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거의 모든 교회의 성전에 보면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대성전에 십자가가 가운데에 있습니다. 이 십자가를 보면서 무슨 생각이 납니까? 혹시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어- 그러고 보니 십자가는 +(플러스) 표시구나.“ 그래서 십자가를 자세히 보니까 ”어- 여기에는 –(마이너스)도 있구나.“ 그러고 보니 십자가에서 수직선을 빼면 –가 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45도 기울이면 ×(곱하기) 표시도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수평선과 맞닿은 수직선을 위 아래로 조금만 지워주면 ÷(나누기)도 됩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신앙의 사칙연산’으로 정했습니다. ‘연산’을 영어로 하면 ‘Arithmetic’이란 단어를 씁니다
‘Arithmetic’(연산)이란 말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말로 ‘숫자’를 뜻하는 ‘arithmos’와 ‘기술’을 뜻하는 ‘techne’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이때 ‘연산’이란 단어 대신 ‘계산’(Calculation)이란 단어를 안 씁니다. 왜냐하면 ‘계산’이란 단어는 머리를 써서 수치를 뽑아내거나 결과를 예측하는 행위로서, 단어의 뉘앙스가 ‘거래를 위해 머리를 굴리는 인간적인 계산’이란 부정적인 느낌입니다.
반면 ‘Arithmetic’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우주의 공식 같은 느낌입니다. 즉 단지 어떤 수치를 셈하는 것이 아니라,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원리’와 ‘법칙’ 자체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삶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산(Arithmetic)’이라는 단어가 훨씬 잘 어울립니다.
이에 대한 예를 들어볼까요? “Stop your human calculations.”(너의 인간적인 계산을 멈춰라) 할 때 ‘calculation’이란 단어를 쓰고요, “Use spiritual arithmetic.”(신령한 연산을 사용하십시오) 할 때는 ‘arithmetic’이란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이 영어로 ‘The four Arithmetics of Faith’(신앙의 사칙연산)입니다. 오늘은 이에 대하여 알아봄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빼기(-) : 비움과 회개
사람들은 무언가를 자꾸 채워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신앙의 성숙은 ’더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일단 ’빼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신앙의 시작은 내 안에 가득 찬 ’나‘를 빼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욕심, 교만, 죄의 습관을 덜어내는 과정입니다. 이를. 성경적인 표현으로 ’회개’라고 하고 ‘비움’이라고 합니다.
한 유명한 조각가가 거대한 대리석으로 아름다운 천사상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냐고 묻자 그는 대답했습니다. ”대리석에서 천사가 아닌 부분만 깎아냈을 뿐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부분들을 빼낼 때, 비로소 우리 안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상이 드러납니다.
또 다른 예화입니다. 두 사람이 육지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섬으로 가다가 그만 배가 파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사업을 해서 이익을 남긴 금덩어리가 있었습니다. 꽤 무겁고 큰 금덩어리입니다. 한 사람은 살기 위해 아깝지만 그 무거운 금덩이를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헤엄을 쳐서 섬에 도달해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그 무거운 금덩이를 차마 바다에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단단히 묶고 헤엄을 치다가 그만 지쳐서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살기 위해서는 일단 무거운 금덩어리도 버려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살기 위해 일단 내가 좋아하는 육적인 것을 빼는 일, 즉 회개와 비움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라디아서 5:24) 즉 내 삶에서 빼야 할 가장 큰 덩어리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라는 마이너스 기호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런 표현을 씁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즉 한 번만 정욕과 탐심을 빼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Daily)’ 뺍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은 날마다 순간마다 계속 생기기 때문입니다.
2. 더하기(+) : 경건과 훈련
신앙은 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비어 있고 청소된 집에 더 악한 귀신이 들어올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마태복음 12장) 그래서 반드시 마귀가 빠진 자리에 성령을 더해야 합니다. 그 뺀 자리에 하나님의 성품과 거룩한 습관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와 사랑을 매일 더해야 합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을 안 하면 아내가 알고, 사흘을 안 하면 청중이 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압니다. 뭔가 기분이 안 좋습니다. 고로 매일 기도합니다.
좋은 신앙이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매일 기도의 시간을 더하고, 말씀 한 구절, 한 장을 더하는 꾸준한 ‘영적 적립’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과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매년 가느다란 나이테 한 줄을 더하며 성장합니다.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십 년 동안 더해진 그 나이테의 줄들이 모여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거목이 만들어집니다.
3. 곱하기 (×) : 은혜와 축복
내가 가진 작은 것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상상할 수 없는 크기로 확장시키십니다. 이것은 ‘노력’의 영역이 아닌 ‘은혜’의 영역입니다. 예수님께 가져온 어린아이의 도시락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습니다. 그것은 한 명의 한 끼 식사에 불과했지만,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남자만 5,000명이 먹고 12 광주리가 남는 ‘곱하기’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즉 ‘내 작은 순종 × 하나님의 능력 = 무한대’의 공식이 성립됩니다.
또 다른 예화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비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천국은 마치 작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 작은 씨가 땅에 심기면 수천의 수만의 열매를 맺습니다. 신앙의 전도나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에게 전한 복음이 그 가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곱하기의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아주 민감하게 생각하는 십일조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십일조는 산술적으로는 내 주머니와 통장에서 빠져나가니까 ‘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원리로 보면 하나님의 축복을 불러오는 강력한 ‘곱하기(×)’ 법칙입니다. 십일조를 단순한 의무로 보면 ‘빼기’가 되어 고통스럽지만, ‘은혜의 곱하기’로 보면 설레는 모험이 됩니다.
