게 불확실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닐스 보어’라는 학자의 말뜻은 “아- 신(하나님)이 그런 ‘불확실성의 원리‘를 우주에다 만들어 났는데, 당신이 뭔데 신에게 감히 이래라 저래라 도전하느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둘 중에 누가 틀리고 누가 맞았을까요? 예- 아인슈타인이 틀리고, ‘닐스 보어’라는 학자가 맞았습니다. 아- 천하에 아인슈타인이 자기 전공인 물리학에서 틀리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습니까? 당시 아인슈타인이 양자 역학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 이거 이해가 안 된다.”
그러자 양자 역학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이걸 왜 인간이 이해를 해야 되느냐?” 즉 “이 세상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 니가 그 현상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우주에 엄연히 존재하는 양자 역학의 현상 자체가 부정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자- 이들의 대화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뭐지요? 바로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기적들을 가리켜 허황된 과장이나 꾸며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왜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자 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의 기적과 기이한 현상들이 이해가 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원자의 핵을 공전하고 있는 전자들은 일정한 궤도를 따라 돌다가 갑자기 자신의 궤적과 흔적도 안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지구가 이동의 궤적도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떡- 하니 목성 주위를 공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빛보다 빠른 속도로 순간 이동한 겁니다. 이전의 100년 동안 절대 진리로 여겨졌던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고 하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양자 역학에서는 깨지는 겁니다. 아니,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런데 성경에 보십시오. 이런 기적이 참 많습니다.
자- 오늘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두 제자가 낙심하며 ‘엠마오’라는 동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부활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그들에게 부활에 관한 성경 내용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날이 저물자 그들과 예수님은 동네에 들어가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들은 지금 자신들에게 나타나 성경을 가르쳐주신 이 분이 부활한 예수님인 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그들에게 떼어 주었는데,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는지라.”(눅24:31)
보세요. 그들이 예수님을 인식하고 바라보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순간 이동한 겁니다. 아니, 이게 어찌된 영문입니까? 지금 나타나신 예수님은 영이 아니고 부활의 몸입니다. 눈에도 보이는 물체입니다. 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물체가 순식간에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겁니다.
아니, 이게 도대체 웬 일이니? 즉 이런 순간이동의 기적이 양자 역학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이를 양자 역학으로 대입하면 원자핵을 돌던 전자가 갑자기 사라져서 딴 곳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이를 양자 역학에서는 ‘양자 도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제자가 예수님을 바라보려고 하자, 즉 관측을 하려고 하자 예수님이 싹- 사라졌습니다.
“아- 이거 양자 역학의 학자들이 알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 하면 양자 역학의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인 ‘양자 중첩’ 현상이란 것이 있는데 ‘관측’의 유무에 따라 전자의 성질이 바뀌게 됩니다. 즉 전자는 파동과 입자의 중첩 상태로 있지만, 관측을 하느냐 관측을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전자의 성질이 바뀝니다.
관측 전에는 파동으로 있던 전자가 관측을 하니까 순식간에 입자로 바뀝니다. 여러분, 입자 즉 물체는 나무나 시멘트벽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소리와 같은 파동은 나무나 시멘트벽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돌멩이 같은 물체를 벽에 던져보세요. 물체는 아무리 작더라도 나무나 시멘트벽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와이파이나 소리 같은 파동은 나무나 시멘트벽도 통과합니다. 맞지요? 즉 예수님이 입자인 물체로만 있으면 나무 벽으로 된 문이 가로 막혀 있어서 순간이동을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파동으로 변하면 가능합니다. 즉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순간 이동도 양자 역학의 원리로는 가능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100% 신이고, 100% 인간인 것도 이해가 잘 안되지만, 양자 역학의 법칙 중 하나인 ‘양자 중첩’ 현상으로 보면 이해가 됩니다.
좀 복잡하지요? 오늘은 이 만큼 하고 결론을 냅시다. 여러분, 성경에는 수많은 기적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느냐에 대한 과학적, 물리학적, 수학적 설명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기적을 의심하고, 그런 기적을 기록한 성경도 의심하고, 그런 기적을 일으킨 하나님과 예수님도 의심합니다.
그러나 요즘 새롭게 등장한 ‘양자 역학’이란 물리학으로 우리는 성경의 기적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기적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는 믿음을 현실 속에서 더욱 확실히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과학과 이성만 의지하는 불신자들에게도 최신 과학인 양자 역학으로 그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의 기적, 하나님의 기적은 절대로 비과학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만드시는 분이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이십니다.(롬4:17) 비록 이런 기적들이 때로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못해도, 그것은 인간의 과학지식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해서 그런 겁니다.
앞으로 좀 더 과학이 발달 되거나, 우리들의 지식수준이 예수님처럼 되면, 즉 저와 여러분들이 부활의 육체를 입으면 일일이 그런 것들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 모든 것들이 다 이해가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현재의 과학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성경의 여러 가지 기적들도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분명히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그런 실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바로 내 아버지입니다. 그런 하나님 아버지가 나와 너를 위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기적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이 지금도 나를 돕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런 기적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하나님의 도움 속에 이 외국 땅에서 기적과 표적이 따르는 믿는 자의 복된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오늘날 이루어지는 양자 역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인 것을 더욱 확실히 믿을 수 있고, 또한 이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들에게 큰 믿음을 주셔서 새해에는 기적을 이루고, 그 기적을 통하여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