우물에서 깊은 땅속의 물을 끌어 올리려면 먼저 한 바가지의 ’마중물’을 부어야 합니다. 그 한 바가지를 아까워해서 홀딱 마셔버리면 영원히 땅속의 풍부한 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내 삶으로 끌어올리는 ’곱하기의 마중물‘입니다. 내가 드린 10분의 1이 하나님의 무한대와 만나면 내 삶 전체를 적시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증가시키게) 하시리니”(고린도후서 9:10) 여기서 ‘더하게 하신다.’라는 뜻은 원어적 의미로 ‘곱절로 늘리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은 씨앗을 단순히 한두 개 더하시는 분이 아니라, 수확의 법칙인 삼십 배, 육십 배, 백배, 천 배, 만 배, 곱하기로 되돌려주시는 분입니다.
오늘의 본문 마태복음 6:33을 봅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서 ‘더하시리라’는 헬라어 ‘프로스티데미’는 단순히 하나를 더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 있는 것에 덧붙여 풍성하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먼저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을 ‘곱하기’의 은혜로 책임지시겠다는 겁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우리의 작은 순종과 헌신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질 때, 덤으로 주시는 은혜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다들 이런 곱하기의 은혜와 특권을 누리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4. 나누기(÷) : 희생과 섬김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는 단계입니다. 신기하게도 신앙의 세계에서는 나누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성해집니다. 세상의 계산법에서 나누기는 내 몫이 줄어드는 것이지만, 천국 계산법에서 나누기는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언 11:24)
세상은 내 것을 남과 나누면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누면(흩으면) 오히려 결과가 더 커지는 신비한 진리를 말합니다. 주님도 직접 말씀합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
이스라엘 땅에는 요단강이 있습니다. 그 요단강 물을 받기만 하고 내보내지 않는 ‘사해‘는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반면 물을 받아 아래로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갈릴리 호수’는 생명이 넘치는 풍성한 곳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나눔이 멈추면 신앙도 고여서 썩게 됩니다. 고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정이나 교회를 비롯해 어느 공동체이든지 무거운 짐은 서로 나누어져야 합니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가 혼자 힘들어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장인인 이드로를 통해 모세에게 귀한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다름 아닌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웠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교회의 각 부서를 만들고, 책임자를 세우고, 짐을 서로 나누어졌습니다. 여러분, 좋은 가정, 좋은 교회, 좋은 공동체는 서로 짐을 나누어지는 사람이 많은 곳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을 개척 2년 만에 기적적으로 마련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다름 아닌 각자가 짐을 나누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전 건축을 위한 부흥회를 할 때에 마귀가 크게 역사했습니다. 각 사람의 마음이 갈기갈기 모두 찢어졌습니다. 출석 인원도 반으로 줄었습니다. 거기다가 건축부흥회를 한다니까 헌금하기 싫어서 그런지 다들 눈치를 보고 교회를 슬슬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그때 제가 성도님들을 타일렀습니다. “여러분, 헌금 안 해도 괜찮습니다. 모자라면 제가 다 낼 테니까 교회를 떠나지 말아주세요.”
그런데 그 당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액수는 건물값의 1/3인 20만 불 + 알파가 필요했습니다. 그때 그 부흥회에 한국에서 한 권사님이 오셨습니다. 왜 오셨을까요? 다름 아닌 건축 헌금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게 액수가 모자랍니다. 그때 그 권사님이 이렇게 기도한 것을 들었습니다. “주여- 혼자 지기에 이 짐이 너무 무겁사오니 이 짐을 서로 나눠서 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기도대로 하나님이 짐을 서로 나누어지도록 하셨습니다. 부흥회 강사님의 말씀대로 1인당 3천 불씩 모두 작정했습니다. 한 가정에 4식구면 12000불이나 됩니다. 상당히 큰 액수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그 당시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미리 돈을 주셔서 통장에 비치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치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금은보화를 출애급 당시 이집트 사람들이 준 것처럼, 이때를 위해 하나님이 각자에게 미리 돈을 챙겨주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각자가 짐을 나누어지므로 이 아름다운 성전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성숙 단계는 짐을 나누어질 줄 아는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각자 자기가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도 자기가 져야 할 짐이 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짐을 나누어질 때, 저와 여러분의 가정과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리고 하늘나라가 아름답게 가꾸어집니다.
결론입니다. 내 손에 든 세상적이고 이기적인 낡은 계산기는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계산법을 적용해야 합니다. 내 자아를 빼고, 경건을 더하며, 은혜를 곱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짐도 나누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본인의 신앙 상태에서 가장 필요한 연산은 무엇인가요? 빼기입니까? 더하기입니까? 곱하기입니까? 나누기입니까? 혹은 모두 다입니까? 아무쪼록 신앙의 사칙연산이 천국 문 앞에 서는 그날까지 아름답게 이루어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주여, 인생을 나의 계산대로 살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연산법칙대로 살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연산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옵소서. 그 연산법을 잘 배우고 잘 실천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